— 교회 2층 끝자리, 카메라 렌즈 너머로 드리는 감사의 기도
교회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다.
그 문을 들어서는 순간이면 문득 오래전 명절에 부모님 댁을 찾아가던 기억이 떠오른다. 먼 길을 달려 고향집 대문 앞에 섰을 때의 반가움, 부모님이 문을 열어 놓고 나를 기다리고 계실 것만 같은 푸근함이 마음속으로 밀려온다.
세월이 흘러도 고향집을 찾아가던 그 마음만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먼 길의 피로가 사라지고,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지던 그 시절의 기억이다.
이제는 교회 문을 들어설 때 가끔 그런 감정을 느낀다.
교회는 내게 단순히 예배를 드리는 장소만은 아니다. 한 주간 세상살이에 지친 마음을 내려놓고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곳이며,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는 또 하나의 고향집 같은 곳이다.
예배당 안으로 들어서면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찬양이 먼저 나를 맞이한다.
그 찬양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명절날 고향집에 도착했을 때 부모님이 반갑게 맞아 주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오느라고 고생 많았다. 어서 들어오너라.”
누군가 내게 실제로 건네는 말은 아니지만, 찬양의 선율이 마치 그런 따뜻한 환영의 인사처럼 마음에 와닿는다.
살아오면서 수많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떤 문 앞에서는 기대에 부풀었고, 어떤 문 앞에서는 망설이기도 했다. 때로는 반가움보다 부담이 앞서는 자리도 있었다.
그러나 교회 문턱을 넘을 때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이곳에서는 내가 세상에서 무엇을 이루었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저 같은 믿음 안에서 서로를 반겨 주는 사람들과 함께 예배드릴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예배가 시작되기 전, 성도들은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한 주간 평안하셨어요?”
“건강하시지요?”
“오늘도 반갑습니다.”
짧고 평범한 인사말이지만 그 안에는 사람을 향한 따뜻한 정이 담겨 있다.
교회에서 만난 성도들은 피를 나눈 가족은 아니지만, 명절에 오랜만에 만나는 먼 친척처럼 정겹다. 서로 다른 곳에서 태어나 저마다 다른 세월을 살아왔지만, 한 교회에서 만나 안부를 묻고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조금씩 가까워진 사람들이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신기한 인연이다.
세상에서는 아무런 인연 없이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를 사람들이 이곳에서는 서로를 형제자매라 부른다. 누군가 아프다는 소식에는 함께 걱정하고, 기쁜 일이 생기면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어려움이 있을 때에는 조용히 기도해 준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반드시 같은 피를 나눈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랜 세월 함께하며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하고, 힘들 때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 또한 인생에서 만나는 소중한 가족이 아닐까.
그렇게 교회 안에서 오가는 작은 인사와 미소는 내게 또 하나의 가족을 만나는 기쁨이 된다.
찬양이 끝나고 목사님의 설교가 시작되면 예배당은 조용해진다.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있으면 때때로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자식들에게 들려주시던 덕담이 떠오른다.
명절날 온 가족이 둘러앉은 자리에서 아버지는 자식들의 건강과 앞날을 걱정하시며 좋은 말씀을 들려주시곤 했다.
“서로 아끼며 살아라.”
“남에게 상처 주지 말고 바르게 살아라.”
어린 시절에는 그 말씀의 깊이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 보고 나이가 들어서야 그 평범한 당부 속에 얼마나 깊은 사랑이 담겨 있었는지 조금씩 깨닫게 된다.
목사님의 설교는 성경을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지만 그 말씀을 듣는 내 마음에는 자식이 바른길을 걸어가기를 바라시던 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이 함께 떠오른다.
말씀을 들으며 지나온 삶을 돌아보기도 하고,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잘못을 생각하기도 한다. 때로는 위로를 받고, 때로는 앞으로 남은 날들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젊은 날에는 삶의 정답이 멀리 있는 줄 알았다. 더 많은 것을 이루고, 더 높이 올라가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마음에 남는 것은 거창한 성공보다 사람을 향한 따뜻한 말 한마디이며, 어려울 때 건네받았던 작은 위로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오늘도 카메라를 들고 교회 2층 맨 뒤편에 선다.
그곳은 예배당 전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자리다.
카메라의 방향을 맞추고 화면을 살핀다. 화면 안에는 찬양하는 성도들의 모습이 담긴다. 눈을 감고 조용히 기도하는 사람, 두 손을 모으고 말씀을 듣는 사람, 찬양을 따라 부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차례로 지나간다.
나는 카메라를 통해 그들을 바라본다.
처음에는 예배 장면을 화면에 잘 담는 일에 마음을 쏟았다. 어느 위치에서 촬영해야 하는지, 화면이 제대로 잡히고 있는지 살피는 것이 내게 주어진 작은 봉사의 일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카메라 화면은 내게 단순히 예배 장면을 보여 주는 창이 아니게 되었다.
화면 속 성도들의 진지한 기도와 찬양을 바라보는 동안, 나 또한 그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누군가는 감사할 일이 있어 이 자리에 왔을 것이다. 누군가는 마음속에 근심을 안고 왔을 것이며, 또 누군가는 외로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조용히 기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사정을 내가 모두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같은 찬양을 부르고, 같은 말씀을 듣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마음이 뭉클해질 때가 있다.
카메라 화면에는 사람들의 모습만 담기지만, 내 마음에는 그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기쁨과 감사가 쌓여 간다.
그러다 문득 내 지난날도 떠오른다.
젊은 시절에는 가족을 위해 앞만 보고 살아왔다. 해야 할 일은 많았고, 하루하루를 무사히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때가 있었다.
그때는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이루고 난 뒤에야 찾아오는 것이라 생각했다. 조금 더 여유로워지고, 조금 더 형편이 나아지면 그때 비로소 마음 편히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행복은 반드시 먼 훗날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도 건강한 몸으로 교회에 나올 수 있다는 것, 반가운 성도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다는 것, 익숙한 찬양을 들으며 마음의 평안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카메라를 들고 작은 봉사라도 할 수 있다는 것.
그 평범한 순간들이 바로 내가 누리고 있는 행복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감사의 이유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젊은 날에는 무엇인가를 얻었을 때 감사했다면, 이제는 이미 내게 주어진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으며 감사하게 된다.
아직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두 발로 교회 문턱을 넘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며, 누군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세월이 더 흐르면 지금처럼 카메라를 들고 봉사하는 일이 쉽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이 자리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나는 카메라 화면 속 예배당을 가만히 바라본다.
성도들의 찬양 소리가 2층 끝자리까지 울려 퍼진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치 명절날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안부를 나누던 고향집의 따뜻한 풍경이 떠오른다.
문득 내 마음속에서 감사의 기도가 흘러나온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를 이 따뜻한 교회로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회 현관문을 들어설 때마다 고향집에 돌아온 듯한 평안을 느끼게 하시고, 찬양 속에서 부모님의 따뜻한 환영을 떠올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피를 나눈 가족은 아니지만 서로의 안부를 묻고 아픔을 위로하며 기쁨을 나누는 믿음의 가족을 만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하시고, 남은 날들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아직 건강한 몸으로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제 손으로 카메라를 들고 예배의 모습을 담을 수 있으며, 작은 봉사로나마 교회와 성도들을 섬길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제가 카메라를 통해 성도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그들의 기쁨과 아픔도 헤아릴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갖게 해 주십시오.
남은 삶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제가 하는 조용한 봉사가 감사하는 마음의 표현이 되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저에게 허락된 오늘이라는 시간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매 순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게 해 주십시오.
마음속으로 기도를 마치고 다시 카메라 화면을 바라본다.
예배당의 풍경은 조금 전과 다르지 않다. 성도들은 여전히 찬양하고 기도하며 목사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한결 따뜻하고 평안해져 있다.
생각해 보면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행복이 그리 대단한 것만은 아닌 듯하다.
누군가 나를 반갑게 맞아 주는 곳이 있고, 서로의 안부를 물을 사람들이 있으며, 내가 아직 누군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인생은 충분히 따뜻해질 수 있다.
고향집을 찾아가던 명절날의 설렘은 세월과 함께 추억이 되었지만, 교회 문을 들어설 때 느끼는 반가움은 오늘도 내 마음속에 살아 있다.
그 문 안에는 정겨운 성도들이 있고, 마음을 어루만지는 찬양이 있으며,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말씀이 있다.
그리고 교회 2층 맨 뒤편에는 카메라를 들고 그 모든 풍경을 감사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내가 있다.
나는 오늘도 카메라를 통해 예배당의 모습을 담는다.
렌즈에는 성도들의 찬양과 기도하는 모습을 담고, 마음에는 그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행복을 담는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행복은 언제나 오래 머무는 것이 아니며, 감사할 수 있는 순간 또한 무한히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래서 오늘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하다.
지나간 세월을 아쉬워하기보다 지금 내게 허락된 시간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싶다. 아직 건강하여 걸을 수 있고,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으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예배드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삶은 충분히 감사하다.
언젠가 오늘의 이 풍경도 그리운 추억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이 자리가 행복하다.
교회 문이 활짝 열려 있듯 내 마음도 감사와 사랑을 향해 활짝 열려 있기를 바란다.
오늘도 나는 교회 2층 끝자리에서 조용히 기도한다.
“하나님, 제게 허락하신 지난 세월도 감사하지만, 아직 건강하여 이렇게 봉사할 수 있는 오늘이 더욱 감사합니다.
먼 훗날의 행복을 기다리느라 지금의 행복을 놓치지 않게 하시고, 제게 주어진 오늘을 감사와 사랑으로 살아가게 해 주십시오.
오늘도 이 자리에 있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교회 2층 끝자리에서, 감사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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