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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소풍 가는 날

생각이머무는곳

글 소풍 가는 날

서로를 향해 돌아앉는 일

서로를 향해 돌아앉는 일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행복보다 불행이라는 말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행복한 집은 비슷하고 불행한 집은 다르다니, 사람 사는 모습을 그렇게 나눌 수 있을까 싶었다. 어느 집에나 말 못 할 사정 하나쯤은 있고, 웃음이 잦은 집에도 눈물을 삼키는 밤은 있을 터였다. 그때의 나는 이 문장의 뜻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채 기억해 두었다. 살다 보면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문장을 떠올린 것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닦던 날이었다. 한 사람은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다른 사람은 물컵을 씻었다. 나는 식탁을 닦다가 바닥에 떨어진 밥알을 주웠다. 별다른 대화도 없었다. 누구도 일을 나누어 시키지 않았지만, 각자 눈에 보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행복한 가정이 서로 닮았다는 말은 이런 작은 배려를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가정이 닮았다는 것은 같은 크기의 집에 살거나 비슷한 음식을 먹는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침마다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집도 있고, 말없이 현관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 주는 집도 있다.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도 상대가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닮아 있다. 늦게 돌아올 사람의 밥을 남겨 두고, 지쳐 누운 사람 곁에서는 텔레비전 소리를 낮추는 일. 그런 행동에서 우리는 자신이 보살핌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

어린 시절에는 집이 저절로 따뜻해지는 줄 알았다. 겨울이면 방바닥에 온기가 돌고, 저녁이면 부엌에서 밥 냄새가 났다. 옷장에는 빨아 놓은 옷이 있었고, 감기에 걸리면 머리맡에 물 한 잔이 놓였다. 나는 그것들을 해가 뜨고 지는 일처럼 당연하게 여겼다. 누군가 먼저 일어나 쌀을 씻고, 찬물에 손을 담그고, 한밤중에도 잠을 깨 내 이마를 짚어 보았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헤아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밥을 먹을 때면 늘 비슷한 질문을 하셨다. 싱겁지는 않으냐, 더 먹겠느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 나는 그 물음들이 때로 귀찮았다. 배가 부르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학교 이야기를 물으면 별일 없었다는 말로 끝내곤 했다. 이제 생각하면 어머니는 반찬의 간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만 궁금하셨던 것이 아니다. 내가 하루를 잘 보냈는지, 혹시 혼자 속상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고 싶으셨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비슷한 말을 건넨다. 밥은 먹었는지, 춥지는 않은지, 오늘은 늦는지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이 짧으면 서운하다가도 어린 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을 어느새 내가 하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못했던 어머니처럼 나도 밥과 날씨를 빌려 안부를 묻는다. 그 물음에 담긴 마음을 상대가 알아주면 좋겠지만, 알아주기를 재촉하지는 않으려 한다.

물론 걱정하는 마음으로 건넨 말이 언제나 따뜻하게 들리는 것은 아니다. 늦게 들어오는 까닭을 물었다가 간섭한다는 대답을 듣기도 하고, 도와주려던 행동으로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한다. 오래 함께 살았으니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믿음 때문에 잘못 짚는 일도 생긴다. 예전에 좋아하던 음식이 이제는 입에 맞지 않을 수 있고, 평소에는 웃어넘기던 농담이 유난히 아픈 날도 있다.

나 역시 가족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대답한 적이 많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안다고 생각했다. 피곤하다는 말에는 일찍 자라고 했고, 걱정된다는 말에는 별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 뒤 상대가 입을 다물면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성급하게 해결책을 말하느라, 상대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를 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가족 한 사람이 그저 들어 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하려던 대답을 멈추었다. 상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방법을 찾았지만, 정작 그가 바라는 도움은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대답이 떠올라도 조금 더 기다리려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묻고 상대가 말을 이을 때까지 기다려 본다. 여전히 듣는 도중에 내 경험을 꺼내거나 충고부터 할 때가 있다. 그러다 상대의 표정이 달라지면 말을 멈춘다. 잘 듣는 일도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참는 연습이 필요했다.

나는 가족이 내 화를 받아 줄 것이라 믿고, 밖에서 참았던 짜증까지 집에서 쏟아 내곤 했다. 회사에서 받은 서운함을 식탁까지 가져왔고, 길에서 겪은 불쾌함 때문에 현관에서부터 날카롭게 대답했다. 가족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그 말들을 받아야 했다. 오래 곁에 있어 줄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정작 그 사람에게는 말을 가장 적게 골라 하고 있었다.

한번은 치워지지 않은 물건 하나 때문에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에는 물건을 제자리에 놓아 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곧 지난주와 지난달의 일이 따라 나왔다. 늘 그렇다는 말이 나왔고, 내 말을 한 번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말까지 보탰다. 상대도 그동안 참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눈앞의 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오래 묵은 서운함으로 서로를 몰아붙였다.

말다툼이 끝난 뒤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목이 말랐지만 거실에서 마주칠까 봐 물을 가지러 나가는 일조차 망설였다. 조금 전까지 함께 밥을 먹던 식탁이 낯설게 보였다. 방바닥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날 밤 나는 집에서 편히 쉬지 못했다.

사과는 다음 날 아침에야 했다. 어제는 내가 심하게 말했다고, 그 물건 때문에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상대는 곧바로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사과했으니 이제 풀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말을 꺼낼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듯, 상대에게도 내 사과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우리는 그날 저녁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기억하는 장면이 달랐고 서운했던 대목도 달랐다. 나는 내 말이 무시당했다고 느꼈지만, 상대는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데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서운함이 그날 한꺼번에 풀리지는 않았다. 다만 각자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전보다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말할지도 함께 생각해 보았다.

행복한 가정에도 이런 밤은 있을 것이다. 방문을 닫고 돌아서는 날도 있고, 같은 식탁에서 말없이 밥만 먹는 저녁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누군가 먼저 문을 두드리거나 아까는 미안했다고 말을 건넬 것이다. 잘라 놓은 과일 한 접시를 조심스럽게 내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일을 받았다고 서운함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할 계기는 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불행한 가정이 저마다 다르다는 말도 무겁게 다가온다. 어떤 집에는 생활의 어려움이 오래 머물고, 어떤 집에는 질병이 찾아온다. 누군가는 돌봄을 혼자 감당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낸다. 밖에서 보기에는 모두 말수가 적고 웃음이 줄어든 집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침묵이 시작된 사정과 그 안에서 견디는 어려움은 집집마다 다르다.

그래서 힘든 가정을 두고 마음가짐만 바꾸면 된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병원비를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위로와 함께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이 필요할 수 있다. 밤낮으로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에게는 대신 곁을 지켜 줄 사람이 절실하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너무 지쳐 다정하게 말할 여유를 잃는 날이 있다. 그런 사정을 헤아리지 않은 채 사랑이 부족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때 나는 다른 집의 모습을 쉽게 부러워했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이는 집, 주말마다 여행을 가는 집, 생일마다 꽃다발을 주고받는 집이 좋아 보였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찾아내는 데에는 익숙했지만, 우리가 함께 누리고 있는 일은 자주 잊었다. 사진 속 가족들이 환하게 웃고 있으면 그 집에는 늘 웃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진 밖에서 그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는 알지 못하면서.

우리 가족의 나들이는 종종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기도 했고, 식당 앞에서 오래 기다리다가 서로 말수가 줄기도 했다. 모처럼 나왔는데 왜 이러느냐는 말이 나오면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떠오르는 것은 엉뚱하게 들어선 골목의 빵집이나 차 안에서 나누어 먹던 귤이다. 당시에는 망쳤다고 여긴 하루에도 함께 웃었던 순간이 남아 있었다.

가족을 떠올릴 때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도 대개 작은 일들이다. 비가 오던 날 정류장으로 가져온 우산, 늦게 돌아왔을 때 냄비에 남겨 둔 국, 중요한 일을 앞둔 아침에 건넨 짧은 응원이 그렇다. 당시에는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누군가는 내 귀가 시간을 생각하며 기다렸고,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골랐다. 내가 무심히 지나친 순간에도 가족은 나를 살피고 있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현관에 놓인 신발이 생각난다.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는 가족의 신발이 닳으면 굽을 살펴보곤 하셨다. 어느 날에는 수선을 맡겨 두었다며 찾아오라고 하셨고, 비가 온 다음 날에는 젖은 신발 안에 신문지가 들어 있었다. 그때는 그런 손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제 젖은 신발을 말리려고 신문지를 구겨 넣다 보면, 현관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등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지난 시간이 모두 따뜻했던 것은 아니다. 이해받지 못해 서러웠던 날도 있고, 지금 떠올려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말도 있다. 고마운 기억이 있다고 해서 아팠던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가족에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좋았던 일만 남겨 두려고도, 서운했던 일로 지난날 전부를 판단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두 기억 모두 내가 함께 살아온 시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에도 지켜야 할 거리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운다. 모든 생각을 털어놓아야만 친한 것은 아니며,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이 곧 가족을 밀어내는 뜻도 아니다. 방문이 닫혀 있으면 두드리고,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기다릴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가족의 고민을 당장 알아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상대가 스스로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곁에 있는 방법임을 안다.

우리는 때로 가족이 말하지 않은 바람까지 알아주기를 기대한다. 내 표정만 보고 피곤한 줄 알고, 한숨만 듣고 무엇이 서운한지 짐작해 주기를 바란다. 나도 그런 기대 때문에 혼자 실망한 적이 많다. 요즘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려 한다. 오늘은 지쳤으니 설거지를 맡아 달라거나, 잠시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보다 말로 전할 때 오해가 줄어든다.

고맙다는 말도 아끼지 않으려 한다. 늘 하는 일이라고 해서 수고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일 밥을 차리는 사람도, 매번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면 힘이 난다. 오래 함께 살다 보면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깨끗한 욕실과 개켜 놓은 빨래를 당연하게 여기기 쉽다. 그럴수록 잠깐 멈추어 누가 이 일을 했을지 생각해 보려 한다.

물론 고맙다는 말만으로 집안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말을 건넨 뒤에도 늘 같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부엌에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지칠 것이다. 나도 한동안 집안일을 하면서 도와준다는 표현을 썼다. 함께 사는 집인데도 다른 사람의 일을 거든다고 생각했던 셈이다. 이제는 무엇을 할지 묻기 전에 쌓인 그릇과 가득 찬 휴지통을 살펴본다.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이려 한다.

가족이 달라지는 모습을 받아들이는 일도 쉽지 않다. 아이는 자라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고, 부모는 나이가 들며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한다. 씩씩하던 사람이 작은 일을 걱정하고, 내 의견을 따르던 사람이 다른 길을 고른다. 나는 가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을 입에 올리려다 멈춘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지금 마음까지 모두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느려진 걸음을 따라 걷다가 마음이 급해진 적이 있다. 조금만 서두르면 신호를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곁을 돌아보니 부모는 발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나는 신호등을 보고 있었지만 부모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며 옷깃을 여며 드렸다. 오래전 내 짧은 보폭에 맞추어 걸어 주었을 시간을 생각하니 서두르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 걱정도 없고 누구도 아프지 않으며 모든 관계가 평온한 날을 기다린다면, 행복하다고 느낄 날은 많지 않을 것이다. 걱정이 있는 저녁에도 따뜻한 국을 나누어 먹을 수 있고, 서운한 마음이 남아 있어도 상대의 젖은 옷을 널어 줄 수 있다. 나는 그런 행동을 보며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곤 했다.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 있더라도 서로를 보살피려는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우리 집이 얼마나 행복한지 판단하기보다 가족의 하루를 살피려 한다. 누가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지, 누가 말을 줄였는지, 누가 자꾸 혼자 일을 마무리하는지 돌아본다. 언제나 제때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한참 뒤에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래도 늦었다는 이유로 묻지 않고 지나가지는 않으려 한다. 지난번에는 네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면, 멈췄던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톨스토이의 문장을 다시 읽으며 행복한 가정들의 닮은 모습을 생각한다. 사는 형편도 가족의 수도 다르겠지만, 그 집에서는 누군가의 수고가 오래 외면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 사람의 말수가 줄면 다른 사람이 이유를 묻고,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면 무엇이 서운했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일들을 거듭하며 가족은 힘든 날에도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닐까.

오늘 저녁에도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도 있고,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를 안고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우선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얼굴을 보며 하루가 어땠는지 물으려 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서둘러 대답을 준비하지 않고 끝까지 듣고 싶다. 식탁에 마주 앉으면 몸만 아니라 마음도 그 사람 쪽으로 돌리고 싶다. 그날 들려주지 못한 말이 있다면, 밥을 다 먹은 뒤에도 조금 더 앉아 있으려 한다.서로를 향해 돌아앉는 일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행복보다 불행이라는 말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행복한 집은 비슷하고 불행한 집은 다르다니, 사람 사는 모습을 그렇게 나눌 수 있을까 싶었다. 어느 집에나 말 못 할 사정 하나쯤은 있고, 웃음이 잦은 집에도 눈물을 삼키는 밤은 있을 터였다. 그때의 나는 이 문장의 뜻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채 기억해 두었다. 살다 보면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문장을 떠올린 것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닦던 날이었다. 한 사람은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다른 사람은 물컵을 씻었다. 나는 식탁을 닦다가 바닥에 떨어진 밥알을 주웠다. 별다른 대화도 없었다. 누구도 일을 나누어 시키지 않았지만, 각자 눈에 보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행복한 가정이 서로 닮았다는 말은 이런 작은 배려를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가정이 닮았다는 것은 같은 크기의 집에 살거나 비슷한 음식을 먹는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침마다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집도 있고, 말없이 현관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 주는 집도 있다.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도 상대가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닮아 있다. 늦게 돌아올 사람의 밥을 남겨 두고, 지쳐 누운 사람 곁에서는 텔레비전 소리를 낮추는 일. 그런 행동에서 우리는 자신이 보살핌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

어린 시절에는 집이 저절로 따뜻해지는 줄 알았다. 겨울이면 방바닥에 온기가 돌고, 저녁이면 부엌에서 밥 냄새가 났다. 옷장에는 빨아 놓은 옷이 있었고, 감기에 걸리면 머리맡에 물 한 잔이 놓였다. 나는 그것들을 해가 뜨고 지는 일처럼 당연하게 여겼다. 누군가 먼저 일어나 쌀을 씻고, 찬물에 손을 담그고, 한밤중에도 잠을 깨 내 이마를 짚어 보았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헤아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밥을 먹을 때면 늘 비슷한 질문을 하셨다. 싱겁지는 않으냐, 더 먹겠느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 나는 그 물음들이 때로 귀찮았다. 배가 부르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학교 이야기를 물으면 별일 없었다는 말로 끝내곤 했다. 이제 생각하면 어머니는 반찬의 간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만 궁금하셨던 것이 아니다. 내가 하루를 잘 보냈는지, 혹시 혼자 속상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고 싶으셨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비슷한 말을 건넨다. 밥은 먹었는지, 춥지는 않은지, 오늘은 늦는지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이 짧으면 서운하다가도 어린 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을 어느새 내가 하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못했던 어머니처럼 나도 밥과 날씨를 빌려 안부를 묻는다. 그 물음에 담긴 마음을 상대가 알아주면 좋겠지만, 알아주기를 재촉하지는 않으려 한다.

물론 걱정하는 마음으로 건넨 말이 언제나 따뜻하게 들리는 것은 아니다. 늦게 들어오는 까닭을 물었다가 간섭한다는 대답을 듣기도 하고, 도와주려던 행동으로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한다. 오래 함께 살았으니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믿음 때문에 잘못 짚는 일도 생긴다. 예전에 좋아하던 음식이 이제는 입에 맞지 않을 수 있고, 평소에는 웃어넘기던 농담이 유난히 아픈 날도 있다.

나 역시 가족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대답한 적이 많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안다고 생각했다. 피곤하다는 말에는 일찍 자라고 했고, 걱정된다는 말에는 별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 뒤 상대가 입을 다물면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성급하게 해결책을 말하느라, 상대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를 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가족 한 사람이 그저 들어 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하려던 대답을 멈추었다. 상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방법을 찾았지만, 정작 그가 바라는 도움은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대답이 떠올라도 조금 더 기다리려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묻고 상대가 말을 이을 때까지 기다려 본다. 여전히 듣는 도중에 내 경험을 꺼내거나 충고부터 할 때가 있다. 그러다 상대의 표정이 달라지면 말을 멈춘다. 잘 듣는 일도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참는 연습이 필요했다.

나는 가족이 내 화를 받아 줄 것이라 믿고, 밖에서 참았던 짜증까지 집에서 쏟아 내곤 했다. 회사에서 받은 서운함을 식탁까지 가져왔고, 길에서 겪은 불쾌함 때문에 현관에서부터 날카롭게 대답했다. 가족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그 말들을 받아야 했다. 오래 곁에 있어 줄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정작 그 사람에게는 말을 가장 적게 골라 하고 있었다.

한번은 치워지지 않은 물건 하나 때문에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에는 물건을 제자리에 놓아 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곧 지난주와 지난달의 일이 따라 나왔다. 늘 그렇다는 말이 나왔고, 내 말을 한 번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말까지 보탰다. 상대도 그동안 참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눈앞의 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오래 묵은 서운함으로 서로를 몰아붙였다.

말다툼이 끝난 뒤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목이 말랐지만 거실에서 마주칠까 봐 물을 가지러 나가는 일조차 망설였다. 조금 전까지 함께 밥을 먹던 식탁이 낯설게 보였다. 방바닥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날 밤 나는 집에서 편히 쉬지 못했다.

사과는 다음 날 아침에야 했다. 어제는 내가 심하게 말했다고, 그 물건 때문에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상대는 곧바로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사과했으니 이제 풀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말을 꺼낼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듯, 상대에게도 내 사과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우리는 그날 저녁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기억하는 장면이 달랐고 서운했던 대목도 달랐다. 나는 내 말이 무시당했다고 느꼈지만, 상대는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데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서운함이 그날 한꺼번에 풀리지는 않았다. 다만 각자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전보다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말할지도 함께 생각해 보았다.

행복한 가정에도 이런 밤은 있을 것이다. 방문을 닫고 돌아서는 날도 있고, 같은 식탁에서 말없이 밥만 먹는 저녁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누군가 먼저 문을 두드리거나 아까는 미안했다고 말을 건넬 것이다. 잘라 놓은 과일 한 접시를 조심스럽게 내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일을 받았다고 서운함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할 계기는 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불행한 가정이 저마다 다르다는 말도 무겁게 다가온다. 어떤 집에는 생활의 어려움이 오래 머물고, 어떤 집에는 질병이 찾아온다. 누군가는 돌봄을 혼자 감당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낸다. 밖에서 보기에는 모두 말수가 적고 웃음이 줄어든 집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침묵이 시작된 사정과 그 안에서 견디는 어려움은 집집마다 다르다.

그래서 힘든 가정을 두고 마음가짐만 바꾸면 된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병원비를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위로와 함께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이 필요할 수 있다. 밤낮으로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에게는 대신 곁을 지켜 줄 사람이 절실하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너무 지쳐 다정하게 말할 여유를 잃는 날이 있다. 그런 사정을 헤아리지 않은 채 사랑이 부족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때 나는 다른 집의 모습을 쉽게 부러워했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이는 집, 주말마다 여행을 가는 집, 생일마다 꽃다발을 주고받는 집이 좋아 보였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찾아내는 데에는 익숙했지만, 우리가 함께 누리고 있는 일은 자주 잊었다. 사진 속 가족들이 환하게 웃고 있으면 그 집에는 늘 웃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진 밖에서 그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는 알지 못하면서.

우리 가족의 나들이는 종종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기도 했고, 식당 앞에서 오래 기다리다가 서로 말수가 줄기도 했다. 모처럼 나왔는데 왜 이러느냐는 말이 나오면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떠오르는 것은 엉뚱하게 들어선 골목의 빵집이나 차 안에서 나누어 먹던 귤이다. 당시에는 망쳤다고 여긴 하루에도 함께 웃었던 순간이 남아 있었다.

가족을 떠올릴 때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도 대개 작은 일들이다. 비가 오던 날 정류장으로 가져온 우산, 늦게 돌아왔을 때 냄비에 남겨 둔 국, 중요한 일을 앞둔 아침에 건넨 짧은 응원이 그렇다. 당시에는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누군가는 내 귀가 시간을 생각하며 기다렸고,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골랐다. 내가 무심히 지나친 순간에도 가족은 나를 살피고 있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현관에 놓인 신발이 생각난다.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는 가족의 신발이 닳으면 굽을 살펴보곤 하셨다. 어느 날에는 수선을 맡겨 두었다며 찾아오라고 하셨고, 비가 온 다음 날에는 젖은 신발 안에 신문지가 들어 있었다. 그때는 그런 손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제 젖은 신발을 말리려고 신문지를 구겨 넣다 보면, 현관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등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지난 시간이 모두 따뜻했던 것은 아니다. 이해받지 못해 서러웠던 날도 있고, 지금 떠올려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말도 있다. 고마운 기억이 있다고 해서 아팠던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가족에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좋았던 일만 남겨 두려고도, 서운했던 일로 지난날 전부를 판단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두 기억 모두 내가 함께 살아온 시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에도 지켜야 할 거리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운다. 모든 생각을 털어놓아야만 친한 것은 아니며,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이 곧 가족을 밀어내는 뜻도 아니다. 방문이 닫혀 있으면 두드리고,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기다릴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가족의 고민을 당장 알아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상대가 스스로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곁에 있는 방법임을 안다.

우리는 때로 가족이 말하지 않은 바람까지 알아주기를 기대한다. 내 표정만 보고 피곤한 줄 알고, 한숨만 듣고 무엇이 서운한지 짐작해 주기를 바란다. 나도 그런 기대 때문에 혼자 실망한 적이 많다. 요즘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려 한다. 오늘은 지쳤으니 설거지를 맡아 달라거나, 잠시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보다 말로 전할 때 오해가 줄어든다.

고맙다는 말도 아끼지 않으려 한다. 늘 하는 일이라고 해서 수고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일 밥을 차리는 사람도, 매번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면 힘이 난다. 오래 함께 살다 보면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깨끗한 욕실과 개켜 놓은 빨래를 당연하게 여기기 쉽다. 그럴수록 잠깐 멈추어 누가 이 일을 했을지 생각해 보려 한다.

물론 고맙다는 말만으로 집안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말을 건넨 뒤에도 늘 같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부엌에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지칠 것이다. 나도 한동안 집안일을 하면서 도와준다는 표현을 썼다. 함께 사는 집인데도 다른 사람의 일을 거든다고 생각했던 셈이다. 이제는 무엇을 할지 묻기 전에 쌓인 그릇과 가득 찬 휴지통을 살펴본다.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이려 한다.

가족이 달라지는 모습을 받아들이는 일도 쉽지 않다. 아이는 자라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고, 부모는 나이가 들며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한다. 씩씩하던 사람이 작은 일을 걱정하고, 내 의견을 따르던 사람이 다른 길을 고른다. 나는 가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을 입에 올리려다 멈춘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지금 마음까지 모두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느려진 걸음을 따라 걷다가 마음이 급해진 적이 있다. 조금만 서두르면 신호를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곁을 돌아보니 부모는 발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나는 신호등을 보고 있었지만 부모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며 옷깃을 여며 드렸다. 오래전 내 짧은 보폭에 맞추어 걸어 주었을 시간을 생각하니 서두르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 걱정도 없고 누구도 아프지 않으며 모든 관계가 평온한 날을 기다린다면, 행복하다고 느낄 날은 많지 않을 것이다. 걱정이 있는 저녁에도 따뜻한 국을 나누어 먹을 수 있고, 서운한 마음이 남아 있어도 상대의 젖은 옷을 널어 줄 수 있다. 나는 그런 행동을 보며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곤 했다.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 있더라도 서로를 보살피려는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우리 집이 얼마나 행복한지 판단하기보다 가족의 하루를 살피려 한다. 누가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지, 누가 말을 줄였는지, 누가 자꾸 혼자 일을 마무리하는지 돌아본다. 언제나 제때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한참 뒤에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래도 늦었다는 이유로 묻지 않고 지나가지는 않으려 한다. 지난번에는 네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면, 멈췄던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톨스토이의 문장을 다시 읽으며 행복한 가정들의 닮은 모습을 생각한다. 사는 형편도 가족의 수도 다르겠지만, 그 집에서는 누군가의 수고가 오래 외면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 사람의 말수가 줄면 다른 사람이 이유를 묻고,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면 무엇이 서운했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일들을 거듭하며 가족은 힘든 날에도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닐까.

오늘 저녁에도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도 있고,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를 안고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우선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얼굴을 보며 하루가 어땠는지 물으려 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서둘러 대답을 준비하지 않고 끝까지 듣고 싶다. 식탁에 마주 앉으면 몸만 아니라 마음도 그 사람 쪽으로 돌리고 싶다. 그날 들려주지 못한 말이 있다면, 밥을 다 먹은 뒤에도 조금 더 앉아 있으려 한다.서로를 향해 돌아앉는 일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행복보다 불행이라는 말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행복한 집은 비슷하고 불행한 집은 다르다니, 사람 사는 모습을 그렇게 나눌 수 있을까 싶었다. 어느 집에나 말 못 할 사정 하나쯤은 있고, 웃음이 잦은 집에도 눈물을 삼키는 밤은 있을 터였다. 그때의 나는 이 문장의 뜻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채 기억해 두었다. 살다 보면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문장을 떠올린 것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닦던 날이었다. 한 사람은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다른 사람은 물컵을 씻었다. 나는 식탁을 닦다가 바닥에 떨어진 밥알을 주웠다. 별다른 대화도 없었다. 누구도 일을 나누어 시키지 않았지만, 각자 눈에 보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행복한 가정이 서로 닮았다는 말은 이런 작은 배려를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가정이 닮았다는 것은 같은 크기의 집에 살거나 비슷한 음식을 먹는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침마다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집도 있고, 말없이 현관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 주는 집도 있다.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도 상대가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닮아 있다. 늦게 돌아올 사람의 밥을 남겨 두고, 지쳐 누운 사람 곁에서는 텔레비전 소리를 낮추는 일. 그런 행동에서 우리는 자신이 보살핌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

어린 시절에는 집이 저절로 따뜻해지는 줄 알았다. 겨울이면 방바닥에 온기가 돌고, 저녁이면 부엌에서 밥 냄새가 났다. 옷장에는 빨아 놓은 옷이 있었고, 감기에 걸리면 머리맡에 물 한 잔이 놓였다. 나는 그것들을 해가 뜨고 지는 일처럼 당연하게 여겼다. 누군가 먼저 일어나 쌀을 씻고, 찬물에 손을 담그고, 한밤중에도 잠을 깨 내 이마를 짚어 보았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헤아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밥을 먹을 때면 늘 비슷한 질문을 하셨다. 싱겁지는 않으냐, 더 먹겠느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 나는 그 물음들이 때로 귀찮았다. 배가 부르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학교 이야기를 물으면 별일 없었다는 말로 끝내곤 했다. 이제 생각하면 어머니는 반찬의 간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만 궁금하셨던 것이 아니다. 내가 하루를 잘 보냈는지, 혹시 혼자 속상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고 싶으셨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비슷한 말을 건넨다. 밥은 먹었는지, 춥지는 않은지, 오늘은 늦는지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이 짧으면 서운하다가도 어린 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을 어느새 내가 하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못했던 어머니처럼 나도 밥과 날씨를 빌려 안부를 묻는다. 그 물음에 담긴 마음을 상대가 알아주면 좋겠지만, 알아주기를 재촉하지는 않으려 한다.

물론 걱정하는 마음으로 건넨 말이 언제나 따뜻하게 들리는 것은 아니다. 늦게 들어오는 까닭을 물었다가 간섭한다는 대답을 듣기도 하고, 도와주려던 행동으로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한다. 오래 함께 살았으니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믿음 때문에 잘못 짚는 일도 생긴다. 예전에 좋아하던 음식이 이제는 입에 맞지 않을 수 있고, 평소에는 웃어넘기던 농담이 유난히 아픈 날도 있다.

나 역시 가족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대답한 적이 많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안다고 생각했다. 피곤하다는 말에는 일찍 자라고 했고, 걱정된다는 말에는 별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 뒤 상대가 입을 다물면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성급하게 해결책을 말하느라, 상대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를 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가족 한 사람이 그저 들어 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하려던 대답을 멈추었다. 상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방법을 찾았지만, 정작 그가 바라는 도움은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대답이 떠올라도 조금 더 기다리려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묻고 상대가 말을 이을 때까지 기다려 본다. 여전히 듣는 도중에 내 경험을 꺼내거나 충고부터 할 때가 있다. 그러다 상대의 표정이 달라지면 말을 멈춘다. 잘 듣는 일도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참는 연습이 필요했다.

나는 가족이 내 화를 받아 줄 것이라 믿고, 밖에서 참았던 짜증까지 집에서 쏟아 내곤 했다. 회사에서 받은 서운함을 식탁까지 가져왔고, 길에서 겪은 불쾌함 때문에 현관에서부터 날카롭게 대답했다. 가족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그 말들을 받아야 했다. 오래 곁에 있어 줄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정작 그 사람에게는 말을 가장 적게 골라 하고 있었다.

한번은 치워지지 않은 물건 하나 때문에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에는 물건을 제자리에 놓아 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곧 지난주와 지난달의 일이 따라 나왔다. 늘 그렇다는 말이 나왔고, 내 말을 한 번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말까지 보탰다. 상대도 그동안 참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눈앞의 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오래 묵은 서운함으로 서로를 몰아붙였다.

말다툼이 끝난 뒤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목이 말랐지만 거실에서 마주칠까 봐 물을 가지러 나가는 일조차 망설였다. 조금 전까지 함께 밥을 먹던 식탁이 낯설게 보였다. 방바닥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날 밤 나는 집에서 편히 쉬지 못했다.

사과는 다음 날 아침에야 했다. 어제는 내가 심하게 말했다고, 그 물건 때문에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상대는 곧바로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사과했으니 이제 풀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말을 꺼낼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듯, 상대에게도 내 사과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우리는 그날 저녁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기억하는 장면이 달랐고 서운했던 대목도 달랐다. 나는 내 말이 무시당했다고 느꼈지만, 상대는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데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서운함이 그날 한꺼번에 풀리지는 않았다. 다만 각자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전보다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말할지도 함께 생각해 보았다.

행복한 가정에도 이런 밤은 있을 것이다. 방문을 닫고 돌아서는 날도 있고, 같은 식탁에서 말없이 밥만 먹는 저녁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누군가 먼저 문을 두드리거나 아까는 미안했다고 말을 건넬 것이다. 잘라 놓은 과일 한 접시를 조심스럽게 내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일을 받았다고 서운함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할 계기는 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불행한 가정이 저마다 다르다는 말도 무겁게 다가온다. 어떤 집에는 생활의 어려움이 오래 머물고, 어떤 집에는 질병이 찾아온다. 누군가는 돌봄을 혼자 감당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낸다. 밖에서 보기에는 모두 말수가 적고 웃음이 줄어든 집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침묵이 시작된 사정과 그 안에서 견디는 어려움은 집집마다 다르다.

그래서 힘든 가정을 두고 마음가짐만 바꾸면 된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병원비를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위로와 함께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이 필요할 수 있다. 밤낮으로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에게는 대신 곁을 지켜 줄 사람이 절실하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너무 지쳐 다정하게 말할 여유를 잃는 날이 있다. 그런 사정을 헤아리지 않은 채 사랑이 부족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때 나는 다른 집의 모습을 쉽게 부러워했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이는 집, 주말마다 여행을 가는 집, 생일마다 꽃다발을 주고받는 집이 좋아 보였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찾아내는 데에는 익숙했지만, 우리가 함께 누리고 있는 일은 자주 잊었다. 사진 속 가족들이 환하게 웃고 있으면 그 집에는 늘 웃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진 밖에서 그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는 알지 못하면서.

우리 가족의 나들이는 종종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기도 했고, 식당 앞에서 오래 기다리다가 서로 말수가 줄기도 했다. 모처럼 나왔는데 왜 이러느냐는 말이 나오면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떠오르는 것은 엉뚱하게 들어선 골목의 빵집이나 차 안에서 나누어 먹던 귤이다. 당시에는 망쳤다고 여긴 하루에도 함께 웃었던 순간이 남아 있었다.

가족을 떠올릴 때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도 대개 작은 일들이다. 비가 오던 날 정류장으로 가져온 우산, 늦게 돌아왔을 때 냄비에 남겨 둔 국, 중요한 일을 앞둔 아침에 건넨 짧은 응원이 그렇다. 당시에는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누군가는 내 귀가 시간을 생각하며 기다렸고,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골랐다. 내가 무심히 지나친 순간에도 가족은 나를 살피고 있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현관에 놓인 신발이 생각난다.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는 가족의 신발이 닳으면 굽을 살펴보곤 하셨다. 어느 날에는 수선을 맡겨 두었다며 찾아오라고 하셨고, 비가 온 다음 날에는 젖은 신발 안에 신문지가 들어 있었다. 그때는 그런 손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제 젖은 신발을 말리려고 신문지를 구겨 넣다 보면, 현관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등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지난 시간이 모두 따뜻했던 것은 아니다. 이해받지 못해 서러웠던 날도 있고, 지금 떠올려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말도 있다. 고마운 기억이 있다고 해서 아팠던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가족에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좋았던 일만 남겨 두려고도, 서운했던 일로 지난날 전부를 판단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두 기억 모두 내가 함께 살아온 시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에도 지켜야 할 거리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운다. 모든 생각을 털어놓아야만 친한 것은 아니며,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이 곧 가족을 밀어내는 뜻도 아니다. 방문이 닫혀 있으면 두드리고,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기다릴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가족의 고민을 당장 알아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상대가 스스로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곁에 있는 방법임을 안다.

우리는 때로 가족이 말하지 않은 바람까지 알아주기를 기대한다. 내 표정만 보고 피곤한 줄 알고, 한숨만 듣고 무엇이 서운한지 짐작해 주기를 바란다. 나도 그런 기대 때문에 혼자 실망한 적이 많다. 요즘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려 한다. 오늘은 지쳤으니 설거지를 맡아 달라거나, 잠시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보다 말로 전할 때 오해가 줄어든다.

고맙다는 말도 아끼지 않으려 한다. 늘 하는 일이라고 해서 수고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일 밥을 차리는 사람도, 매번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면 힘이 난다. 오래 함께 살다 보면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깨끗한 욕실과 개켜 놓은 빨래를 당연하게 여기기 쉽다. 그럴수록 잠깐 멈추어 누가 이 일을 했을지 생각해 보려 한다.

물론 고맙다는 말만으로 집안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말을 건넨 뒤에도 늘 같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부엌에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지칠 것이다. 나도 한동안 집안일을 하면서 도와준다는 표현을 썼다. 함께 사는 집인데도 다른 사람의 일을 거든다고 생각했던 셈이다. 이제는 무엇을 할지 묻기 전에 쌓인 그릇과 가득 찬 휴지통을 살펴본다.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이려 한다.

가족이 달라지는 모습을 받아들이는 일도 쉽지 않다. 아이는 자라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고, 부모는 나이가 들며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한다. 씩씩하던 사람이 작은 일을 걱정하고, 내 의견을 따르던 사람이 다른 길을 고른다. 나는 가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을 입에 올리려다 멈춘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지금 마음까지 모두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느려진 걸음을 따라 걷다가 마음이 급해진 적이 있다. 조금만 서두르면 신호를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곁을 돌아보니 부모는 발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나는 신호등을 보고 있었지만 부모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며 옷깃을 여며 드렸다. 오래전 내 짧은 보폭에 맞추어 걸어 주었을 시간을 생각하니 서두르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 걱정도 없고 누구도 아프지 않으며 모든 관계가 평온한 날을 기다린다면, 행복하다고 느낄 날은 많지 않을 것이다. 걱정이 있는 저녁에도 따뜻한 국을 나누어 먹을 수 있고, 서운한 마음이 남아 있어도 상대의 젖은 옷을 널어 줄 수 있다. 나는 그런 행동을 보며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곤 했다.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 있더라도 서로를 보살피려는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우리 집이 얼마나 행복한지 판단하기보다 가족의 하루를 살피려 한다. 누가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지, 누가 말을 줄였는지, 누가 자꾸 혼자 일을 마무리하는지 돌아본다. 언제나 제때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한참 뒤에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래도 늦었다는 이유로 묻지 않고 지나가지는 않으려 한다. 지난번에는 네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면, 멈췄던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톨스토이의 문장을 다시 읽으며 행복한 가정들의 닮은 모습을 생각한다. 사는 형편도 가족의 수도 다르겠지만, 그 집에서는 누군가의 수고가 오래 외면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 사람의 말수가 줄면 다른 사람이 이유를 묻고,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면 무엇이 서운했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일들을 거듭하며 가족은 힘든 날에도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닐까.

오늘 저녁에도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도 있고,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를 안고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우선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얼굴을 보며 하루가 어땠는지 물으려 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서둘러 대답을 준비하지 않고 끝까지 듣고 싶다. 식탁에 마주 앉으면 몸만 아니라 마음도 그 사람 쪽으로 돌리고 싶다. 그날 들려주지 못한 말이 있다면, 밥을 다 먹은 뒤에도 조금 더 앉아 있으려 한다.서로를 향해 돌아앉는 일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행복보다 불행이라는 말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행복한 집은 비슷하고 불행한 집은 다르다니, 사람 사는 모습을 그렇게 나눌 수 있을까 싶었다. 어느 집에나 말 못 할 사정 하나쯤은 있고, 웃음이 잦은 집에도 눈물을 삼키는 밤은 있을 터였다. 그때의 나는 이 문장의 뜻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채 기억해 두었다. 살다 보면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문장을 떠올린 것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닦던 날이었다. 한 사람은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다른 사람은 물컵을 씻었다. 나는 식탁을 닦다가 바닥에 떨어진 밥알을 주웠다. 별다른 대화도 없었다. 누구도 일을 나누어 시키지 않았지만, 각자 눈에 보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행복한 가정이 서로 닮았다는 말은 이런 작은 배려를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가정이 닮았다는 것은 같은 크기의 집에 살거나 비슷한 음식을 먹는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침마다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집도 있고, 말없이 현관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 주는 집도 있다.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도 상대가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닮아 있다. 늦게 돌아올 사람의 밥을 남겨 두고, 지쳐 누운 사람 곁에서는 텔레비전 소리를 낮추는 일. 그런 행동에서 우리는 자신이 보살핌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

어린 시절에는 집이 저절로 따뜻해지는 줄 알았다. 겨울이면 방바닥에 온기가 돌고, 저녁이면 부엌에서 밥 냄새가 났다. 옷장에는 빨아 놓은 옷이 있었고, 감기에 걸리면 머리맡에 물 한 잔이 놓였다. 나는 그것들을 해가 뜨고 지는 일처럼 당연하게 여겼다. 누군가 먼저 일어나 쌀을 씻고, 찬물에 손을 담그고, 한밤중에도 잠을 깨 내 이마를 짚어 보았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헤아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밥을 먹을 때면 늘 비슷한 질문을 하셨다. 싱겁지는 않으냐, 더 먹겠느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 나는 그 물음들이 때로 귀찮았다. 배가 부르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학교 이야기를 물으면 별일 없었다는 말로 끝내곤 했다. 이제 생각하면 어머니는 반찬의 간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만 궁금하셨던 것이 아니다. 내가 하루를 잘 보냈는지, 혹시 혼자 속상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고 싶으셨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비슷한 말을 건넨다. 밥은 먹었는지, 춥지는 않은지, 오늘은 늦는지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이 짧으면 서운하다가도 어린 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을 어느새 내가 하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못했던 어머니처럼 나도 밥과 날씨를 빌려 안부를 묻는다. 그 물음에 담긴 마음을 상대가 알아주면 좋겠지만, 알아주기를 재촉하지는 않으려 한다.

물론 걱정하는 마음으로 건넨 말이 언제나 따뜻하게 들리는 것은 아니다. 늦게 들어오는 까닭을 물었다가 간섭한다는 대답을 듣기도 하고, 도와주려던 행동으로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한다. 오래 함께 살았으니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믿음 때문에 잘못 짚는 일도 생긴다. 예전에 좋아하던 음식이 이제는 입에 맞지 않을 수 있고, 평소에는 웃어넘기던 농담이 유난히 아픈 날도 있다.

나 역시 가족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대답한 적이 많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안다고 생각했다. 피곤하다는 말에는 일찍 자라고 했고, 걱정된다는 말에는 별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 뒤 상대가 입을 다물면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성급하게 해결책을 말하느라, 상대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를 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가족 한 사람이 그저 들어 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하려던 대답을 멈추었다. 상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방법을 찾았지만, 정작 그가 바라는 도움은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대답이 떠올라도 조금 더 기다리려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묻고 상대가 말을 이을 때까지 기다려 본다. 여전히 듣는 도중에 내 경험을 꺼내거나 충고부터 할 때가 있다. 그러다 상대의 표정이 달라지면 말을 멈춘다. 잘 듣는 일도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참는 연습이 필요했다.

나는 가족이 내 화를 받아 줄 것이라 믿고, 밖에서 참았던 짜증까지 집에서 쏟아 내곤 했다. 회사에서 받은 서운함을 식탁까지 가져왔고, 길에서 겪은 불쾌함 때문에 현관에서부터 날카롭게 대답했다. 가족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그 말들을 받아야 했다. 오래 곁에 있어 줄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정작 그 사람에게는 말을 가장 적게 골라 하고 있었다.

한번은 치워지지 않은 물건 하나 때문에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에는 물건을 제자리에 놓아 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곧 지난주와 지난달의 일이 따라 나왔다. 늘 그렇다는 말이 나왔고, 내 말을 한 번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말까지 보탰다. 상대도 그동안 참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눈앞의 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오래 묵은 서운함으로 서로를 몰아붙였다.

말다툼이 끝난 뒤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목이 말랐지만 거실에서 마주칠까 봐 물을 가지러 나가는 일조차 망설였다. 조금 전까지 함께 밥을 먹던 식탁이 낯설게 보였다. 방바닥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날 밤 나는 집에서 편히 쉬지 못했다.

사과는 다음 날 아침에야 했다. 어제는 내가 심하게 말했다고, 그 물건 때문에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상대는 곧바로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사과했으니 이제 풀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말을 꺼낼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듯, 상대에게도 내 사과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우리는 그날 저녁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기억하는 장면이 달랐고 서운했던 대목도 달랐다. 나는 내 말이 무시당했다고 느꼈지만, 상대는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데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서운함이 그날 한꺼번에 풀리지는 않았다. 다만 각자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전보다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말할지도 함께 생각해 보았다.

행복한 가정에도 이런 밤은 있을 것이다. 방문을 닫고 돌아서는 날도 있고, 같은 식탁에서 말없이 밥만 먹는 저녁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누군가 먼저 문을 두드리거나 아까는 미안했다고 말을 건넬 것이다. 잘라 놓은 과일 한 접시를 조심스럽게 내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일을 받았다고 서운함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할 계기는 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불행한 가정이 저마다 다르다는 말도 무겁게 다가온다. 어떤 집에는 생활의 어려움이 오래 머물고, 어떤 집에는 질병이 찾아온다. 누군가는 돌봄을 혼자 감당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낸다. 밖에서 보기에는 모두 말수가 적고 웃음이 줄어든 집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침묵이 시작된 사정과 그 안에서 견디는 어려움은 집집마다 다르다.

그래서 힘든 가정을 두고 마음가짐만 바꾸면 된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병원비를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위로와 함께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이 필요할 수 있다. 밤낮으로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에게는 대신 곁을 지켜 줄 사람이 절실하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너무 지쳐 다정하게 말할 여유를 잃는 날이 있다. 그런 사정을 헤아리지 않은 채 사랑이 부족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때 나는 다른 집의 모습을 쉽게 부러워했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이는 집, 주말마다 여행을 가는 집, 생일마다 꽃다발을 주고받는 집이 좋아 보였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찾아내는 데에는 익숙했지만, 우리가 함께 누리고 있는 일은 자주 잊었다. 사진 속 가족들이 환하게 웃고 있으면 그 집에는 늘 웃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진 밖에서 그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는 알지 못하면서.

우리 가족의 나들이는 종종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기도 했고, 식당 앞에서 오래 기다리다가 서로 말수가 줄기도 했다. 모처럼 나왔는데 왜 이러느냐는 말이 나오면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떠오르는 것은 엉뚱하게 들어선 골목의 빵집이나 차 안에서 나누어 먹던 귤이다. 당시에는 망쳤다고 여긴 하루에도 함께 웃었던 순간이 남아 있었다.

가족을 떠올릴 때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도 대개 작은 일들이다. 비가 오던 날 정류장으로 가져온 우산, 늦게 돌아왔을 때 냄비에 남겨 둔 국, 중요한 일을 앞둔 아침에 건넨 짧은 응원이 그렇다. 당시에는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누군가는 내 귀가 시간을 생각하며 기다렸고,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골랐다. 내가 무심히 지나친 순간에도 가족은 나를 살피고 있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현관에 놓인 신발이 생각난다.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는 가족의 신발이 닳으면 굽을 살펴보곤 하셨다. 어느 날에는 수선을 맡겨 두었다며 찾아오라고 하셨고, 비가 온 다음 날에는 젖은 신발 안에 신문지가 들어 있었다. 그때는 그런 손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제 젖은 신발을 말리려고 신문지를 구겨 넣다 보면, 현관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등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지난 시간이 모두 따뜻했던 것은 아니다. 이해받지 못해 서러웠던 날도 있고, 지금 떠올려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말도 있다. 고마운 기억이 있다고 해서 아팠던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가족에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좋았던 일만 남겨 두려고도, 서운했던 일로 지난날 전부를 판단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두 기억 모두 내가 함께 살아온 시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에도 지켜야 할 거리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운다. 모든 생각을 털어놓아야만 친한 것은 아니며,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이 곧 가족을 밀어내는 뜻도 아니다. 방문이 닫혀 있으면 두드리고,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기다릴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가족의 고민을 당장 알아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상대가 스스로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곁에 있는 방법임을 안다.

우리는 때로 가족이 말하지 않은 바람까지 알아주기를 기대한다. 내 표정만 보고 피곤한 줄 알고, 한숨만 듣고 무엇이 서운한지 짐작해 주기를 바란다. 나도 그런 기대 때문에 혼자 실망한 적이 많다. 요즘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려 한다. 오늘은 지쳤으니 설거지를 맡아 달라거나, 잠시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보다 말로 전할 때 오해가 줄어든다.

고맙다는 말도 아끼지 않으려 한다. 늘 하는 일이라고 해서 수고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일 밥을 차리는 사람도, 매번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면 힘이 난다. 오래 함께 살다 보면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깨끗한 욕실과 개켜 놓은 빨래를 당연하게 여기기 쉽다. 그럴수록 잠깐 멈추어 누가 이 일을 했을지 생각해 보려 한다.

물론 고맙다는 말만으로 집안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말을 건넨 뒤에도 늘 같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부엌에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지칠 것이다. 나도 한동안 집안일을 하면서 도와준다는 표현을 썼다. 함께 사는 집인데도 다른 사람의 일을 거든다고 생각했던 셈이다. 이제는 무엇을 할지 묻기 전에 쌓인 그릇과 가득 찬 휴지통을 살펴본다.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이려 한다.

가족이 달라지는 모습을 받아들이는 일도 쉽지 않다. 아이는 자라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고, 부모는 나이가 들며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한다. 씩씩하던 사람이 작은 일을 걱정하고, 내 의견을 따르던 사람이 다른 길을 고른다. 나는 가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을 입에 올리려다 멈춘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지금 마음까지 모두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느려진 걸음을 따라 걷다가 마음이 급해진 적이 있다. 조금만 서두르면 신호를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곁을 돌아보니 부모는 발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나는 신호등을 보고 있었지만 부모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며 옷깃을 여며 드렸다. 오래전 내 짧은 보폭에 맞추어 걸어 주었을 시간을 생각하니 서두르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 걱정도 없고 누구도 아프지 않으며 모든 관계가 평온한 날을 기다린다면, 행복하다고 느낄 날은 많지 않을 것이다. 걱정이 있는 저녁에도 따뜻한 국을 나누어 먹을 수 있고, 서운한 마음이 남아 있어도 상대의 젖은 옷을 널어 줄 수 있다. 나는 그런 행동을 보며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곤 했다.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 있더라도 서로를 보살피려는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우리 집이 얼마나 행복한지 판단하기보다 가족의 하루를 살피려 한다. 누가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지, 누가 말을 줄였는지, 누가 자꾸 혼자 일을 마무리하는지 돌아본다. 언제나 제때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한참 뒤에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래도 늦었다는 이유로 묻지 않고 지나가지는 않으려 한다. 지난번에는 네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면, 멈췄던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톨스토이의 문장을 다시 읽으며 행복한 가정들의 닮은 모습을 생각한다. 사는 형편도 가족의 수도 다르겠지만, 그 집에서는 누군가의 수고가 오래 외면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 사람의 말수가 줄면 다른 사람이 이유를 묻고,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면 무엇이 서운했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일들을 거듭하며 가족은 힘든 날에도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닐까.

오늘 저녁에도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도 있고,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를 안고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우선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얼굴을 보며 하루가 어땠는지 물으려 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서둘러 대답을 준비하지 않고 끝까지 듣고 싶다. 식탁에 마주 앉으면 몸만 아니라 마음도 그 사람 쪽으로 돌리고 싶다. 그날 들려주지 못한 말이 있다면, 밥을 다 먹은 뒤에도 조금 더 앉아 있으려 한다.서로를 향해 돌아앉는 일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행복보다 불행이라는 말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행복한 집은 비슷하고 불행한 집은 다르다니, 사람 사는 모습을 그렇게 나눌 수 있을까 싶었다. 어느 집에나 말 못 할 사정 하나쯤은 있고, 웃음이 잦은 집에도 눈물을 삼키는 밤은 있을 터였다. 그때의 나는 이 문장의 뜻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채 기억해 두었다. 살다 보면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문장을 떠올린 것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닦던 날이었다. 한 사람은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다른 사람은 물컵을 씻었다. 나는 식탁을 닦다가 바닥에 떨어진 밥알을 주웠다. 별다른 대화도 없었다. 누구도 일을 나누어 시키지 않았지만, 각자 눈에 보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행복한 가정이 서로 닮았다는 말은 이런 작은 배려를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가정이 닮았다는 것은 같은 크기의 집에 살거나 비슷한 음식을 먹는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침마다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집도 있고, 말없이 현관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 주는 집도 있다.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도 상대가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닮아 있다. 늦게 돌아올 사람의 밥을 남겨 두고, 지쳐 누운 사람 곁에서는 텔레비전 소리를 낮추는 일. 그런 행동에서 우리는 자신이 보살핌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

어린 시절에는 집이 저절로 따뜻해지는 줄 알았다. 겨울이면 방바닥에 온기가 돌고, 저녁이면 부엌에서 밥 냄새가 났다. 옷장에는 빨아 놓은 옷이 있었고, 감기에 걸리면 머리맡에 물 한 잔이 놓였다. 나는 그것들을 해가 뜨고 지는 일처럼 당연하게 여겼다. 누군가 먼저 일어나 쌀을 씻고, 찬물에 손을 담그고, 한밤중에도 잠을 깨 내 이마를 짚어 보았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헤아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밥을 먹을 때면 늘 비슷한 질문을 하셨다. 싱겁지는 않으냐, 더 먹겠느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 나는 그 물음들이 때로 귀찮았다. 배가 부르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학교 이야기를 물으면 별일 없었다는 말로 끝내곤 했다. 이제 생각하면 어머니는 반찬의 간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만 궁금하셨던 것이 아니다. 내가 하루를 잘 보냈는지, 혹시 혼자 속상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고 싶으셨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비슷한 말을 건넨다. 밥은 먹었는지, 춥지는 않은지, 오늘은 늦는지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이 짧으면 서운하다가도 어린 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을 어느새 내가 하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못했던 어머니처럼 나도 밥과 날씨를 빌려 안부를 묻는다. 그 물음에 담긴 마음을 상대가 알아주면 좋겠지만, 알아주기를 재촉하지는 않으려 한다.

물론 걱정하는 마음으로 건넨 말이 언제나 따뜻하게 들리는 것은 아니다. 늦게 들어오는 까닭을 물었다가 간섭한다는 대답을 듣기도 하고, 도와주려던 행동으로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한다. 오래 함께 살았으니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믿음 때문에 잘못 짚는 일도 생긴다. 예전에 좋아하던 음식이 이제는 입에 맞지 않을 수 있고, 평소에는 웃어넘기던 농담이 유난히 아픈 날도 있다.

나 역시 가족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대답한 적이 많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안다고 생각했다. 피곤하다는 말에는 일찍 자라고 했고, 걱정된다는 말에는 별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 뒤 상대가 입을 다물면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성급하게 해결책을 말하느라, 상대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를 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가족 한 사람이 그저 들어 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하려던 대답을 멈추었다. 상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방법을 찾았지만, 정작 그가 바라는 도움은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대답이 떠올라도 조금 더 기다리려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묻고 상대가 말을 이을 때까지 기다려 본다. 여전히 듣는 도중에 내 경험을 꺼내거나 충고부터 할 때가 있다. 그러다 상대의 표정이 달라지면 말을 멈춘다. 잘 듣는 일도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참는 연습이 필요했다.

나는 가족이 내 화를 받아 줄 것이라 믿고, 밖에서 참았던 짜증까지 집에서 쏟아 내곤 했다. 회사에서 받은 서운함을 식탁까지 가져왔고, 길에서 겪은 불쾌함 때문에 현관에서부터 날카롭게 대답했다. 가족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그 말들을 받아야 했다. 오래 곁에 있어 줄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정작 그 사람에게는 말을 가장 적게 골라 하고 있었다.

한번은 치워지지 않은 물건 하나 때문에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에는 물건을 제자리에 놓아 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곧 지난주와 지난달의 일이 따라 나왔다. 늘 그렇다는 말이 나왔고, 내 말을 한 번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말까지 보탰다. 상대도 그동안 참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눈앞의 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오래 묵은 서운함으로 서로를 몰아붙였다.

말다툼이 끝난 뒤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목이 말랐지만 거실에서 마주칠까 봐 물을 가지러 나가는 일조차 망설였다. 조금 전까지 함께 밥을 먹던 식탁이 낯설게 보였다. 방바닥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날 밤 나는 집에서 편히 쉬지 못했다.

사과는 다음 날 아침에야 했다. 어제는 내가 심하게 말했다고, 그 물건 때문에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상대는 곧바로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사과했으니 이제 풀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말을 꺼낼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듯, 상대에게도 내 사과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우리는 그날 저녁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기억하는 장면이 달랐고 서운했던 대목도 달랐다. 나는 내 말이 무시당했다고 느꼈지만, 상대는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데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서운함이 그날 한꺼번에 풀리지는 않았다. 다만 각자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전보다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말할지도 함께 생각해 보았다.

행복한 가정에도 이런 밤은 있을 것이다. 방문을 닫고 돌아서는 날도 있고, 같은 식탁에서 말없이 밥만 먹는 저녁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누군가 먼저 문을 두드리거나 아까는 미안했다고 말을 건넬 것이다. 잘라 놓은 과일 한 접시를 조심스럽게 내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일을 받았다고 서운함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할 계기는 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불행한 가정이 저마다 다르다는 말도 무겁게 다가온다. 어떤 집에는 생활의 어려움이 오래 머물고, 어떤 집에는 질병이 찾아온다. 누군가는 돌봄을 혼자 감당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낸다. 밖에서 보기에는 모두 말수가 적고 웃음이 줄어든 집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침묵이 시작된 사정과 그 안에서 견디는 어려움은 집집마다 다르다.

그래서 힘든 가정을 두고 마음가짐만 바꾸면 된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병원비를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위로와 함께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이 필요할 수 있다. 밤낮으로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에게는 대신 곁을 지켜 줄 사람이 절실하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너무 지쳐 다정하게 말할 여유를 잃는 날이 있다. 그런 사정을 헤아리지 않은 채 사랑이 부족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때 나는 다른 집의 모습을 쉽게 부러워했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이는 집, 주말마다 여행을 가는 집, 생일마다 꽃다발을 주고받는 집이 좋아 보였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찾아내는 데에는 익숙했지만, 우리가 함께 누리고 있는 일은 자주 잊었다. 사진 속 가족들이 환하게 웃고 있으면 그 집에는 늘 웃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진 밖에서 그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는 알지 못하면서.

우리 가족의 나들이는 종종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기도 했고, 식당 앞에서 오래 기다리다가 서로 말수가 줄기도 했다. 모처럼 나왔는데 왜 이러느냐는 말이 나오면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떠오르는 것은 엉뚱하게 들어선 골목의 빵집이나 차 안에서 나누어 먹던 귤이다. 당시에는 망쳤다고 여긴 하루에도 함께 웃었던 순간이 남아 있었다.

가족을 떠올릴 때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도 대개 작은 일들이다. 비가 오던 날 정류장으로 가져온 우산, 늦게 돌아왔을 때 냄비에 남겨 둔 국, 중요한 일을 앞둔 아침에 건넨 짧은 응원이 그렇다. 당시에는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누군가는 내 귀가 시간을 생각하며 기다렸고,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골랐다. 내가 무심히 지나친 순간에도 가족은 나를 살피고 있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현관에 놓인 신발이 생각난다.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는 가족의 신발이 닳으면 굽을 살펴보곤 하셨다. 어느 날에는 수선을 맡겨 두었다며 찾아오라고 하셨고, 비가 온 다음 날에는 젖은 신발 안에 신문지가 들어 있었다. 그때는 그런 손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제 젖은 신발을 말리려고 신문지를 구겨 넣다 보면, 현관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등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지난 시간이 모두 따뜻했던 것은 아니다. 이해받지 못해 서러웠던 날도 있고, 지금 떠올려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말도 있다. 고마운 기억이 있다고 해서 아팠던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가족에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좋았던 일만 남겨 두려고도, 서운했던 일로 지난날 전부를 판단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두 기억 모두 내가 함께 살아온 시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에도 지켜야 할 거리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운다. 모든 생각을 털어놓아야만 친한 것은 아니며,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이 곧 가족을 밀어내는 뜻도 아니다. 방문이 닫혀 있으면 두드리고,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기다릴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가족의 고민을 당장 알아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상대가 스스로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곁에 있는 방법임을 안다.

우리는 때로 가족이 말하지 않은 바람까지 알아주기를 기대한다. 내 표정만 보고 피곤한 줄 알고, 한숨만 듣고 무엇이 서운한지 짐작해 주기를 바란다. 나도 그런 기대 때문에 혼자 실망한 적이 많다. 요즘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려 한다. 오늘은 지쳤으니 설거지를 맡아 달라거나, 잠시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보다 말로 전할 때 오해가 줄어든다.

고맙다는 말도 아끼지 않으려 한다. 늘 하는 일이라고 해서 수고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일 밥을 차리는 사람도, 매번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면 힘이 난다. 오래 함께 살다 보면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깨끗한 욕실과 개켜 놓은 빨래를 당연하게 여기기 쉽다. 그럴수록 잠깐 멈추어 누가 이 일을 했을지 생각해 보려 한다.

물론 고맙다는 말만으로 집안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말을 건넨 뒤에도 늘 같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부엌에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지칠 것이다. 나도 한동안 집안일을 하면서 도와준다는 표현을 썼다. 함께 사는 집인데도 다른 사람의 일을 거든다고 생각했던 셈이다. 이제는 무엇을 할지 묻기 전에 쌓인 그릇과 가득 찬 휴지통을 살펴본다.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이려 한다.

가족이 달라지는 모습을 받아들이는 일도 쉽지 않다. 아이는 자라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고, 부모는 나이가 들며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한다. 씩씩하던 사람이 작은 일을 걱정하고, 내 의견을 따르던 사람이 다른 길을 고른다. 나는 가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을 입에 올리려다 멈춘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지금 마음까지 모두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느려진 걸음을 따라 걷다가 마음이 급해진 적이 있다. 조금만 서두르면 신호를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곁을 돌아보니 부모는 발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나는 신호등을 보고 있었지만 부모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며 옷깃을 여며 드렸다. 오래전 내 짧은 보폭에 맞추어 걸어 주었을 시간을 생각하니 서두르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 걱정도 없고 누구도 아프지 않으며 모든 관계가 평온한 날을 기다린다면, 행복하다고 느낄 날은 많지 않을 것이다. 걱정이 있는 저녁에도 따뜻한 국을 나누어 먹을 수 있고, 서운한 마음이 남아 있어도 상대의 젖은 옷을 널어 줄 수 있다. 나는 그런 행동을 보며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곤 했다.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 있더라도 서로를 보살피려는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우리 집이 얼마나 행복한지 판단하기보다 가족의 하루를 살피려 한다. 누가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지, 누가 말을 줄였는지, 누가 자꾸 혼자 일을 마무리하는지 돌아본다. 언제나 제때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한참 뒤에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래도 늦었다는 이유로 묻지 않고 지나가지는 않으려 한다. 지난번에는 네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면, 멈췄던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톨스토이의 문장을 다시 읽으며 행복한 가정들의 닮은 모습을 생각한다. 사는 형편도 가족의 수도 다르겠지만, 그 집에서는 누군가의 수고가 오래 외면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 사람의 말수가 줄면 다른 사람이 이유를 묻고,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면 무엇이 서운했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일들을 거듭하며 가족은 힘든 날에도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닐까.

오늘 저녁에도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도 있고,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를 안고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우선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얼굴을 보며 하루가 어땠는지 물으려 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서둘러 대답을 준비하지 않고 끝까지 듣고 싶다. 식탁에 마주 앉으면 몸만 아니라 마음도 그 사람 쪽으로 돌리고 싶다. 그날 들려주지 못한 말이 있다면, 밥을 다 먹은 뒤에도 조금 더 앉아 있으려 한다.서로를 향해 돌아앉는 일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행복보다 불행이라는 말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행복한 집은 비슷하고 불행한 집은 다르다니, 사람 사는 모습을 그렇게 나눌 수 있을까 싶었다. 어느 집에나 말 못 할 사정 하나쯤은 있고, 웃음이 잦은 집에도 눈물을 삼키는 밤은 있을 터였다. 그때의 나는 이 문장의 뜻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채 기억해 두었다. 살다 보면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문장을 떠올린 것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닦던 날이었다. 한 사람은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다른 사람은 물컵을 씻었다. 나는 식탁을 닦다가 바닥에 떨어진 밥알을 주웠다. 별다른 대화도 없었다. 누구도 일을 나누어 시키지 않았지만, 각자 눈에 보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행복한 가정이 서로 닮았다는 말은 이런 작은 배려를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가정이 닮았다는 것은 같은 크기의 집에 살거나 비슷한 음식을 먹는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침마다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집도 있고, 말없이 현관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 주는 집도 있다.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도 상대가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닮아 있다. 늦게 돌아올 사람의 밥을 남겨 두고, 지쳐 누운 사람 곁에서는 텔레비전 소리를 낮추는 일. 그런 행동에서 우리는 자신이 보살핌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

어린 시절에는 집이 저절로 따뜻해지는 줄 알았다. 겨울이면 방바닥에 온기가 돌고, 저녁이면 부엌에서 밥 냄새가 났다. 옷장에는 빨아 놓은 옷이 있었고, 감기에 걸리면 머리맡에 물 한 잔이 놓였다. 나는 그것들을 해가 뜨고 지는 일처럼 당연하게 여겼다. 누군가 먼저 일어나 쌀을 씻고, 찬물에 손을 담그고, 한밤중에도 잠을 깨 내 이마를 짚어 보았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헤아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밥을 먹을 때면 늘 비슷한 질문을 하셨다. 싱겁지는 않으냐, 더 먹겠느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 나는 그 물음들이 때로 귀찮았다. 배가 부르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학교 이야기를 물으면 별일 없었다는 말로 끝내곤 했다. 이제 생각하면 어머니는 반찬의 간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만 궁금하셨던 것이 아니다. 내가 하루를 잘 보냈는지, 혹시 혼자 속상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고 싶으셨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비슷한 말을 건넨다. 밥은 먹었는지, 춥지는 않은지, 오늘은 늦는지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이 짧으면 서운하다가도 어린 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을 어느새 내가 하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못했던 어머니처럼 나도 밥과 날씨를 빌려 안부를 묻는다. 그 물음에 담긴 마음을 상대가 알아주면 좋겠지만, 알아주기를 재촉하지는 않으려 한다.

물론 걱정하는 마음으로 건넨 말이 언제나 따뜻하게 들리는 것은 아니다. 늦게 들어오는 까닭을 물었다가 간섭한다는 대답을 듣기도 하고, 도와주려던 행동으로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한다. 오래 함께 살았으니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믿음 때문에 잘못 짚는 일도 생긴다. 예전에 좋아하던 음식이 이제는 입에 맞지 않을 수 있고, 평소에는 웃어넘기던 농담이 유난히 아픈 날도 있다.

나 역시 가족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대답한 적이 많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안다고 생각했다. 피곤하다는 말에는 일찍 자라고 했고, 걱정된다는 말에는 별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 뒤 상대가 입을 다물면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성급하게 해결책을 말하느라, 상대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를 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가족 한 사람이 그저 들어 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하려던 대답을 멈추었다. 상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방법을 찾았지만, 정작 그가 바라는 도움은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대답이 떠올라도 조금 더 기다리려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묻고 상대가 말을 이을 때까지 기다려 본다. 여전히 듣는 도중에 내 경험을 꺼내거나 충고부터 할 때가 있다. 그러다 상대의 표정이 달라지면 말을 멈춘다. 잘 듣는 일도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참는 연습이 필요했다.

나는 가족이 내 화를 받아 줄 것이라 믿고, 밖에서 참았던 짜증까지 집에서 쏟아 내곤 했다. 회사에서 받은 서운함을 식탁까지 가져왔고, 길에서 겪은 불쾌함 때문에 현관에서부터 날카롭게 대답했다. 가족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그 말들을 받아야 했다. 오래 곁에 있어 줄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정작 그 사람에게는 말을 가장 적게 골라 하고 있었다.

한번은 치워지지 않은 물건 하나 때문에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에는 물건을 제자리에 놓아 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곧 지난주와 지난달의 일이 따라 나왔다. 늘 그렇다는 말이 나왔고, 내 말을 한 번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말까지 보탰다. 상대도 그동안 참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눈앞의 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오래 묵은 서운함으로 서로를 몰아붙였다.

말다툼이 끝난 뒤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목이 말랐지만 거실에서 마주칠까 봐 물을 가지러 나가는 일조차 망설였다. 조금 전까지 함께 밥을 먹던 식탁이 낯설게 보였다. 방바닥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날 밤 나는 집에서 편히 쉬지 못했다.

사과는 다음 날 아침에야 했다. 어제는 내가 심하게 말했다고, 그 물건 때문에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상대는 곧바로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사과했으니 이제 풀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말을 꺼낼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듯, 상대에게도 내 사과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우리는 그날 저녁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기억하는 장면이 달랐고 서운했던 대목도 달랐다. 나는 내 말이 무시당했다고 느꼈지만, 상대는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데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서운함이 그날 한꺼번에 풀리지는 않았다. 다만 각자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전보다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말할지도 함께 생각해 보았다.

행복한 가정에도 이런 밤은 있을 것이다. 방문을 닫고 돌아서는 날도 있고, 같은 식탁에서 말없이 밥만 먹는 저녁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누군가 먼저 문을 두드리거나 아까는 미안했다고 말을 건넬 것이다. 잘라 놓은 과일 한 접시를 조심스럽게 내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일을 받았다고 서운함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할 계기는 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불행한 가정이 저마다 다르다는 말도 무겁게 다가온다. 어떤 집에는 생활의 어려움이 오래 머물고, 어떤 집에는 질병이 찾아온다. 누군가는 돌봄을 혼자 감당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낸다. 밖에서 보기에는 모두 말수가 적고 웃음이 줄어든 집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침묵이 시작된 사정과 그 안에서 견디는 어려움은 집집마다 다르다.

그래서 힘든 가정을 두고 마음가짐만 바꾸면 된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병원비를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위로와 함께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이 필요할 수 있다. 밤낮으로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에게는 대신 곁을 지켜 줄 사람이 절실하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너무 지쳐 다정하게 말할 여유를 잃는 날이 있다. 그런 사정을 헤아리지 않은 채 사랑이 부족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때 나는 다른 집의 모습을 쉽게 부러워했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이는 집, 주말마다 여행을 가는 집, 생일마다 꽃다발을 주고받는 집이 좋아 보였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찾아내는 데에는 익숙했지만, 우리가 함께 누리고 있는 일은 자주 잊었다. 사진 속 가족들이 환하게 웃고 있으면 그 집에는 늘 웃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진 밖에서 그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는 알지 못하면서.

우리 가족의 나들이는 종종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기도 했고, 식당 앞에서 오래 기다리다가 서로 말수가 줄기도 했다. 모처럼 나왔는데 왜 이러느냐는 말이 나오면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떠오르는 것은 엉뚱하게 들어선 골목의 빵집이나 차 안에서 나누어 먹던 귤이다. 당시에는 망쳤다고 여긴 하루에도 함께 웃었던 순간이 남아 있었다.

가족을 떠올릴 때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도 대개 작은 일들이다. 비가 오던 날 정류장으로 가져온 우산, 늦게 돌아왔을 때 냄비에 남겨 둔 국, 중요한 일을 앞둔 아침에 건넨 짧은 응원이 그렇다. 당시에는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누군가는 내 귀가 시간을 생각하며 기다렸고,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골랐다. 내가 무심히 지나친 순간에도 가족은 나를 살피고 있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현관에 놓인 신발이 생각난다.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는 가족의 신발이 닳으면 굽을 살펴보곤 하셨다. 어느 날에는 수선을 맡겨 두었다며 찾아오라고 하셨고, 비가 온 다음 날에는 젖은 신발 안에 신문지가 들어 있었다. 그때는 그런 손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제 젖은 신발을 말리려고 신문지를 구겨 넣다 보면, 현관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등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지난 시간이 모두 따뜻했던 것은 아니다. 이해받지 못해 서러웠던 날도 있고, 지금 떠올려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말도 있다. 고마운 기억이 있다고 해서 아팠던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가족에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좋았던 일만 남겨 두려고도, 서운했던 일로 지난날 전부를 판단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두 기억 모두 내가 함께 살아온 시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에도 지켜야 할 거리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운다. 모든 생각을 털어놓아야만 친한 것은 아니며,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이 곧 가족을 밀어내는 뜻도 아니다. 방문이 닫혀 있으면 두드리고,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기다릴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가족의 고민을 당장 알아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상대가 스스로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곁에 있는 방법임을 안다.

우리는 때로 가족이 말하지 않은 바람까지 알아주기를 기대한다. 내 표정만 보고 피곤한 줄 알고, 한숨만 듣고 무엇이 서운한지 짐작해 주기를 바란다. 나도 그런 기대 때문에 혼자 실망한 적이 많다. 요즘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려 한다. 오늘은 지쳤으니 설거지를 맡아 달라거나, 잠시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보다 말로 전할 때 오해가 줄어든다.

고맙다는 말도 아끼지 않으려 한다. 늘 하는 일이라고 해서 수고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일 밥을 차리는 사람도, 매번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면 힘이 난다. 오래 함께 살다 보면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깨끗한 욕실과 개켜 놓은 빨래를 당연하게 여기기 쉽다. 그럴수록 잠깐 멈추어 누가 이 일을 했을지 생각해 보려 한다.

물론 고맙다는 말만으로 집안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말을 건넨 뒤에도 늘 같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부엌에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지칠 것이다. 나도 한동안 집안일을 하면서 도와준다는 표현을 썼다. 함께 사는 집인데도 다른 사람의 일을 거든다고 생각했던 셈이다. 이제는 무엇을 할지 묻기 전에 쌓인 그릇과 가득 찬 휴지통을 살펴본다.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이려 한다.

가족이 달라지는 모습을 받아들이는 일도 쉽지 않다. 아이는 자라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고, 부모는 나이가 들며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한다. 씩씩하던 사람이 작은 일을 걱정하고, 내 의견을 따르던 사람이 다른 길을 고른다. 나는 가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을 입에 올리려다 멈춘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지금 마음까지 모두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느려진 걸음을 따라 걷다가 마음이 급해진 적이 있다. 조금만 서두르면 신호를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곁을 돌아보니 부모는 발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나는 신호등을 보고 있었지만 부모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며 옷깃을 여며 드렸다. 오래전 내 짧은 보폭에 맞추어 걸어 주었을 시간을 생각하니 서두르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 걱정도 없고 누구도 아프지 않으며 모든 관계가 평온한 날을 기다린다면, 행복하다고 느낄 날은 많지 않을 것이다. 걱정이 있는 저녁에도 따뜻한 국을 나누어 먹을 수 있고, 서운한 마음이 남아 있어도 상대의 젖은 옷을 널어 줄 수 있다. 나는 그런 행동을 보며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곤 했다.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 있더라도 서로를 보살피려는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우리 집이 얼마나 행복한지 판단하기보다 가족의 하루를 살피려 한다. 누가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지, 누가 말을 줄였는지, 누가 자꾸 혼자 일을 마무리하는지 돌아본다. 언제나 제때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한참 뒤에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래도 늦었다는 이유로 묻지 않고 지나가지는 않으려 한다. 지난번에는 네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면, 멈췄던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톨스토이의 문장을 다시 읽으며 행복한 가정들의 닮은 모습을 생각한다. 사는 형편도 가족의 수도 다르겠지만, 그 집에서는 누군가의 수고가 오래 외면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 사람의 말수가 줄면 다른 사람이 이유를 묻고,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면 무엇이 서운했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일들을 거듭하며 가족은 힘든 날에도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닐까.

오늘 저녁에도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도 있고,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를 안고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우선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얼굴을 보며 하루가 어땠는지 물으려 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서둘러 대답을 준비하지 않고 끝까지 듣고 싶다. 식탁에 마주 앉으면 몸만 아니라 마음도 그 사람 쪽으로 돌리고 싶다. 그날 들려주지 못한 말이 있다면, 밥을 다 먹은 뒤에도 조금 더 앉아 있으려 한다.서로를 향해 돌아앉는 일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행복보다 불행이라는 말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행복한 집은 비슷하고 불행한 집은 다르다니, 사람 사는 모습을 그렇게 나눌 수 있을까 싶었다. 어느 집에나 말 못 할 사정 하나쯤은 있고, 웃음이 잦은 집에도 눈물을 삼키는 밤은 있을 터였다. 그때의 나는 이 문장의 뜻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채 기억해 두었다. 살다 보면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문장을 떠올린 것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닦던 날이었다. 한 사람은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다른 사람은 물컵을 씻었다. 나는 식탁을 닦다가 바닥에 떨어진 밥알을 주웠다. 별다른 대화도 없었다. 누구도 일을 나누어 시키지 않았지만, 각자 눈에 보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행복한 가정이 서로 닮았다는 말은 이런 작은 배려를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가정이 닮았다는 것은 같은 크기의 집에 살거나 비슷한 음식을 먹는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침마다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집도 있고, 말없이 현관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 주는 집도 있다.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도 상대가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닮아 있다. 늦게 돌아올 사람의 밥을 남겨 두고, 지쳐 누운 사람 곁에서는 텔레비전 소리를 낮추는 일. 그런 행동에서 우리는 자신이 보살핌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

어린 시절에는 집이 저절로 따뜻해지는 줄 알았다. 겨울이면 방바닥에 온기가 돌고, 저녁이면 부엌에서 밥 냄새가 났다. 옷장에는 빨아 놓은 옷이 있었고, 감기에 걸리면 머리맡에 물 한 잔이 놓였다. 나는 그것들을 해가 뜨고 지는 일처럼 당연하게 여겼다. 누군가 먼저 일어나 쌀을 씻고, 찬물에 손을 담그고, 한밤중에도 잠을 깨 내 이마를 짚어 보았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헤아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밥을 먹을 때면 늘 비슷한 질문을 하셨다. 싱겁지는 않으냐, 더 먹겠느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 나는 그 물음들이 때로 귀찮았다. 배가 부르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학교 이야기를 물으면 별일 없었다는 말로 끝내곤 했다. 이제 생각하면 어머니는 반찬의 간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만 궁금하셨던 것이 아니다. 내가 하루를 잘 보냈는지, 혹시 혼자 속상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고 싶으셨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비슷한 말을 건넨다. 밥은 먹었는지, 춥지는 않은지, 오늘은 늦는지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이 짧으면 서운하다가도 어린 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을 어느새 내가 하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못했던 어머니처럼 나도 밥과 날씨를 빌려 안부를 묻는다. 그 물음에 담긴 마음을 상대가 알아주면 좋겠지만, 알아주기를 재촉하지는 않으려 한다.

물론 걱정하는 마음으로 건넨 말이 언제나 따뜻하게 들리는 것은 아니다. 늦게 들어오는 까닭을 물었다가 간섭한다는 대답을 듣기도 하고, 도와주려던 행동으로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한다. 오래 함께 살았으니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믿음 때문에 잘못 짚는 일도 생긴다. 예전에 좋아하던 음식이 이제는 입에 맞지 않을 수 있고, 평소에는 웃어넘기던 농담이 유난히 아픈 날도 있다.

나 역시 가족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대답한 적이 많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안다고 생각했다. 피곤하다는 말에는 일찍 자라고 했고, 걱정된다는 말에는 별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 뒤 상대가 입을 다물면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성급하게 해결책을 말하느라, 상대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를 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가족 한 사람이 그저 들어 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하려던 대답을 멈추었다. 상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방법을 찾았지만, 정작 그가 바라는 도움은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대답이 떠올라도 조금 더 기다리려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묻고 상대가 말을 이을 때까지 기다려 본다. 여전히 듣는 도중에 내 경험을 꺼내거나 충고부터 할 때가 있다. 그러다 상대의 표정이 달라지면 말을 멈춘다. 잘 듣는 일도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참는 연습이 필요했다.

나는 가족이 내 화를 받아 줄 것이라 믿고, 밖에서 참았던 짜증까지 집에서 쏟아 내곤 했다. 회사에서 받은 서운함을 식탁까지 가져왔고, 길에서 겪은 불쾌함 때문에 현관에서부터 날카롭게 대답했다. 가족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그 말들을 받아야 했다. 오래 곁에 있어 줄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정작 그 사람에게는 말을 가장 적게 골라 하고 있었다.

한번은 치워지지 않은 물건 하나 때문에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에는 물건을 제자리에 놓아 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곧 지난주와 지난달의 일이 따라 나왔다. 늘 그렇다는 말이 나왔고, 내 말을 한 번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말까지 보탰다. 상대도 그동안 참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눈앞의 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오래 묵은 서운함으로 서로를 몰아붙였다.

말다툼이 끝난 뒤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목이 말랐지만 거실에서 마주칠까 봐 물을 가지러 나가는 일조차 망설였다. 조금 전까지 함께 밥을 먹던 식탁이 낯설게 보였다. 방바닥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날 밤 나는 집에서 편히 쉬지 못했다.

사과는 다음 날 아침에야 했다. 어제는 내가 심하게 말했다고, 그 물건 때문에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상대는 곧바로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사과했으니 이제 풀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말을 꺼낼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듯, 상대에게도 내 사과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우리는 그날 저녁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기억하는 장면이 달랐고 서운했던 대목도 달랐다. 나는 내 말이 무시당했다고 느꼈지만, 상대는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데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서운함이 그날 한꺼번에 풀리지는 않았다. 다만 각자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전보다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말할지도 함께 생각해 보았다.

행복한 가정에도 이런 밤은 있을 것이다. 방문을 닫고 돌아서는 날도 있고, 같은 식탁에서 말없이 밥만 먹는 저녁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누군가 먼저 문을 두드리거나 아까는 미안했다고 말을 건넬 것이다. 잘라 놓은 과일 한 접시를 조심스럽게 내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일을 받았다고 서운함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할 계기는 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불행한 가정이 저마다 다르다는 말도 무겁게 다가온다. 어떤 집에는 생활의 어려움이 오래 머물고, 어떤 집에는 질병이 찾아온다. 누군가는 돌봄을 혼자 감당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낸다. 밖에서 보기에는 모두 말수가 적고 웃음이 줄어든 집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침묵이 시작된 사정과 그 안에서 견디는 어려움은 집집마다 다르다.

그래서 힘든 가정을 두고 마음가짐만 바꾸면 된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병원비를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위로와 함께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이 필요할 수 있다. 밤낮으로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에게는 대신 곁을 지켜 줄 사람이 절실하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너무 지쳐 다정하게 말할 여유를 잃는 날이 있다. 그런 사정을 헤아리지 않은 채 사랑이 부족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때 나는 다른 집의 모습을 쉽게 부러워했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이는 집, 주말마다 여행을 가는 집, 생일마다 꽃다발을 주고받는 집이 좋아 보였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찾아내는 데에는 익숙했지만, 우리가 함께 누리고 있는 일은 자주 잊었다. 사진 속 가족들이 환하게 웃고 있으면 그 집에는 늘 웃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진 밖에서 그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는 알지 못하면서.

우리 가족의 나들이는 종종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기도 했고, 식당 앞에서 오래 기다리다가 서로 말수가 줄기도 했다. 모처럼 나왔는데 왜 이러느냐는 말이 나오면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떠오르는 것은 엉뚱하게 들어선 골목의 빵집이나 차 안에서 나누어 먹던 귤이다. 당시에는 망쳤다고 여긴 하루에도 함께 웃었던 순간이 남아 있었다.

가족을 떠올릴 때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도 대개 작은 일들이다. 비가 오던 날 정류장으로 가져온 우산, 늦게 돌아왔을 때 냄비에 남겨 둔 국, 중요한 일을 앞둔 아침에 건넨 짧은 응원이 그렇다. 당시에는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누군가는 내 귀가 시간을 생각하며 기다렸고,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골랐다. 내가 무심히 지나친 순간에도 가족은 나를 살피고 있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현관에 놓인 신발이 생각난다.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는 가족의 신발이 닳으면 굽을 살펴보곤 하셨다. 어느 날에는 수선을 맡겨 두었다며 찾아오라고 하셨고, 비가 온 다음 날에는 젖은 신발 안에 신문지가 들어 있었다. 그때는 그런 손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제 젖은 신발을 말리려고 신문지를 구겨 넣다 보면, 현관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등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지난 시간이 모두 따뜻했던 것은 아니다. 이해받지 못해 서러웠던 날도 있고, 지금 떠올려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말도 있다. 고마운 기억이 있다고 해서 아팠던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가족에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좋았던 일만 남겨 두려고도, 서운했던 일로 지난날 전부를 판단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두 기억 모두 내가 함께 살아온 시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에도 지켜야 할 거리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운다. 모든 생각을 털어놓아야만 친한 것은 아니며,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이 곧 가족을 밀어내는 뜻도 아니다. 방문이 닫혀 있으면 두드리고,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기다릴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가족의 고민을 당장 알아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상대가 스스로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곁에 있는 방법임을 안다.

우리는 때로 가족이 말하지 않은 바람까지 알아주기를 기대한다. 내 표정만 보고 피곤한 줄 알고, 한숨만 듣고 무엇이 서운한지 짐작해 주기를 바란다. 나도 그런 기대 때문에 혼자 실망한 적이 많다. 요즘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려 한다. 오늘은 지쳤으니 설거지를 맡아 달라거나, 잠시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보다 말로 전할 때 오해가 줄어든다.

고맙다는 말도 아끼지 않으려 한다. 늘 하는 일이라고 해서 수고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일 밥을 차리는 사람도, 매번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면 힘이 난다. 오래 함께 살다 보면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깨끗한 욕실과 개켜 놓은 빨래를 당연하게 여기기 쉽다. 그럴수록 잠깐 멈추어 누가 이 일을 했을지 생각해 보려 한다.

물론 고맙다는 말만으로 집안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말을 건넨 뒤에도 늘 같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부엌에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지칠 것이다. 나도 한동안 집안일을 하면서 도와준다는 표현을 썼다. 함께 사는 집인데도 다른 사람의 일을 거든다고 생각했던 셈이다. 이제는 무엇을 할지 묻기 전에 쌓인 그릇과 가득 찬 휴지통을 살펴본다.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이려 한다.

가족이 달라지는 모습을 받아들이는 일도 쉽지 않다. 아이는 자라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고, 부모는 나이가 들며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한다. 씩씩하던 사람이 작은 일을 걱정하고, 내 의견을 따르던 사람이 다른 길을 고른다. 나는 가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을 입에 올리려다 멈춘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지금 마음까지 모두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느려진 걸음을 따라 걷다가 마음이 급해진 적이 있다. 조금만 서두르면 신호를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곁을 돌아보니 부모는 발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나는 신호등을 보고 있었지만 부모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며 옷깃을 여며 드렸다. 오래전 내 짧은 보폭에 맞추어 걸어 주었을 시간을 생각하니 서두르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 걱정도 없고 누구도 아프지 않으며 모든 관계가 평온한 날을 기다린다면, 행복하다고 느낄 날은 많지 않을 것이다. 걱정이 있는 저녁에도 따뜻한 국을 나누어 먹을 수 있고, 서운한 마음이 남아 있어도 상대의 젖은 옷을 널어 줄 수 있다. 나는 그런 행동을 보며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곤 했다.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 있더라도 서로를 보살피려는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우리 집이 얼마나 행복한지 판단하기보다 가족의 하루를 살피려 한다. 누가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지, 누가 말을 줄였는지, 누가 자꾸 혼자 일을 마무리하는지 돌아본다. 언제나 제때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한참 뒤에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래도 늦었다는 이유로 묻지 않고 지나가지는 않으려 한다. 지난번에는 네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면, 멈췄던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톨스토이의 문장을 다시 읽으며 행복한 가정들의 닮은 모습을 생각한다. 사는 형편도 가족의 수도 다르겠지만, 그 집에서는 누군가의 수고가 오래 외면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 사람의 말수가 줄면 다른 사람이 이유를 묻고,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면 무엇이 서운했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일들을 거듭하며 가족은 힘든 날에도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닐까.

오늘 저녁에도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도 있고,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를 안고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우선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얼굴을 보며 하루가 어땠는지 물으려 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서둘러 대답을 준비하지 않고 끝까지 듣고 싶다. 식탁에 마주 앉으면 몸만 아니라 마음도 그 사람 쪽으로 돌리고 싶다. 그날 들려주지 못한 말이 있다면, 밥을 다 먹은 뒤에도 조금 더 앉아 있으려 한다.서로를 향해 돌아앉는 일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행복보다 불행이라는 말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행복한 집은 비슷하고 불행한 집은 다르다니, 사람 사는 모습을 그렇게 나눌 수 있을까 싶었다. 어느 집에나 말 못 할 사정 하나쯤은 있고, 웃음이 잦은 집에도 눈물을 삼키는 밤은 있을 터였다. 그때의 나는 이 문장의 뜻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채 기억해 두었다. 살다 보면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문장을 떠올린 것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닦던 날이었다. 한 사람은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다른 사람은 물컵을 씻었다. 나는 식탁을 닦다가 바닥에 떨어진 밥알을 주웠다. 별다른 대화도 없었다. 누구도 일을 나누어 시키지 않았지만, 각자 눈에 보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행복한 가정이 서로 닮았다는 말은 이런 작은 배려를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가정이 닮았다는 것은 같은 크기의 집에 살거나 비슷한 음식을 먹는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침마다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집도 있고, 말없이 현관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 주는 집도 있다.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도 상대가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닮아 있다. 늦게 돌아올 사람의 밥을 남겨 두고, 지쳐 누운 사람 곁에서는 텔레비전 소리를 낮추는 일. 그런 행동에서 우리는 자신이 보살핌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

어린 시절에는 집이 저절로 따뜻해지는 줄 알았다. 겨울이면 방바닥에 온기가 돌고, 저녁이면 부엌에서 밥 냄새가 났다. 옷장에는 빨아 놓은 옷이 있었고, 감기에 걸리면 머리맡에 물 한 잔이 놓였다. 나는 그것들을 해가 뜨고 지는 일처럼 당연하게 여겼다. 누군가 먼저 일어나 쌀을 씻고, 찬물에 손을 담그고, 한밤중에도 잠을 깨 내 이마를 짚어 보았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헤아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밥을 먹을 때면 늘 비슷한 질문을 하셨다. 싱겁지는 않으냐, 더 먹겠느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 나는 그 물음들이 때로 귀찮았다. 배가 부르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학교 이야기를 물으면 별일 없었다는 말로 끝내곤 했다. 이제 생각하면 어머니는 반찬의 간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만 궁금하셨던 것이 아니다. 내가 하루를 잘 보냈는지, 혹시 혼자 속상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고 싶으셨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비슷한 말을 건넨다. 밥은 먹었는지, 춥지는 않은지, 오늘은 늦는지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이 짧으면 서운하다가도 어린 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을 어느새 내가 하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못했던 어머니처럼 나도 밥과 날씨를 빌려 안부를 묻는다. 그 물음에 담긴 마음을 상대가 알아주면 좋겠지만, 알아주기를 재촉하지는 않으려 한다.

물론 걱정하는 마음으로 건넨 말이 언제나 따뜻하게 들리는 것은 아니다. 늦게 들어오는 까닭을 물었다가 간섭한다는 대답을 듣기도 하고, 도와주려던 행동으로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한다. 오래 함께 살았으니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믿음 때문에 잘못 짚는 일도 생긴다. 예전에 좋아하던 음식이 이제는 입에 맞지 않을 수 있고, 평소에는 웃어넘기던 농담이 유난히 아픈 날도 있다.

나 역시 가족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대답한 적이 많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안다고 생각했다. 피곤하다는 말에는 일찍 자라고 했고, 걱정된다는 말에는 별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 뒤 상대가 입을 다물면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성급하게 해결책을 말하느라, 상대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를 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가족 한 사람이 그저 들어 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하려던 대답을 멈추었다. 상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방법을 찾았지만, 정작 그가 바라는 도움은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대답이 떠올라도 조금 더 기다리려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묻고 상대가 말을 이을 때까지 기다려 본다. 여전히 듣는 도중에 내 경험을 꺼내거나 충고부터 할 때가 있다. 그러다 상대의 표정이 달라지면 말을 멈춘다. 잘 듣는 일도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참는 연습이 필요했다.

나는 가족이 내 화를 받아 줄 것이라 믿고, 밖에서 참았던 짜증까지 집에서 쏟아 내곤 했다. 회사에서 받은 서운함을 식탁까지 가져왔고, 길에서 겪은 불쾌함 때문에 현관에서부터 날카롭게 대답했다. 가족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그 말들을 받아야 했다. 오래 곁에 있어 줄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정작 그 사람에게는 말을 가장 적게 골라 하고 있었다.

한번은 치워지지 않은 물건 하나 때문에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에는 물건을 제자리에 놓아 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곧 지난주와 지난달의 일이 따라 나왔다. 늘 그렇다는 말이 나왔고, 내 말을 한 번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말까지 보탰다. 상대도 그동안 참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눈앞의 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오래 묵은 서운함으로 서로를 몰아붙였다.

말다툼이 끝난 뒤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목이 말랐지만 거실에서 마주칠까 봐 물을 가지러 나가는 일조차 망설였다. 조금 전까지 함께 밥을 먹던 식탁이 낯설게 보였다. 방바닥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날 밤 나는 집에서 편히 쉬지 못했다.

사과는 다음 날 아침에야 했다. 어제는 내가 심하게 말했다고, 그 물건 때문에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상대는 곧바로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사과했으니 이제 풀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말을 꺼낼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듯, 상대에게도 내 사과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우리는 그날 저녁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기억하는 장면이 달랐고 서운했던 대목도 달랐다. 나는 내 말이 무시당했다고 느꼈지만, 상대는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데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서운함이 그날 한꺼번에 풀리지는 않았다. 다만 각자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전보다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말할지도 함께 생각해 보았다.

행복한 가정에도 이런 밤은 있을 것이다. 방문을 닫고 돌아서는 날도 있고, 같은 식탁에서 말없이 밥만 먹는 저녁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누군가 먼저 문을 두드리거나 아까는 미안했다고 말을 건넬 것이다. 잘라 놓은 과일 한 접시를 조심스럽게 내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일을 받았다고 서운함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할 계기는 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불행한 가정이 저마다 다르다는 말도 무겁게 다가온다. 어떤 집에는 생활의 어려움이 오래 머물고, 어떤 집에는 질병이 찾아온다. 누군가는 돌봄을 혼자 감당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낸다. 밖에서 보기에는 모두 말수가 적고 웃음이 줄어든 집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침묵이 시작된 사정과 그 안에서 견디는 어려움은 집집마다 다르다.

그래서 힘든 가정을 두고 마음가짐만 바꾸면 된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병원비를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위로와 함께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이 필요할 수 있다. 밤낮으로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에게는 대신 곁을 지켜 줄 사람이 절실하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너무 지쳐 다정하게 말할 여유를 잃는 날이 있다. 그런 사정을 헤아리지 않은 채 사랑이 부족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때 나는 다른 집의 모습을 쉽게 부러워했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이는 집, 주말마다 여행을 가는 집, 생일마다 꽃다발을 주고받는 집이 좋아 보였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찾아내는 데에는 익숙했지만, 우리가 함께 누리고 있는 일은 자주 잊었다. 사진 속 가족들이 환하게 웃고 있으면 그 집에는 늘 웃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진 밖에서 그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는 알지 못하면서.

우리 가족의 나들이는 종종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기도 했고, 식당 앞에서 오래 기다리다가 서로 말수가 줄기도 했다. 모처럼 나왔는데 왜 이러느냐는 말이 나오면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떠오르는 것은 엉뚱하게 들어선 골목의 빵집이나 차 안에서 나누어 먹던 귤이다. 당시에는 망쳤다고 여긴 하루에도 함께 웃었던 순간이 남아 있었다.

가족을 떠올릴 때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도 대개 작은 일들이다. 비가 오던 날 정류장으로 가져온 우산, 늦게 돌아왔을 때 냄비에 남겨 둔 국, 중요한 일을 앞둔 아침에 건넨 짧은 응원이 그렇다. 당시에는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누군가는 내 귀가 시간을 생각하며 기다렸고,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골랐다. 내가 무심히 지나친 순간에도 가족은 나를 살피고 있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현관에 놓인 신발이 생각난다.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는 가족의 신발이 닳으면 굽을 살펴보곤 하셨다. 어느 날에는 수선을 맡겨 두었다며 찾아오라고 하셨고, 비가 온 다음 날에는 젖은 신발 안에 신문지가 들어 있었다. 그때는 그런 손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제 젖은 신발을 말리려고 신문지를 구겨 넣다 보면, 현관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등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지난 시간이 모두 따뜻했던 것은 아니다. 이해받지 못해 서러웠던 날도 있고, 지금 떠올려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말도 있다. 고마운 기억이 있다고 해서 아팠던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가족에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좋았던 일만 남겨 두려고도, 서운했던 일로 지난날 전부를 판단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두 기억 모두 내가 함께 살아온 시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에도 지켜야 할 거리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운다. 모든 생각을 털어놓아야만 친한 것은 아니며,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이 곧 가족을 밀어내는 뜻도 아니다. 방문이 닫혀 있으면 두드리고,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기다릴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가족의 고민을 당장 알아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상대가 스스로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곁에 있는 방법임을 안다.

우리는 때로 가족이 말하지 않은 바람까지 알아주기를 기대한다. 내 표정만 보고 피곤한 줄 알고, 한숨만 듣고 무엇이 서운한지 짐작해 주기를 바란다. 나도 그런 기대 때문에 혼자 실망한 적이 많다. 요즘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려 한다. 오늘은 지쳤으니 설거지를 맡아 달라거나, 잠시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보다 말로 전할 때 오해가 줄어든다.

고맙다는 말도 아끼지 않으려 한다. 늘 하는 일이라고 해서 수고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일 밥을 차리는 사람도, 매번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면 힘이 난다. 오래 함께 살다 보면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깨끗한 욕실과 개켜 놓은 빨래를 당연하게 여기기 쉽다. 그럴수록 잠깐 멈추어 누가 이 일을 했을지 생각해 보려 한다.

물론 고맙다는 말만으로 집안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말을 건넨 뒤에도 늘 같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부엌에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지칠 것이다. 나도 한동안 집안일을 하면서 도와준다는 표현을 썼다. 함께 사는 집인데도 다른 사람의 일을 거든다고 생각했던 셈이다. 이제는 무엇을 할지 묻기 전에 쌓인 그릇과 가득 찬 휴지통을 살펴본다.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이려 한다.

가족이 달라지는 모습을 받아들이는 일도 쉽지 않다. 아이는 자라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고, 부모는 나이가 들며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한다. 씩씩하던 사람이 작은 일을 걱정하고, 내 의견을 따르던 사람이 다른 길을 고른다. 나는 가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을 입에 올리려다 멈춘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지금 마음까지 모두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느려진 걸음을 따라 걷다가 마음이 급해진 적이 있다. 조금만 서두르면 신호를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곁을 돌아보니 부모는 발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나는 신호등을 보고 있었지만 부모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며 옷깃을 여며 드렸다. 오래전 내 짧은 보폭에 맞추어 걸어 주었을 시간을 생각하니 서두르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 걱정도 없고 누구도 아프지 않으며 모든 관계가 평온한 날을 기다린다면, 행복하다고 느낄 날은 많지 않을 것이다. 걱정이 있는 저녁에도 따뜻한 국을 나누어 먹을 수 있고, 서운한 마음이 남아 있어도 상대의 젖은 옷을 널어 줄 수 있다. 나는 그런 행동을 보며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곤 했다.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 있더라도 서로를 보살피려는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우리 집이 얼마나 행복한지 판단하기보다 가족의 하루를 살피려 한다. 누가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지, 누가 말을 줄였는지, 누가 자꾸 혼자 일을 마무리하는지 돌아본다. 언제나 제때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한참 뒤에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래도 늦었다는 이유로 묻지 않고 지나가지는 않으려 한다. 지난번에는 네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면, 멈췄던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톨스토이의 문장을 다시 읽으며 행복한 가정들의 닮은 모습을 생각한다. 사는 형편도 가족의 수도 다르겠지만, 그 집에서는 누군가의 수고가 오래 외면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 사람의 말수가 줄면 다른 사람이 이유를 묻고,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면 무엇이 서운했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일들을 거듭하며 가족은 힘든 날에도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닐까.

오늘 저녁에도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도 있고,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를 안고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우선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얼굴을 보며 하루가 어땠는지 물으려 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서둘러 대답을 준비하지 않고 끝까지 듣고 싶다. 식탁에 마주 앉으면 몸만 아니라 마음도 그 사람 쪽으로 돌리고 싶다. 그날 들려주지 못한 말이 있다면, 밥을 다 먹은 뒤에도 조금 더 앉아 있으려 한다.서로를 향해 돌아앉는 일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행복보다 불행이라는 말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행복한 집은 비슷하고 불행한 집은 다르다니, 사람 사는 모습을 그렇게 나눌 수 있을까 싶었다. 어느 집에나 말 못 할 사정 하나쯤은 있고, 웃음이 잦은 집에도 눈물을 삼키는 밤은 있을 터였다. 그때의 나는 이 문장의 뜻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채 기억해 두었다. 살다 보면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문장을 떠올린 것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닦던 날이었다. 한 사람은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다른 사람은 물컵을 씻었다. 나는 식탁을 닦다가 바닥에 떨어진 밥알을 주웠다. 별다른 대화도 없었다. 누구도 일을 나누어 시키지 않았지만, 각자 눈에 보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행복한 가정이 서로 닮았다는 말은 이런 작은 배려를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가정이 닮았다는 것은 같은 크기의 집에 살거나 비슷한 음식을 먹는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침마다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집도 있고, 말없이 현관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 주는 집도 있다.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도 상대가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닮아 있다. 늦게 돌아올 사람의 밥을 남겨 두고, 지쳐 누운 사람 곁에서는 텔레비전 소리를 낮추는 일. 그런 행동에서 우리는 자신이 보살핌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

어린 시절에는 집이 저절로 따뜻해지는 줄 알았다. 겨울이면 방바닥에 온기가 돌고, 저녁이면 부엌에서 밥 냄새가 났다. 옷장에는 빨아 놓은 옷이 있었고, 감기에 걸리면 머리맡에 물 한 잔이 놓였다. 나는 그것들을 해가 뜨고 지는 일처럼 당연하게 여겼다. 누군가 먼저 일어나 쌀을 씻고, 찬물에 손을 담그고, 한밤중에도 잠을 깨 내 이마를 짚어 보았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헤아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밥을 먹을 때면 늘 비슷한 질문을 하셨다. 싱겁지는 않으냐, 더 먹겠느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 나는 그 물음들이 때로 귀찮았다. 배가 부르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학교 이야기를 물으면 별일 없었다는 말로 끝내곤 했다. 이제 생각하면 어머니는 반찬의 간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만 궁금하셨던 것이 아니다. 내가 하루를 잘 보냈는지, 혹시 혼자 속상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고 싶으셨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비슷한 말을 건넨다. 밥은 먹었는지, 춥지는 않은지, 오늘은 늦는지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이 짧으면 서운하다가도 어린 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을 어느새 내가 하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못했던 어머니처럼 나도 밥과 날씨를 빌려 안부를 묻는다. 그 물음에 담긴 마음을 상대가 알아주면 좋겠지만, 알아주기를 재촉하지는 않으려 한다.

물론 걱정하는 마음으로 건넨 말이 언제나 따뜻하게 들리는 것은 아니다. 늦게 들어오는 까닭을 물었다가 간섭한다는 대답을 듣기도 하고, 도와주려던 행동으로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한다. 오래 함께 살았으니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믿음 때문에 잘못 짚는 일도 생긴다. 예전에 좋아하던 음식이 이제는 입에 맞지 않을 수 있고, 평소에는 웃어넘기던 농담이 유난히 아픈 날도 있다.

나 역시 가족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대답한 적이 많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안다고 생각했다. 피곤하다는 말에는 일찍 자라고 했고, 걱정된다는 말에는 별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 뒤 상대가 입을 다물면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성급하게 해결책을 말하느라, 상대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를 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가족 한 사람이 그저 들어 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하려던 대답을 멈추었다. 상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방법을 찾았지만, 정작 그가 바라는 도움은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대답이 떠올라도 조금 더 기다리려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묻고 상대가 말을 이을 때까지 기다려 본다. 여전히 듣는 도중에 내 경험을 꺼내거나 충고부터 할 때가 있다. 그러다 상대의 표정이 달라지면 말을 멈춘다. 잘 듣는 일도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참는 연습이 필요했다.

나는 가족이 내 화를 받아 줄 것이라 믿고, 밖에서 참았던 짜증까지 집에서 쏟아 내곤 했다. 회사에서 받은 서운함을 식탁까지 가져왔고, 길에서 겪은 불쾌함 때문에 현관에서부터 날카롭게 대답했다. 가족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그 말들을 받아야 했다. 오래 곁에 있어 줄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정작 그 사람에게는 말을 가장 적게 골라 하고 있었다.

한번은 치워지지 않은 물건 하나 때문에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에는 물건을 제자리에 놓아 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곧 지난주와 지난달의 일이 따라 나왔다. 늘 그렇다는 말이 나왔고, 내 말을 한 번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말까지 보탰다. 상대도 그동안 참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눈앞의 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오래 묵은 서운함으로 서로를 몰아붙였다.

말다툼이 끝난 뒤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목이 말랐지만 거실에서 마주칠까 봐 물을 가지러 나가는 일조차 망설였다. 조금 전까지 함께 밥을 먹던 식탁이 낯설게 보였다. 방바닥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날 밤 나는 집에서 편히 쉬지 못했다.

사과는 다음 날 아침에야 했다. 어제는 내가 심하게 말했다고, 그 물건 때문에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상대는 곧바로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사과했으니 이제 풀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말을 꺼낼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듯, 상대에게도 내 사과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우리는 그날 저녁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기억하는 장면이 달랐고 서운했던 대목도 달랐다. 나는 내 말이 무시당했다고 느꼈지만, 상대는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데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서운함이 그날 한꺼번에 풀리지는 않았다. 다만 각자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전보다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말할지도 함께 생각해 보았다.

행복한 가정에도 이런 밤은 있을 것이다. 방문을 닫고 돌아서는 날도 있고, 같은 식탁에서 말없이 밥만 먹는 저녁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누군가 먼저 문을 두드리거나 아까는 미안했다고 말을 건넬 것이다. 잘라 놓은 과일 한 접시를 조심스럽게 내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일을 받았다고 서운함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할 계기는 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불행한 가정이 저마다 다르다는 말도 무겁게 다가온다. 어떤 집에는 생활의 어려움이 오래 머물고, 어떤 집에는 질병이 찾아온다. 누군가는 돌봄을 혼자 감당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낸다. 밖에서 보기에는 모두 말수가 적고 웃음이 줄어든 집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침묵이 시작된 사정과 그 안에서 견디는 어려움은 집집마다 다르다.

그래서 힘든 가정을 두고 마음가짐만 바꾸면 된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병원비를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위로와 함께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이 필요할 수 있다. 밤낮으로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에게는 대신 곁을 지켜 줄 사람이 절실하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너무 지쳐 다정하게 말할 여유를 잃는 날이 있다. 그런 사정을 헤아리지 않은 채 사랑이 부족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때 나는 다른 집의 모습을 쉽게 부러워했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이는 집, 주말마다 여행을 가는 집, 생일마다 꽃다발을 주고받는 집이 좋아 보였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찾아내는 데에는 익숙했지만, 우리가 함께 누리고 있는 일은 자주 잊었다. 사진 속 가족들이 환하게 웃고 있으면 그 집에는 늘 웃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진 밖에서 그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는 알지 못하면서.

우리 가족의 나들이는 종종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기도 했고, 식당 앞에서 오래 기다리다가 서로 말수가 줄기도 했다. 모처럼 나왔는데 왜 이러느냐는 말이 나오면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떠오르는 것은 엉뚱하게 들어선 골목의 빵집이나 차 안에서 나누어 먹던 귤이다. 당시에는 망쳤다고 여긴 하루에도 함께 웃었던 순간이 남아 있었다.

가족을 떠올릴 때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도 대개 작은 일들이다. 비가 오던 날 정류장으로 가져온 우산, 늦게 돌아왔을 때 냄비에 남겨 둔 국, 중요한 일을 앞둔 아침에 건넨 짧은 응원이 그렇다. 당시에는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누군가는 내 귀가 시간을 생각하며 기다렸고,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골랐다. 내가 무심히 지나친 순간에도 가족은 나를 살피고 있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현관에 놓인 신발이 생각난다.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는 가족의 신발이 닳으면 굽을 살펴보곤 하셨다. 어느 날에는 수선을 맡겨 두었다며 찾아오라고 하셨고, 비가 온 다음 날에는 젖은 신발 안에 신문지가 들어 있었다. 그때는 그런 손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제 젖은 신발을 말리려고 신문지를 구겨 넣다 보면, 현관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등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지난 시간이 모두 따뜻했던 것은 아니다. 이해받지 못해 서러웠던 날도 있고, 지금 떠올려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말도 있다. 고마운 기억이 있다고 해서 아팠던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가족에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좋았던 일만 남겨 두려고도, 서운했던 일로 지난날 전부를 판단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두 기억 모두 내가 함께 살아온 시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에도 지켜야 할 거리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운다. 모든 생각을 털어놓아야만 친한 것은 아니며,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이 곧 가족을 밀어내는 뜻도 아니다. 방문이 닫혀 있으면 두드리고,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기다릴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가족의 고민을 당장 알아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상대가 스스로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곁에 있는 방법임을 안다.

우리는 때로 가족이 말하지 않은 바람까지 알아주기를 기대한다. 내 표정만 보고 피곤한 줄 알고, 한숨만 듣고 무엇이 서운한지 짐작해 주기를 바란다. 나도 그런 기대 때문에 혼자 실망한 적이 많다. 요즘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려 한다. 오늘은 지쳤으니 설거지를 맡아 달라거나, 잠시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보다 말로 전할 때 오해가 줄어든다.

고맙다는 말도 아끼지 않으려 한다. 늘 하는 일이라고 해서 수고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일 밥을 차리는 사람도, 매번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면 힘이 난다. 오래 함께 살다 보면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깨끗한 욕실과 개켜 놓은 빨래를 당연하게 여기기 쉽다. 그럴수록 잠깐 멈추어 누가 이 일을 했을지 생각해 보려 한다.

물론 고맙다는 말만으로 집안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말을 건넨 뒤에도 늘 같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부엌에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지칠 것이다. 나도 한동안 집안일을 하면서 도와준다는 표현을 썼다. 함께 사는 집인데도 다른 사람의 일을 거든다고 생각했던 셈이다. 이제는 무엇을 할지 묻기 전에 쌓인 그릇과 가득 찬 휴지통을 살펴본다.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이려 한다.

가족이 달라지는 모습을 받아들이는 일도 쉽지 않다. 아이는 자라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고, 부모는 나이가 들며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한다. 씩씩하던 사람이 작은 일을 걱정하고, 내 의견을 따르던 사람이 다른 길을 고른다. 나는 가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을 입에 올리려다 멈춘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지금 마음까지 모두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느려진 걸음을 따라 걷다가 마음이 급해진 적이 있다. 조금만 서두르면 신호를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곁을 돌아보니 부모는 발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나는 신호등을 보고 있었지만 부모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며 옷깃을 여며 드렸다. 오래전 내 짧은 보폭에 맞추어 걸어 주었을 시간을 생각하니 서두르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 걱정도 없고 누구도 아프지 않으며 모든 관계가 평온한 날을 기다린다면, 행복하다고 느낄 날은 많지 않을 것이다. 걱정이 있는 저녁에도 따뜻한 국을 나누어 먹을 수 있고, 서운한 마음이 남아 있어도 상대의 젖은 옷을 널어 줄 수 있다. 나는 그런 행동을 보며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곤 했다.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 있더라도 서로를 보살피려는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우리 집이 얼마나 행복한지 판단하기보다 가족의 하루를 살피려 한다. 누가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지, 누가 말을 줄였는지, 누가 자꾸 혼자 일을 마무리하는지 돌아본다. 언제나 제때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한참 뒤에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래도 늦었다는 이유로 묻지 않고 지나가지는 않으려 한다. 지난번에는 네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면, 멈췄던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톨스토이의 문장을 다시 읽으며 행복한 가정들의 닮은 모습을 생각한다. 사는 형편도 가족의 수도 다르겠지만, 그 집에서는 누군가의 수고가 오래 외면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 사람의 말수가 줄면 다른 사람이 이유를 묻고,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면 무엇이 서운했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일들을 거듭하며 가족은 힘든 날에도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닐까.

오늘 저녁에도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도 있고,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를 안고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우선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얼굴을 보며 하루가 어땠는지 물으려 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서둘러 대답을 준비하지 않고 끝까지 듣고 싶다. 식탁에 마주 앉으면 몸만 아니라 마음도 그 사람 쪽으로 돌리고 싶다. 그날 들려주지 못한 말이 있다면, 밥을 다 먹은 뒤에도 조금 더 앉아 있으려 한다.서로를 향해 돌아앉는 일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행복보다 불행이라는 말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행복한 집은 비슷하고 불행한 집은 다르다니, 사람 사는 모습을 그렇게 나눌 수 있을까 싶었다. 어느 집에나 말 못 할 사정 하나쯤은 있고, 웃음이 잦은 집에도 눈물을 삼키는 밤은 있을 터였다. 그때의 나는 이 문장의 뜻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채 기억해 두었다. 살다 보면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문장을 떠올린 것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닦던 날이었다. 한 사람은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다른 사람은 물컵을 씻었다. 나는 식탁을 닦다가 바닥에 떨어진 밥알을 주웠다. 별다른 대화도 없었다. 누구도 일을 나누어 시키지 않았지만, 각자 눈에 보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행복한 가정이 서로 닮았다는 말은 이런 작은 배려를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가정이 닮았다는 것은 같은 크기의 집에 살거나 비슷한 음식을 먹는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침마다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집도 있고, 말없이 현관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 주는 집도 있다.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도 상대가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닮아 있다. 늦게 돌아올 사람의 밥을 남겨 두고, 지쳐 누운 사람 곁에서는 텔레비전 소리를 낮추는 일. 그런 행동에서 우리는 자신이 보살핌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

어린 시절에는 집이 저절로 따뜻해지는 줄 알았다. 겨울이면 방바닥에 온기가 돌고, 저녁이면 부엌에서 밥 냄새가 났다. 옷장에는 빨아 놓은 옷이 있었고, 감기에 걸리면 머리맡에 물 한 잔이 놓였다. 나는 그것들을 해가 뜨고 지는 일처럼 당연하게 여겼다. 누군가 먼저 일어나 쌀을 씻고, 찬물에 손을 담그고, 한밤중에도 잠을 깨 내 이마를 짚어 보았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헤아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밥을 먹을 때면 늘 비슷한 질문을 하셨다. 싱겁지는 않으냐, 더 먹겠느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 나는 그 물음들이 때로 귀찮았다. 배가 부르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학교 이야기를 물으면 별일 없었다는 말로 끝내곤 했다. 이제 생각하면 어머니는 반찬의 간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만 궁금하셨던 것이 아니다. 내가 하루를 잘 보냈는지, 혹시 혼자 속상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고 싶으셨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비슷한 말을 건넨다. 밥은 먹었는지, 춥지는 않은지, 오늘은 늦는지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이 짧으면 서운하다가도 어린 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을 어느새 내가 하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못했던 어머니처럼 나도 밥과 날씨를 빌려 안부를 묻는다. 그 물음에 담긴 마음을 상대가 알아주면 좋겠지만, 알아주기를 재촉하지는 않으려 한다.

물론 걱정하는 마음으로 건넨 말이 언제나 따뜻하게 들리는 것은 아니다. 늦게 들어오는 까닭을 물었다가 간섭한다는 대답을 듣기도 하고, 도와주려던 행동으로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한다. 오래 함께 살았으니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믿음 때문에 잘못 짚는 일도 생긴다. 예전에 좋아하던 음식이 이제는 입에 맞지 않을 수 있고, 평소에는 웃어넘기던 농담이 유난히 아픈 날도 있다.

나 역시 가족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대답한 적이 많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안다고 생각했다. 피곤하다는 말에는 일찍 자라고 했고, 걱정된다는 말에는 별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 뒤 상대가 입을 다물면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성급하게 해결책을 말하느라, 상대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를 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가족 한 사람이 그저 들어 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하려던 대답을 멈추었다. 상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방법을 찾았지만, 정작 그가 바라는 도움은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대답이 떠올라도 조금 더 기다리려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묻고 상대가 말을 이을 때까지 기다려 본다. 여전히 듣는 도중에 내 경험을 꺼내거나 충고부터 할 때가 있다. 그러다 상대의 표정이 달라지면 말을 멈춘다. 잘 듣는 일도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참는 연습이 필요했다.

나는 가족이 내 화를 받아 줄 것이라 믿고, 밖에서 참았던 짜증까지 집에서 쏟아 내곤 했다. 회사에서 받은 서운함을 식탁까지 가져왔고, 길에서 겪은 불쾌함 때문에 현관에서부터 날카롭게 대답했다. 가족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그 말들을 받아야 했다. 오래 곁에 있어 줄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정작 그 사람에게는 말을 가장 적게 골라 하고 있었다.

한번은 치워지지 않은 물건 하나 때문에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에는 물건을 제자리에 놓아 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곧 지난주와 지난달의 일이 따라 나왔다. 늘 그렇다는 말이 나왔고, 내 말을 한 번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말까지 보탰다. 상대도 그동안 참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눈앞의 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오래 묵은 서운함으로 서로를 몰아붙였다.

말다툼이 끝난 뒤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목이 말랐지만 거실에서 마주칠까 봐 물을 가지러 나가는 일조차 망설였다. 조금 전까지 함께 밥을 먹던 식탁이 낯설게 보였다. 방바닥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날 밤 나는 집에서 편히 쉬지 못했다.

사과는 다음 날 아침에야 했다. 어제는 내가 심하게 말했다고, 그 물건 때문에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상대는 곧바로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사과했으니 이제 풀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말을 꺼낼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듯, 상대에게도 내 사과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우리는 그날 저녁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기억하는 장면이 달랐고 서운했던 대목도 달랐다. 나는 내 말이 무시당했다고 느꼈지만, 상대는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데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서운함이 그날 한꺼번에 풀리지는 않았다. 다만 각자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전보다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말할지도 함께 생각해 보았다.

행복한 가정에도 이런 밤은 있을 것이다. 방문을 닫고 돌아서는 날도 있고, 같은 식탁에서 말없이 밥만 먹는 저녁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누군가 먼저 문을 두드리거나 아까는 미안했다고 말을 건넬 것이다. 잘라 놓은 과일 한 접시를 조심스럽게 내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일을 받았다고 서운함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할 계기는 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불행한 가정이 저마다 다르다는 말도 무겁게 다가온다. 어떤 집에는 생활의 어려움이 오래 머물고, 어떤 집에는 질병이 찾아온다. 누군가는 돌봄을 혼자 감당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낸다. 밖에서 보기에는 모두 말수가 적고 웃음이 줄어든 집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침묵이 시작된 사정과 그 안에서 견디는 어려움은 집집마다 다르다.

그래서 힘든 가정을 두고 마음가짐만 바꾸면 된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병원비를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위로와 함께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이 필요할 수 있다. 밤낮으로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에게는 대신 곁을 지켜 줄 사람이 절실하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너무 지쳐 다정하게 말할 여유를 잃는 날이 있다. 그런 사정을 헤아리지 않은 채 사랑이 부족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때 나는 다른 집의 모습을 쉽게 부러워했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이는 집, 주말마다 여행을 가는 집, 생일마다 꽃다발을 주고받는 집이 좋아 보였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찾아내는 데에는 익숙했지만, 우리가 함께 누리고 있는 일은 자주 잊었다. 사진 속 가족들이 환하게 웃고 있으면 그 집에는 늘 웃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진 밖에서 그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는 알지 못하면서.

우리 가족의 나들이는 종종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기도 했고, 식당 앞에서 오래 기다리다가 서로 말수가 줄기도 했다. 모처럼 나왔는데 왜 이러느냐는 말이 나오면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떠오르는 것은 엉뚱하게 들어선 골목의 빵집이나 차 안에서 나누어 먹던 귤이다. 당시에는 망쳤다고 여긴 하루에도 함께 웃었던 순간이 남아 있었다.

가족을 떠올릴 때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도 대개 작은 일들이다. 비가 오던 날 정류장으로 가져온 우산, 늦게 돌아왔을 때 냄비에 남겨 둔 국, 중요한 일을 앞둔 아침에 건넨 짧은 응원이 그렇다. 당시에는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누군가는 내 귀가 시간을 생각하며 기다렸고,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골랐다. 내가 무심히 지나친 순간에도 가족은 나를 살피고 있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현관에 놓인 신발이 생각난다.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는 가족의 신발이 닳으면 굽을 살펴보곤 하셨다. 어느 날에는 수선을 맡겨 두었다며 찾아오라고 하셨고, 비가 온 다음 날에는 젖은 신발 안에 신문지가 들어 있었다. 그때는 그런 손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제 젖은 신발을 말리려고 신문지를 구겨 넣다 보면, 현관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등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지난 시간이 모두 따뜻했던 것은 아니다. 이해받지 못해 서러웠던 날도 있고, 지금 떠올려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말도 있다. 고마운 기억이 있다고 해서 아팠던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가족에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좋았던 일만 남겨 두려고도, 서운했던 일로 지난날 전부를 판단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두 기억 모두 내가 함께 살아온 시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에도 지켜야 할 거리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운다. 모든 생각을 털어놓아야만 친한 것은 아니며,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이 곧 가족을 밀어내는 뜻도 아니다. 방문이 닫혀 있으면 두드리고,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기다릴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가족의 고민을 당장 알아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상대가 스스로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곁에 있는 방법임을 안다.

우리는 때로 가족이 말하지 않은 바람까지 알아주기를 기대한다. 내 표정만 보고 피곤한 줄 알고, 한숨만 듣고 무엇이 서운한지 짐작해 주기를 바란다. 나도 그런 기대 때문에 혼자 실망한 적이 많다. 요즘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려 한다. 오늘은 지쳤으니 설거지를 맡아 달라거나, 잠시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보다 말로 전할 때 오해가 줄어든다.

고맙다는 말도 아끼지 않으려 한다. 늘 하는 일이라고 해서 수고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일 밥을 차리는 사람도, 매번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면 힘이 난다. 오래 함께 살다 보면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깨끗한 욕실과 개켜 놓은 빨래를 당연하게 여기기 쉽다. 그럴수록 잠깐 멈추어 누가 이 일을 했을지 생각해 보려 한다.

물론 고맙다는 말만으로 집안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말을 건넨 뒤에도 늘 같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부엌에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지칠 것이다. 나도 한동안 집안일을 하면서 도와준다는 표현을 썼다. 함께 사는 집인데도 다른 사람의 일을 거든다고 생각했던 셈이다. 이제는 무엇을 할지 묻기 전에 쌓인 그릇과 가득 찬 휴지통을 살펴본다.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이려 한다.

가족이 달라지는 모습을 받아들이는 일도 쉽지 않다. 아이는 자라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고, 부모는 나이가 들며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한다. 씩씩하던 사람이 작은 일을 걱정하고, 내 의견을 따르던 사람이 다른 길을 고른다. 나는 가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을 입에 올리려다 멈춘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지금 마음까지 모두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느려진 걸음을 따라 걷다가 마음이 급해진 적이 있다. 조금만 서두르면 신호를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곁을 돌아보니 부모는 발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나는 신호등을 보고 있었지만 부모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며 옷깃을 여며 드렸다. 오래전 내 짧은 보폭에 맞추어 걸어 주었을 시간을 생각하니 서두르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 걱정도 없고 누구도 아프지 않으며 모든 관계가 평온한 날을 기다린다면, 행복하다고 느낄 날은 많지 않을 것이다. 걱정이 있는 저녁에도 따뜻한 국을 나누어 먹을 수 있고, 서운한 마음이 남아 있어도 상대의 젖은 옷을 널어 줄 수 있다. 나는 그런 행동을 보며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곤 했다.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 있더라도 서로를 보살피려는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우리 집이 얼마나 행복한지 판단하기보다 가족의 하루를 살피려 한다. 누가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지, 누가 말을 줄였는지, 누가 자꾸 혼자 일을 마무리하는지 돌아본다. 언제나 제때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한참 뒤에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래도 늦었다는 이유로 묻지 않고 지나가지는 않으려 한다. 지난번에는 네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면, 멈췄던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톨스토이의 문장을 다시 읽으며 행복한 가정들의 닮은 모습을 생각한다. 사는 형편도 가족의 수도 다르겠지만, 그 집에서는 누군가의 수고가 오래 외면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 사람의 말수가 줄면 다른 사람이 이유를 묻고,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면 무엇이 서운했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일들을 거듭하며 가족은 힘든 날에도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닐까.

오늘 저녁에도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도 있고,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를 안고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우선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얼굴을 보며 하루가 어땠는지 물으려 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서둘러 대답을 준비하지 않고 끝까지 듣고 싶다. 식탁에 마주 앉으면 몸만 아니라 마음도 그 사람 쪽으로 돌리고 싶다. 그날 들려주지 못한 말이 있다면, 밥을 다 먹은 뒤에도 조금 더 앉아 있으려 한다.서로를 향해 돌아앉는 일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행복보다 불행이라는 말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행복한 집은 비슷하고 불행한 집은 다르다니, 사람 사는 모습을 그렇게 나눌 수 있을까 싶었다. 어느 집에나 말 못 할 사정 하나쯤은 있고, 웃음이 잦은 집에도 눈물을 삼키는 밤은 있을 터였다. 그때의 나는 이 문장의 뜻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채 기억해 두었다. 살다 보면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문장을 떠올린 것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닦던 날이었다. 한 사람은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다른 사람은 물컵을 씻었다. 나는 식탁을 닦다가 바닥에 떨어진 밥알을 주웠다. 별다른 대화도 없었다. 누구도 일을 나누어 시키지 않았지만, 각자 눈에 보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행복한 가정이 서로 닮았다는 말은 이런 작은 배려를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가정이 닮았다는 것은 같은 크기의 집에 살거나 비슷한 음식을 먹는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침마다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집도 있고, 말없이 현관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 주는 집도 있다.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도 상대가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닮아 있다. 늦게 돌아올 사람의 밥을 남겨 두고, 지쳐 누운 사람 곁에서는 텔레비전 소리를 낮추는 일. 그런 행동에서 우리는 자신이 보살핌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

어린 시절에는 집이 저절로 따뜻해지는 줄 알았다. 겨울이면 방바닥에 온기가 돌고, 저녁이면 부엌에서 밥 냄새가 났다. 옷장에는 빨아 놓은 옷이 있었고, 감기에 걸리면 머리맡에 물 한 잔이 놓였다. 나는 그것들을 해가 뜨고 지는 일처럼 당연하게 여겼다. 누군가 먼저 일어나 쌀을 씻고, 찬물에 손을 담그고, 한밤중에도 잠을 깨 내 이마를 짚어 보았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헤아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밥을 먹을 때면 늘 비슷한 질문을 하셨다. 싱겁지는 않으냐, 더 먹겠느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 나는 그 물음들이 때로 귀찮았다. 배가 부르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학교 이야기를 물으면 별일 없었다는 말로 끝내곤 했다. 이제 생각하면 어머니는 반찬의 간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만 궁금하셨던 것이 아니다. 내가 하루를 잘 보냈는지, 혹시 혼자 속상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고 싶으셨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비슷한 말을 건넨다. 밥은 먹었는지, 춥지는 않은지, 오늘은 늦는지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이 짧으면 서운하다가도 어린 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을 어느새 내가 하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못했던 어머니처럼 나도 밥과 날씨를 빌려 안부를 묻는다. 그 물음에 담긴 마음을 상대가 알아주면 좋겠지만, 알아주기를 재촉하지는 않으려 한다.

물론 걱정하는 마음으로 건넨 말이 언제나 따뜻하게 들리는 것은 아니다. 늦게 들어오는 까닭을 물었다가 간섭한다는 대답을 듣기도 하고, 도와주려던 행동으로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한다. 오래 함께 살았으니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믿음 때문에 잘못 짚는 일도 생긴다. 예전에 좋아하던 음식이 이제는 입에 맞지 않을 수 있고, 평소에는 웃어넘기던 농담이 유난히 아픈 날도 있다.

나 역시 가족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대답한 적이 많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안다고 생각했다. 피곤하다는 말에는 일찍 자라고 했고, 걱정된다는 말에는 별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 뒤 상대가 입을 다물면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성급하게 해결책을 말하느라, 상대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를 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가족 한 사람이 그저 들어 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하려던 대답을 멈추었다. 상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방법을 찾았지만, 정작 그가 바라는 도움은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대답이 떠올라도 조금 더 기다리려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묻고 상대가 말을 이을 때까지 기다려 본다. 여전히 듣는 도중에 내 경험을 꺼내거나 충고부터 할 때가 있다. 그러다 상대의 표정이 달라지면 말을 멈춘다. 잘 듣는 일도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참는 연습이 필요했다.

나는 가족이 내 화를 받아 줄 것이라 믿고, 밖에서 참았던 짜증까지 집에서 쏟아 내곤 했다. 회사에서 받은 서운함을 식탁까지 가져왔고, 길에서 겪은 불쾌함 때문에 현관에서부터 날카롭게 대답했다. 가족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그 말들을 받아야 했다. 오래 곁에 있어 줄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정작 그 사람에게는 말을 가장 적게 골라 하고 있었다.

한번은 치워지지 않은 물건 하나 때문에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에는 물건을 제자리에 놓아 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곧 지난주와 지난달의 일이 따라 나왔다. 늘 그렇다는 말이 나왔고, 내 말을 한 번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말까지 보탰다. 상대도 그동안 참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눈앞의 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오래 묵은 서운함으로 서로를 몰아붙였다.

말다툼이 끝난 뒤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목이 말랐지만 거실에서 마주칠까 봐 물을 가지러 나가는 일조차 망설였다. 조금 전까지 함께 밥을 먹던 식탁이 낯설게 보였다. 방바닥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날 밤 나는 집에서 편히 쉬지 못했다.

사과는 다음 날 아침에야 했다. 어제는 내가 심하게 말했다고, 그 물건 때문에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상대는 곧바로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사과했으니 이제 풀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말을 꺼낼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듯, 상대에게도 내 사과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우리는 그날 저녁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기억하는 장면이 달랐고 서운했던 대목도 달랐다. 나는 내 말이 무시당했다고 느꼈지만, 상대는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데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서운함이 그날 한꺼번에 풀리지는 않았다. 다만 각자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전보다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말할지도 함께 생각해 보았다.

행복한 가정에도 이런 밤은 있을 것이다. 방문을 닫고 돌아서는 날도 있고, 같은 식탁에서 말없이 밥만 먹는 저녁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누군가 먼저 문을 두드리거나 아까는 미안했다고 말을 건넬 것이다. 잘라 놓은 과일 한 접시를 조심스럽게 내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일을 받았다고 서운함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할 계기는 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불행한 가정이 저마다 다르다는 말도 무겁게 다가온다. 어떤 집에는 생활의 어려움이 오래 머물고, 어떤 집에는 질병이 찾아온다. 누군가는 돌봄을 혼자 감당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낸다. 밖에서 보기에는 모두 말수가 적고 웃음이 줄어든 집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침묵이 시작된 사정과 그 안에서 견디는 어려움은 집집마다 다르다.

그래서 힘든 가정을 두고 마음가짐만 바꾸면 된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병원비를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위로와 함께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이 필요할 수 있다. 밤낮으로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에게는 대신 곁을 지켜 줄 사람이 절실하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너무 지쳐 다정하게 말할 여유를 잃는 날이 있다. 그런 사정을 헤아리지 않은 채 사랑이 부족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때 나는 다른 집의 모습을 쉽게 부러워했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이는 집, 주말마다 여행을 가는 집, 생일마다 꽃다발을 주고받는 집이 좋아 보였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찾아내는 데에는 익숙했지만, 우리가 함께 누리고 있는 일은 자주 잊었다. 사진 속 가족들이 환하게 웃고 있으면 그 집에는 늘 웃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진 밖에서 그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는 알지 못하면서.

우리 가족의 나들이는 종종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기도 했고, 식당 앞에서 오래 기다리다가 서로 말수가 줄기도 했다. 모처럼 나왔는데 왜 이러느냐는 말이 나오면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떠오르는 것은 엉뚱하게 들어선 골목의 빵집이나 차 안에서 나누어 먹던 귤이다. 당시에는 망쳤다고 여긴 하루에도 함께 웃었던 순간이 남아 있었다.

가족을 떠올릴 때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도 대개 작은 일들이다. 비가 오던 날 정류장으로 가져온 우산, 늦게 돌아왔을 때 냄비에 남겨 둔 국, 중요한 일을 앞둔 아침에 건넨 짧은 응원이 그렇다. 당시에는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누군가는 내 귀가 시간을 생각하며 기다렸고,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골랐다. 내가 무심히 지나친 순간에도 가족은 나를 살피고 있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현관에 놓인 신발이 생각난다.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는 가족의 신발이 닳으면 굽을 살펴보곤 하셨다. 어느 날에는 수선을 맡겨 두었다며 찾아오라고 하셨고, 비가 온 다음 날에는 젖은 신발 안에 신문지가 들어 있었다. 그때는 그런 손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제 젖은 신발을 말리려고 신문지를 구겨 넣다 보면, 현관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등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지난 시간이 모두 따뜻했던 것은 아니다. 이해받지 못해 서러웠던 날도 있고, 지금 떠올려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말도 있다. 고마운 기억이 있다고 해서 아팠던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가족에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좋았던 일만 남겨 두려고도, 서운했던 일로 지난날 전부를 판단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두 기억 모두 내가 함께 살아온 시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에도 지켜야 할 거리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운다. 모든 생각을 털어놓아야만 친한 것은 아니며,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이 곧 가족을 밀어내는 뜻도 아니다. 방문이 닫혀 있으면 두드리고,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기다릴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가족의 고민을 당장 알아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상대가 스스로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곁에 있는 방법임을 안다.

우리는 때로 가족이 말하지 않은 바람까지 알아주기를 기대한다. 내 표정만 보고 피곤한 줄 알고, 한숨만 듣고 무엇이 서운한지 짐작해 주기를 바란다. 나도 그런 기대 때문에 혼자 실망한 적이 많다. 요즘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려 한다. 오늘은 지쳤으니 설거지를 맡아 달라거나, 잠시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보다 말로 전할 때 오해가 줄어든다.

고맙다는 말도 아끼지 않으려 한다. 늘 하는 일이라고 해서 수고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일 밥을 차리는 사람도, 매번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면 힘이 난다. 오래 함께 살다 보면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깨끗한 욕실과 개켜 놓은 빨래를 당연하게 여기기 쉽다. 그럴수록 잠깐 멈추어 누가 이 일을 했을지 생각해 보려 한다.

물론 고맙다는 말만으로 집안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말을 건넨 뒤에도 늘 같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부엌에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지칠 것이다. 나도 한동안 집안일을 하면서 도와준다는 표현을 썼다. 함께 사는 집인데도 다른 사람의 일을 거든다고 생각했던 셈이다. 이제는 무엇을 할지 묻기 전에 쌓인 그릇과 가득 찬 휴지통을 살펴본다.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이려 한다.

가족이 달라지는 모습을 받아들이는 일도 쉽지 않다. 아이는 자라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고, 부모는 나이가 들며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한다. 씩씩하던 사람이 작은 일을 걱정하고, 내 의견을 따르던 사람이 다른 길을 고른다. 나는 가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을 입에 올리려다 멈춘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지금 마음까지 모두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느려진 걸음을 따라 걷다가 마음이 급해진 적이 있다. 조금만 서두르면 신호를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곁을 돌아보니 부모는 발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나는 신호등을 보고 있었지만 부모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며 옷깃을 여며 드렸다. 오래전 내 짧은 보폭에 맞추어 걸어 주었을 시간을 생각하니 서두르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 걱정도 없고 누구도 아프지 않으며 모든 관계가 평온한 날을 기다린다면, 행복하다고 느낄 날은 많지 않을 것이다. 걱정이 있는 저녁에도 따뜻한 국을 나누어 먹을 수 있고, 서운한 마음이 남아 있어도 상대의 젖은 옷을 널어 줄 수 있다. 나는 그런 행동을 보며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곤 했다.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 있더라도 서로를 보살피려는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우리 집이 얼마나 행복한지 판단하기보다 가족의 하루를 살피려 한다. 누가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지, 누가 말을 줄였는지, 누가 자꾸 혼자 일을 마무리하는지 돌아본다. 언제나 제때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한참 뒤에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래도 늦었다는 이유로 묻지 않고 지나가지는 않으려 한다. 지난번에는 네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면, 멈췄던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톨스토이의 문장을 다시 읽으며 행복한 가정들의 닮은 모습을 생각한다. 사는 형편도 가족의 수도 다르겠지만, 그 집에서는 누군가의 수고가 오래 외면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 사람의 말수가 줄면 다른 사람이 이유를 묻고,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면 무엇이 서운했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일들을 거듭하며 가족은 힘든 날에도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닐까.

오늘 저녁에도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도 있고,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를 안고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우선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얼굴을 보며 하루가 어땠는지 물으려 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서둘러 대답을 준비하지 않고 끝까지 듣고 싶다. 식탁에 마주 앉으면 몸만 아니라 마음도 그 사람 쪽으로 돌리고 싶다. 그날 들려주지 못한 말이 있다면, 밥을 다 먹은 뒤에도 조금 더 앉아 있으려 한다.서로를 향해 돌아앉는 일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행복보다 불행이라는 말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행복한 집은 비슷하고 불행한 집은 다르다니, 사람 사는 모습을 그렇게 나눌 수 있을까 싶었다. 어느 집에나 말 못 할 사정 하나쯤은 있고, 웃음이 잦은 집에도 눈물을 삼키는 밤은 있을 터였다. 그때의 나는 이 문장의 뜻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채 기억해 두었다. 살다 보면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문장을 떠올린 것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닦던 날이었다. 한 사람은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다른 사람은 물컵을 씻었다. 나는 식탁을 닦다가 바닥에 떨어진 밥알을 주웠다. 별다른 대화도 없었다. 누구도 일을 나누어 시키지 않았지만, 각자 눈에 보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행복한 가정이 서로 닮았다는 말은 이런 작은 배려를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가정이 닮았다는 것은 같은 크기의 집에 살거나 비슷한 음식을 먹는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침마다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집도 있고, 말없이 현관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 주는 집도 있다.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도 상대가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닮아 있다. 늦게 돌아올 사람의 밥을 남겨 두고, 지쳐 누운 사람 곁에서는 텔레비전 소리를 낮추는 일. 그런 행동에서 우리는 자신이 보살핌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

어린 시절에는 집이 저절로 따뜻해지는 줄 알았다. 겨울이면 방바닥에 온기가 돌고, 저녁이면 부엌에서 밥 냄새가 났다. 옷장에는 빨아 놓은 옷이 있었고, 감기에 걸리면 머리맡에 물 한 잔이 놓였다. 나는 그것들을 해가 뜨고 지는 일처럼 당연하게 여겼다. 누군가 먼저 일어나 쌀을 씻고, 찬물에 손을 담그고, 한밤중에도 잠을 깨 내 이마를 짚어 보았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헤아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밥을 먹을 때면 늘 비슷한 질문을 하셨다. 싱겁지는 않으냐, 더 먹겠느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 나는 그 물음들이 때로 귀찮았다. 배가 부르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학교 이야기를 물으면 별일 없었다는 말로 끝내곤 했다. 이제 생각하면 어머니는 반찬의 간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만 궁금하셨던 것이 아니다. 내가 하루를 잘 보냈는지, 혹시 혼자 속상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고 싶으셨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비슷한 말을 건넨다. 밥은 먹었는지, 춥지는 않은지, 오늘은 늦는지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이 짧으면 서운하다가도 어린 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을 어느새 내가 하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못했던 어머니처럼 나도 밥과 날씨를 빌려 안부를 묻는다. 그 물음에 담긴 마음을 상대가 알아주면 좋겠지만, 알아주기를 재촉하지는 않으려 한다.

물론 걱정하는 마음으로 건넨 말이 언제나 따뜻하게 들리는 것은 아니다. 늦게 들어오는 까닭을 물었다가 간섭한다는 대답을 듣기도 하고, 도와주려던 행동으로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한다. 오래 함께 살았으니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믿음 때문에 잘못 짚는 일도 생긴다. 예전에 좋아하던 음식이 이제는 입에 맞지 않을 수 있고, 평소에는 웃어넘기던 농담이 유난히 아픈 날도 있다.

나 역시 가족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대답한 적이 많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안다고 생각했다. 피곤하다는 말에는 일찍 자라고 했고, 걱정된다는 말에는 별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 뒤 상대가 입을 다물면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성급하게 해결책을 말하느라, 상대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를 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가족 한 사람이 그저 들어 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하려던 대답을 멈추었다. 상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방법을 찾았지만, 정작 그가 바라는 도움은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대답이 떠올라도 조금 더 기다리려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묻고 상대가 말을 이을 때까지 기다려 본다. 여전히 듣는 도중에 내 경험을 꺼내거나 충고부터 할 때가 있다. 그러다 상대의 표정이 달라지면 말을 멈춘다. 잘 듣는 일도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참는 연습이 필요했다.

나는 가족이 내 화를 받아 줄 것이라 믿고, 밖에서 참았던 짜증까지 집에서 쏟아 내곤 했다. 회사에서 받은 서운함을 식탁까지 가져왔고, 길에서 겪은 불쾌함 때문에 현관에서부터 날카롭게 대답했다. 가족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그 말들을 받아야 했다. 오래 곁에 있어 줄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정작 그 사람에게는 말을 가장 적게 골라 하고 있었다.

한번은 치워지지 않은 물건 하나 때문에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에는 물건을 제자리에 놓아 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곧 지난주와 지난달의 일이 따라 나왔다. 늘 그렇다는 말이 나왔고, 내 말을 한 번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말까지 보탰다. 상대도 그동안 참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눈앞의 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오래 묵은 서운함으로 서로를 몰아붙였다.

말다툼이 끝난 뒤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목이 말랐지만 거실에서 마주칠까 봐 물을 가지러 나가는 일조차 망설였다. 조금 전까지 함께 밥을 먹던 식탁이 낯설게 보였다. 방바닥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날 밤 나는 집에서 편히 쉬지 못했다.

사과는 다음 날 아침에야 했다. 어제는 내가 심하게 말했다고, 그 물건 때문에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상대는 곧바로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사과했으니 이제 풀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말을 꺼낼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듯, 상대에게도 내 사과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우리는 그날 저녁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기억하는 장면이 달랐고 서운했던 대목도 달랐다. 나는 내 말이 무시당했다고 느꼈지만, 상대는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데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서운함이 그날 한꺼번에 풀리지는 않았다. 다만 각자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전보다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말할지도 함께 생각해 보았다.

행복한 가정에도 이런 밤은 있을 것이다. 방문을 닫고 돌아서는 날도 있고, 같은 식탁에서 말없이 밥만 먹는 저녁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누군가 먼저 문을 두드리거나 아까는 미안했다고 말을 건넬 것이다. 잘라 놓은 과일 한 접시를 조심스럽게 내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일을 받았다고 서운함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할 계기는 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불행한 가정이 저마다 다르다는 말도 무겁게 다가온다. 어떤 집에는 생활의 어려움이 오래 머물고, 어떤 집에는 질병이 찾아온다. 누군가는 돌봄을 혼자 감당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낸다. 밖에서 보기에는 모두 말수가 적고 웃음이 줄어든 집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침묵이 시작된 사정과 그 안에서 견디는 어려움은 집집마다 다르다.

그래서 힘든 가정을 두고 마음가짐만 바꾸면 된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병원비를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위로와 함께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이 필요할 수 있다. 밤낮으로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에게는 대신 곁을 지켜 줄 사람이 절실하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너무 지쳐 다정하게 말할 여유를 잃는 날이 있다. 그런 사정을 헤아리지 않은 채 사랑이 부족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때 나는 다른 집의 모습을 쉽게 부러워했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이는 집, 주말마다 여행을 가는 집, 생일마다 꽃다발을 주고받는 집이 좋아 보였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찾아내는 데에는 익숙했지만, 우리가 함께 누리고 있는 일은 자주 잊었다. 사진 속 가족들이 환하게 웃고 있으면 그 집에는 늘 웃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진 밖에서 그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는 알지 못하면서.

우리 가족의 나들이는 종종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기도 했고, 식당 앞에서 오래 기다리다가 서로 말수가 줄기도 했다. 모처럼 나왔는데 왜 이러느냐는 말이 나오면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떠오르는 것은 엉뚱하게 들어선 골목의 빵집이나 차 안에서 나누어 먹던 귤이다. 당시에는 망쳤다고 여긴 하루에도 함께 웃었던 순간이 남아 있었다.

가족을 떠올릴 때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도 대개 작은 일들이다. 비가 오던 날 정류장으로 가져온 우산, 늦게 돌아왔을 때 냄비에 남겨 둔 국, 중요한 일을 앞둔 아침에 건넨 짧은 응원이 그렇다. 당시에는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누군가는 내 귀가 시간을 생각하며 기다렸고,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골랐다. 내가 무심히 지나친 순간에도 가족은 나를 살피고 있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현관에 놓인 신발이 생각난다.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는 가족의 신발이 닳으면 굽을 살펴보곤 하셨다. 어느 날에는 수선을 맡겨 두었다며 찾아오라고 하셨고, 비가 온 다음 날에는 젖은 신발 안에 신문지가 들어 있었다. 그때는 그런 손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제 젖은 신발을 말리려고 신문지를 구겨 넣다 보면, 현관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등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지난 시간이 모두 따뜻했던 것은 아니다. 이해받지 못해 서러웠던 날도 있고, 지금 떠올려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말도 있다. 고마운 기억이 있다고 해서 아팠던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가족에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좋았던 일만 남겨 두려고도, 서운했던 일로 지난날 전부를 판단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두 기억 모두 내가 함께 살아온 시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에도 지켜야 할 거리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운다. 모든 생각을 털어놓아야만 친한 것은 아니며,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이 곧 가족을 밀어내는 뜻도 아니다. 방문이 닫혀 있으면 두드리고,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기다릴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가족의 고민을 당장 알아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상대가 스스로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곁에 있는 방법임을 안다.

우리는 때로 가족이 말하지 않은 바람까지 알아주기를 기대한다. 내 표정만 보고 피곤한 줄 알고, 한숨만 듣고 무엇이 서운한지 짐작해 주기를 바란다. 나도 그런 기대 때문에 혼자 실망한 적이 많다. 요즘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려 한다. 오늘은 지쳤으니 설거지를 맡아 달라거나, 잠시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보다 말로 전할 때 오해가 줄어든다.

고맙다는 말도 아끼지 않으려 한다. 늘 하는 일이라고 해서 수고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일 밥을 차리는 사람도, 매번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면 힘이 난다. 오래 함께 살다 보면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깨끗한 욕실과 개켜 놓은 빨래를 당연하게 여기기 쉽다. 그럴수록 잠깐 멈추어 누가 이 일을 했을지 생각해 보려 한다.

물론 고맙다는 말만으로 집안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말을 건넨 뒤에도 늘 같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부엌에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지칠 것이다. 나도 한동안 집안일을 하면서 도와준다는 표현을 썼다. 함께 사는 집인데도 다른 사람의 일을 거든다고 생각했던 셈이다. 이제는 무엇을 할지 묻기 전에 쌓인 그릇과 가득 찬 휴지통을 살펴본다.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이려 한다.

가족이 달라지는 모습을 받아들이는 일도 쉽지 않다. 아이는 자라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고, 부모는 나이가 들며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한다. 씩씩하던 사람이 작은 일을 걱정하고, 내 의견을 따르던 사람이 다른 길을 고른다. 나는 가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을 입에 올리려다 멈춘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지금 마음까지 모두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느려진 걸음을 따라 걷다가 마음이 급해진 적이 있다. 조금만 서두르면 신호를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곁을 돌아보니 부모는 발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나는 신호등을 보고 있었지만 부모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며 옷깃을 여며 드렸다. 오래전 내 짧은 보폭에 맞추어 걸어 주었을 시간을 생각하니 서두르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 걱정도 없고 누구도 아프지 않으며 모든 관계가 평온한 날을 기다린다면, 행복하다고 느낄 날은 많지 않을 것이다. 걱정이 있는 저녁에도 따뜻한 국을 나누어 먹을 수 있고, 서운한 마음이 남아 있어도 상대의 젖은 옷을 널어 줄 수 있다. 나는 그런 행동을 보며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곤 했다.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 있더라도 서로를 보살피려는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우리 집이 얼마나 행복한지 판단하기보다 가족의 하루를 살피려 한다. 누가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지, 누가 말을 줄였는지, 누가 자꾸 혼자 일을 마무리하는지 돌아본다. 언제나 제때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한참 뒤에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래도 늦었다는 이유로 묻지 않고 지나가지는 않으려 한다. 지난번에는 네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면, 멈췄던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톨스토이의 문장을 다시 읽으며 행복한 가정들의 닮은 모습을 생각한다. 사는 형편도 가족의 수도 다르겠지만, 그 집에서는 누군가의 수고가 오래 외면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 사람의 말수가 줄면 다른 사람이 이유를 묻고,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면 무엇이 서운했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일들을 거듭하며 가족은 힘든 날에도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닐까.

오늘 저녁에도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도 있고,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를 안고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우선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얼굴을 보며 하루가 어땠는지 물으려 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서둘러 대답을 준비하지 않고 끝까지 듣고 싶다. 식탁에 마주 앉으면 몸만 아니라 마음도 그 사람 쪽으로 돌리고 싶다. 그날 들려주지 못한 말이 있다면, 밥을 다 먹은 뒤에도 조금 더 앉아 있으려 한다.서로를 향해 돌아앉는 일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행복보다 불행이라는 말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행복한 집은 비슷하고 불행한 집은 다르다니, 사람 사는 모습을 그렇게 나눌 수 있을까 싶었다. 어느 집에나 말 못 할 사정 하나쯤은 있고, 웃음이 잦은 집에도 눈물을 삼키는 밤은 있을 터였다. 그때의 나는 이 문장의 뜻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채 기억해 두었다. 살다 보면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문장을 떠올린 것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닦던 날이었다. 한 사람은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다른 사람은 물컵을 씻었다. 나는 식탁을 닦다가 바닥에 떨어진 밥알을 주웠다. 별다른 대화도 없었다. 누구도 일을 나누어 시키지 않았지만, 각자 눈에 보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행복한 가정이 서로 닮았다는 말은 이런 작은 배려를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가정이 닮았다는 것은 같은 크기의 집에 살거나 비슷한 음식을 먹는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침마다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집도 있고, 말없이 현관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 주는 집도 있다.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도 상대가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닮아 있다. 늦게 돌아올 사람의 밥을 남겨 두고, 지쳐 누운 사람 곁에서는 텔레비전 소리를 낮추는 일. 그런 행동에서 우리는 자신이 보살핌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

어린 시절에는 집이 저절로 따뜻해지는 줄 알았다. 겨울이면 방바닥에 온기가 돌고, 저녁이면 부엌에서 밥 냄새가 났다. 옷장에는 빨아 놓은 옷이 있었고, 감기에 걸리면 머리맡에 물 한 잔이 놓였다. 나는 그것들을 해가 뜨고 지는 일처럼 당연하게 여겼다. 누군가 먼저 일어나 쌀을 씻고, 찬물에 손을 담그고, 한밤중에도 잠을 깨 내 이마를 짚어 보았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헤아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밥을 먹을 때면 늘 비슷한 질문을 하셨다. 싱겁지는 않으냐, 더 먹겠느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 나는 그 물음들이 때로 귀찮았다. 배가 부르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학교 이야기를 물으면 별일 없었다는 말로 끝내곤 했다. 이제 생각하면 어머니는 반찬의 간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만 궁금하셨던 것이 아니다. 내가 하루를 잘 보냈는지, 혹시 혼자 속상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고 싶으셨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비슷한 말을 건넨다. 밥은 먹었는지, 춥지는 않은지, 오늘은 늦는지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이 짧으면 서운하다가도 어린 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을 어느새 내가 하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못했던 어머니처럼 나도 밥과 날씨를 빌려 안부를 묻는다. 그 물음에 담긴 마음을 상대가 알아주면 좋겠지만, 알아주기를 재촉하지는 않으려 한다.

물론 걱정하는 마음으로 건넨 말이 언제나 따뜻하게 들리는 것은 아니다. 늦게 들어오는 까닭을 물었다가 간섭한다는 대답을 듣기도 하고, 도와주려던 행동으로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한다. 오래 함께 살았으니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믿음 때문에 잘못 짚는 일도 생긴다. 예전에 좋아하던 음식이 이제는 입에 맞지 않을 수 있고, 평소에는 웃어넘기던 농담이 유난히 아픈 날도 있다.

나 역시 가족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대답한 적이 많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안다고 생각했다. 피곤하다는 말에는 일찍 자라고 했고, 걱정된다는 말에는 별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 뒤 상대가 입을 다물면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성급하게 해결책을 말하느라, 상대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를 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가족 한 사람이 그저 들어 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하려던 대답을 멈추었다. 상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방법을 찾았지만, 정작 그가 바라는 도움은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대답이 떠올라도 조금 더 기다리려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묻고 상대가 말을 이을 때까지 기다려 본다. 여전히 듣는 도중에 내 경험을 꺼내거나 충고부터 할 때가 있다. 그러다 상대의 표정이 달라지면 말을 멈춘다. 잘 듣는 일도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참는 연습이 필요했다.

나는 가족이 내 화를 받아 줄 것이라 믿고, 밖에서 참았던 짜증까지 집에서 쏟아 내곤 했다. 회사에서 받은 서운함을 식탁까지 가져왔고, 길에서 겪은 불쾌함 때문에 현관에서부터 날카롭게 대답했다. 가족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그 말들을 받아야 했다. 오래 곁에 있어 줄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정작 그 사람에게는 말을 가장 적게 골라 하고 있었다.

한번은 치워지지 않은 물건 하나 때문에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에는 물건을 제자리에 놓아 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곧 지난주와 지난달의 일이 따라 나왔다. 늘 그렇다는 말이 나왔고, 내 말을 한 번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말까지 보탰다. 상대도 그동안 참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눈앞의 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오래 묵은 서운함으로 서로를 몰아붙였다.

말다툼이 끝난 뒤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목이 말랐지만 거실에서 마주칠까 봐 물을 가지러 나가는 일조차 망설였다. 조금 전까지 함께 밥을 먹던 식탁이 낯설게 보였다. 방바닥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날 밤 나는 집에서 편히 쉬지 못했다.

사과는 다음 날 아침에야 했다. 어제는 내가 심하게 말했다고, 그 물건 때문에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상대는 곧바로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사과했으니 이제 풀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말을 꺼낼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듯, 상대에게도 내 사과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우리는 그날 저녁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기억하는 장면이 달랐고 서운했던 대목도 달랐다. 나는 내 말이 무시당했다고 느꼈지만, 상대는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데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서운함이 그날 한꺼번에 풀리지는 않았다. 다만 각자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전보다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말할지도 함께 생각해 보았다.

행복한 가정에도 이런 밤은 있을 것이다. 방문을 닫고 돌아서는 날도 있고, 같은 식탁에서 말없이 밥만 먹는 저녁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누군가 먼저 문을 두드리거나 아까는 미안했다고 말을 건넬 것이다. 잘라 놓은 과일 한 접시를 조심스럽게 내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일을 받았다고 서운함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할 계기는 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불행한 가정이 저마다 다르다는 말도 무겁게 다가온다. 어떤 집에는 생활의 어려움이 오래 머물고, 어떤 집에는 질병이 찾아온다. 누군가는 돌봄을 혼자 감당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낸다. 밖에서 보기에는 모두 말수가 적고 웃음이 줄어든 집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침묵이 시작된 사정과 그 안에서 견디는 어려움은 집집마다 다르다.

그래서 힘든 가정을 두고 마음가짐만 바꾸면 된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병원비를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위로와 함께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이 필요할 수 있다. 밤낮으로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에게는 대신 곁을 지켜 줄 사람이 절실하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너무 지쳐 다정하게 말할 여유를 잃는 날이 있다. 그런 사정을 헤아리지 않은 채 사랑이 부족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때 나는 다른 집의 모습을 쉽게 부러워했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이는 집, 주말마다 여행을 가는 집, 생일마다 꽃다발을 주고받는 집이 좋아 보였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찾아내는 데에는 익숙했지만, 우리가 함께 누리고 있는 일은 자주 잊었다. 사진 속 가족들이 환하게 웃고 있으면 그 집에는 늘 웃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진 밖에서 그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는 알지 못하면서.

우리 가족의 나들이는 종종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기도 했고, 식당 앞에서 오래 기다리다가 서로 말수가 줄기도 했다. 모처럼 나왔는데 왜 이러느냐는 말이 나오면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떠오르는 것은 엉뚱하게 들어선 골목의 빵집이나 차 안에서 나누어 먹던 귤이다. 당시에는 망쳤다고 여긴 하루에도 함께 웃었던 순간이 남아 있었다.

가족을 떠올릴 때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도 대개 작은 일들이다. 비가 오던 날 정류장으로 가져온 우산, 늦게 돌아왔을 때 냄비에 남겨 둔 국, 중요한 일을 앞둔 아침에 건넨 짧은 응원이 그렇다. 당시에는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누군가는 내 귀가 시간을 생각하며 기다렸고,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골랐다. 내가 무심히 지나친 순간에도 가족은 나를 살피고 있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현관에 놓인 신발이 생각난다.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는 가족의 신발이 닳으면 굽을 살펴보곤 하셨다. 어느 날에는 수선을 맡겨 두었다며 찾아오라고 하셨고, 비가 온 다음 날에는 젖은 신발 안에 신문지가 들어 있었다. 그때는 그런 손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제 젖은 신발을 말리려고 신문지를 구겨 넣다 보면, 현관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등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지난 시간이 모두 따뜻했던 것은 아니다. 이해받지 못해 서러웠던 날도 있고, 지금 떠올려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말도 있다. 고마운 기억이 있다고 해서 아팠던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가족에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좋았던 일만 남겨 두려고도, 서운했던 일로 지난날 전부를 판단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두 기억 모두 내가 함께 살아온 시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에도 지켜야 할 거리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운다. 모든 생각을 털어놓아야만 친한 것은 아니며,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이 곧 가족을 밀어내는 뜻도 아니다. 방문이 닫혀 있으면 두드리고,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기다릴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가족의 고민을 당장 알아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상대가 스스로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곁에 있는 방법임을 안다.

우리는 때로 가족이 말하지 않은 바람까지 알아주기를 기대한다. 내 표정만 보고 피곤한 줄 알고, 한숨만 듣고 무엇이 서운한지 짐작해 주기를 바란다. 나도 그런 기대 때문에 혼자 실망한 적이 많다. 요즘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려 한다. 오늘은 지쳤으니 설거지를 맡아 달라거나, 잠시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보다 말로 전할 때 오해가 줄어든다.

고맙다는 말도 아끼지 않으려 한다. 늘 하는 일이라고 해서 수고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일 밥을 차리는 사람도, 매번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면 힘이 난다. 오래 함께 살다 보면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깨끗한 욕실과 개켜 놓은 빨래를 당연하게 여기기 쉽다. 그럴수록 잠깐 멈추어 누가 이 일을 했을지 생각해 보려 한다.

물론 고맙다는 말만으로 집안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말을 건넨 뒤에도 늘 같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부엌에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지칠 것이다. 나도 한동안 집안일을 하면서 도와준다는 표현을 썼다. 함께 사는 집인데도 다른 사람의 일을 거든다고 생각했던 셈이다. 이제는 무엇을 할지 묻기 전에 쌓인 그릇과 가득 찬 휴지통을 살펴본다.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이려 한다.

가족이 달라지는 모습을 받아들이는 일도 쉽지 않다. 아이는 자라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고, 부모는 나이가 들며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한다. 씩씩하던 사람이 작은 일을 걱정하고, 내 의견을 따르던 사람이 다른 길을 고른다. 나는 가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을 입에 올리려다 멈춘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지금 마음까지 모두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느려진 걸음을 따라 걷다가 마음이 급해진 적이 있다. 조금만 서두르면 신호를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곁을 돌아보니 부모는 발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나는 신호등을 보고 있었지만 부모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며 옷깃을 여며 드렸다. 오래전 내 짧은 보폭에 맞추어 걸어 주었을 시간을 생각하니 서두르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 걱정도 없고 누구도 아프지 않으며 모든 관계가 평온한 날을 기다린다면, 행복하다고 느낄 날은 많지 않을 것이다. 걱정이 있는 저녁에도 따뜻한 국을 나누어 먹을 수 있고, 서운한 마음이 남아 있어도 상대의 젖은 옷을 널어 줄 수 있다. 나는 그런 행동을 보며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곤 했다.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 있더라도 서로를 보살피려는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우리 집이 얼마나 행복한지 판단하기보다 가족의 하루를 살피려 한다. 누가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지, 누가 말을 줄였는지, 누가 자꾸 혼자 일을 마무리하는지 돌아본다. 언제나 제때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한참 뒤에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래도 늦었다는 이유로 묻지 않고 지나가지는 않으려 한다. 지난번에는 네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면, 멈췄던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톨스토이의 문장을 다시 읽으며 행복한 가정들의 닮은 모습을 생각한다. 사는 형편도 가족의 수도 다르겠지만, 그 집에서는 누군가의 수고가 오래 외면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 사람의 말수가 줄면 다른 사람이 이유를 묻고,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면 무엇이 서운했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일들을 거듭하며 가족은 힘든 날에도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닐까.

오늘 저녁에도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도 있고,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를 안고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우선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얼굴을 보며 하루가 어땠는지 물으려 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서둘러 대답을 준비하지 않고 끝까지 듣고 싶다. 식탁에 마주 앉으면 몸만 아니라 마음도 그 사람 쪽으로 돌리고 싶다. 그날 들려주지 못한 말이 있다면, 밥을 다 먹은 뒤에도 조금 더 앉아 있으려 한다.서로를 향해 돌아앉는 일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행복보다 불행이라는 말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행복한 집은 비슷하고 불행한 집은 다르다니, 사람 사는 모습을 그렇게 나눌 수 있을까 싶었다. 어느 집에나 말 못 할 사정 하나쯤은 있고, 웃음이 잦은 집에도 눈물을 삼키는 밤은 있을 터였다. 그때의 나는 이 문장의 뜻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채 기억해 두었다. 살다 보면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문장을 떠올린 것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닦던 날이었다. 한 사람은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다른 사람은 물컵을 씻었다. 나는 식탁을 닦다가 바닥에 떨어진 밥알을 주웠다. 별다른 대화도 없었다. 누구도 일을 나누어 시키지 않았지만, 각자 눈에 보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행복한 가정이 서로 닮았다는 말은 이런 작은 배려를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가정이 닮았다는 것은 같은 크기의 집에 살거나 비슷한 음식을 먹는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침마다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집도 있고, 말없이 현관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 주는 집도 있다.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도 상대가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닮아 있다. 늦게 돌아올 사람의 밥을 남겨 두고, 지쳐 누운 사람 곁에서는 텔레비전 소리를 낮추는 일. 그런 행동에서 우리는 자신이 보살핌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

어린 시절에는 집이 저절로 따뜻해지는 줄 알았다. 겨울이면 방바닥에 온기가 돌고, 저녁이면 부엌에서 밥 냄새가 났다. 옷장에는 빨아 놓은 옷이 있었고, 감기에 걸리면 머리맡에 물 한 잔이 놓였다. 나는 그것들을 해가 뜨고 지는 일처럼 당연하게 여겼다. 누군가 먼저 일어나 쌀을 씻고, 찬물에 손을 담그고, 한밤중에도 잠을 깨 내 이마를 짚어 보았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헤아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밥을 먹을 때면 늘 비슷한 질문을 하셨다. 싱겁지는 않으냐, 더 먹겠느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 나는 그 물음들이 때로 귀찮았다. 배가 부르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학교 이야기를 물으면 별일 없었다는 말로 끝내곤 했다. 이제 생각하면 어머니는 반찬의 간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만 궁금하셨던 것이 아니다. 내가 하루를 잘 보냈는지, 혹시 혼자 속상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고 싶으셨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비슷한 말을 건넨다. 밥은 먹었는지, 춥지는 않은지, 오늘은 늦는지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이 짧으면 서운하다가도 어린 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을 어느새 내가 하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못했던 어머니처럼 나도 밥과 날씨를 빌려 안부를 묻는다. 그 물음에 담긴 마음을 상대가 알아주면 좋겠지만, 알아주기를 재촉하지는 않으려 한다.

물론 걱정하는 마음으로 건넨 말이 언제나 따뜻하게 들리는 것은 아니다. 늦게 들어오는 까닭을 물었다가 간섭한다는 대답을 듣기도 하고, 도와주려던 행동으로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한다. 오래 함께 살았으니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믿음 때문에 잘못 짚는 일도 생긴다. 예전에 좋아하던 음식이 이제는 입에 맞지 않을 수 있고, 평소에는 웃어넘기던 농담이 유난히 아픈 날도 있다.

나 역시 가족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대답한 적이 많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안다고 생각했다. 피곤하다는 말에는 일찍 자라고 했고, 걱정된다는 말에는 별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 뒤 상대가 입을 다물면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성급하게 해결책을 말하느라, 상대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를 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가족 한 사람이 그저 들어 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하려던 대답을 멈추었다. 상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방법을 찾았지만, 정작 그가 바라는 도움은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대답이 떠올라도 조금 더 기다리려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묻고 상대가 말을 이을 때까지 기다려 본다. 여전히 듣는 도중에 내 경험을 꺼내거나 충고부터 할 때가 있다. 그러다 상대의 표정이 달라지면 말을 멈춘다. 잘 듣는 일도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참는 연습이 필요했다.

나는 가족이 내 화를 받아 줄 것이라 믿고, 밖에서 참았던 짜증까지 집에서 쏟아 내곤 했다. 회사에서 받은 서운함을 식탁까지 가져왔고, 길에서 겪은 불쾌함 때문에 현관에서부터 날카롭게 대답했다. 가족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그 말들을 받아야 했다. 오래 곁에 있어 줄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정작 그 사람에게는 말을 가장 적게 골라 하고 있었다.

한번은 치워지지 않은 물건 하나 때문에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에는 물건을 제자리에 놓아 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곧 지난주와 지난달의 일이 따라 나왔다. 늘 그렇다는 말이 나왔고, 내 말을 한 번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말까지 보탰다. 상대도 그동안 참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눈앞의 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오래 묵은 서운함으로 서로를 몰아붙였다.

말다툼이 끝난 뒤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목이 말랐지만 거실에서 마주칠까 봐 물을 가지러 나가는 일조차 망설였다. 조금 전까지 함께 밥을 먹던 식탁이 낯설게 보였다. 방바닥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날 밤 나는 집에서 편히 쉬지 못했다.

사과는 다음 날 아침에야 했다. 어제는 내가 심하게 말했다고, 그 물건 때문에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상대는 곧바로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사과했으니 이제 풀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말을 꺼낼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듯, 상대에게도 내 사과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우리는 그날 저녁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기억하는 장면이 달랐고 서운했던 대목도 달랐다. 나는 내 말이 무시당했다고 느꼈지만, 상대는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데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서운함이 그날 한꺼번에 풀리지는 않았다. 다만 각자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전보다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말할지도 함께 생각해 보았다.

행복한 가정에도 이런 밤은 있을 것이다. 방문을 닫고 돌아서는 날도 있고, 같은 식탁에서 말없이 밥만 먹는 저녁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누군가 먼저 문을 두드리거나 아까는 미안했다고 말을 건넬 것이다. 잘라 놓은 과일 한 접시를 조심스럽게 내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일을 받았다고 서운함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할 계기는 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불행한 가정이 저마다 다르다는 말도 무겁게 다가온다. 어떤 집에는 생활의 어려움이 오래 머물고, 어떤 집에는 질병이 찾아온다. 누군가는 돌봄을 혼자 감당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낸다. 밖에서 보기에는 모두 말수가 적고 웃음이 줄어든 집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침묵이 시작된 사정과 그 안에서 견디는 어려움은 집집마다 다르다.

그래서 힘든 가정을 두고 마음가짐만 바꾸면 된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병원비를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위로와 함께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이 필요할 수 있다. 밤낮으로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에게는 대신 곁을 지켜 줄 사람이 절실하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너무 지쳐 다정하게 말할 여유를 잃는 날이 있다. 그런 사정을 헤아리지 않은 채 사랑이 부족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때 나는 다른 집의 모습을 쉽게 부러워했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이는 집, 주말마다 여행을 가는 집, 생일마다 꽃다발을 주고받는 집이 좋아 보였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찾아내는 데에는 익숙했지만, 우리가 함께 누리고 있는 일은 자주 잊었다. 사진 속 가족들이 환하게 웃고 있으면 그 집에는 늘 웃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진 밖에서 그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는 알지 못하면서.

우리 가족의 나들이는 종종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기도 했고, 식당 앞에서 오래 기다리다가 서로 말수가 줄기도 했다. 모처럼 나왔는데 왜 이러느냐는 말이 나오면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떠오르는 것은 엉뚱하게 들어선 골목의 빵집이나 차 안에서 나누어 먹던 귤이다. 당시에는 망쳤다고 여긴 하루에도 함께 웃었던 순간이 남아 있었다.

가족을 떠올릴 때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도 대개 작은 일들이다. 비가 오던 날 정류장으로 가져온 우산, 늦게 돌아왔을 때 냄비에 남겨 둔 국, 중요한 일을 앞둔 아침에 건넨 짧은 응원이 그렇다. 당시에는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누군가는 내 귀가 시간을 생각하며 기다렸고,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골랐다. 내가 무심히 지나친 순간에도 가족은 나를 살피고 있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현관에 놓인 신발이 생각난다.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는 가족의 신발이 닳으면 굽을 살펴보곤 하셨다. 어느 날에는 수선을 맡겨 두었다며 찾아오라고 하셨고, 비가 온 다음 날에는 젖은 신발 안에 신문지가 들어 있었다. 그때는 그런 손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제 젖은 신발을 말리려고 신문지를 구겨 넣다 보면, 현관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등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지난 시간이 모두 따뜻했던 것은 아니다. 이해받지 못해 서러웠던 날도 있고, 지금 떠올려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말도 있다. 고마운 기억이 있다고 해서 아팠던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가족에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좋았던 일만 남겨 두려고도, 서운했던 일로 지난날 전부를 판단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두 기억 모두 내가 함께 살아온 시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에도 지켜야 할 거리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운다. 모든 생각을 털어놓아야만 친한 것은 아니며,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이 곧 가족을 밀어내는 뜻도 아니다. 방문이 닫혀 있으면 두드리고,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기다릴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가족의 고민을 당장 알아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상대가 스스로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곁에 있는 방법임을 안다.

우리는 때로 가족이 말하지 않은 바람까지 알아주기를 기대한다. 내 표정만 보고 피곤한 줄 알고, 한숨만 듣고 무엇이 서운한지 짐작해 주기를 바란다. 나도 그런 기대 때문에 혼자 실망한 적이 많다. 요즘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려 한다. 오늘은 지쳤으니 설거지를 맡아 달라거나, 잠시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보다 말로 전할 때 오해가 줄어든다.

고맙다는 말도 아끼지 않으려 한다. 늘 하는 일이라고 해서 수고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일 밥을 차리는 사람도, 매번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면 힘이 난다. 오래 함께 살다 보면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깨끗한 욕실과 개켜 놓은 빨래를 당연하게 여기기 쉽다. 그럴수록 잠깐 멈추어 누가 이 일을 했을지 생각해 보려 한다.

물론 고맙다는 말만으로 집안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말을 건넨 뒤에도 늘 같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부엌에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지칠 것이다. 나도 한동안 집안일을 하면서 도와준다는 표현을 썼다. 함께 사는 집인데도 다른 사람의 일을 거든다고 생각했던 셈이다. 이제는 무엇을 할지 묻기 전에 쌓인 그릇과 가득 찬 휴지통을 살펴본다.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이려 한다.

가족이 달라지는 모습을 받아들이는 일도 쉽지 않다. 아이는 자라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고, 부모는 나이가 들며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한다. 씩씩하던 사람이 작은 일을 걱정하고, 내 의견을 따르던 사람이 다른 길을 고른다. 나는 가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을 입에 올리려다 멈춘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지금 마음까지 모두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느려진 걸음을 따라 걷다가 마음이 급해진 적이 있다. 조금만 서두르면 신호를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곁을 돌아보니 부모는 발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나는 신호등을 보고 있었지만 부모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며 옷깃을 여며 드렸다. 오래전 내 짧은 보폭에 맞추어 걸어 주었을 시간을 생각하니 서두르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 걱정도 없고 누구도 아프지 않으며 모든 관계가 평온한 날을 기다린다면, 행복하다고 느낄 날은 많지 않을 것이다. 걱정이 있는 저녁에도 따뜻한 국을 나누어 먹을 수 있고, 서운한 마음이 남아 있어도 상대의 젖은 옷을 널어 줄 수 있다. 나는 그런 행동을 보며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곤 했다.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 있더라도 서로를 보살피려는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우리 집이 얼마나 행복한지 판단하기보다 가족의 하루를 살피려 한다. 누가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지, 누가 말을 줄였는지, 누가 자꾸 혼자 일을 마무리하는지 돌아본다. 언제나 제때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한참 뒤에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래도 늦었다는 이유로 묻지 않고 지나가지는 않으려 한다. 지난번에는 네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면, 멈췄던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톨스토이의 문장을 다시 읽으며 행복한 가정들의 닮은 모습을 생각한다. 사는 형편도 가족의 수도 다르겠지만, 그 집에서는 누군가의 수고가 오래 외면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 사람의 말수가 줄면 다른 사람이 이유를 묻고,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면 무엇이 서운했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일들을 거듭하며 가족은 힘든 날에도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닐까.

오늘 저녁에도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도 있고,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를 안고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우선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얼굴을 보며 하루가 어땠는지 물으려 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서둘러 대답을 준비하지 않고 끝까지 듣고 싶다. 식탁에 마주 앉으면 몸만 아니라 마음도 그 사람 쪽으로 돌리고 싶다. 그날 들려주지 못한 말이 있다면, 밥을 다 먹은 뒤에도 조금 더 앉아 있으려 한다.서로를 향해 돌아앉는 일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행복보다 불행이라는 말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행복한 집은 비슷하고 불행한 집은 다르다니, 사람 사는 모습을 그렇게 나눌 수 있을까 싶었다. 어느 집에나 말 못 할 사정 하나쯤은 있고, 웃음이 잦은 집에도 눈물을 삼키는 밤은 있을 터였다. 그때의 나는 이 문장의 뜻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채 기억해 두었다. 살다 보면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문장을 떠올린 것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닦던 날이었다. 한 사람은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다른 사람은 물컵을 씻었다. 나는 식탁을 닦다가 바닥에 떨어진 밥알을 주웠다. 별다른 대화도 없었다. 누구도 일을 나누어 시키지 않았지만, 각자 눈에 보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행복한 가정이 서로 닮았다는 말은 이런 작은 배려를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가정이 닮았다는 것은 같은 크기의 집에 살거나 비슷한 음식을 먹는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침마다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집도 있고, 말없이 현관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 주는 집도 있다.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도 상대가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닮아 있다. 늦게 돌아올 사람의 밥을 남겨 두고, 지쳐 누운 사람 곁에서는 텔레비전 소리를 낮추는 일. 그런 행동에서 우리는 자신이 보살핌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

어린 시절에는 집이 저절로 따뜻해지는 줄 알았다. 겨울이면 방바닥에 온기가 돌고, 저녁이면 부엌에서 밥 냄새가 났다. 옷장에는 빨아 놓은 옷이 있었고, 감기에 걸리면 머리맡에 물 한 잔이 놓였다. 나는 그것들을 해가 뜨고 지는 일처럼 당연하게 여겼다. 누군가 먼저 일어나 쌀을 씻고, 찬물에 손을 담그고, 한밤중에도 잠을 깨 내 이마를 짚어 보았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헤아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밥을 먹을 때면 늘 비슷한 질문을 하셨다. 싱겁지는 않으냐, 더 먹겠느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 나는 그 물음들이 때로 귀찮았다. 배가 부르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학교 이야기를 물으면 별일 없었다는 말로 끝내곤 했다. 이제 생각하면 어머니는 반찬의 간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만 궁금하셨던 것이 아니다. 내가 하루를 잘 보냈는지, 혹시 혼자 속상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고 싶으셨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비슷한 말을 건넨다. 밥은 먹었는지, 춥지는 않은지, 오늘은 늦는지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이 짧으면 서운하다가도 어린 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을 어느새 내가 하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못했던 어머니처럼 나도 밥과 날씨를 빌려 안부를 묻는다. 그 물음에 담긴 마음을 상대가 알아주면 좋겠지만, 알아주기를 재촉하지는 않으려 한다.

물론 걱정하는 마음으로 건넨 말이 언제나 따뜻하게 들리는 것은 아니다. 늦게 들어오는 까닭을 물었다가 간섭한다는 대답을 듣기도 하고, 도와주려던 행동으로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한다. 오래 함께 살았으니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믿음 때문에 잘못 짚는 일도 생긴다. 예전에 좋아하던 음식이 이제는 입에 맞지 않을 수 있고, 평소에는 웃어넘기던 농담이 유난히 아픈 날도 있다.

나 역시 가족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대답한 적이 많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안다고 생각했다. 피곤하다는 말에는 일찍 자라고 했고, 걱정된다는 말에는 별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 뒤 상대가 입을 다물면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성급하게 해결책을 말하느라, 상대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를 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가족 한 사람이 그저 들어 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하려던 대답을 멈추었다. 상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방법을 찾았지만, 정작 그가 바라는 도움은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대답이 떠올라도 조금 더 기다리려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묻고 상대가 말을 이을 때까지 기다려 본다. 여전히 듣는 도중에 내 경험을 꺼내거나 충고부터 할 때가 있다. 그러다 상대의 표정이 달라지면 말을 멈춘다. 잘 듣는 일도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참는 연습이 필요했다.

나는 가족이 내 화를 받아 줄 것이라 믿고, 밖에서 참았던 짜증까지 집에서 쏟아 내곤 했다. 회사에서 받은 서운함을 식탁까지 가져왔고, 길에서 겪은 불쾌함 때문에 현관에서부터 날카롭게 대답했다. 가족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그 말들을 받아야 했다. 오래 곁에 있어 줄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정작 그 사람에게는 말을 가장 적게 골라 하고 있었다.

한번은 치워지지 않은 물건 하나 때문에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에는 물건을 제자리에 놓아 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곧 지난주와 지난달의 일이 따라 나왔다. 늘 그렇다는 말이 나왔고, 내 말을 한 번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말까지 보탰다. 상대도 그동안 참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눈앞의 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오래 묵은 서운함으로 서로를 몰아붙였다.

말다툼이 끝난 뒤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목이 말랐지만 거실에서 마주칠까 봐 물을 가지러 나가는 일조차 망설였다. 조금 전까지 함께 밥을 먹던 식탁이 낯설게 보였다. 방바닥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날 밤 나는 집에서 편히 쉬지 못했다.

사과는 다음 날 아침에야 했다. 어제는 내가 심하게 말했다고, 그 물건 때문에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상대는 곧바로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사과했으니 이제 풀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말을 꺼낼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듯, 상대에게도 내 사과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우리는 그날 저녁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기억하는 장면이 달랐고 서운했던 대목도 달랐다. 나는 내 말이 무시당했다고 느꼈지만, 상대는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데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서운함이 그날 한꺼번에 풀리지는 않았다. 다만 각자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전보다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말할지도 함께 생각해 보았다.

행복한 가정에도 이런 밤은 있을 것이다. 방문을 닫고 돌아서는 날도 있고, 같은 식탁에서 말없이 밥만 먹는 저녁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누군가 먼저 문을 두드리거나 아까는 미안했다고 말을 건넬 것이다. 잘라 놓은 과일 한 접시를 조심스럽게 내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일을 받았다고 서운함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할 계기는 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불행한 가정이 저마다 다르다는 말도 무겁게 다가온다. 어떤 집에는 생활의 어려움이 오래 머물고, 어떤 집에는 질병이 찾아온다. 누군가는 돌봄을 혼자 감당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낸다. 밖에서 보기에는 모두 말수가 적고 웃음이 줄어든 집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침묵이 시작된 사정과 그 안에서 견디는 어려움은 집집마다 다르다.

그래서 힘든 가정을 두고 마음가짐만 바꾸면 된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병원비를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위로와 함께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이 필요할 수 있다. 밤낮으로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에게는 대신 곁을 지켜 줄 사람이 절실하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너무 지쳐 다정하게 말할 여유를 잃는 날이 있다. 그런 사정을 헤아리지 않은 채 사랑이 부족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때 나는 다른 집의 모습을 쉽게 부러워했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이는 집, 주말마다 여행을 가는 집, 생일마다 꽃다발을 주고받는 집이 좋아 보였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찾아내는 데에는 익숙했지만, 우리가 함께 누리고 있는 일은 자주 잊었다. 사진 속 가족들이 환하게 웃고 있으면 그 집에는 늘 웃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진 밖에서 그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는 알지 못하면서.

우리 가족의 나들이는 종종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기도 했고, 식당 앞에서 오래 기다리다가 서로 말수가 줄기도 했다. 모처럼 나왔는데 왜 이러느냐는 말이 나오면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떠오르는 것은 엉뚱하게 들어선 골목의 빵집이나 차 안에서 나누어 먹던 귤이다. 당시에는 망쳤다고 여긴 하루에도 함께 웃었던 순간이 남아 있었다.

가족을 떠올릴 때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도 대개 작은 일들이다. 비가 오던 날 정류장으로 가져온 우산, 늦게 돌아왔을 때 냄비에 남겨 둔 국, 중요한 일을 앞둔 아침에 건넨 짧은 응원이 그렇다. 당시에는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누군가는 내 귀가 시간을 생각하며 기다렸고,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골랐다. 내가 무심히 지나친 순간에도 가족은 나를 살피고 있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현관에 놓인 신발이 생각난다.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는 가족의 신발이 닳으면 굽을 살펴보곤 하셨다. 어느 날에는 수선을 맡겨 두었다며 찾아오라고 하셨고, 비가 온 다음 날에는 젖은 신발 안에 신문지가 들어 있었다. 그때는 그런 손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제 젖은 신발을 말리려고 신문지를 구겨 넣다 보면, 현관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등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지난 시간이 모두 따뜻했던 것은 아니다. 이해받지 못해 서러웠던 날도 있고, 지금 떠올려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말도 있다. 고마운 기억이 있다고 해서 아팠던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가족에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좋았던 일만 남겨 두려고도, 서운했던 일로 지난날 전부를 판단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두 기억 모두 내가 함께 살아온 시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에도 지켜야 할 거리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운다. 모든 생각을 털어놓아야만 친한 것은 아니며,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이 곧 가족을 밀어내는 뜻도 아니다. 방문이 닫혀 있으면 두드리고,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기다릴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가족의 고민을 당장 알아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상대가 스스로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곁에 있는 방법임을 안다.

우리는 때로 가족이 말하지 않은 바람까지 알아주기를 기대한다. 내 표정만 보고 피곤한 줄 알고, 한숨만 듣고 무엇이 서운한지 짐작해 주기를 바란다. 나도 그런 기대 때문에 혼자 실망한 적이 많다. 요즘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려 한다. 오늘은 지쳤으니 설거지를 맡아 달라거나, 잠시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보다 말로 전할 때 오해가 줄어든다.

고맙다는 말도 아끼지 않으려 한다. 늘 하는 일이라고 해서 수고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일 밥을 차리는 사람도, 매번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면 힘이 난다. 오래 함께 살다 보면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깨끗한 욕실과 개켜 놓은 빨래를 당연하게 여기기 쉽다. 그럴수록 잠깐 멈추어 누가 이 일을 했을지 생각해 보려 한다.

물론 고맙다는 말만으로 집안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말을 건넨 뒤에도 늘 같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부엌에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지칠 것이다. 나도 한동안 집안일을 하면서 도와준다는 표현을 썼다. 함께 사는 집인데도 다른 사람의 일을 거든다고 생각했던 셈이다. 이제는 무엇을 할지 묻기 전에 쌓인 그릇과 가득 찬 휴지통을 살펴본다.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이려 한다.

가족이 달라지는 모습을 받아들이는 일도 쉽지 않다. 아이는 자라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고, 부모는 나이가 들며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한다. 씩씩하던 사람이 작은 일을 걱정하고, 내 의견을 따르던 사람이 다른 길을 고른다. 나는 가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을 입에 올리려다 멈춘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지금 마음까지 모두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느려진 걸음을 따라 걷다가 마음이 급해진 적이 있다. 조금만 서두르면 신호를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곁을 돌아보니 부모는 발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나는 신호등을 보고 있었지만 부모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며 옷깃을 여며 드렸다. 오래전 내 짧은 보폭에 맞추어 걸어 주었을 시간을 생각하니 서두르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 걱정도 없고 누구도 아프지 않으며 모든 관계가 평온한 날을 기다린다면, 행복하다고 느낄 날은 많지 않을 것이다. 걱정이 있는 저녁에도 따뜻한 국을 나누어 먹을 수 있고, 서운한 마음이 남아 있어도 상대의 젖은 옷을 널어 줄 수 있다. 나는 그런 행동을 보며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곤 했다.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 있더라도 서로를 보살피려는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우리 집이 얼마나 행복한지 판단하기보다 가족의 하루를 살피려 한다. 누가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지, 누가 말을 줄였는지, 누가 자꾸 혼자 일을 마무리하는지 돌아본다. 언제나 제때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한참 뒤에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래도 늦었다는 이유로 묻지 않고 지나가지는 않으려 한다. 지난번에는 네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면, 멈췄던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톨스토이의 문장을 다시 읽으며 행복한 가정들의 닮은 모습을 생각한다. 사는 형편도 가족의 수도 다르겠지만, 그 집에서는 누군가의 수고가 오래 외면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 사람의 말수가 줄면 다른 사람이 이유를 묻고,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면 무엇이 서운했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일들을 거듭하며 가족은 힘든 날에도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닐까.

오늘 저녁에도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도 있고,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를 안고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우선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얼굴을 보며 하루가 어땠는지 물으려 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서둘러 대답을 준비하지 않고 끝까지 듣고 싶다. 식탁에 마주 앉으면 몸만 아니라 마음도 그 사람 쪽으로 돌리고 싶다. 그날 들려주지 못한 말이 있다면, 밥을 다 먹은 뒤에도 조금 더 앉아 있으려 한다.서로를 향해 돌아앉는 일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행복보다 불행이라는 말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행복한 집은 비슷하고 불행한 집은 다르다니, 사람 사는 모습을 그렇게 나눌 수 있을까 싶었다. 어느 집에나 말 못 할 사정 하나쯤은 있고, 웃음이 잦은 집에도 눈물을 삼키는 밤은 있을 터였다. 그때의 나는 이 문장의 뜻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채 기억해 두었다. 살다 보면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문장을 떠올린 것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닦던 날이었다. 한 사람은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다른 사람은 물컵을 씻었다. 나는 식탁을 닦다가 바닥에 떨어진 밥알을 주웠다. 별다른 대화도 없었다. 누구도 일을 나누어 시키지 않았지만, 각자 눈에 보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행복한 가정이 서로 닮았다는 말은 이런 작은 배려를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가정이 닮았다는 것은 같은 크기의 집에 살거나 비슷한 음식을 먹는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침마다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집도 있고, 말없이 현관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 주는 집도 있다.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도 상대가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닮아 있다. 늦게 돌아올 사람의 밥을 남겨 두고, 지쳐 누운 사람 곁에서는 텔레비전 소리를 낮추는 일. 그런 행동에서 우리는 자신이 보살핌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

어린 시절에는 집이 저절로 따뜻해지는 줄 알았다. 겨울이면 방바닥에 온기가 돌고, 저녁이면 부엌에서 밥 냄새가 났다. 옷장에는 빨아 놓은 옷이 있었고, 감기에 걸리면 머리맡에 물 한 잔이 놓였다. 나는 그것들을 해가 뜨고 지는 일처럼 당연하게 여겼다. 누군가 먼저 일어나 쌀을 씻고, 찬물에 손을 담그고, 한밤중에도 잠을 깨 내 이마를 짚어 보았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헤아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밥을 먹을 때면 늘 비슷한 질문을 하셨다. 싱겁지는 않으냐, 더 먹겠느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 나는 그 물음들이 때로 귀찮았다. 배가 부르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학교 이야기를 물으면 별일 없었다는 말로 끝내곤 했다. 이제 생각하면 어머니는 반찬의 간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만 궁금하셨던 것이 아니다. 내가 하루를 잘 보냈는지, 혹시 혼자 속상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고 싶으셨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비슷한 말을 건넨다. 밥은 먹었는지, 춥지는 않은지, 오늘은 늦는지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이 짧으면 서운하다가도 어린 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을 어느새 내가 하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못했던 어머니처럼 나도 밥과 날씨를 빌려 안부를 묻는다. 그 물음에 담긴 마음을 상대가 알아주면 좋겠지만, 알아주기를 재촉하지는 않으려 한다.

물론 걱정하는 마음으로 건넨 말이 언제나 따뜻하게 들리는 것은 아니다. 늦게 들어오는 까닭을 물었다가 간섭한다는 대답을 듣기도 하고, 도와주려던 행동으로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한다. 오래 함께 살았으니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믿음 때문에 잘못 짚는 일도 생긴다. 예전에 좋아하던 음식이 이제는 입에 맞지 않을 수 있고, 평소에는 웃어넘기던 농담이 유난히 아픈 날도 있다.

나 역시 가족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대답한 적이 많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안다고 생각했다. 피곤하다는 말에는 일찍 자라고 했고, 걱정된다는 말에는 별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 뒤 상대가 입을 다물면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성급하게 해결책을 말하느라, 상대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를 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가족 한 사람이 그저 들어 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하려던 대답을 멈추었다. 상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방법을 찾았지만, 정작 그가 바라는 도움은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대답이 떠올라도 조금 더 기다리려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묻고 상대가 말을 이을 때까지 기다려 본다. 여전히 듣는 도중에 내 경험을 꺼내거나 충고부터 할 때가 있다. 그러다 상대의 표정이 달라지면 말을 멈춘다. 잘 듣는 일도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참는 연습이 필요했다.

나는 가족이 내 화를 받아 줄 것이라 믿고, 밖에서 참았던 짜증까지 집에서 쏟아 내곤 했다. 회사에서 받은 서운함을 식탁까지 가져왔고, 길에서 겪은 불쾌함 때문에 현관에서부터 날카롭게 대답했다. 가족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그 말들을 받아야 했다. 오래 곁에 있어 줄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정작 그 사람에게는 말을 가장 적게 골라 하고 있었다.

한번은 치워지지 않은 물건 하나 때문에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에는 물건을 제자리에 놓아 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곧 지난주와 지난달의 일이 따라 나왔다. 늘 그렇다는 말이 나왔고, 내 말을 한 번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말까지 보탰다. 상대도 그동안 참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눈앞의 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오래 묵은 서운함으로 서로를 몰아붙였다.

말다툼이 끝난 뒤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목이 말랐지만 거실에서 마주칠까 봐 물을 가지러 나가는 일조차 망설였다. 조금 전까지 함께 밥을 먹던 식탁이 낯설게 보였다. 방바닥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날 밤 나는 집에서 편히 쉬지 못했다.

사과는 다음 날 아침에야 했다. 어제는 내가 심하게 말했다고, 그 물건 때문에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상대는 곧바로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사과했으니 이제 풀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말을 꺼낼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듯, 상대에게도 내 사과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우리는 그날 저녁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기억하는 장면이 달랐고 서운했던 대목도 달랐다. 나는 내 말이 무시당했다고 느꼈지만, 상대는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데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서운함이 그날 한꺼번에 풀리지는 않았다. 다만 각자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전보다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말할지도 함께 생각해 보았다.

행복한 가정에도 이런 밤은 있을 것이다. 방문을 닫고 돌아서는 날도 있고, 같은 식탁에서 말없이 밥만 먹는 저녁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누군가 먼저 문을 두드리거나 아까는 미안했다고 말을 건넬 것이다. 잘라 놓은 과일 한 접시를 조심스럽게 내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일을 받았다고 서운함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할 계기는 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불행한 가정이 저마다 다르다는 말도 무겁게 다가온다. 어떤 집에는 생활의 어려움이 오래 머물고, 어떤 집에는 질병이 찾아온다. 누군가는 돌봄을 혼자 감당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낸다. 밖에서 보기에는 모두 말수가 적고 웃음이 줄어든 집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침묵이 시작된 사정과 그 안에서 견디는 어려움은 집집마다 다르다.

그래서 힘든 가정을 두고 마음가짐만 바꾸면 된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병원비를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위로와 함께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이 필요할 수 있다. 밤낮으로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에게는 대신 곁을 지켜 줄 사람이 절실하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너무 지쳐 다정하게 말할 여유를 잃는 날이 있다. 그런 사정을 헤아리지 않은 채 사랑이 부족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때 나는 다른 집의 모습을 쉽게 부러워했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이는 집, 주말마다 여행을 가는 집, 생일마다 꽃다발을 주고받는 집이 좋아 보였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찾아내는 데에는 익숙했지만, 우리가 함께 누리고 있는 일은 자주 잊었다. 사진 속 가족들이 환하게 웃고 있으면 그 집에는 늘 웃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진 밖에서 그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는 알지 못하면서.

우리 가족의 나들이는 종종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기도 했고, 식당 앞에서 오래 기다리다가 서로 말수가 줄기도 했다. 모처럼 나왔는데 왜 이러느냐는 말이 나오면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떠오르는 것은 엉뚱하게 들어선 골목의 빵집이나 차 안에서 나누어 먹던 귤이다. 당시에는 망쳤다고 여긴 하루에도 함께 웃었던 순간이 남아 있었다.

가족을 떠올릴 때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도 대개 작은 일들이다. 비가 오던 날 정류장으로 가져온 우산, 늦게 돌아왔을 때 냄비에 남겨 둔 국, 중요한 일을 앞둔 아침에 건넨 짧은 응원이 그렇다. 당시에는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누군가는 내 귀가 시간을 생각하며 기다렸고,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골랐다. 내가 무심히 지나친 순간에도 가족은 나를 살피고 있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현관에 놓인 신발이 생각난다.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는 가족의 신발이 닳으면 굽을 살펴보곤 하셨다. 어느 날에는 수선을 맡겨 두었다며 찾아오라고 하셨고, 비가 온 다음 날에는 젖은 신발 안에 신문지가 들어 있었다. 그때는 그런 손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제 젖은 신발을 말리려고 신문지를 구겨 넣다 보면, 현관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등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지난 시간이 모두 따뜻했던 것은 아니다. 이해받지 못해 서러웠던 날도 있고, 지금 떠올려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말도 있다. 고마운 기억이 있다고 해서 아팠던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가족에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좋았던 일만 남겨 두려고도, 서운했던 일로 지난날 전부를 판단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두 기억 모두 내가 함께 살아온 시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에도 지켜야 할 거리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운다. 모든 생각을 털어놓아야만 친한 것은 아니며,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이 곧 가족을 밀어내는 뜻도 아니다. 방문이 닫혀 있으면 두드리고,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기다릴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가족의 고민을 당장 알아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상대가 스스로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곁에 있는 방법임을 안다.

우리는 때로 가족이 말하지 않은 바람까지 알아주기를 기대한다. 내 표정만 보고 피곤한 줄 알고, 한숨만 듣고 무엇이 서운한지 짐작해 주기를 바란다. 나도 그런 기대 때문에 혼자 실망한 적이 많다. 요즘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려 한다. 오늘은 지쳤으니 설거지를 맡아 달라거나, 잠시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보다 말로 전할 때 오해가 줄어든다.

고맙다는 말도 아끼지 않으려 한다. 늘 하는 일이라고 해서 수고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일 밥을 차리는 사람도, 매번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면 힘이 난다. 오래 함께 살다 보면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깨끗한 욕실과 개켜 놓은 빨래를 당연하게 여기기 쉽다. 그럴수록 잠깐 멈추어 누가 이 일을 했을지 생각해 보려 한다.

물론 고맙다는 말만으로 집안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말을 건넨 뒤에도 늘 같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부엌에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지칠 것이다. 나도 한동안 집안일을 하면서 도와준다는 표현을 썼다. 함께 사는 집인데도 다른 사람의 일을 거든다고 생각했던 셈이다. 이제는 무엇을 할지 묻기 전에 쌓인 그릇과 가득 찬 휴지통을 살펴본다.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이려 한다.

가족이 달라지는 모습을 받아들이는 일도 쉽지 않다. 아이는 자라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고, 부모는 나이가 들며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한다. 씩씩하던 사람이 작은 일을 걱정하고, 내 의견을 따르던 사람이 다른 길을 고른다. 나는 가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을 입에 올리려다 멈춘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지금 마음까지 모두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느려진 걸음을 따라 걷다가 마음이 급해진 적이 있다. 조금만 서두르면 신호를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곁을 돌아보니 부모는 발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나는 신호등을 보고 있었지만 부모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며 옷깃을 여며 드렸다. 오래전 내 짧은 보폭에 맞추어 걸어 주었을 시간을 생각하니 서두르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 걱정도 없고 누구도 아프지 않으며 모든 관계가 평온한 날을 기다린다면, 행복하다고 느낄 날은 많지 않을 것이다. 걱정이 있는 저녁에도 따뜻한 국을 나누어 먹을 수 있고, 서운한 마음이 남아 있어도 상대의 젖은 옷을 널어 줄 수 있다. 나는 그런 행동을 보며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곤 했다.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 있더라도 서로를 보살피려는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우리 집이 얼마나 행복한지 판단하기보다 가족의 하루를 살피려 한다. 누가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지, 누가 말을 줄였는지, 누가 자꾸 혼자 일을 마무리하는지 돌아본다. 언제나 제때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한참 뒤에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래도 늦었다는 이유로 묻지 않고 지나가지는 않으려 한다. 지난번에는 네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면, 멈췄던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톨스토이의 문장을 다시 읽으며 행복한 가정들의 닮은 모습을 생각한다. 사는 형편도 가족의 수도 다르겠지만, 그 집에서는 누군가의 수고가 오래 외면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 사람의 말수가 줄면 다른 사람이 이유를 묻고,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면 무엇이 서운했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일들을 거듭하며 가족은 힘든 날에도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닐까.

오늘 저녁에도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도 있고,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를 안고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우선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얼굴을 보며 하루가 어땠는지 물으려 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서둘러 대답을 준비하지 않고 끝까지 듣고 싶다. 식탁에 마주 앉으면 몸만 아니라 마음도 그 사람 쪽으로 돌리고 싶다. 그날 들려주지 못한 말이 있다면, 밥을 다 먹은 뒤에도 조금 더 앉아 있으려 한다.서로를 향해 돌아앉는 일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행복보다 불행이라는 말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행복한 집은 비슷하고 불행한 집은 다르다니, 사람 사는 모습을 그렇게 나눌 수 있을까 싶었다. 어느 집에나 말 못 할 사정 하나쯤은 있고, 웃음이 잦은 집에도 눈물을 삼키는 밤은 있을 터였다. 그때의 나는 이 문장의 뜻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채 기억해 두었다. 살다 보면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문장을 떠올린 것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닦던 날이었다. 한 사람은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다른 사람은 물컵을 씻었다. 나는 식탁을 닦다가 바닥에 떨어진 밥알을 주웠다. 별다른 대화도 없었다. 누구도 일을 나누어 시키지 않았지만, 각자 눈에 보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행복한 가정이 서로 닮았다는 말은 이런 작은 배려를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가정이 닮았다는 것은 같은 크기의 집에 살거나 비슷한 음식을 먹는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침마다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집도 있고, 말없이 현관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 주는 집도 있다.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도 상대가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닮아 있다. 늦게 돌아올 사람의 밥을 남겨 두고, 지쳐 누운 사람 곁에서는 텔레비전 소리를 낮추는 일. 그런 행동에서 우리는 자신이 보살핌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

어린 시절에는 집이 저절로 따뜻해지는 줄 알았다. 겨울이면 방바닥에 온기가 돌고, 저녁이면 부엌에서 밥 냄새가 났다. 옷장에는 빨아 놓은 옷이 있었고, 감기에 걸리면 머리맡에 물 한 잔이 놓였다. 나는 그것들을 해가 뜨고 지는 일처럼 당연하게 여겼다. 누군가 먼저 일어나 쌀을 씻고, 찬물에 손을 담그고, 한밤중에도 잠을 깨 내 이마를 짚어 보았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헤아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밥을 먹을 때면 늘 비슷한 질문을 하셨다. 싱겁지는 않으냐, 더 먹겠느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 나는 그 물음들이 때로 귀찮았다. 배가 부르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학교 이야기를 물으면 별일 없었다는 말로 끝내곤 했다. 이제 생각하면 어머니는 반찬의 간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만 궁금하셨던 것이 아니다. 내가 하루를 잘 보냈는지, 혹시 혼자 속상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고 싶으셨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비슷한 말을 건넨다. 밥은 먹었는지, 춥지는 않은지, 오늘은 늦는지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이 짧으면 서운하다가도 어린 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을 어느새 내가 하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못했던 어머니처럼 나도 밥과 날씨를 빌려 안부를 묻는다. 그 물음에 담긴 마음을 상대가 알아주면 좋겠지만, 알아주기를 재촉하지는 않으려 한다.

물론 걱정하는 마음으로 건넨 말이 언제나 따뜻하게 들리는 것은 아니다. 늦게 들어오는 까닭을 물었다가 간섭한다는 대답을 듣기도 하고, 도와주려던 행동으로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한다. 오래 함께 살았으니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믿음 때문에 잘못 짚는 일도 생긴다. 예전에 좋아하던 음식이 이제는 입에 맞지 않을 수 있고, 평소에는 웃어넘기던 농담이 유난히 아픈 날도 있다.

나 역시 가족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대답한 적이 많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안다고 생각했다. 피곤하다는 말에는 일찍 자라고 했고, 걱정된다는 말에는 별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 뒤 상대가 입을 다물면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성급하게 해결책을 말하느라, 상대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를 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가족 한 사람이 그저 들어 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하려던 대답을 멈추었다. 상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방법을 찾았지만, 정작 그가 바라는 도움은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대답이 떠올라도 조금 더 기다리려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묻고 상대가 말을 이을 때까지 기다려 본다. 여전히 듣는 도중에 내 경험을 꺼내거나 충고부터 할 때가 있다. 그러다 상대의 표정이 달라지면 말을 멈춘다. 잘 듣는 일도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참는 연습이 필요했다.

나는 가족이 내 화를 받아 줄 것이라 믿고, 밖에서 참았던 짜증까지 집에서 쏟아 내곤 했다. 회사에서 받은 서운함을 식탁까지 가져왔고, 길에서 겪은 불쾌함 때문에 현관에서부터 날카롭게 대답했다. 가족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그 말들을 받아야 했다. 오래 곁에 있어 줄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정작 그 사람에게는 말을 가장 적게 골라 하고 있었다.

한번은 치워지지 않은 물건 하나 때문에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에는 물건을 제자리에 놓아 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곧 지난주와 지난달의 일이 따라 나왔다. 늘 그렇다는 말이 나왔고, 내 말을 한 번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말까지 보탰다. 상대도 그동안 참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눈앞의 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오래 묵은 서운함으로 서로를 몰아붙였다.

말다툼이 끝난 뒤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목이 말랐지만 거실에서 마주칠까 봐 물을 가지러 나가는 일조차 망설였다. 조금 전까지 함께 밥을 먹던 식탁이 낯설게 보였다. 방바닥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날 밤 나는 집에서 편히 쉬지 못했다.

사과는 다음 날 아침에야 했다. 어제는 내가 심하게 말했다고, 그 물건 때문에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상대는 곧바로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사과했으니 이제 풀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말을 꺼낼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듯, 상대에게도 내 사과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우리는 그날 저녁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기억하는 장면이 달랐고 서운했던 대목도 달랐다. 나는 내 말이 무시당했다고 느꼈지만, 상대는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데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서운함이 그날 한꺼번에 풀리지는 않았다. 다만 각자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전보다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말할지도 함께 생각해 보았다.

행복한 가정에도 이런 밤은 있을 것이다. 방문을 닫고 돌아서는 날도 있고, 같은 식탁에서 말없이 밥만 먹는 저녁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누군가 먼저 문을 두드리거나 아까는 미안했다고 말을 건넬 것이다. 잘라 놓은 과일 한 접시를 조심스럽게 내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일을 받았다고 서운함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할 계기는 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불행한 가정이 저마다 다르다는 말도 무겁게 다가온다. 어떤 집에는 생활의 어려움이 오래 머물고, 어떤 집에는 질병이 찾아온다. 누군가는 돌봄을 혼자 감당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낸다. 밖에서 보기에는 모두 말수가 적고 웃음이 줄어든 집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침묵이 시작된 사정과 그 안에서 견디는 어려움은 집집마다 다르다.

그래서 힘든 가정을 두고 마음가짐만 바꾸면 된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병원비를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위로와 함께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이 필요할 수 있다. 밤낮으로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에게는 대신 곁을 지켜 줄 사람이 절실하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너무 지쳐 다정하게 말할 여유를 잃는 날이 있다. 그런 사정을 헤아리지 않은 채 사랑이 부족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때 나는 다른 집의 모습을 쉽게 부러워했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이는 집, 주말마다 여행을 가는 집, 생일마다 꽃다발을 주고받는 집이 좋아 보였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찾아내는 데에는 익숙했지만, 우리가 함께 누리고 있는 일은 자주 잊었다. 사진 속 가족들이 환하게 웃고 있으면 그 집에는 늘 웃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진 밖에서 그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는 알지 못하면서.

우리 가족의 나들이는 종종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기도 했고, 식당 앞에서 오래 기다리다가 서로 말수가 줄기도 했다. 모처럼 나왔는데 왜 이러느냐는 말이 나오면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떠오르는 것은 엉뚱하게 들어선 골목의 빵집이나 차 안에서 나누어 먹던 귤이다. 당시에는 망쳤다고 여긴 하루에도 함께 웃었던 순간이 남아 있었다.

가족을 떠올릴 때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도 대개 작은 일들이다. 비가 오던 날 정류장으로 가져온 우산, 늦게 돌아왔을 때 냄비에 남겨 둔 국, 중요한 일을 앞둔 아침에 건넨 짧은 응원이 그렇다. 당시에는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누군가는 내 귀가 시간을 생각하며 기다렸고,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골랐다. 내가 무심히 지나친 순간에도 가족은 나를 살피고 있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현관에 놓인 신발이 생각난다.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는 가족의 신발이 닳으면 굽을 살펴보곤 하셨다. 어느 날에는 수선을 맡겨 두었다며 찾아오라고 하셨고, 비가 온 다음 날에는 젖은 신발 안에 신문지가 들어 있었다. 그때는 그런 손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제 젖은 신발을 말리려고 신문지를 구겨 넣다 보면, 현관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등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지난 시간이 모두 따뜻했던 것은 아니다. 이해받지 못해 서러웠던 날도 있고, 지금 떠올려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말도 있다. 고마운 기억이 있다고 해서 아팠던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가족에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좋았던 일만 남겨 두려고도, 서운했던 일로 지난날 전부를 판단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두 기억 모두 내가 함께 살아온 시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에도 지켜야 할 거리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운다. 모든 생각을 털어놓아야만 친한 것은 아니며,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이 곧 가족을 밀어내는 뜻도 아니다. 방문이 닫혀 있으면 두드리고,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기다릴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가족의 고민을 당장 알아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상대가 스스로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곁에 있는 방법임을 안다.

우리는 때로 가족이 말하지 않은 바람까지 알아주기를 기대한다. 내 표정만 보고 피곤한 줄 알고, 한숨만 듣고 무엇이 서운한지 짐작해 주기를 바란다. 나도 그런 기대 때문에 혼자 실망한 적이 많다. 요즘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려 한다. 오늘은 지쳤으니 설거지를 맡아 달라거나, 잠시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보다 말로 전할 때 오해가 줄어든다.

고맙다는 말도 아끼지 않으려 한다. 늘 하는 일이라고 해서 수고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일 밥을 차리는 사람도, 매번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면 힘이 난다. 오래 함께 살다 보면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깨끗한 욕실과 개켜 놓은 빨래를 당연하게 여기기 쉽다. 그럴수록 잠깐 멈추어 누가 이 일을 했을지 생각해 보려 한다.

물론 고맙다는 말만으로 집안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말을 건넨 뒤에도 늘 같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부엌에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지칠 것이다. 나도 한동안 집안일을 하면서 도와준다는 표현을 썼다. 함께 사는 집인데도 다른 사람의 일을 거든다고 생각했던 셈이다. 이제는 무엇을 할지 묻기 전에 쌓인 그릇과 가득 찬 휴지통을 살펴본다.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이려 한다.

가족이 달라지는 모습을 받아들이는 일도 쉽지 않다. 아이는 자라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고, 부모는 나이가 들며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한다. 씩씩하던 사람이 작은 일을 걱정하고, 내 의견을 따르던 사람이 다른 길을 고른다. 나는 가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을 입에 올리려다 멈춘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지금 마음까지 모두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느려진 걸음을 따라 걷다가 마음이 급해진 적이 있다. 조금만 서두르면 신호를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곁을 돌아보니 부모는 발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나는 신호등을 보고 있었지만 부모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며 옷깃을 여며 드렸다. 오래전 내 짧은 보폭에 맞추어 걸어 주었을 시간을 생각하니 서두르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 걱정도 없고 누구도 아프지 않으며 모든 관계가 평온한 날을 기다린다면, 행복하다고 느낄 날은 많지 않을 것이다. 걱정이 있는 저녁에도 따뜻한 국을 나누어 먹을 수 있고, 서운한 마음이 남아 있어도 상대의 젖은 옷을 널어 줄 수 있다. 나는 그런 행동을 보며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곤 했다.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 있더라도 서로를 보살피려는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우리 집이 얼마나 행복한지 판단하기보다 가족의 하루를 살피려 한다. 누가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지, 누가 말을 줄였는지, 누가 자꾸 혼자 일을 마무리하는지 돌아본다. 언제나 제때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한참 뒤에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래도 늦었다는 이유로 묻지 않고 지나가지는 않으려 한다. 지난번에는 네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면, 멈췄던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톨스토이의 문장을 다시 읽으며 행복한 가정들의 닮은 모습을 생각한다. 사는 형편도 가족의 수도 다르겠지만, 그 집에서는 누군가의 수고가 오래 외면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 사람의 말수가 줄면 다른 사람이 이유를 묻고,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면 무엇이 서운했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일들을 거듭하며 가족은 힘든 날에도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닐까.

오늘 저녁에도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도 있고,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를 안고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우선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얼굴을 보며 하루가 어땠는지 물으려 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서둘러 대답을 준비하지 않고 끝까지 듣고 싶다. 식탁에 마주 앉으면 몸만 아니라 마음도 그 사람 쪽으로 돌리고 싶다. 그날 들려주지 못한 말이 있다면, 밥을 다 먹은 뒤에도 조금 더 앉아 있으려 한다.서로를 향해 돌아앉는 일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행복보다 불행이라는 말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행복한 집은 비슷하고 불행한 집은 다르다니, 사람 사는 모습을 그렇게 나눌 수 있을까 싶었다. 어느 집에나 말 못 할 사정 하나쯤은 있고, 웃음이 잦은 집에도 눈물을 삼키는 밤은 있을 터였다. 그때의 나는 이 문장의 뜻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채 기억해 두었다. 살다 보면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문장을 떠올린 것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닦던 날이었다. 한 사람은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다른 사람은 물컵을 씻었다. 나는 식탁을 닦다가 바닥에 떨어진 밥알을 주웠다. 별다른 대화도 없었다. 누구도 일을 나누어 시키지 않았지만, 각자 눈에 보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행복한 가정이 서로 닮았다는 말은 이런 작은 배려를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가정이 닮았다는 것은 같은 크기의 집에 살거나 비슷한 음식을 먹는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침마다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집도 있고, 말없이 현관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 주는 집도 있다.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도 상대가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닮아 있다. 늦게 돌아올 사람의 밥을 남겨 두고, 지쳐 누운 사람 곁에서는 텔레비전 소리를 낮추는 일. 그런 행동에서 우리는 자신이 보살핌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

어린 시절에는 집이 저절로 따뜻해지는 줄 알았다. 겨울이면 방바닥에 온기가 돌고, 저녁이면 부엌에서 밥 냄새가 났다. 옷장에는 빨아 놓은 옷이 있었고, 감기에 걸리면 머리맡에 물 한 잔이 놓였다. 나는 그것들을 해가 뜨고 지는 일처럼 당연하게 여겼다. 누군가 먼저 일어나 쌀을 씻고, 찬물에 손을 담그고, 한밤중에도 잠을 깨 내 이마를 짚어 보았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헤아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밥을 먹을 때면 늘 비슷한 질문을 하셨다. 싱겁지는 않으냐, 더 먹겠느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 나는 그 물음들이 때로 귀찮았다. 배가 부르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학교 이야기를 물으면 별일 없었다는 말로 끝내곤 했다. 이제 생각하면 어머니는 반찬의 간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만 궁금하셨던 것이 아니다. 내가 하루를 잘 보냈는지, 혹시 혼자 속상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고 싶으셨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비슷한 말을 건넨다. 밥은 먹었는지, 춥지는 않은지, 오늘은 늦는지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이 짧으면 서운하다가도 어린 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을 어느새 내가 하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못했던 어머니처럼 나도 밥과 날씨를 빌려 안부를 묻는다. 그 물음에 담긴 마음을 상대가 알아주면 좋겠지만, 알아주기를 재촉하지는 않으려 한다.

물론 걱정하는 마음으로 건넨 말이 언제나 따뜻하게 들리는 것은 아니다. 늦게 들어오는 까닭을 물었다가 간섭한다는 대답을 듣기도 하고, 도와주려던 행동으로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한다. 오래 함께 살았으니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믿음 때문에 잘못 짚는 일도 생긴다. 예전에 좋아하던 음식이 이제는 입에 맞지 않을 수 있고, 평소에는 웃어넘기던 농담이 유난히 아픈 날도 있다.

나 역시 가족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대답한 적이 많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안다고 생각했다. 피곤하다는 말에는 일찍 자라고 했고, 걱정된다는 말에는 별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 뒤 상대가 입을 다물면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성급하게 해결책을 말하느라, 상대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를 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가족 한 사람이 그저 들어 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하려던 대답을 멈추었다. 상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방법을 찾았지만, 정작 그가 바라는 도움은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대답이 떠올라도 조금 더 기다리려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묻고 상대가 말을 이을 때까지 기다려 본다. 여전히 듣는 도중에 내 경험을 꺼내거나 충고부터 할 때가 있다. 그러다 상대의 표정이 달라지면 말을 멈춘다. 잘 듣는 일도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참는 연습이 필요했다.

나는 가족이 내 화를 받아 줄 것이라 믿고, 밖에서 참았던 짜증까지 집에서 쏟아 내곤 했다. 회사에서 받은 서운함을 식탁까지 가져왔고, 길에서 겪은 불쾌함 때문에 현관에서부터 날카롭게 대답했다. 가족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그 말들을 받아야 했다. 오래 곁에 있어 줄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정작 그 사람에게는 말을 가장 적게 골라 하고 있었다.

한번은 치워지지 않은 물건 하나 때문에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에는 물건을 제자리에 놓아 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곧 지난주와 지난달의 일이 따라 나왔다. 늘 그렇다는 말이 나왔고, 내 말을 한 번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말까지 보탰다. 상대도 그동안 참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눈앞의 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오래 묵은 서운함으로 서로를 몰아붙였다.

말다툼이 끝난 뒤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목이 말랐지만 거실에서 마주칠까 봐 물을 가지러 나가는 일조차 망설였다. 조금 전까지 함께 밥을 먹던 식탁이 낯설게 보였다. 방바닥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날 밤 나는 집에서 편히 쉬지 못했다.

사과는 다음 날 아침에야 했다. 어제는 내가 심하게 말했다고, 그 물건 때문에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상대는 곧바로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사과했으니 이제 풀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말을 꺼낼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듯, 상대에게도 내 사과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우리는 그날 저녁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기억하는 장면이 달랐고 서운했던 대목도 달랐다. 나는 내 말이 무시당했다고 느꼈지만, 상대는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데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서운함이 그날 한꺼번에 풀리지는 않았다. 다만 각자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전보다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말할지도 함께 생각해 보았다.

행복한 가정에도 이런 밤은 있을 것이다. 방문을 닫고 돌아서는 날도 있고, 같은 식탁에서 말없이 밥만 먹는 저녁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누군가 먼저 문을 두드리거나 아까는 미안했다고 말을 건넬 것이다. 잘라 놓은 과일 한 접시를 조심스럽게 내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일을 받았다고 서운함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할 계기는 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불행한 가정이 저마다 다르다는 말도 무겁게 다가온다. 어떤 집에는 생활의 어려움이 오래 머물고, 어떤 집에는 질병이 찾아온다. 누군가는 돌봄을 혼자 감당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낸다. 밖에서 보기에는 모두 말수가 적고 웃음이 줄어든 집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침묵이 시작된 사정과 그 안에서 견디는 어려움은 집집마다 다르다.

그래서 힘든 가정을 두고 마음가짐만 바꾸면 된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병원비를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위로와 함께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이 필요할 수 있다. 밤낮으로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에게는 대신 곁을 지켜 줄 사람이 절실하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너무 지쳐 다정하게 말할 여유를 잃는 날이 있다. 그런 사정을 헤아리지 않은 채 사랑이 부족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때 나는 다른 집의 모습을 쉽게 부러워했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이는 집, 주말마다 여행을 가는 집, 생일마다 꽃다발을 주고받는 집이 좋아 보였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찾아내는 데에는 익숙했지만, 우리가 함께 누리고 있는 일은 자주 잊었다. 사진 속 가족들이 환하게 웃고 있으면 그 집에는 늘 웃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진 밖에서 그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는 알지 못하면서.

우리 가족의 나들이는 종종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기도 했고, 식당 앞에서 오래 기다리다가 서로 말수가 줄기도 했다. 모처럼 나왔는데 왜 이러느냐는 말이 나오면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떠오르는 것은 엉뚱하게 들어선 골목의 빵집이나 차 안에서 나누어 먹던 귤이다. 당시에는 망쳤다고 여긴 하루에도 함께 웃었던 순간이 남아 있었다.

가족을 떠올릴 때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도 대개 작은 일들이다. 비가 오던 날 정류장으로 가져온 우산, 늦게 돌아왔을 때 냄비에 남겨 둔 국, 중요한 일을 앞둔 아침에 건넨 짧은 응원이 그렇다. 당시에는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누군가는 내 귀가 시간을 생각하며 기다렸고,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골랐다. 내가 무심히 지나친 순간에도 가족은 나를 살피고 있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현관에 놓인 신발이 생각난다.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는 가족의 신발이 닳으면 굽을 살펴보곤 하셨다. 어느 날에는 수선을 맡겨 두었다며 찾아오라고 하셨고, 비가 온 다음 날에는 젖은 신발 안에 신문지가 들어 있었다. 그때는 그런 손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제 젖은 신발을 말리려고 신문지를 구겨 넣다 보면, 현관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등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지난 시간이 모두 따뜻했던 것은 아니다. 이해받지 못해 서러웠던 날도 있고, 지금 떠올려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말도 있다. 고마운 기억이 있다고 해서 아팠던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가족에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좋았던 일만 남겨 두려고도, 서운했던 일로 지난날 전부를 판단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두 기억 모두 내가 함께 살아온 시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에도 지켜야 할 거리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운다. 모든 생각을 털어놓아야만 친한 것은 아니며,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이 곧 가족을 밀어내는 뜻도 아니다. 방문이 닫혀 있으면 두드리고,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기다릴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가족의 고민을 당장 알아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상대가 스스로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곁에 있는 방법임을 안다.

우리는 때로 가족이 말하지 않은 바람까지 알아주기를 기대한다. 내 표정만 보고 피곤한 줄 알고, 한숨만 듣고 무엇이 서운한지 짐작해 주기를 바란다. 나도 그런 기대 때문에 혼자 실망한 적이 많다. 요즘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려 한다. 오늘은 지쳤으니 설거지를 맡아 달라거나, 잠시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보다 말로 전할 때 오해가 줄어든다.

고맙다는 말도 아끼지 않으려 한다. 늘 하는 일이라고 해서 수고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일 밥을 차리는 사람도, 매번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면 힘이 난다. 오래 함께 살다 보면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깨끗한 욕실과 개켜 놓은 빨래를 당연하게 여기기 쉽다. 그럴수록 잠깐 멈추어 누가 이 일을 했을지 생각해 보려 한다.

물론 고맙다는 말만으로 집안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말을 건넨 뒤에도 늘 같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부엌에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지칠 것이다. 나도 한동안 집안일을 하면서 도와준다는 표현을 썼다. 함께 사는 집인데도 다른 사람의 일을 거든다고 생각했던 셈이다. 이제는 무엇을 할지 묻기 전에 쌓인 그릇과 가득 찬 휴지통을 살펴본다.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이려 한다.

가족이 달라지는 모습을 받아들이는 일도 쉽지 않다. 아이는 자라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고, 부모는 나이가 들며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한다. 씩씩하던 사람이 작은 일을 걱정하고, 내 의견을 따르던 사람이 다른 길을 고른다. 나는 가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을 입에 올리려다 멈춘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지금 마음까지 모두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느려진 걸음을 따라 걷다가 마음이 급해진 적이 있다. 조금만 서두르면 신호를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곁을 돌아보니 부모는 발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나는 신호등을 보고 있었지만 부모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며 옷깃을 여며 드렸다. 오래전 내 짧은 보폭에 맞추어 걸어 주었을 시간을 생각하니 서두르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 걱정도 없고 누구도 아프지 않으며 모든 관계가 평온한 날을 기다린다면, 행복하다고 느낄 날은 많지 않을 것이다. 걱정이 있는 저녁에도 따뜻한 국을 나누어 먹을 수 있고, 서운한 마음이 남아 있어도 상대의 젖은 옷을 널어 줄 수 있다. 나는 그런 행동을 보며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곤 했다.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 있더라도 서로를 보살피려는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우리 집이 얼마나 행복한지 판단하기보다 가족의 하루를 살피려 한다. 누가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지, 누가 말을 줄였는지, 누가 자꾸 혼자 일을 마무리하는지 돌아본다. 언제나 제때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한참 뒤에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래도 늦었다는 이유로 묻지 않고 지나가지는 않으려 한다. 지난번에는 네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면, 멈췄던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톨스토이의 문장을 다시 읽으며 행복한 가정들의 닮은 모습을 생각한다. 사는 형편도 가족의 수도 다르겠지만, 그 집에서는 누군가의 수고가 오래 외면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 사람의 말수가 줄면 다른 사람이 이유를 묻고,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면 무엇이 서운했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일들을 거듭하며 가족은 힘든 날에도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닐까.

오늘 저녁에도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도 있고,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를 안고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우선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얼굴을 보며 하루가 어땠는지 물으려 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서둘러 대답을 준비하지 않고 끝까지 듣고 싶다. 식탁에 마주 앉으면 몸만 아니라 마음도 그 사람 쪽으로 돌리고 싶다. 그날 들려주지 못한 말이 있다면, 밥을 다 먹은 뒤에도 조금 더 앉아 있으려 한다.서로를 향해 돌아앉는 일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행복보다 불행이라는 말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행복한 집은 비슷하고 불행한 집은 다르다니, 사람 사는 모습을 그렇게 나눌 수 있을까 싶었다. 어느 집에나 말 못 할 사정 하나쯤은 있고, 웃음이 잦은 집에도 눈물을 삼키는 밤은 있을 터였다. 그때의 나는 이 문장의 뜻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채 기억해 두었다. 살다 보면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문장을 떠올린 것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닦던 날이었다. 한 사람은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다른 사람은 물컵을 씻었다. 나는 식탁을 닦다가 바닥에 떨어진 밥알을 주웠다. 별다른 대화도 없었다. 누구도 일을 나누어 시키지 않았지만, 각자 눈에 보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행복한 가정이 서로 닮았다는 말은 이런 작은 배려를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가정이 닮았다는 것은 같은 크기의 집에 살거나 비슷한 음식을 먹는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침마다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집도 있고, 말없이 현관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 주는 집도 있다.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도 상대가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닮아 있다. 늦게 돌아올 사람의 밥을 남겨 두고, 지쳐 누운 사람 곁에서는 텔레비전 소리를 낮추는 일. 그런 행동에서 우리는 자신이 보살핌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

어린 시절에는 집이 저절로 따뜻해지는 줄 알았다. 겨울이면 방바닥에 온기가 돌고, 저녁이면 부엌에서 밥 냄새가 났다. 옷장에는 빨아 놓은 옷이 있었고, 감기에 걸리면 머리맡에 물 한 잔이 놓였다. 나는 그것들을 해가 뜨고 지는 일처럼 당연하게 여겼다. 누군가 먼저 일어나 쌀을 씻고, 찬물에 손을 담그고, 한밤중에도 잠을 깨 내 이마를 짚어 보았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헤아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밥을 먹을 때면 늘 비슷한 질문을 하셨다. 싱겁지는 않으냐, 더 먹겠느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 나는 그 물음들이 때로 귀찮았다. 배가 부르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학교 이야기를 물으면 별일 없었다는 말로 끝내곤 했다. 이제 생각하면 어머니는 반찬의 간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만 궁금하셨던 것이 아니다. 내가 하루를 잘 보냈는지, 혹시 혼자 속상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고 싶으셨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비슷한 말을 건넨다. 밥은 먹었는지, 춥지는 않은지, 오늘은 늦는지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이 짧으면 서운하다가도 어린 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을 어느새 내가 하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못했던 어머니처럼 나도 밥과 날씨를 빌려 안부를 묻는다. 그 물음에 담긴 마음을 상대가 알아주면 좋겠지만, 알아주기를 재촉하지는 않으려 한다.

물론 걱정하는 마음으로 건넨 말이 언제나 따뜻하게 들리는 것은 아니다. 늦게 들어오는 까닭을 물었다가 간섭한다는 대답을 듣기도 하고, 도와주려던 행동으로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한다. 오래 함께 살았으니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믿음 때문에 잘못 짚는 일도 생긴다. 예전에 좋아하던 음식이 이제는 입에 맞지 않을 수 있고, 평소에는 웃어넘기던 농담이 유난히 아픈 날도 있다.

나 역시 가족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대답한 적이 많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안다고 생각했다. 피곤하다는 말에는 일찍 자라고 했고, 걱정된다는 말에는 별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 뒤 상대가 입을 다물면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성급하게 해결책을 말하느라, 상대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를 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가족 한 사람이 그저 들어 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하려던 대답을 멈추었다. 상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방법을 찾았지만, 정작 그가 바라는 도움은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대답이 떠올라도 조금 더 기다리려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묻고 상대가 말을 이을 때까지 기다려 본다. 여전히 듣는 도중에 내 경험을 꺼내거나 충고부터 할 때가 있다. 그러다 상대의 표정이 달라지면 말을 멈춘다. 잘 듣는 일도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참는 연습이 필요했다.

나는 가족이 내 화를 받아 줄 것이라 믿고, 밖에서 참았던 짜증까지 집에서 쏟아 내곤 했다. 회사에서 받은 서운함을 식탁까지 가져왔고, 길에서 겪은 불쾌함 때문에 현관에서부터 날카롭게 대답했다. 가족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그 말들을 받아야 했다. 오래 곁에 있어 줄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정작 그 사람에게는 말을 가장 적게 골라 하고 있었다.

한번은 치워지지 않은 물건 하나 때문에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에는 물건을 제자리에 놓아 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곧 지난주와 지난달의 일이 따라 나왔다. 늘 그렇다는 말이 나왔고, 내 말을 한 번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말까지 보탰다. 상대도 그동안 참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눈앞의 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오래 묵은 서운함으로 서로를 몰아붙였다.

말다툼이 끝난 뒤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목이 말랐지만 거실에서 마주칠까 봐 물을 가지러 나가는 일조차 망설였다. 조금 전까지 함께 밥을 먹던 식탁이 낯설게 보였다. 방바닥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날 밤 나는 집에서 편히 쉬지 못했다.

사과는 다음 날 아침에야 했다. 어제는 내가 심하게 말했다고, 그 물건 때문에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상대는 곧바로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사과했으니 이제 풀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말을 꺼낼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듯, 상대에게도 내 사과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우리는 그날 저녁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기억하는 장면이 달랐고 서운했던 대목도 달랐다. 나는 내 말이 무시당했다고 느꼈지만, 상대는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데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서운함이 그날 한꺼번에 풀리지는 않았다. 다만 각자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전보다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말할지도 함께 생각해 보았다.

행복한 가정에도 이런 밤은 있을 것이다. 방문을 닫고 돌아서는 날도 있고, 같은 식탁에서 말없이 밥만 먹는 저녁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누군가 먼저 문을 두드리거나 아까는 미안했다고 말을 건넬 것이다. 잘라 놓은 과일 한 접시를 조심스럽게 내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일을 받았다고 서운함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할 계기는 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불행한 가정이 저마다 다르다는 말도 무겁게 다가온다. 어떤 집에는 생활의 어려움이 오래 머물고, 어떤 집에는 질병이 찾아온다. 누군가는 돌봄을 혼자 감당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낸다. 밖에서 보기에는 모두 말수가 적고 웃음이 줄어든 집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침묵이 시작된 사정과 그 안에서 견디는 어려움은 집집마다 다르다.

그래서 힘든 가정을 두고 마음가짐만 바꾸면 된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병원비를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위로와 함께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이 필요할 수 있다. 밤낮으로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에게는 대신 곁을 지켜 줄 사람이 절실하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너무 지쳐 다정하게 말할 여유를 잃는 날이 있다. 그런 사정을 헤아리지 않은 채 사랑이 부족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때 나는 다른 집의 모습을 쉽게 부러워했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이는 집, 주말마다 여행을 가는 집, 생일마다 꽃다발을 주고받는 집이 좋아 보였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찾아내는 데에는 익숙했지만, 우리가 함께 누리고 있는 일은 자주 잊었다. 사진 속 가족들이 환하게 웃고 있으면 그 집에는 늘 웃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진 밖에서 그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는 알지 못하면서.

우리 가족의 나들이는 종종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기도 했고, 식당 앞에서 오래 기다리다가 서로 말수가 줄기도 했다. 모처럼 나왔는데 왜 이러느냐는 말이 나오면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떠오르는 것은 엉뚱하게 들어선 골목의 빵집이나 차 안에서 나누어 먹던 귤이다. 당시에는 망쳤다고 여긴 하루에도 함께 웃었던 순간이 남아 있었다.

가족을 떠올릴 때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도 대개 작은 일들이다. 비가 오던 날 정류장으로 가져온 우산, 늦게 돌아왔을 때 냄비에 남겨 둔 국, 중요한 일을 앞둔 아침에 건넨 짧은 응원이 그렇다. 당시에는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누군가는 내 귀가 시간을 생각하며 기다렸고,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골랐다. 내가 무심히 지나친 순간에도 가족은 나를 살피고 있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현관에 놓인 신발이 생각난다.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는 가족의 신발이 닳으면 굽을 살펴보곤 하셨다. 어느 날에는 수선을 맡겨 두었다며 찾아오라고 하셨고, 비가 온 다음 날에는 젖은 신발 안에 신문지가 들어 있었다. 그때는 그런 손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제 젖은 신발을 말리려고 신문지를 구겨 넣다 보면, 현관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등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지난 시간이 모두 따뜻했던 것은 아니다. 이해받지 못해 서러웠던 날도 있고, 지금 떠올려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말도 있다. 고마운 기억이 있다고 해서 아팠던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가족에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좋았던 일만 남겨 두려고도, 서운했던 일로 지난날 전부를 판단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두 기억 모두 내가 함께 살아온 시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에도 지켜야 할 거리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운다. 모든 생각을 털어놓아야만 친한 것은 아니며,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이 곧 가족을 밀어내는 뜻도 아니다. 방문이 닫혀 있으면 두드리고,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기다릴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가족의 고민을 당장 알아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상대가 스스로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곁에 있는 방법임을 안다.

우리는 때로 가족이 말하지 않은 바람까지 알아주기를 기대한다. 내 표정만 보고 피곤한 줄 알고, 한숨만 듣고 무엇이 서운한지 짐작해 주기를 바란다. 나도 그런 기대 때문에 혼자 실망한 적이 많다. 요즘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려 한다. 오늘은 지쳤으니 설거지를 맡아 달라거나, 잠시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보다 말로 전할 때 오해가 줄어든다.

고맙다는 말도 아끼지 않으려 한다. 늘 하는 일이라고 해서 수고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일 밥을 차리는 사람도, 매번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면 힘이 난다. 오래 함께 살다 보면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깨끗한 욕실과 개켜 놓은 빨래를 당연하게 여기기 쉽다. 그럴수록 잠깐 멈추어 누가 이 일을 했을지 생각해 보려 한다.

물론 고맙다는 말만으로 집안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말을 건넨 뒤에도 늘 같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부엌에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지칠 것이다. 나도 한동안 집안일을 하면서 도와준다는 표현을 썼다. 함께 사는 집인데도 다른 사람의 일을 거든다고 생각했던 셈이다. 이제는 무엇을 할지 묻기 전에 쌓인 그릇과 가득 찬 휴지통을 살펴본다.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이려 한다.

가족이 달라지는 모습을 받아들이는 일도 쉽지 않다. 아이는 자라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고, 부모는 나이가 들며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한다. 씩씩하던 사람이 작은 일을 걱정하고, 내 의견을 따르던 사람이 다른 길을 고른다. 나는 가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을 입에 올리려다 멈춘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지금 마음까지 모두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느려진 걸음을 따라 걷다가 마음이 급해진 적이 있다. 조금만 서두르면 신호를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곁을 돌아보니 부모는 발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나는 신호등을 보고 있었지만 부모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며 옷깃을 여며 드렸다. 오래전 내 짧은 보폭에 맞추어 걸어 주었을 시간을 생각하니 서두르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 걱정도 없고 누구도 아프지 않으며 모든 관계가 평온한 날을 기다린다면, 행복하다고 느낄 날은 많지 않을 것이다. 걱정이 있는 저녁에도 따뜻한 국을 나누어 먹을 수 있고, 서운한 마음이 남아 있어도 상대의 젖은 옷을 널어 줄 수 있다. 나는 그런 행동을 보며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곤 했다.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 있더라도 서로를 보살피려는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우리 집이 얼마나 행복한지 판단하기보다 가족의 하루를 살피려 한다. 누가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지, 누가 말을 줄였는지, 누가 자꾸 혼자 일을 마무리하는지 돌아본다. 언제나 제때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한참 뒤에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래도 늦었다는 이유로 묻지 않고 지나가지는 않으려 한다. 지난번에는 네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면, 멈췄던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톨스토이의 문장을 다시 읽으며 행복한 가정들의 닮은 모습을 생각한다. 사는 형편도 가족의 수도 다르겠지만, 그 집에서는 누군가의 수고가 오래 외면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 사람의 말수가 줄면 다른 사람이 이유를 묻고,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면 무엇이 서운했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일들을 거듭하며 가족은 힘든 날에도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닐까.

오늘 저녁에도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도 있고,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를 안고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우선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얼굴을 보며 하루가 어땠는지 물으려 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서둘러 대답을 준비하지 않고 끝까지 듣고 싶다. 식탁에 마주 앉으면 몸만 아니라 마음도 그 사람 쪽으로 돌리고 싶다. 그날 들려주지 못한 말이 있다면, 밥을 다 먹은 뒤에도 조금 더 앉아 있으려 한다.서로를 향해 돌아앉는 일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행복보다 불행이라는 말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행복한 집은 비슷하고 불행한 집은 다르다니, 사람 사는 모습을 그렇게 나눌 수 있을까 싶었다. 어느 집에나 말 못 할 사정 하나쯤은 있고, 웃음이 잦은 집에도 눈물을 삼키는 밤은 있을 터였다. 그때의 나는 이 문장의 뜻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채 기억해 두었다. 살다 보면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문장을 떠올린 것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닦던 날이었다. 한 사람은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다른 사람은 물컵을 씻었다. 나는 식탁을 닦다가 바닥에 떨어진 밥알을 주웠다. 별다른 대화도 없었다. 누구도 일을 나누어 시키지 않았지만, 각자 눈에 보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행복한 가정이 서로 닮았다는 말은 이런 작은 배려를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가정이 닮았다는 것은 같은 크기의 집에 살거나 비슷한 음식을 먹는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침마다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집도 있고, 말없이 현관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 주는 집도 있다.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도 상대가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닮아 있다. 늦게 돌아올 사람의 밥을 남겨 두고, 지쳐 누운 사람 곁에서는 텔레비전 소리를 낮추는 일. 그런 행동에서 우리는 자신이 보살핌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

어린 시절에는 집이 저절로 따뜻해지는 줄 알았다. 겨울이면 방바닥에 온기가 돌고, 저녁이면 부엌에서 밥 냄새가 났다. 옷장에는 빨아 놓은 옷이 있었고, 감기에 걸리면 머리맡에 물 한 잔이 놓였다. 나는 그것들을 해가 뜨고 지는 일처럼 당연하게 여겼다. 누군가 먼저 일어나 쌀을 씻고, 찬물에 손을 담그고, 한밤중에도 잠을 깨 내 이마를 짚어 보았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헤아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밥을 먹을 때면 늘 비슷한 질문을 하셨다. 싱겁지는 않으냐, 더 먹겠느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 나는 그 물음들이 때로 귀찮았다. 배가 부르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학교 이야기를 물으면 별일 없었다는 말로 끝내곤 했다. 이제 생각하면 어머니는 반찬의 간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만 궁금하셨던 것이 아니다. 내가 하루를 잘 보냈는지, 혹시 혼자 속상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고 싶으셨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비슷한 말을 건넨다. 밥은 먹었는지, 춥지는 않은지, 오늘은 늦는지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이 짧으면 서운하다가도 어린 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을 어느새 내가 하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못했던 어머니처럼 나도 밥과 날씨를 빌려 안부를 묻는다. 그 물음에 담긴 마음을 상대가 알아주면 좋겠지만, 알아주기를 재촉하지는 않으려 한다.

물론 걱정하는 마음으로 건넨 말이 언제나 따뜻하게 들리는 것은 아니다. 늦게 들어오는 까닭을 물었다가 간섭한다는 대답을 듣기도 하고, 도와주려던 행동으로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한다. 오래 함께 살았으니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믿음 때문에 잘못 짚는 일도 생긴다. 예전에 좋아하던 음식이 이제는 입에 맞지 않을 수 있고, 평소에는 웃어넘기던 농담이 유난히 아픈 날도 있다.

나 역시 가족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대답한 적이 많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안다고 생각했다. 피곤하다는 말에는 일찍 자라고 했고, 걱정된다는 말에는 별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 뒤 상대가 입을 다물면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성급하게 해결책을 말하느라, 상대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를 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가족 한 사람이 그저 들어 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하려던 대답을 멈추었다. 상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방법을 찾았지만, 정작 그가 바라는 도움은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대답이 떠올라도 조금 더 기다리려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묻고 상대가 말을 이을 때까지 기다려 본다. 여전히 듣는 도중에 내 경험을 꺼내거나 충고부터 할 때가 있다. 그러다 상대의 표정이 달라지면 말을 멈춘다. 잘 듣는 일도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참는 연습이 필요했다.

나는 가족이 내 화를 받아 줄 것이라 믿고, 밖에서 참았던 짜증까지 집에서 쏟아 내곤 했다. 회사에서 받은 서운함을 식탁까지 가져왔고, 길에서 겪은 불쾌함 때문에 현관에서부터 날카롭게 대답했다. 가족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그 말들을 받아야 했다. 오래 곁에 있어 줄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정작 그 사람에게는 말을 가장 적게 골라 하고 있었다.

한번은 치워지지 않은 물건 하나 때문에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에는 물건을 제자리에 놓아 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곧 지난주와 지난달의 일이 따라 나왔다. 늘 그렇다는 말이 나왔고, 내 말을 한 번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말까지 보탰다. 상대도 그동안 참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눈앞의 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오래 묵은 서운함으로 서로를 몰아붙였다.

말다툼이 끝난 뒤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목이 말랐지만 거실에서 마주칠까 봐 물을 가지러 나가는 일조차 망설였다. 조금 전까지 함께 밥을 먹던 식탁이 낯설게 보였다. 방바닥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날 밤 나는 집에서 편히 쉬지 못했다.

사과는 다음 날 아침에야 했다. 어제는 내가 심하게 말했다고, 그 물건 때문에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상대는 곧바로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사과했으니 이제 풀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말을 꺼낼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듯, 상대에게도 내 사과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우리는 그날 저녁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기억하는 장면이 달랐고 서운했던 대목도 달랐다. 나는 내 말이 무시당했다고 느꼈지만, 상대는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데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서운함이 그날 한꺼번에 풀리지는 않았다. 다만 각자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전보다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말할지도 함께 생각해 보았다.

행복한 가정에도 이런 밤은 있을 것이다. 방문을 닫고 돌아서는 날도 있고, 같은 식탁에서 말없이 밥만 먹는 저녁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누군가 먼저 문을 두드리거나 아까는 미안했다고 말을 건넬 것이다. 잘라 놓은 과일 한 접시를 조심스럽게 내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일을 받았다고 서운함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할 계기는 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불행한 가정이 저마다 다르다는 말도 무겁게 다가온다. 어떤 집에는 생활의 어려움이 오래 머물고, 어떤 집에는 질병이 찾아온다. 누군가는 돌봄을 혼자 감당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낸다. 밖에서 보기에는 모두 말수가 적고 웃음이 줄어든 집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침묵이 시작된 사정과 그 안에서 견디는 어려움은 집집마다 다르다.

그래서 힘든 가정을 두고 마음가짐만 바꾸면 된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병원비를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위로와 함께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이 필요할 수 있다. 밤낮으로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에게는 대신 곁을 지켜 줄 사람이 절실하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너무 지쳐 다정하게 말할 여유를 잃는 날이 있다. 그런 사정을 헤아리지 않은 채 사랑이 부족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때 나는 다른 집의 모습을 쉽게 부러워했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이는 집, 주말마다 여행을 가는 집, 생일마다 꽃다발을 주고받는 집이 좋아 보였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찾아내는 데에는 익숙했지만, 우리가 함께 누리고 있는 일은 자주 잊었다. 사진 속 가족들이 환하게 웃고 있으면 그 집에는 늘 웃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진 밖에서 그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는 알지 못하면서.

우리 가족의 나들이는 종종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기도 했고, 식당 앞에서 오래 기다리다가 서로 말수가 줄기도 했다. 모처럼 나왔는데 왜 이러느냐는 말이 나오면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떠오르는 것은 엉뚱하게 들어선 골목의 빵집이나 차 안에서 나누어 먹던 귤이다. 당시에는 망쳤다고 여긴 하루에도 함께 웃었던 순간이 남아 있었다.

가족을 떠올릴 때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도 대개 작은 일들이다. 비가 오던 날 정류장으로 가져온 우산, 늦게 돌아왔을 때 냄비에 남겨 둔 국, 중요한 일을 앞둔 아침에 건넨 짧은 응원이 그렇다. 당시에는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누군가는 내 귀가 시간을 생각하며 기다렸고,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골랐다. 내가 무심히 지나친 순간에도 가족은 나를 살피고 있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현관에 놓인 신발이 생각난다.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는 가족의 신발이 닳으면 굽을 살펴보곤 하셨다. 어느 날에는 수선을 맡겨 두었다며 찾아오라고 하셨고, 비가 온 다음 날에는 젖은 신발 안에 신문지가 들어 있었다. 그때는 그런 손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제 젖은 신발을 말리려고 신문지를 구겨 넣다 보면, 현관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등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지난 시간이 모두 따뜻했던 것은 아니다. 이해받지 못해 서러웠던 날도 있고, 지금 떠올려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말도 있다. 고마운 기억이 있다고 해서 아팠던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가족에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좋았던 일만 남겨 두려고도, 서운했던 일로 지난날 전부를 판단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두 기억 모두 내가 함께 살아온 시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에도 지켜야 할 거리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운다. 모든 생각을 털어놓아야만 친한 것은 아니며,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이 곧 가족을 밀어내는 뜻도 아니다. 방문이 닫혀 있으면 두드리고,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기다릴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가족의 고민을 당장 알아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상대가 스스로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곁에 있는 방법임을 안다.

우리는 때로 가족이 말하지 않은 바람까지 알아주기를 기대한다. 내 표정만 보고 피곤한 줄 알고, 한숨만 듣고 무엇이 서운한지 짐작해 주기를 바란다. 나도 그런 기대 때문에 혼자 실망한 적이 많다. 요즘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려 한다. 오늘은 지쳤으니 설거지를 맡아 달라거나, 잠시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보다 말로 전할 때 오해가 줄어든다.

고맙다는 말도 아끼지 않으려 한다. 늘 하는 일이라고 해서 수고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일 밥을 차리는 사람도, 매번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면 힘이 난다. 오래 함께 살다 보면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깨끗한 욕실과 개켜 놓은 빨래를 당연하게 여기기 쉽다. 그럴수록 잠깐 멈추어 누가 이 일을 했을지 생각해 보려 한다.

물론 고맙다는 말만으로 집안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말을 건넨 뒤에도 늘 같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부엌에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지칠 것이다. 나도 한동안 집안일을 하면서 도와준다는 표현을 썼다. 함께 사는 집인데도 다른 사람의 일을 거든다고 생각했던 셈이다. 이제는 무엇을 할지 묻기 전에 쌓인 그릇과 가득 찬 휴지통을 살펴본다.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이려 한다.

가족이 달라지는 모습을 받아들이는 일도 쉽지 않다. 아이는 자라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고, 부모는 나이가 들며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한다. 씩씩하던 사람이 작은 일을 걱정하고, 내 의견을 따르던 사람이 다른 길을 고른다. 나는 가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을 입에 올리려다 멈춘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지금 마음까지 모두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느려진 걸음을 따라 걷다가 마음이 급해진 적이 있다. 조금만 서두르면 신호를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곁을 돌아보니 부모는 발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나는 신호등을 보고 있었지만 부모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며 옷깃을 여며 드렸다. 오래전 내 짧은 보폭에 맞추어 걸어 주었을 시간을 생각하니 서두르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 걱정도 없고 누구도 아프지 않으며 모든 관계가 평온한 날을 기다린다면, 행복하다고 느낄 날은 많지 않을 것이다. 걱정이 있는 저녁에도 따뜻한 국을 나누어 먹을 수 있고, 서운한 마음이 남아 있어도 상대의 젖은 옷을 널어 줄 수 있다. 나는 그런 행동을 보며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곤 했다.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 있더라도 서로를 보살피려는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우리 집이 얼마나 행복한지 판단하기보다 가족의 하루를 살피려 한다. 누가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지, 누가 말을 줄였는지, 누가 자꾸 혼자 일을 마무리하는지 돌아본다. 언제나 제때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한참 뒤에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래도 늦었다는 이유로 묻지 않고 지나가지는 않으려 한다. 지난번에는 네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면, 멈췄던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톨스토이의 문장을 다시 읽으며 행복한 가정들의 닮은 모습을 생각한다. 사는 형편도 가족의 수도 다르겠지만, 그 집에서는 누군가의 수고가 오래 외면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 사람의 말수가 줄면 다른 사람이 이유를 묻고,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면 무엇이 서운했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일들을 거듭하며 가족은 힘든 날에도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닐까.

오늘 저녁에도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도 있고,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를 안고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우선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얼굴을 보며 하루가 어땠는지 물으려 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서둘러 대답을 준비하지 않고 끝까지 듣고 싶다. 식탁에 마주 앉으면 몸만 아니라 마음도 그 사람 쪽으로 돌리고 싶다. 그날 들려주지 못한 말이 있다면, 밥을 다 먹은 뒤에도 조금 더 앉아 있으려 한다.서로를 향해 돌아앉는 일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행복보다 불행이라는 말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행복한 집은 비슷하고 불행한 집은 다르다니, 사람 사는 모습을 그렇게 나눌 수 있을까 싶었다. 어느 집에나 말 못 할 사정 하나쯤은 있고, 웃음이 잦은 집에도 눈물을 삼키는 밤은 있을 터였다. 그때의 나는 이 문장의 뜻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채 기억해 두었다. 살다 보면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문장을 떠올린 것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닦던 날이었다. 한 사람은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다른 사람은 물컵을 씻었다. 나는 식탁을 닦다가 바닥에 떨어진 밥알을 주웠다. 별다른 대화도 없었다. 누구도 일을 나누어 시키지 않았지만, 각자 눈에 보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행복한 가정이 서로 닮았다는 말은 이런 작은 배려를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가정이 닮았다는 것은 같은 크기의 집에 살거나 비슷한 음식을 먹는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침마다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집도 있고, 말없이 현관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 주는 집도 있다.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도 상대가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닮아 있다. 늦게 돌아올 사람의 밥을 남겨 두고, 지쳐 누운 사람 곁에서는 텔레비전 소리를 낮추는 일. 그런 행동에서 우리는 자신이 보살핌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

어린 시절에는 집이 저절로 따뜻해지는 줄 알았다. 겨울이면 방바닥에 온기가 돌고, 저녁이면 부엌에서 밥 냄새가 났다. 옷장에는 빨아 놓은 옷이 있었고, 감기에 걸리면 머리맡에 물 한 잔이 놓였다. 나는 그것들을 해가 뜨고 지는 일처럼 당연하게 여겼다. 누군가 먼저 일어나 쌀을 씻고, 찬물에 손을 담그고, 한밤중에도 잠을 깨 내 이마를 짚어 보았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헤아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밥을 먹을 때면 늘 비슷한 질문을 하셨다. 싱겁지는 않으냐, 더 먹겠느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 나는 그 물음들이 때로 귀찮았다. 배가 부르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학교 이야기를 물으면 별일 없었다는 말로 끝내곤 했다. 이제 생각하면 어머니는 반찬의 간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만 궁금하셨던 것이 아니다. 내가 하루를 잘 보냈는지, 혹시 혼자 속상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고 싶으셨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비슷한 말을 건넨다. 밥은 먹었는지, 춥지는 않은지, 오늘은 늦는지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이 짧으면 서운하다가도 어린 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을 어느새 내가 하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못했던 어머니처럼 나도 밥과 날씨를 빌려 안부를 묻는다. 그 물음에 담긴 마음을 상대가 알아주면 좋겠지만, 알아주기를 재촉하지는 않으려 한다.

물론 걱정하는 마음으로 건넨 말이 언제나 따뜻하게 들리는 것은 아니다. 늦게 들어오는 까닭을 물었다가 간섭한다는 대답을 듣기도 하고, 도와주려던 행동으로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한다. 오래 함께 살았으니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믿음 때문에 잘못 짚는 일도 생긴다. 예전에 좋아하던 음식이 이제는 입에 맞지 않을 수 있고, 평소에는 웃어넘기던 농담이 유난히 아픈 날도 있다.

나 역시 가족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대답한 적이 많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안다고 생각했다. 피곤하다는 말에는 일찍 자라고 했고, 걱정된다는 말에는 별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 뒤 상대가 입을 다물면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성급하게 해결책을 말하느라, 상대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를 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가족 한 사람이 그저 들어 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하려던 대답을 멈추었다. 상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방법을 찾았지만, 정작 그가 바라는 도움은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대답이 떠올라도 조금 더 기다리려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묻고 상대가 말을 이을 때까지 기다려 본다. 여전히 듣는 도중에 내 경험을 꺼내거나 충고부터 할 때가 있다. 그러다 상대의 표정이 달라지면 말을 멈춘다. 잘 듣는 일도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참는 연습이 필요했다.

나는 가족이 내 화를 받아 줄 것이라 믿고, 밖에서 참았던 짜증까지 집에서 쏟아 내곤 했다. 회사에서 받은 서운함을 식탁까지 가져왔고, 길에서 겪은 불쾌함 때문에 현관에서부터 날카롭게 대답했다. 가족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그 말들을 받아야 했다. 오래 곁에 있어 줄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정작 그 사람에게는 말을 가장 적게 골라 하고 있었다.

한번은 치워지지 않은 물건 하나 때문에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에는 물건을 제자리에 놓아 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곧 지난주와 지난달의 일이 따라 나왔다. 늘 그렇다는 말이 나왔고, 내 말을 한 번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말까지 보탰다. 상대도 그동안 참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눈앞의 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오래 묵은 서운함으로 서로를 몰아붙였다.

말다툼이 끝난 뒤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목이 말랐지만 거실에서 마주칠까 봐 물을 가지러 나가는 일조차 망설였다. 조금 전까지 함께 밥을 먹던 식탁이 낯설게 보였다. 방바닥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날 밤 나는 집에서 편히 쉬지 못했다.

사과는 다음 날 아침에야 했다. 어제는 내가 심하게 말했다고, 그 물건 때문에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상대는 곧바로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사과했으니 이제 풀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말을 꺼낼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듯, 상대에게도 내 사과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우리는 그날 저녁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기억하는 장면이 달랐고 서운했던 대목도 달랐다. 나는 내 말이 무시당했다고 느꼈지만, 상대는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데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서운함이 그날 한꺼번에 풀리지는 않았다. 다만 각자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전보다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말할지도 함께 생각해 보았다.

행복한 가정에도 이런 밤은 있을 것이다. 방문을 닫고 돌아서는 날도 있고, 같은 식탁에서 말없이 밥만 먹는 저녁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누군가 먼저 문을 두드리거나 아까는 미안했다고 말을 건넬 것이다. 잘라 놓은 과일 한 접시를 조심스럽게 내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일을 받았다고 서운함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할 계기는 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불행한 가정이 저마다 다르다는 말도 무겁게 다가온다. 어떤 집에는 생활의 어려움이 오래 머물고, 어떤 집에는 질병이 찾아온다. 누군가는 돌봄을 혼자 감당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낸다. 밖에서 보기에는 모두 말수가 적고 웃음이 줄어든 집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침묵이 시작된 사정과 그 안에서 견디는 어려움은 집집마다 다르다.

그래서 힘든 가정을 두고 마음가짐만 바꾸면 된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병원비를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위로와 함께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이 필요할 수 있다. 밤낮으로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에게는 대신 곁을 지켜 줄 사람이 절실하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너무 지쳐 다정하게 말할 여유를 잃는 날이 있다. 그런 사정을 헤아리지 않은 채 사랑이 부족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때 나는 다른 집의 모습을 쉽게 부러워했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이는 집, 주말마다 여행을 가는 집, 생일마다 꽃다발을 주고받는 집이 좋아 보였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찾아내는 데에는 익숙했지만, 우리가 함께 누리고 있는 일은 자주 잊었다. 사진 속 가족들이 환하게 웃고 있으면 그 집에는 늘 웃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진 밖에서 그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는 알지 못하면서.

우리 가족의 나들이는 종종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기도 했고, 식당 앞에서 오래 기다리다가 서로 말수가 줄기도 했다. 모처럼 나왔는데 왜 이러느냐는 말이 나오면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떠오르는 것은 엉뚱하게 들어선 골목의 빵집이나 차 안에서 나누어 먹던 귤이다. 당시에는 망쳤다고 여긴 하루에도 함께 웃었던 순간이 남아 있었다.

가족을 떠올릴 때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도 대개 작은 일들이다. 비가 오던 날 정류장으로 가져온 우산, 늦게 돌아왔을 때 냄비에 남겨 둔 국, 중요한 일을 앞둔 아침에 건넨 짧은 응원이 그렇다. 당시에는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누군가는 내 귀가 시간을 생각하며 기다렸고,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골랐다. 내가 무심히 지나친 순간에도 가족은 나를 살피고 있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현관에 놓인 신발이 생각난다.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는 가족의 신발이 닳으면 굽을 살펴보곤 하셨다. 어느 날에는 수선을 맡겨 두었다며 찾아오라고 하셨고, 비가 온 다음 날에는 젖은 신발 안에 신문지가 들어 있었다. 그때는 그런 손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제 젖은 신발을 말리려고 신문지를 구겨 넣다 보면, 현관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등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지난 시간이 모두 따뜻했던 것은 아니다. 이해받지 못해 서러웠던 날도 있고, 지금 떠올려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말도 있다. 고마운 기억이 있다고 해서 아팠던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가족에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좋았던 일만 남겨 두려고도, 서운했던 일로 지난날 전부를 판단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두 기억 모두 내가 함께 살아온 시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에도 지켜야 할 거리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운다. 모든 생각을 털어놓아야만 친한 것은 아니며,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이 곧 가족을 밀어내는 뜻도 아니다. 방문이 닫혀 있으면 두드리고,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기다릴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가족의 고민을 당장 알아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상대가 스스로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곁에 있는 방법임을 안다.

우리는 때로 가족이 말하지 않은 바람까지 알아주기를 기대한다. 내 표정만 보고 피곤한 줄 알고, 한숨만 듣고 무엇이 서운한지 짐작해 주기를 바란다. 나도 그런 기대 때문에 혼자 실망한 적이 많다. 요즘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려 한다. 오늘은 지쳤으니 설거지를 맡아 달라거나, 잠시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보다 말로 전할 때 오해가 줄어든다.

고맙다는 말도 아끼지 않으려 한다. 늘 하는 일이라고 해서 수고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일 밥을 차리는 사람도, 매번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면 힘이 난다. 오래 함께 살다 보면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깨끗한 욕실과 개켜 놓은 빨래를 당연하게 여기기 쉽다. 그럴수록 잠깐 멈추어 누가 이 일을 했을지 생각해 보려 한다.

물론 고맙다는 말만으로 집안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말을 건넨 뒤에도 늘 같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부엌에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지칠 것이다. 나도 한동안 집안일을 하면서 도와준다는 표현을 썼다. 함께 사는 집인데도 다른 사람의 일을 거든다고 생각했던 셈이다. 이제는 무엇을 할지 묻기 전에 쌓인 그릇과 가득 찬 휴지통을 살펴본다.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이려 한다.

가족이 달라지는 모습을 받아들이는 일도 쉽지 않다. 아이는 자라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고, 부모는 나이가 들며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한다. 씩씩하던 사람이 작은 일을 걱정하고, 내 의견을 따르던 사람이 다른 길을 고른다. 나는 가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을 입에 올리려다 멈춘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지금 마음까지 모두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느려진 걸음을 따라 걷다가 마음이 급해진 적이 있다. 조금만 서두르면 신호를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곁을 돌아보니 부모는 발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나는 신호등을 보고 있었지만 부모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며 옷깃을 여며 드렸다. 오래전 내 짧은 보폭에 맞추어 걸어 주었을 시간을 생각하니 서두르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 걱정도 없고 누구도 아프지 않으며 모든 관계가 평온한 날을 기다린다면, 행복하다고 느낄 날은 많지 않을 것이다. 걱정이 있는 저녁에도 따뜻한 국을 나누어 먹을 수 있고, 서운한 마음이 남아 있어도 상대의 젖은 옷을 널어 줄 수 있다. 나는 그런 행동을 보며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곤 했다.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 있더라도 서로를 보살피려는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우리 집이 얼마나 행복한지 판단하기보다 가족의 하루를 살피려 한다. 누가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지, 누가 말을 줄였는지, 누가 자꾸 혼자 일을 마무리하는지 돌아본다. 언제나 제때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한참 뒤에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래도 늦었다는 이유로 묻지 않고 지나가지는 않으려 한다. 지난번에는 네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면, 멈췄던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톨스토이의 문장을 다시 읽으며 행복한 가정들의 닮은 모습을 생각한다. 사는 형편도 가족의 수도 다르겠지만, 그 집에서는 누군가의 수고가 오래 외면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 사람의 말수가 줄면 다른 사람이 이유를 묻고,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면 무엇이 서운했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일들을 거듭하며 가족은 힘든 날에도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닐까.

오늘 저녁에도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도 있고,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를 안고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우선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얼굴을 보며 하루가 어땠는지 물으려 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서둘러 대답을 준비하지 않고 끝까지 듣고 싶다. 식탁에 마주 앉으면 몸만 아니라 마음도 그 사람 쪽으로 돌리고 싶다. 그날 들려주지 못한 말이 있다면, 밥을 다 먹은 뒤에도 조금 더 앉아 있으려 한다.서로를 향해 돌아앉는 일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행복보다 불행이라는 말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행복한 집은 비슷하고 불행한 집은 다르다니, 사람 사는 모습을 그렇게 나눌 수 있을까 싶었다. 어느 집에나 말 못 할 사정 하나쯤은 있고, 웃음이 잦은 집에도 눈물을 삼키는 밤은 있을 터였다. 그때의 나는 이 문장의 뜻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채 기억해 두었다. 살다 보면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문장을 떠올린 것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닦던 날이었다. 한 사람은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다른 사람은 물컵을 씻었다. 나는 식탁을 닦다가 바닥에 떨어진 밥알을 주웠다. 별다른 대화도 없었다. 누구도 일을 나누어 시키지 않았지만, 각자 눈에 보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행복한 가정이 서로 닮았다는 말은 이런 작은 배려를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가정이 닮았다는 것은 같은 크기의 집에 살거나 비슷한 음식을 먹는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침마다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집도 있고, 말없이 현관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 주는 집도 있다.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도 상대가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닮아 있다. 늦게 돌아올 사람의 밥을 남겨 두고, 지쳐 누운 사람 곁에서는 텔레비전 소리를 낮추는 일. 그런 행동에서 우리는 자신이 보살핌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

어린 시절에는 집이 저절로 따뜻해지는 줄 알았다. 겨울이면 방바닥에 온기가 돌고, 저녁이면 부엌에서 밥 냄새가 났다. 옷장에는 빨아 놓은 옷이 있었고, 감기에 걸리면 머리맡에 물 한 잔이 놓였다. 나는 그것들을 해가 뜨고 지는 일처럼 당연하게 여겼다. 누군가 먼저 일어나 쌀을 씻고, 찬물에 손을 담그고, 한밤중에도 잠을 깨 내 이마를 짚어 보았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헤아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밥을 먹을 때면 늘 비슷한 질문을 하셨다. 싱겁지는 않으냐, 더 먹겠느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 나는 그 물음들이 때로 귀찮았다. 배가 부르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학교 이야기를 물으면 별일 없었다는 말로 끝내곤 했다. 이제 생각하면 어머니는 반찬의 간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만 궁금하셨던 것이 아니다. 내가 하루를 잘 보냈는지, 혹시 혼자 속상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고 싶으셨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비슷한 말을 건넨다. 밥은 먹었는지, 춥지는 않은지, 오늘은 늦는지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이 짧으면 서운하다가도 어린 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을 어느새 내가 하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못했던 어머니처럼 나도 밥과 날씨를 빌려 안부를 묻는다. 그 물음에 담긴 마음을 상대가 알아주면 좋겠지만, 알아주기를 재촉하지는 않으려 한다.

물론 걱정하는 마음으로 건넨 말이 언제나 따뜻하게 들리는 것은 아니다. 늦게 들어오는 까닭을 물었다가 간섭한다는 대답을 듣기도 하고, 도와주려던 행동으로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한다. 오래 함께 살았으니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믿음 때문에 잘못 짚는 일도 생긴다. 예전에 좋아하던 음식이 이제는 입에 맞지 않을 수 있고, 평소에는 웃어넘기던 농담이 유난히 아픈 날도 있다.

나 역시 가족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대답한 적이 많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안다고 생각했다. 피곤하다는 말에는 일찍 자라고 했고, 걱정된다는 말에는 별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 뒤 상대가 입을 다물면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성급하게 해결책을 말하느라, 상대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를 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가족 한 사람이 그저 들어 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하려던 대답을 멈추었다. 상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방법을 찾았지만, 정작 그가 바라는 도움은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대답이 떠올라도 조금 더 기다리려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묻고 상대가 말을 이을 때까지 기다려 본다. 여전히 듣는 도중에 내 경험을 꺼내거나 충고부터 할 때가 있다. 그러다 상대의 표정이 달라지면 말을 멈춘다. 잘 듣는 일도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참는 연습이 필요했다.

나는 가족이 내 화를 받아 줄 것이라 믿고, 밖에서 참았던 짜증까지 집에서 쏟아 내곤 했다. 회사에서 받은 서운함을 식탁까지 가져왔고, 길에서 겪은 불쾌함 때문에 현관에서부터 날카롭게 대답했다. 가족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그 말들을 받아야 했다. 오래 곁에 있어 줄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정작 그 사람에게는 말을 가장 적게 골라 하고 있었다.

한번은 치워지지 않은 물건 하나 때문에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에는 물건을 제자리에 놓아 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곧 지난주와 지난달의 일이 따라 나왔다. 늘 그렇다는 말이 나왔고, 내 말을 한 번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말까지 보탰다. 상대도 그동안 참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눈앞의 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오래 묵은 서운함으로 서로를 몰아붙였다.

말다툼이 끝난 뒤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목이 말랐지만 거실에서 마주칠까 봐 물을 가지러 나가는 일조차 망설였다. 조금 전까지 함께 밥을 먹던 식탁이 낯설게 보였다. 방바닥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날 밤 나는 집에서 편히 쉬지 못했다.

사과는 다음 날 아침에야 했다. 어제는 내가 심하게 말했다고, 그 물건 때문에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상대는 곧바로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사과했으니 이제 풀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말을 꺼낼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듯, 상대에게도 내 사과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우리는 그날 저녁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기억하는 장면이 달랐고 서운했던 대목도 달랐다. 나는 내 말이 무시당했다고 느꼈지만, 상대는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데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서운함이 그날 한꺼번에 풀리지는 않았다. 다만 각자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전보다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말할지도 함께 생각해 보았다.

행복한 가정에도 이런 밤은 있을 것이다. 방문을 닫고 돌아서는 날도 있고, 같은 식탁에서 말없이 밥만 먹는 저녁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누군가 먼저 문을 두드리거나 아까는 미안했다고 말을 건넬 것이다. 잘라 놓은 과일 한 접시를 조심스럽게 내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일을 받았다고 서운함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할 계기는 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불행한 가정이 저마다 다르다는 말도 무겁게 다가온다. 어떤 집에는 생활의 어려움이 오래 머물고, 어떤 집에는 질병이 찾아온다. 누군가는 돌봄을 혼자 감당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낸다. 밖에서 보기에는 모두 말수가 적고 웃음이 줄어든 집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침묵이 시작된 사정과 그 안에서 견디는 어려움은 집집마다 다르다.

그래서 힘든 가정을 두고 마음가짐만 바꾸면 된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병원비를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위로와 함께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이 필요할 수 있다. 밤낮으로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에게는 대신 곁을 지켜 줄 사람이 절실하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너무 지쳐 다정하게 말할 여유를 잃는 날이 있다. 그런 사정을 헤아리지 않은 채 사랑이 부족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때 나는 다른 집의 모습을 쉽게 부러워했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이는 집, 주말마다 여행을 가는 집, 생일마다 꽃다발을 주고받는 집이 좋아 보였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찾아내는 데에는 익숙했지만, 우리가 함께 누리고 있는 일은 자주 잊었다. 사진 속 가족들이 환하게 웃고 있으면 그 집에는 늘 웃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진 밖에서 그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는 알지 못하면서.

우리 가족의 나들이는 종종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기도 했고, 식당 앞에서 오래 기다리다가 서로 말수가 줄기도 했다. 모처럼 나왔는데 왜 이러느냐는 말이 나오면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떠오르는 것은 엉뚱하게 들어선 골목의 빵집이나 차 안에서 나누어 먹던 귤이다. 당시에는 망쳤다고 여긴 하루에도 함께 웃었던 순간이 남아 있었다.

가족을 떠올릴 때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도 대개 작은 일들이다. 비가 오던 날 정류장으로 가져온 우산, 늦게 돌아왔을 때 냄비에 남겨 둔 국, 중요한 일을 앞둔 아침에 건넨 짧은 응원이 그렇다. 당시에는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누군가는 내 귀가 시간을 생각하며 기다렸고,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골랐다. 내가 무심히 지나친 순간에도 가족은 나를 살피고 있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현관에 놓인 신발이 생각난다.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는 가족의 신발이 닳으면 굽을 살펴보곤 하셨다. 어느 날에는 수선을 맡겨 두었다며 찾아오라고 하셨고, 비가 온 다음 날에는 젖은 신발 안에 신문지가 들어 있었다. 그때는 그런 손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제 젖은 신발을 말리려고 신문지를 구겨 넣다 보면, 현관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등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지난 시간이 모두 따뜻했던 것은 아니다. 이해받지 못해 서러웠던 날도 있고, 지금 떠올려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말도 있다. 고마운 기억이 있다고 해서 아팠던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가족에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좋았던 일만 남겨 두려고도, 서운했던 일로 지난날 전부를 판단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두 기억 모두 내가 함께 살아온 시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에도 지켜야 할 거리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운다. 모든 생각을 털어놓아야만 친한 것은 아니며,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이 곧 가족을 밀어내는 뜻도 아니다. 방문이 닫혀 있으면 두드리고,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기다릴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가족의 고민을 당장 알아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상대가 스스로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곁에 있는 방법임을 안다.

우리는 때로 가족이 말하지 않은 바람까지 알아주기를 기대한다. 내 표정만 보고 피곤한 줄 알고, 한숨만 듣고 무엇이 서운한지 짐작해 주기를 바란다. 나도 그런 기대 때문에 혼자 실망한 적이 많다. 요즘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려 한다. 오늘은 지쳤으니 설거지를 맡아 달라거나, 잠시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보다 말로 전할 때 오해가 줄어든다.

고맙다는 말도 아끼지 않으려 한다. 늘 하는 일이라고 해서 수고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일 밥을 차리는 사람도, 매번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면 힘이 난다. 오래 함께 살다 보면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깨끗한 욕실과 개켜 놓은 빨래를 당연하게 여기기 쉽다. 그럴수록 잠깐 멈추어 누가 이 일을 했을지 생각해 보려 한다.

물론 고맙다는 말만으로 집안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말을 건넨 뒤에도 늘 같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부엌에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지칠 것이다. 나도 한동안 집안일을 하면서 도와준다는 표현을 썼다. 함께 사는 집인데도 다른 사람의 일을 거든다고 생각했던 셈이다. 이제는 무엇을 할지 묻기 전에 쌓인 그릇과 가득 찬 휴지통을 살펴본다.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이려 한다.

가족이 달라지는 모습을 받아들이는 일도 쉽지 않다. 아이는 자라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고, 부모는 나이가 들며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한다. 씩씩하던 사람이 작은 일을 걱정하고, 내 의견을 따르던 사람이 다른 길을 고른다. 나는 가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을 입에 올리려다 멈춘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지금 마음까지 모두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느려진 걸음을 따라 걷다가 마음이 급해진 적이 있다. 조금만 서두르면 신호를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곁을 돌아보니 부모는 발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나는 신호등을 보고 있었지만 부모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며 옷깃을 여며 드렸다. 오래전 내 짧은 보폭에 맞추어 걸어 주었을 시간을 생각하니 서두르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 걱정도 없고 누구도 아프지 않으며 모든 관계가 평온한 날을 기다린다면, 행복하다고 느낄 날은 많지 않을 것이다. 걱정이 있는 저녁에도 따뜻한 국을 나누어 먹을 수 있고, 서운한 마음이 남아 있어도 상대의 젖은 옷을 널어 줄 수 있다. 나는 그런 행동을 보며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곤 했다.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 있더라도 서로를 보살피려는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우리 집이 얼마나 행복한지 판단하기보다 가족의 하루를 살피려 한다. 누가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지, 누가 말을 줄였는지, 누가 자꾸 혼자 일을 마무리하는지 돌아본다. 언제나 제때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한참 뒤에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래도 늦었다는 이유로 묻지 않고 지나가지는 않으려 한다. 지난번에는 네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면, 멈췄던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톨스토이의 문장을 다시 읽으며 행복한 가정들의 닮은 모습을 생각한다. 사는 형편도 가족의 수도 다르겠지만, 그 집에서는 누군가의 수고가 오래 외면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 사람의 말수가 줄면 다른 사람이 이유를 묻고,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면 무엇이 서운했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일들을 거듭하며 가족은 힘든 날에도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닐까.

오늘 저녁에도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도 있고,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를 안고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우선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얼굴을 보며 하루가 어땠는지 물으려 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서둘러 대답을 준비하지 않고 끝까지 듣고 싶다. 식탁에 마주 앉으면 몸만 아니라 마음도 그 사람 쪽으로 돌리고 싶다. 그날 들려주지 못한 말이 있다면, 밥을 다 먹은 뒤에도 조금 더 앉아 있으려 한다.서로를 향해 돌아앉는 일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행복보다 불행이라는 말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행복한 집은 비슷하고 불행한 집은 다르다니, 사람 사는 모습을 그렇게 나눌 수 있을까 싶었다. 어느 집에나 말 못 할 사정 하나쯤은 있고, 웃음이 잦은 집에도 눈물을 삼키는 밤은 있을 터였다. 그때의 나는 이 문장의 뜻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채 기억해 두었다. 살다 보면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문장을 떠올린 것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닦던 날이었다. 한 사람은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다른 사람은 물컵을 씻었다. 나는 식탁을 닦다가 바닥에 떨어진 밥알을 주웠다. 별다른 대화도 없었다. 누구도 일을 나누어 시키지 않았지만, 각자 눈에 보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행복한 가정이 서로 닮았다는 말은 이런 작은 배려를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가정이 닮았다는 것은 같은 크기의 집에 살거나 비슷한 음식을 먹는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침마다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집도 있고, 말없이 현관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 주는 집도 있다.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도 상대가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닮아 있다. 늦게 돌아올 사람의 밥을 남겨 두고, 지쳐 누운 사람 곁에서는 텔레비전 소리를 낮추는 일. 그런 행동에서 우리는 자신이 보살핌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

어린 시절에는 집이 저절로 따뜻해지는 줄 알았다. 겨울이면 방바닥에 온기가 돌고, 저녁이면 부엌에서 밥 냄새가 났다. 옷장에는 빨아 놓은 옷이 있었고, 감기에 걸리면 머리맡에 물 한 잔이 놓였다. 나는 그것들을 해가 뜨고 지는 일처럼 당연하게 여겼다. 누군가 먼저 일어나 쌀을 씻고, 찬물에 손을 담그고, 한밤중에도 잠을 깨 내 이마를 짚어 보았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헤아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밥을 먹을 때면 늘 비슷한 질문을 하셨다. 싱겁지는 않으냐, 더 먹겠느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 나는 그 물음들이 때로 귀찮았다. 배가 부르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학교 이야기를 물으면 별일 없었다는 말로 끝내곤 했다. 이제 생각하면 어머니는 반찬의 간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만 궁금하셨던 것이 아니다. 내가 하루를 잘 보냈는지, 혹시 혼자 속상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고 싶으셨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비슷한 말을 건넨다. 밥은 먹었는지, 춥지는 않은지, 오늘은 늦는지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이 짧으면 서운하다가도 어린 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을 어느새 내가 하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못했던 어머니처럼 나도 밥과 날씨를 빌려 안부를 묻는다. 그 물음에 담긴 마음을 상대가 알아주면 좋겠지만, 알아주기를 재촉하지는 않으려 한다.

물론 걱정하는 마음으로 건넨 말이 언제나 따뜻하게 들리는 것은 아니다. 늦게 들어오는 까닭을 물었다가 간섭한다는 대답을 듣기도 하고, 도와주려던 행동으로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한다. 오래 함께 살았으니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믿음 때문에 잘못 짚는 일도 생긴다. 예전에 좋아하던 음식이 이제는 입에 맞지 않을 수 있고, 평소에는 웃어넘기던 농담이 유난히 아픈 날도 있다.

나 역시 가족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대답한 적이 많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안다고 생각했다. 피곤하다는 말에는 일찍 자라고 했고, 걱정된다는 말에는 별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 뒤 상대가 입을 다물면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성급하게 해결책을 말하느라, 상대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를 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가족 한 사람이 그저 들어 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하려던 대답을 멈추었다. 상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방법을 찾았지만, 정작 그가 바라는 도움은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대답이 떠올라도 조금 더 기다리려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묻고 상대가 말을 이을 때까지 기다려 본다. 여전히 듣는 도중에 내 경험을 꺼내거나 충고부터 할 때가 있다. 그러다 상대의 표정이 달라지면 말을 멈춘다. 잘 듣는 일도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참는 연습이 필요했다.

나는 가족이 내 화를 받아 줄 것이라 믿고, 밖에서 참았던 짜증까지 집에서 쏟아 내곤 했다. 회사에서 받은 서운함을 식탁까지 가져왔고, 길에서 겪은 불쾌함 때문에 현관에서부터 날카롭게 대답했다. 가족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그 말들을 받아야 했다. 오래 곁에 있어 줄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정작 그 사람에게는 말을 가장 적게 골라 하고 있었다.

한번은 치워지지 않은 물건 하나 때문에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에는 물건을 제자리에 놓아 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곧 지난주와 지난달의 일이 따라 나왔다. 늘 그렇다는 말이 나왔고, 내 말을 한 번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말까지 보탰다. 상대도 그동안 참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눈앞의 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오래 묵은 서운함으로 서로를 몰아붙였다.

말다툼이 끝난 뒤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목이 말랐지만 거실에서 마주칠까 봐 물을 가지러 나가는 일조차 망설였다. 조금 전까지 함께 밥을 먹던 식탁이 낯설게 보였다. 방바닥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날 밤 나는 집에서 편히 쉬지 못했다.

사과는 다음 날 아침에야 했다. 어제는 내가 심하게 말했다고, 그 물건 때문에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상대는 곧바로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사과했으니 이제 풀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말을 꺼낼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듯, 상대에게도 내 사과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우리는 그날 저녁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기억하는 장면이 달랐고 서운했던 대목도 달랐다. 나는 내 말이 무시당했다고 느꼈지만, 상대는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데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서운함이 그날 한꺼번에 풀리지는 않았다. 다만 각자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전보다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말할지도 함께 생각해 보았다.

행복한 가정에도 이런 밤은 있을 것이다. 방문을 닫고 돌아서는 날도 있고, 같은 식탁에서 말없이 밥만 먹는 저녁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누군가 먼저 문을 두드리거나 아까는 미안했다고 말을 건넬 것이다. 잘라 놓은 과일 한 접시를 조심스럽게 내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일을 받았다고 서운함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할 계기는 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불행한 가정이 저마다 다르다는 말도 무겁게 다가온다. 어떤 집에는 생활의 어려움이 오래 머물고, 어떤 집에는 질병이 찾아온다. 누군가는 돌봄을 혼자 감당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낸다. 밖에서 보기에는 모두 말수가 적고 웃음이 줄어든 집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침묵이 시작된 사정과 그 안에서 견디는 어려움은 집집마다 다르다.

그래서 힘든 가정을 두고 마음가짐만 바꾸면 된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병원비를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위로와 함께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이 필요할 수 있다. 밤낮으로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에게는 대신 곁을 지켜 줄 사람이 절실하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너무 지쳐 다정하게 말할 여유를 잃는 날이 있다. 그런 사정을 헤아리지 않은 채 사랑이 부족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때 나는 다른 집의 모습을 쉽게 부러워했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이는 집, 주말마다 여행을 가는 집, 생일마다 꽃다발을 주고받는 집이 좋아 보였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찾아내는 데에는 익숙했지만, 우리가 함께 누리고 있는 일은 자주 잊었다. 사진 속 가족들이 환하게 웃고 있으면 그 집에는 늘 웃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진 밖에서 그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는 알지 못하면서.

우리 가족의 나들이는 종종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기도 했고, 식당 앞에서 오래 기다리다가 서로 말수가 줄기도 했다. 모처럼 나왔는데 왜 이러느냐는 말이 나오면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떠오르는 것은 엉뚱하게 들어선 골목의 빵집이나 차 안에서 나누어 먹던 귤이다. 당시에는 망쳤다고 여긴 하루에도 함께 웃었던 순간이 남아 있었다.

가족을 떠올릴 때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도 대개 작은 일들이다. 비가 오던 날 정류장으로 가져온 우산, 늦게 돌아왔을 때 냄비에 남겨 둔 국, 중요한 일을 앞둔 아침에 건넨 짧은 응원이 그렇다. 당시에는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누군가는 내 귀가 시간을 생각하며 기다렸고,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골랐다. 내가 무심히 지나친 순간에도 가족은 나를 살피고 있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현관에 놓인 신발이 생각난다.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는 가족의 신발이 닳으면 굽을 살펴보곤 하셨다. 어느 날에는 수선을 맡겨 두었다며 찾아오라고 하셨고, 비가 온 다음 날에는 젖은 신발 안에 신문지가 들어 있었다. 그때는 그런 손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제 젖은 신발을 말리려고 신문지를 구겨 넣다 보면, 현관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등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지난 시간이 모두 따뜻했던 것은 아니다. 이해받지 못해 서러웠던 날도 있고, 지금 떠올려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말도 있다. 고마운 기억이 있다고 해서 아팠던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가족에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좋았던 일만 남겨 두려고도, 서운했던 일로 지난날 전부를 판단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두 기억 모두 내가 함께 살아온 시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에도 지켜야 할 거리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운다. 모든 생각을 털어놓아야만 친한 것은 아니며,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이 곧 가족을 밀어내는 뜻도 아니다. 방문이 닫혀 있으면 두드리고,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기다릴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가족의 고민을 당장 알아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상대가 스스로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곁에 있는 방법임을 안다.

우리는 때로 가족이 말하지 않은 바람까지 알아주기를 기대한다. 내 표정만 보고 피곤한 줄 알고, 한숨만 듣고 무엇이 서운한지 짐작해 주기를 바란다. 나도 그런 기대 때문에 혼자 실망한 적이 많다. 요즘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려 한다. 오늘은 지쳤으니 설거지를 맡아 달라거나, 잠시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보다 말로 전할 때 오해가 줄어든다.

고맙다는 말도 아끼지 않으려 한다. 늘 하는 일이라고 해서 수고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일 밥을 차리는 사람도, 매번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면 힘이 난다. 오래 함께 살다 보면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깨끗한 욕실과 개켜 놓은 빨래를 당연하게 여기기 쉽다. 그럴수록 잠깐 멈추어 누가 이 일을 했을지 생각해 보려 한다.

물론 고맙다는 말만으로 집안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말을 건넨 뒤에도 늘 같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부엌에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지칠 것이다. 나도 한동안 집안일을 하면서 도와준다는 표현을 썼다. 함께 사는 집인데도 다른 사람의 일을 거든다고 생각했던 셈이다. 이제는 무엇을 할지 묻기 전에 쌓인 그릇과 가득 찬 휴지통을 살펴본다.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이려 한다.

가족이 달라지는 모습을 받아들이는 일도 쉽지 않다. 아이는 자라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고, 부모는 나이가 들며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한다. 씩씩하던 사람이 작은 일을 걱정하고, 내 의견을 따르던 사람이 다른 길을 고른다. 나는 가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을 입에 올리려다 멈춘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지금 마음까지 모두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느려진 걸음을 따라 걷다가 마음이 급해진 적이 있다. 조금만 서두르면 신호를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곁을 돌아보니 부모는 발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나는 신호등을 보고 있었지만 부모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며 옷깃을 여며 드렸다. 오래전 내 짧은 보폭에 맞추어 걸어 주었을 시간을 생각하니 서두르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 걱정도 없고 누구도 아프지 않으며 모든 관계가 평온한 날을 기다린다면, 행복하다고 느낄 날은 많지 않을 것이다. 걱정이 있는 저녁에도 따뜻한 국을 나누어 먹을 수 있고, 서운한 마음이 남아 있어도 상대의 젖은 옷을 널어 줄 수 있다. 나는 그런 행동을 보며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곤 했다.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 있더라도 서로를 보살피려는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우리 집이 얼마나 행복한지 판단하기보다 가족의 하루를 살피려 한다. 누가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지, 누가 말을 줄였는지, 누가 자꾸 혼자 일을 마무리하는지 돌아본다. 언제나 제때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한참 뒤에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래도 늦었다는 이유로 묻지 않고 지나가지는 않으려 한다. 지난번에는 네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면, 멈췄던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톨스토이의 문장을 다시 읽으며 행복한 가정들의 닮은 모습을 생각한다. 사는 형편도 가족의 수도 다르겠지만, 그 집에서는 누군가의 수고가 오래 외면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 사람의 말수가 줄면 다른 사람이 이유를 묻고,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면 무엇이 서운했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일들을 거듭하며 가족은 힘든 날에도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닐까.

오늘 저녁에도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도 있고,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를 안고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우선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얼굴을 보며 하루가 어땠는지 물으려 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서둘러 대답을 준비하지 않고 끝까지 듣고 싶다. 식탁에 마주 앉으면 몸만 아니라 마음도 그 사람 쪽으로 돌리고 싶다. 그날 들려주지 못한 말이 있다면, 밥을 다 먹은 뒤에도 조금 더 앉아 있으려 한다.서로를 향해 돌아앉는 일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행복보다 불행이라는 말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행복한 집은 비슷하고 불행한 집은 다르다니, 사람 사는 모습을 그렇게 나눌 수 있을까 싶었다. 어느 집에나 말 못 할 사정 하나쯤은 있고, 웃음이 잦은 집에도 눈물을 삼키는 밤은 있을 터였다. 그때의 나는 이 문장의 뜻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채 기억해 두었다. 살다 보면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문장을 떠올린 것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닦던 날이었다. 한 사람은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다른 사람은 물컵을 씻었다. 나는 식탁을 닦다가 바닥에 떨어진 밥알을 주웠다. 별다른 대화도 없었다. 누구도 일을 나누어 시키지 않았지만, 각자 눈에 보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행복한 가정이 서로 닮았다는 말은 이런 작은 배려를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가정이 닮았다는 것은 같은 크기의 집에 살거나 비슷한 음식을 먹는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침마다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집도 있고, 말없이 현관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 주는 집도 있다.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도 상대가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닮아 있다. 늦게 돌아올 사람의 밥을 남겨 두고, 지쳐 누운 사람 곁에서는 텔레비전 소리를 낮추는 일. 그런 행동에서 우리는 자신이 보살핌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

어린 시절에는 집이 저절로 따뜻해지는 줄 알았다. 겨울이면 방바닥에 온기가 돌고, 저녁이면 부엌에서 밥 냄새가 났다. 옷장에는 빨아 놓은 옷이 있었고, 감기에 걸리면 머리맡에 물 한 잔이 놓였다. 나는 그것들을 해가 뜨고 지는 일처럼 당연하게 여겼다. 누군가 먼저 일어나 쌀을 씻고, 찬물에 손을 담그고, 한밤중에도 잠을 깨 내 이마를 짚어 보았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헤아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밥을 먹을 때면 늘 비슷한 질문을 하셨다. 싱겁지는 않으냐, 더 먹겠느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 나는 그 물음들이 때로 귀찮았다. 배가 부르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학교 이야기를 물으면 별일 없었다는 말로 끝내곤 했다. 이제 생각하면 어머니는 반찬의 간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만 궁금하셨던 것이 아니다. 내가 하루를 잘 보냈는지, 혹시 혼자 속상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고 싶으셨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비슷한 말을 건넨다. 밥은 먹었는지, 춥지는 않은지, 오늘은 늦는지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이 짧으면 서운하다가도 어린 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을 어느새 내가 하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못했던 어머니처럼 나도 밥과 날씨를 빌려 안부를 묻는다. 그 물음에 담긴 마음을 상대가 알아주면 좋겠지만, 알아주기를 재촉하지는 않으려 한다.

물론 걱정하는 마음으로 건넨 말이 언제나 따뜻하게 들리는 것은 아니다. 늦게 들어오는 까닭을 물었다가 간섭한다는 대답을 듣기도 하고, 도와주려던 행동으로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한다. 오래 함께 살았으니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믿음 때문에 잘못 짚는 일도 생긴다. 예전에 좋아하던 음식이 이제는 입에 맞지 않을 수 있고, 평소에는 웃어넘기던 농담이 유난히 아픈 날도 있다.

나 역시 가족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대답한 적이 많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안다고 생각했다. 피곤하다는 말에는 일찍 자라고 했고, 걱정된다는 말에는 별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 뒤 상대가 입을 다물면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성급하게 해결책을 말하느라, 상대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를 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가족 한 사람이 그저 들어 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하려던 대답을 멈추었다. 상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방법을 찾았지만, 정작 그가 바라는 도움은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대답이 떠올라도 조금 더 기다리려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묻고 상대가 말을 이을 때까지 기다려 본다. 여전히 듣는 도중에 내 경험을 꺼내거나 충고부터 할 때가 있다. 그러다 상대의 표정이 달라지면 말을 멈춘다. 잘 듣는 일도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참는 연습이 필요했다.

나는 가족이 내 화를 받아 줄 것이라 믿고, 밖에서 참았던 짜증까지 집에서 쏟아 내곤 했다. 회사에서 받은 서운함을 식탁까지 가져왔고, 길에서 겪은 불쾌함 때문에 현관에서부터 날카롭게 대답했다. 가족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그 말들을 받아야 했다. 오래 곁에 있어 줄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정작 그 사람에게는 말을 가장 적게 골라 하고 있었다.

한번은 치워지지 않은 물건 하나 때문에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에는 물건을 제자리에 놓아 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곧 지난주와 지난달의 일이 따라 나왔다. 늘 그렇다는 말이 나왔고, 내 말을 한 번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말까지 보탰다. 상대도 그동안 참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눈앞의 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오래 묵은 서운함으로 서로를 몰아붙였다.

말다툼이 끝난 뒤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목이 말랐지만 거실에서 마주칠까 봐 물을 가지러 나가는 일조차 망설였다. 조금 전까지 함께 밥을 먹던 식탁이 낯설게 보였다. 방바닥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날 밤 나는 집에서 편히 쉬지 못했다.

사과는 다음 날 아침에야 했다. 어제는 내가 심하게 말했다고, 그 물건 때문에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상대는 곧바로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사과했으니 이제 풀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말을 꺼낼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듯, 상대에게도 내 사과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우리는 그날 저녁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기억하는 장면이 달랐고 서운했던 대목도 달랐다. 나는 내 말이 무시당했다고 느꼈지만, 상대는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데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서운함이 그날 한꺼번에 풀리지는 않았다. 다만 각자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전보다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말할지도 함께 생각해 보았다.

행복한 가정에도 이런 밤은 있을 것이다. 방문을 닫고 돌아서는 날도 있고, 같은 식탁에서 말없이 밥만 먹는 저녁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누군가 먼저 문을 두드리거나 아까는 미안했다고 말을 건넬 것이다. 잘라 놓은 과일 한 접시를 조심스럽게 내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일을 받았다고 서운함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할 계기는 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불행한 가정이 저마다 다르다는 말도 무겁게 다가온다. 어떤 집에는 생활의 어려움이 오래 머물고, 어떤 집에는 질병이 찾아온다. 누군가는 돌봄을 혼자 감당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낸다. 밖에서 보기에는 모두 말수가 적고 웃음이 줄어든 집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침묵이 시작된 사정과 그 안에서 견디는 어려움은 집집마다 다르다.

그래서 힘든 가정을 두고 마음가짐만 바꾸면 된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병원비를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위로와 함께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이 필요할 수 있다. 밤낮으로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에게는 대신 곁을 지켜 줄 사람이 절실하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너무 지쳐 다정하게 말할 여유를 잃는 날이 있다. 그런 사정을 헤아리지 않은 채 사랑이 부족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때 나는 다른 집의 모습을 쉽게 부러워했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이는 집, 주말마다 여행을 가는 집, 생일마다 꽃다발을 주고받는 집이 좋아 보였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찾아내는 데에는 익숙했지만, 우리가 함께 누리고 있는 일은 자주 잊었다. 사진 속 가족들이 환하게 웃고 있으면 그 집에는 늘 웃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진 밖에서 그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는 알지 못하면서.

우리 가족의 나들이는 종종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기도 했고, 식당 앞에서 오래 기다리다가 서로 말수가 줄기도 했다. 모처럼 나왔는데 왜 이러느냐는 말이 나오면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떠오르는 것은 엉뚱하게 들어선 골목의 빵집이나 차 안에서 나누어 먹던 귤이다. 당시에는 망쳤다고 여긴 하루에도 함께 웃었던 순간이 남아 있었다.

가족을 떠올릴 때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도 대개 작은 일들이다. 비가 오던 날 정류장으로 가져온 우산, 늦게 돌아왔을 때 냄비에 남겨 둔 국, 중요한 일을 앞둔 아침에 건넨 짧은 응원이 그렇다. 당시에는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누군가는 내 귀가 시간을 생각하며 기다렸고,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골랐다. 내가 무심히 지나친 순간에도 가족은 나를 살피고 있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현관에 놓인 신발이 생각난다.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는 가족의 신발이 닳으면 굽을 살펴보곤 하셨다. 어느 날에는 수선을 맡겨 두었다며 찾아오라고 하셨고, 비가 온 다음 날에는 젖은 신발 안에 신문지가 들어 있었다. 그때는 그런 손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제 젖은 신발을 말리려고 신문지를 구겨 넣다 보면, 현관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등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지난 시간이 모두 따뜻했던 것은 아니다. 이해받지 못해 서러웠던 날도 있고, 지금 떠올려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말도 있다. 고마운 기억이 있다고 해서 아팠던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가족에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좋았던 일만 남겨 두려고도, 서운했던 일로 지난날 전부를 판단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두 기억 모두 내가 함께 살아온 시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에도 지켜야 할 거리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운다. 모든 생각을 털어놓아야만 친한 것은 아니며,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이 곧 가족을 밀어내는 뜻도 아니다. 방문이 닫혀 있으면 두드리고,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기다릴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가족의 고민을 당장 알아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상대가 스스로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곁에 있는 방법임을 안다.

우리는 때로 가족이 말하지 않은 바람까지 알아주기를 기대한다. 내 표정만 보고 피곤한 줄 알고, 한숨만 듣고 무엇이 서운한지 짐작해 주기를 바란다. 나도 그런 기대 때문에 혼자 실망한 적이 많다. 요즘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려 한다. 오늘은 지쳤으니 설거지를 맡아 달라거나, 잠시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보다 말로 전할 때 오해가 줄어든다.

고맙다는 말도 아끼지 않으려 한다. 늘 하는 일이라고 해서 수고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일 밥을 차리는 사람도, 매번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면 힘이 난다. 오래 함께 살다 보면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깨끗한 욕실과 개켜 놓은 빨래를 당연하게 여기기 쉽다. 그럴수록 잠깐 멈추어 누가 이 일을 했을지 생각해 보려 한다.

물론 고맙다는 말만으로 집안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말을 건넨 뒤에도 늘 같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부엌에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지칠 것이다. 나도 한동안 집안일을 하면서 도와준다는 표현을 썼다. 함께 사는 집인데도 다른 사람의 일을 거든다고 생각했던 셈이다. 이제는 무엇을 할지 묻기 전에 쌓인 그릇과 가득 찬 휴지통을 살펴본다.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이려 한다.

가족이 달라지는 모습을 받아들이는 일도 쉽지 않다. 아이는 자라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고, 부모는 나이가 들며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한다. 씩씩하던 사람이 작은 일을 걱정하고, 내 의견을 따르던 사람이 다른 길을 고른다. 나는 가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을 입에 올리려다 멈춘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지금 마음까지 모두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느려진 걸음을 따라 걷다가 마음이 급해진 적이 있다. 조금만 서두르면 신호를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곁을 돌아보니 부모는 발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나는 신호등을 보고 있었지만 부모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며 옷깃을 여며 드렸다. 오래전 내 짧은 보폭에 맞추어 걸어 주었을 시간을 생각하니 서두르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 걱정도 없고 누구도 아프지 않으며 모든 관계가 평온한 날을 기다린다면, 행복하다고 느낄 날은 많지 않을 것이다. 걱정이 있는 저녁에도 따뜻한 국을 나누어 먹을 수 있고, 서운한 마음이 남아 있어도 상대의 젖은 옷을 널어 줄 수 있다. 나는 그런 행동을 보며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곤 했다.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 있더라도 서로를 보살피려는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우리 집이 얼마나 행복한지 판단하기보다 가족의 하루를 살피려 한다. 누가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지, 누가 말을 줄였는지, 누가 자꾸 혼자 일을 마무리하는지 돌아본다. 언제나 제때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한참 뒤에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래도 늦었다는 이유로 묻지 않고 지나가지는 않으려 한다. 지난번에는 네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면, 멈췄던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톨스토이의 문장을 다시 읽으며 행복한 가정들의 닮은 모습을 생각한다. 사는 형편도 가족의 수도 다르겠지만, 그 집에서는 누군가의 수고가 오래 외면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 사람의 말수가 줄면 다른 사람이 이유를 묻고,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면 무엇이 서운했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일들을 거듭하며 가족은 힘든 날에도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닐까.

오늘 저녁에도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도 있고,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를 안고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우선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얼굴을 보며 하루가 어땠는지 물으려 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서둘러 대답을 준비하지 않고 끝까지 듣고 싶다. 식탁에 마주 앉으면 몸만 아니라 마음도 그 사람 쪽으로 돌리고 싶다. 그날 들려주지 못한 말이 있다면, 밥을 다 먹은 뒤에도 조금 더 앉아 있으려 한다.서로를 향해 돌아앉는 일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행복보다 불행이라는 말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행복한 집은 비슷하고 불행한 집은 다르다니, 사람 사는 모습을 그렇게 나눌 수 있을까 싶었다. 어느 집에나 말 못 할 사정 하나쯤은 있고, 웃음이 잦은 집에도 눈물을 삼키는 밤은 있을 터였다. 그때의 나는 이 문장의 뜻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채 기억해 두었다. 살다 보면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문장을 떠올린 것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닦던 날이었다. 한 사람은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다른 사람은 물컵을 씻었다. 나는 식탁을 닦다가 바닥에 떨어진 밥알을 주웠다. 별다른 대화도 없었다. 누구도 일을 나누어 시키지 않았지만, 각자 눈에 보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행복한 가정이 서로 닮았다는 말은 이런 작은 배려를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가정이 닮았다는 것은 같은 크기의 집에 살거나 비슷한 음식을 먹는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침마다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집도 있고, 말없이 현관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 주는 집도 있다.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도 상대가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닮아 있다. 늦게 돌아올 사람의 밥을 남겨 두고, 지쳐 누운 사람 곁에서는 텔레비전 소리를 낮추는 일. 그런 행동에서 우리는 자신이 보살핌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

어린 시절에는 집이 저절로 따뜻해지는 줄 알았다. 겨울이면 방바닥에 온기가 돌고, 저녁이면 부엌에서 밥 냄새가 났다. 옷장에는 빨아 놓은 옷이 있었고, 감기에 걸리면 머리맡에 물 한 잔이 놓였다. 나는 그것들을 해가 뜨고 지는 일처럼 당연하게 여겼다. 누군가 먼저 일어나 쌀을 씻고, 찬물에 손을 담그고, 한밤중에도 잠을 깨 내 이마를 짚어 보았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헤아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밥을 먹을 때면 늘 비슷한 질문을 하셨다. 싱겁지는 않으냐, 더 먹겠느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 나는 그 물음들이 때로 귀찮았다. 배가 부르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학교 이야기를 물으면 별일 없었다는 말로 끝내곤 했다. 이제 생각하면 어머니는 반찬의 간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만 궁금하셨던 것이 아니다. 내가 하루를 잘 보냈는지, 혹시 혼자 속상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고 싶으셨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비슷한 말을 건넨다. 밥은 먹었는지, 춥지는 않은지, 오늘은 늦는지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이 짧으면 서운하다가도 어린 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을 어느새 내가 하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못했던 어머니처럼 나도 밥과 날씨를 빌려 안부를 묻는다. 그 물음에 담긴 마음을 상대가 알아주면 좋겠지만, 알아주기를 재촉하지는 않으려 한다.

물론 걱정하는 마음으로 건넨 말이 언제나 따뜻하게 들리는 것은 아니다. 늦게 들어오는 까닭을 물었다가 간섭한다는 대답을 듣기도 하고, 도와주려던 행동으로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한다. 오래 함께 살았으니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믿음 때문에 잘못 짚는 일도 생긴다. 예전에 좋아하던 음식이 이제는 입에 맞지 않을 수 있고, 평소에는 웃어넘기던 농담이 유난히 아픈 날도 있다.

나 역시 가족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대답한 적이 많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안다고 생각했다. 피곤하다는 말에는 일찍 자라고 했고, 걱정된다는 말에는 별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 뒤 상대가 입을 다물면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성급하게 해결책을 말하느라, 상대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를 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가족 한 사람이 그저 들어 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하려던 대답을 멈추었다. 상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방법을 찾았지만, 정작 그가 바라는 도움은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대답이 떠올라도 조금 더 기다리려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묻고 상대가 말을 이을 때까지 기다려 본다. 여전히 듣는 도중에 내 경험을 꺼내거나 충고부터 할 때가 있다. 그러다 상대의 표정이 달라지면 말을 멈춘다. 잘 듣는 일도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참는 연습이 필요했다.

나는 가족이 내 화를 받아 줄 것이라 믿고, 밖에서 참았던 짜증까지 집에서 쏟아 내곤 했다. 회사에서 받은 서운함을 식탁까지 가져왔고, 길에서 겪은 불쾌함 때문에 현관에서부터 날카롭게 대답했다. 가족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그 말들을 받아야 했다. 오래 곁에 있어 줄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정작 그 사람에게는 말을 가장 적게 골라 하고 있었다.

한번은 치워지지 않은 물건 하나 때문에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에는 물건을 제자리에 놓아 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곧 지난주와 지난달의 일이 따라 나왔다. 늘 그렇다는 말이 나왔고, 내 말을 한 번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말까지 보탰다. 상대도 그동안 참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눈앞의 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오래 묵은 서운함으로 서로를 몰아붙였다.

말다툼이 끝난 뒤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목이 말랐지만 거실에서 마주칠까 봐 물을 가지러 나가는 일조차 망설였다. 조금 전까지 함께 밥을 먹던 식탁이 낯설게 보였다. 방바닥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날 밤 나는 집에서 편히 쉬지 못했다.

사과는 다음 날 아침에야 했다. 어제는 내가 심하게 말했다고, 그 물건 때문에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상대는 곧바로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사과했으니 이제 풀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말을 꺼낼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듯, 상대에게도 내 사과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우리는 그날 저녁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기억하는 장면이 달랐고 서운했던 대목도 달랐다. 나는 내 말이 무시당했다고 느꼈지만, 상대는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데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서운함이 그날 한꺼번에 풀리지는 않았다. 다만 각자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전보다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말할지도 함께 생각해 보았다.

행복한 가정에도 이런 밤은 있을 것이다. 방문을 닫고 돌아서는 날도 있고, 같은 식탁에서 말없이 밥만 먹는 저녁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누군가 먼저 문을 두드리거나 아까는 미안했다고 말을 건넬 것이다. 잘라 놓은 과일 한 접시를 조심스럽게 내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일을 받았다고 서운함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할 계기는 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불행한 가정이 저마다 다르다는 말도 무겁게 다가온다. 어떤 집에는 생활의 어려움이 오래 머물고, 어떤 집에는 질병이 찾아온다. 누군가는 돌봄을 혼자 감당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낸다. 밖에서 보기에는 모두 말수가 적고 웃음이 줄어든 집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침묵이 시작된 사정과 그 안에서 견디는 어려움은 집집마다 다르다.

그래서 힘든 가정을 두고 마음가짐만 바꾸면 된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병원비를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위로와 함께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이 필요할 수 있다. 밤낮으로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에게는 대신 곁을 지켜 줄 사람이 절실하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너무 지쳐 다정하게 말할 여유를 잃는 날이 있다. 그런 사정을 헤아리지 않은 채 사랑이 부족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때 나는 다른 집의 모습을 쉽게 부러워했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이는 집, 주말마다 여행을 가는 집, 생일마다 꽃다발을 주고받는 집이 좋아 보였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찾아내는 데에는 익숙했지만, 우리가 함께 누리고 있는 일은 자주 잊었다. 사진 속 가족들이 환하게 웃고 있으면 그 집에는 늘 웃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진 밖에서 그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는 알지 못하면서.

우리 가족의 나들이는 종종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기도 했고, 식당 앞에서 오래 기다리다가 서로 말수가 줄기도 했다. 모처럼 나왔는데 왜 이러느냐는 말이 나오면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떠오르는 것은 엉뚱하게 들어선 골목의 빵집이나 차 안에서 나누어 먹던 귤이다. 당시에는 망쳤다고 여긴 하루에도 함께 웃었던 순간이 남아 있었다.

가족을 떠올릴 때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도 대개 작은 일들이다. 비가 오던 날 정류장으로 가져온 우산, 늦게 돌아왔을 때 냄비에 남겨 둔 국, 중요한 일을 앞둔 아침에 건넨 짧은 응원이 그렇다. 당시에는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누군가는 내 귀가 시간을 생각하며 기다렸고,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골랐다. 내가 무심히 지나친 순간에도 가족은 나를 살피고 있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현관에 놓인 신발이 생각난다.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는 가족의 신발이 닳으면 굽을 살펴보곤 하셨다. 어느 날에는 수선을 맡겨 두었다며 찾아오라고 하셨고, 비가 온 다음 날에는 젖은 신발 안에 신문지가 들어 있었다. 그때는 그런 손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제 젖은 신발을 말리려고 신문지를 구겨 넣다 보면, 현관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등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지난 시간이 모두 따뜻했던 것은 아니다. 이해받지 못해 서러웠던 날도 있고, 지금 떠올려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말도 있다. 고마운 기억이 있다고 해서 아팠던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가족에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좋았던 일만 남겨 두려고도, 서운했던 일로 지난날 전부를 판단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두 기억 모두 내가 함께 살아온 시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에도 지켜야 할 거리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운다. 모든 생각을 털어놓아야만 친한 것은 아니며,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이 곧 가족을 밀어내는 뜻도 아니다. 방문이 닫혀 있으면 두드리고,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기다릴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가족의 고민을 당장 알아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상대가 스스로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곁에 있는 방법임을 안다.

우리는 때로 가족이 말하지 않은 바람까지 알아주기를 기대한다. 내 표정만 보고 피곤한 줄 알고, 한숨만 듣고 무엇이 서운한지 짐작해 주기를 바란다. 나도 그런 기대 때문에 혼자 실망한 적이 많다. 요즘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려 한다. 오늘은 지쳤으니 설거지를 맡아 달라거나, 잠시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보다 말로 전할 때 오해가 줄어든다.

고맙다는 말도 아끼지 않으려 한다. 늘 하는 일이라고 해서 수고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일 밥을 차리는 사람도, 매번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면 힘이 난다. 오래 함께 살다 보면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깨끗한 욕실과 개켜 놓은 빨래를 당연하게 여기기 쉽다. 그럴수록 잠깐 멈추어 누가 이 일을 했을지 생각해 보려 한다.

물론 고맙다는 말만으로 집안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말을 건넨 뒤에도 늘 같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부엌에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지칠 것이다. 나도 한동안 집안일을 하면서 도와준다는 표현을 썼다. 함께 사는 집인데도 다른 사람의 일을 거든다고 생각했던 셈이다. 이제는 무엇을 할지 묻기 전에 쌓인 그릇과 가득 찬 휴지통을 살펴본다.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이려 한다.

가족이 달라지는 모습을 받아들이는 일도 쉽지 않다. 아이는 자라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고, 부모는 나이가 들며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한다. 씩씩하던 사람이 작은 일을 걱정하고, 내 의견을 따르던 사람이 다른 길을 고른다. 나는 가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을 입에 올리려다 멈춘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지금 마음까지 모두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느려진 걸음을 따라 걷다가 마음이 급해진 적이 있다. 조금만 서두르면 신호를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곁을 돌아보니 부모는 발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나는 신호등을 보고 있었지만 부모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며 옷깃을 여며 드렸다. 오래전 내 짧은 보폭에 맞추어 걸어 주었을 시간을 생각하니 서두르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 걱정도 없고 누구도 아프지 않으며 모든 관계가 평온한 날을 기다린다면, 행복하다고 느낄 날은 많지 않을 것이다. 걱정이 있는 저녁에도 따뜻한 국을 나누어 먹을 수 있고, 서운한 마음이 남아 있어도 상대의 젖은 옷을 널어 줄 수 있다. 나는 그런 행동을 보며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곤 했다.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 있더라도 서로를 보살피려는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우리 집이 얼마나 행복한지 판단하기보다 가족의 하루를 살피려 한다. 누가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지, 누가 말을 줄였는지, 누가 자꾸 혼자 일을 마무리하는지 돌아본다. 언제나 제때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한참 뒤에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래도 늦었다는 이유로 묻지 않고 지나가지는 않으려 한다. 지난번에는 네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면, 멈췄던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톨스토이의 문장을 다시 읽으며 행복한 가정들의 닮은 모습을 생각한다. 사는 형편도 가족의 수도 다르겠지만, 그 집에서는 누군가의 수고가 오래 외면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 사람의 말수가 줄면 다른 사람이 이유를 묻고,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면 무엇이 서운했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일들을 거듭하며 가족은 힘든 날에도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닐까.

오늘 저녁에도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도 있고,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를 안고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우선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얼굴을 보며 하루가 어땠는지 물으려 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서둘러 대답을 준비하지 않고 끝까지 듣고 싶다. 식탁에 마주 앉으면 몸만 아니라 마음도 그 사람 쪽으로 돌리고 싶다. 그날 들려주지 못한 말이 있다면, 밥을 다 먹은 뒤에도 조금 더 앉아 있으려 한다.서로를 향해 돌아앉는 일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행복보다 불행이라는 말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행복한 집은 비슷하고 불행한 집은 다르다니, 사람 사는 모습을 그렇게 나눌 수 있을까 싶었다. 어느 집에나 말 못 할 사정 하나쯤은 있고, 웃음이 잦은 집에도 눈물을 삼키는 밤은 있을 터였다. 그때의 나는 이 문장의 뜻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채 기억해 두었다. 살다 보면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문장을 떠올린 것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닦던 날이었다. 한 사람은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다른 사람은 물컵을 씻었다. 나는 식탁을 닦다가 바닥에 떨어진 밥알을 주웠다. 별다른 대화도 없었다. 누구도 일을 나누어 시키지 않았지만, 각자 눈에 보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행복한 가정이 서로 닮았다는 말은 이런 작은 배려를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가정이 닮았다는 것은 같은 크기의 집에 살거나 비슷한 음식을 먹는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침마다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집도 있고, 말없이 현관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 주는 집도 있다.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도 상대가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닮아 있다. 늦게 돌아올 사람의 밥을 남겨 두고, 지쳐 누운 사람 곁에서는 텔레비전 소리를 낮추는 일. 그런 행동에서 우리는 자신이 보살핌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

어린 시절에는 집이 저절로 따뜻해지는 줄 알았다. 겨울이면 방바닥에 온기가 돌고, 저녁이면 부엌에서 밥 냄새가 났다. 옷장에는 빨아 놓은 옷이 있었고, 감기에 걸리면 머리맡에 물 한 잔이 놓였다. 나는 그것들을 해가 뜨고 지는 일처럼 당연하게 여겼다. 누군가 먼저 일어나 쌀을 씻고, 찬물에 손을 담그고, 한밤중에도 잠을 깨 내 이마를 짚어 보았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헤아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밥을 먹을 때면 늘 비슷한 질문을 하셨다. 싱겁지는 않으냐, 더 먹겠느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 나는 그 물음들이 때로 귀찮았다. 배가 부르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학교 이야기를 물으면 별일 없었다는 말로 끝내곤 했다. 이제 생각하면 어머니는 반찬의 간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만 궁금하셨던 것이 아니다. 내가 하루를 잘 보냈는지, 혹시 혼자 속상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고 싶으셨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비슷한 말을 건넨다. 밥은 먹었는지, 춥지는 않은지, 오늘은 늦는지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이 짧으면 서운하다가도 어린 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을 어느새 내가 하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못했던 어머니처럼 나도 밥과 날씨를 빌려 안부를 묻는다. 그 물음에 담긴 마음을 상대가 알아주면 좋겠지만, 알아주기를 재촉하지는 않으려 한다.

물론 걱정하는 마음으로 건넨 말이 언제나 따뜻하게 들리는 것은 아니다. 늦게 들어오는 까닭을 물었다가 간섭한다는 대답을 듣기도 하고, 도와주려던 행동으로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한다. 오래 함께 살았으니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믿음 때문에 잘못 짚는 일도 생긴다. 예전에 좋아하던 음식이 이제는 입에 맞지 않을 수 있고, 평소에는 웃어넘기던 농담이 유난히 아픈 날도 있다.

나 역시 가족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대답한 적이 많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안다고 생각했다. 피곤하다는 말에는 일찍 자라고 했고, 걱정된다는 말에는 별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 뒤 상대가 입을 다물면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성급하게 해결책을 말하느라, 상대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를 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가족 한 사람이 그저 들어 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하려던 대답을 멈추었다. 상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방법을 찾았지만, 정작 그가 바라는 도움은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대답이 떠올라도 조금 더 기다리려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묻고 상대가 말을 이을 때까지 기다려 본다. 여전히 듣는 도중에 내 경험을 꺼내거나 충고부터 할 때가 있다. 그러다 상대의 표정이 달라지면 말을 멈춘다. 잘 듣는 일도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참는 연습이 필요했다.

나는 가족이 내 화를 받아 줄 것이라 믿고, 밖에서 참았던 짜증까지 집에서 쏟아 내곤 했다. 회사에서 받은 서운함을 식탁까지 가져왔고, 길에서 겪은 불쾌함 때문에 현관에서부터 날카롭게 대답했다. 가족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그 말들을 받아야 했다. 오래 곁에 있어 줄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정작 그 사람에게는 말을 가장 적게 골라 하고 있었다.

한번은 치워지지 않은 물건 하나 때문에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에는 물건을 제자리에 놓아 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곧 지난주와 지난달의 일이 따라 나왔다. 늘 그렇다는 말이 나왔고, 내 말을 한 번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말까지 보탰다. 상대도 그동안 참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눈앞의 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오래 묵은 서운함으로 서로를 몰아붙였다.

말다툼이 끝난 뒤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목이 말랐지만 거실에서 마주칠까 봐 물을 가지러 나가는 일조차 망설였다. 조금 전까지 함께 밥을 먹던 식탁이 낯설게 보였다. 방바닥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날 밤 나는 집에서 편히 쉬지 못했다.

사과는 다음 날 아침에야 했다. 어제는 내가 심하게 말했다고, 그 물건 때문에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상대는 곧바로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사과했으니 이제 풀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말을 꺼낼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듯, 상대에게도 내 사과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우리는 그날 저녁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기억하는 장면이 달랐고 서운했던 대목도 달랐다. 나는 내 말이 무시당했다고 느꼈지만, 상대는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데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서운함이 그날 한꺼번에 풀리지는 않았다. 다만 각자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전보다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말할지도 함께 생각해 보았다.

행복한 가정에도 이런 밤은 있을 것이다. 방문을 닫고 돌아서는 날도 있고, 같은 식탁에서 말없이 밥만 먹는 저녁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누군가 먼저 문을 두드리거나 아까는 미안했다고 말을 건넬 것이다. 잘라 놓은 과일 한 접시를 조심스럽게 내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일을 받았다고 서운함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할 계기는 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불행한 가정이 저마다 다르다는 말도 무겁게 다가온다. 어떤 집에는 생활의 어려움이 오래 머물고, 어떤 집에는 질병이 찾아온다. 누군가는 돌봄을 혼자 감당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낸다. 밖에서 보기에는 모두 말수가 적고 웃음이 줄어든 집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침묵이 시작된 사정과 그 안에서 견디는 어려움은 집집마다 다르다.

그래서 힘든 가정을 두고 마음가짐만 바꾸면 된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병원비를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위로와 함께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이 필요할 수 있다. 밤낮으로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에게는 대신 곁을 지켜 줄 사람이 절실하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너무 지쳐 다정하게 말할 여유를 잃는 날이 있다. 그런 사정을 헤아리지 않은 채 사랑이 부족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때 나는 다른 집의 모습을 쉽게 부러워했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이는 집, 주말마다 여행을 가는 집, 생일마다 꽃다발을 주고받는 집이 좋아 보였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찾아내는 데에는 익숙했지만, 우리가 함께 누리고 있는 일은 자주 잊었다. 사진 속 가족들이 환하게 웃고 있으면 그 집에는 늘 웃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진 밖에서 그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는 알지 못하면서.

우리 가족의 나들이는 종종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기도 했고, 식당 앞에서 오래 기다리다가 서로 말수가 줄기도 했다. 모처럼 나왔는데 왜 이러느냐는 말이 나오면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떠오르는 것은 엉뚱하게 들어선 골목의 빵집이나 차 안에서 나누어 먹던 귤이다. 당시에는 망쳤다고 여긴 하루에도 함께 웃었던 순간이 남아 있었다.

가족을 떠올릴 때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도 대개 작은 일들이다. 비가 오던 날 정류장으로 가져온 우산, 늦게 돌아왔을 때 냄비에 남겨 둔 국, 중요한 일을 앞둔 아침에 건넨 짧은 응원이 그렇다. 당시에는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누군가는 내 귀가 시간을 생각하며 기다렸고,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골랐다. 내가 무심히 지나친 순간에도 가족은 나를 살피고 있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현관에 놓인 신발이 생각난다.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는 가족의 신발이 닳으면 굽을 살펴보곤 하셨다. 어느 날에는 수선을 맡겨 두었다며 찾아오라고 하셨고, 비가 온 다음 날에는 젖은 신발 안에 신문지가 들어 있었다. 그때는 그런 손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제 젖은 신발을 말리려고 신문지를 구겨 넣다 보면, 현관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등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지난 시간이 모두 따뜻했던 것은 아니다. 이해받지 못해 서러웠던 날도 있고, 지금 떠올려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말도 있다. 고마운 기억이 있다고 해서 아팠던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가족에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좋았던 일만 남겨 두려고도, 서운했던 일로 지난날 전부를 판단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두 기억 모두 내가 함께 살아온 시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에도 지켜야 할 거리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운다. 모든 생각을 털어놓아야만 친한 것은 아니며,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이 곧 가족을 밀어내는 뜻도 아니다. 방문이 닫혀 있으면 두드리고,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기다릴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가족의 고민을 당장 알아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상대가 스스로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곁에 있는 방법임을 안다.

우리는 때로 가족이 말하지 않은 바람까지 알아주기를 기대한다. 내 표정만 보고 피곤한 줄 알고, 한숨만 듣고 무엇이 서운한지 짐작해 주기를 바란다. 나도 그런 기대 때문에 혼자 실망한 적이 많다. 요즘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려 한다. 오늘은 지쳤으니 설거지를 맡아 달라거나, 잠시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보다 말로 전할 때 오해가 줄어든다.

고맙다는 말도 아끼지 않으려 한다. 늘 하는 일이라고 해서 수고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일 밥을 차리는 사람도, 매번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면 힘이 난다. 오래 함께 살다 보면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깨끗한 욕실과 개켜 놓은 빨래를 당연하게 여기기 쉽다. 그럴수록 잠깐 멈추어 누가 이 일을 했을지 생각해 보려 한다.

물론 고맙다는 말만으로 집안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말을 건넨 뒤에도 늘 같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부엌에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지칠 것이다. 나도 한동안 집안일을 하면서 도와준다는 표현을 썼다. 함께 사는 집인데도 다른 사람의 일을 거든다고 생각했던 셈이다. 이제는 무엇을 할지 묻기 전에 쌓인 그릇과 가득 찬 휴지통을 살펴본다.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이려 한다.

가족이 달라지는 모습을 받아들이는 일도 쉽지 않다. 아이는 자라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고, 부모는 나이가 들며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한다. 씩씩하던 사람이 작은 일을 걱정하고, 내 의견을 따르던 사람이 다른 길을 고른다. 나는 가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을 입에 올리려다 멈춘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지금 마음까지 모두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느려진 걸음을 따라 걷다가 마음이 급해진 적이 있다. 조금만 서두르면 신호를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곁을 돌아보니 부모는 발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나는 신호등을 보고 있었지만 부모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며 옷깃을 여며 드렸다. 오래전 내 짧은 보폭에 맞추어 걸어 주었을 시간을 생각하니 서두르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 걱정도 없고 누구도 아프지 않으며 모든 관계가 평온한 날을 기다린다면, 행복하다고 느낄 날은 많지 않을 것이다. 걱정이 있는 저녁에도 따뜻한 국을 나누어 먹을 수 있고, 서운한 마음이 남아 있어도 상대의 젖은 옷을 널어 줄 수 있다. 나는 그런 행동을 보며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곤 했다.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 있더라도 서로를 보살피려는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우리 집이 얼마나 행복한지 판단하기보다 가족의 하루를 살피려 한다. 누가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지, 누가 말을 줄였는지, 누가 자꾸 혼자 일을 마무리하는지 돌아본다. 언제나 제때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한참 뒤에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래도 늦었다는 이유로 묻지 않고 지나가지는 않으려 한다. 지난번에는 네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면, 멈췄던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톨스토이의 문장을 다시 읽으며 행복한 가정들의 닮은 모습을 생각한다. 사는 형편도 가족의 수도 다르겠지만, 그 집에서는 누군가의 수고가 오래 외면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 사람의 말수가 줄면 다른 사람이 이유를 묻고,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면 무엇이 서운했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일들을 거듭하며 가족은 힘든 날에도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닐까.

오늘 저녁에도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도 있고,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를 안고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우선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얼굴을 보며 하루가 어땠는지 물으려 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서둘러 대답을 준비하지 않고 끝까지 듣고 싶다. 식탁에 마주 앉으면 몸만 아니라 마음도 그 사람 쪽으로 돌리고 싶다. 그날 들려주지 못한 말이 있다면, 밥을 다 먹은 뒤에도 조금 더 앉아 있으려 한다.서로를 향해 돌아앉는 일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행복보다 불행이라는 말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행복한 집은 비슷하고 불행한 집은 다르다니, 사람 사는 모습을 그렇게 나눌 수 있을까 싶었다. 어느 집에나 말 못 할 사정 하나쯤은 있고, 웃음이 잦은 집에도 눈물을 삼키는 밤은 있을 터였다. 그때의 나는 이 문장의 뜻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채 기억해 두었다. 살다 보면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문장을 떠올린 것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닦던 날이었다. 한 사람은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다른 사람은 물컵을 씻었다. 나는 식탁을 닦다가 바닥에 떨어진 밥알을 주웠다. 별다른 대화도 없었다. 누구도 일을 나누어 시키지 않았지만, 각자 눈에 보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행복한 가정이 서로 닮았다는 말은 이런 작은 배려를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가정이 닮았다는 것은 같은 크기의 집에 살거나 비슷한 음식을 먹는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침마다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집도 있고, 말없이 현관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 주는 집도 있다.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도 상대가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닮아 있다. 늦게 돌아올 사람의 밥을 남겨 두고, 지쳐 누운 사람 곁에서는 텔레비전 소리를 낮추는 일. 그런 행동에서 우리는 자신이 보살핌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

어린 시절에는 집이 저절로 따뜻해지는 줄 알았다. 겨울이면 방바닥에 온기가 돌고, 저녁이면 부엌에서 밥 냄새가 났다. 옷장에는 빨아 놓은 옷이 있었고, 감기에 걸리면 머리맡에 물 한 잔이 놓였다. 나는 그것들을 해가 뜨고 지는 일처럼 당연하게 여겼다. 누군가 먼저 일어나 쌀을 씻고, 찬물에 손을 담그고, 한밤중에도 잠을 깨 내 이마를 짚어 보았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헤아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밥을 먹을 때면 늘 비슷한 질문을 하셨다. 싱겁지는 않으냐, 더 먹겠느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 나는 그 물음들이 때로 귀찮았다. 배가 부르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학교 이야기를 물으면 별일 없었다는 말로 끝내곤 했다. 이제 생각하면 어머니는 반찬의 간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만 궁금하셨던 것이 아니다. 내가 하루를 잘 보냈는지, 혹시 혼자 속상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고 싶으셨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비슷한 말을 건넨다. 밥은 먹었는지, 춥지는 않은지, 오늘은 늦는지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이 짧으면 서운하다가도 어린 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을 어느새 내가 하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못했던 어머니처럼 나도 밥과 날씨를 빌려 안부를 묻는다. 그 물음에 담긴 마음을 상대가 알아주면 좋겠지만, 알아주기를 재촉하지는 않으려 한다.

물론 걱정하는 마음으로 건넨 말이 언제나 따뜻하게 들리는 것은 아니다. 늦게 들어오는 까닭을 물었다가 간섭한다는 대답을 듣기도 하고, 도와주려던 행동으로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한다. 오래 함께 살았으니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믿음 때문에 잘못 짚는 일도 생긴다. 예전에 좋아하던 음식이 이제는 입에 맞지 않을 수 있고, 평소에는 웃어넘기던 농담이 유난히 아픈 날도 있다.

나 역시 가족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대답한 적이 많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안다고 생각했다. 피곤하다는 말에는 일찍 자라고 했고, 걱정된다는 말에는 별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 뒤 상대가 입을 다물면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성급하게 해결책을 말하느라, 상대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를 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가족 한 사람이 그저 들어 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하려던 대답을 멈추었다. 상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방법을 찾았지만, 정작 그가 바라는 도움은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대답이 떠올라도 조금 더 기다리려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묻고 상대가 말을 이을 때까지 기다려 본다. 여전히 듣는 도중에 내 경험을 꺼내거나 충고부터 할 때가 있다. 그러다 상대의 표정이 달라지면 말을 멈춘다. 잘 듣는 일도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참는 연습이 필요했다.

나는 가족이 내 화를 받아 줄 것이라 믿고, 밖에서 참았던 짜증까지 집에서 쏟아 내곤 했다. 회사에서 받은 서운함을 식탁까지 가져왔고, 길에서 겪은 불쾌함 때문에 현관에서부터 날카롭게 대답했다. 가족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그 말들을 받아야 했다. 오래 곁에 있어 줄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정작 그 사람에게는 말을 가장 적게 골라 하고 있었다.

한번은 치워지지 않은 물건 하나 때문에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에는 물건을 제자리에 놓아 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곧 지난주와 지난달의 일이 따라 나왔다. 늘 그렇다는 말이 나왔고, 내 말을 한 번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말까지 보탰다. 상대도 그동안 참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눈앞의 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오래 묵은 서운함으로 서로를 몰아붙였다.

말다툼이 끝난 뒤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목이 말랐지만 거실에서 마주칠까 봐 물을 가지러 나가는 일조차 망설였다. 조금 전까지 함께 밥을 먹던 식탁이 낯설게 보였다. 방바닥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날 밤 나는 집에서 편히 쉬지 못했다.

사과는 다음 날 아침에야 했다. 어제는 내가 심하게 말했다고, 그 물건 때문에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상대는 곧바로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사과했으니 이제 풀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말을 꺼낼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듯, 상대에게도 내 사과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우리는 그날 저녁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기억하는 장면이 달랐고 서운했던 대목도 달랐다. 나는 내 말이 무시당했다고 느꼈지만, 상대는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데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서운함이 그날 한꺼번에 풀리지는 않았다. 다만 각자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전보다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말할지도 함께 생각해 보았다.

행복한 가정에도 이런 밤은 있을 것이다. 방문을 닫고 돌아서는 날도 있고, 같은 식탁에서 말없이 밥만 먹는 저녁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누군가 먼저 문을 두드리거나 아까는 미안했다고 말을 건넬 것이다. 잘라 놓은 과일 한 접시를 조심스럽게 내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일을 받았다고 서운함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할 계기는 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불행한 가정이 저마다 다르다는 말도 무겁게 다가온다. 어떤 집에는 생활의 어려움이 오래 머물고, 어떤 집에는 질병이 찾아온다. 누군가는 돌봄을 혼자 감당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낸다. 밖에서 보기에는 모두 말수가 적고 웃음이 줄어든 집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침묵이 시작된 사정과 그 안에서 견디는 어려움은 집집마다 다르다.

그래서 힘든 가정을 두고 마음가짐만 바꾸면 된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병원비를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위로와 함께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이 필요할 수 있다. 밤낮으로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에게는 대신 곁을 지켜 줄 사람이 절실하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너무 지쳐 다정하게 말할 여유를 잃는 날이 있다. 그런 사정을 헤아리지 않은 채 사랑이 부족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때 나는 다른 집의 모습을 쉽게 부러워했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이는 집, 주말마다 여행을 가는 집, 생일마다 꽃다발을 주고받는 집이 좋아 보였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찾아내는 데에는 익숙했지만, 우리가 함께 누리고 있는 일은 자주 잊었다. 사진 속 가족들이 환하게 웃고 있으면 그 집에는 늘 웃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진 밖에서 그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는 알지 못하면서.

우리 가족의 나들이는 종종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기도 했고, 식당 앞에서 오래 기다리다가 서로 말수가 줄기도 했다. 모처럼 나왔는데 왜 이러느냐는 말이 나오면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떠오르는 것은 엉뚱하게 들어선 골목의 빵집이나 차 안에서 나누어 먹던 귤이다. 당시에는 망쳤다고 여긴 하루에도 함께 웃었던 순간이 남아 있었다.

가족을 떠올릴 때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도 대개 작은 일들이다. 비가 오던 날 정류장으로 가져온 우산, 늦게 돌아왔을 때 냄비에 남겨 둔 국, 중요한 일을 앞둔 아침에 건넨 짧은 응원이 그렇다. 당시에는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누군가는 내 귀가 시간을 생각하며 기다렸고,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골랐다. 내가 무심히 지나친 순간에도 가족은 나를 살피고 있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현관에 놓인 신발이 생각난다.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는 가족의 신발이 닳으면 굽을 살펴보곤 하셨다. 어느 날에는 수선을 맡겨 두었다며 찾아오라고 하셨고, 비가 온 다음 날에는 젖은 신발 안에 신문지가 들어 있었다. 그때는 그런 손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제 젖은 신발을 말리려고 신문지를 구겨 넣다 보면, 현관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등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지난 시간이 모두 따뜻했던 것은 아니다. 이해받지 못해 서러웠던 날도 있고, 지금 떠올려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말도 있다. 고마운 기억이 있다고 해서 아팠던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가족에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좋았던 일만 남겨 두려고도, 서운했던 일로 지난날 전부를 판단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두 기억 모두 내가 함께 살아온 시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에도 지켜야 할 거리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운다. 모든 생각을 털어놓아야만 친한 것은 아니며,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이 곧 가족을 밀어내는 뜻도 아니다. 방문이 닫혀 있으면 두드리고,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기다릴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가족의 고민을 당장 알아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상대가 스스로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곁에 있는 방법임을 안다.

우리는 때로 가족이 말하지 않은 바람까지 알아주기를 기대한다. 내 표정만 보고 피곤한 줄 알고, 한숨만 듣고 무엇이 서운한지 짐작해 주기를 바란다. 나도 그런 기대 때문에 혼자 실망한 적이 많다. 요즘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려 한다. 오늘은 지쳤으니 설거지를 맡아 달라거나, 잠시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보다 말로 전할 때 오해가 줄어든다.

고맙다는 말도 아끼지 않으려 한다. 늘 하는 일이라고 해서 수고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일 밥을 차리는 사람도, 매번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면 힘이 난다. 오래 함께 살다 보면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깨끗한 욕실과 개켜 놓은 빨래를 당연하게 여기기 쉽다. 그럴수록 잠깐 멈추어 누가 이 일을 했을지 생각해 보려 한다.

물론 고맙다는 말만으로 집안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말을 건넨 뒤에도 늘 같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부엌에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지칠 것이다. 나도 한동안 집안일을 하면서 도와준다는 표현을 썼다. 함께 사는 집인데도 다른 사람의 일을 거든다고 생각했던 셈이다. 이제는 무엇을 할지 묻기 전에 쌓인 그릇과 가득 찬 휴지통을 살펴본다.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이려 한다.

가족이 달라지는 모습을 받아들이는 일도 쉽지 않다. 아이는 자라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고, 부모는 나이가 들며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한다. 씩씩하던 사람이 작은 일을 걱정하고, 내 의견을 따르던 사람이 다른 길을 고른다. 나는 가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을 입에 올리려다 멈춘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지금 마음까지 모두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느려진 걸음을 따라 걷다가 마음이 급해진 적이 있다. 조금만 서두르면 신호를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곁을 돌아보니 부모는 발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나는 신호등을 보고 있었지만 부모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며 옷깃을 여며 드렸다. 오래전 내 짧은 보폭에 맞추어 걸어 주었을 시간을 생각하니 서두르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 걱정도 없고 누구도 아프지 않으며 모든 관계가 평온한 날을 기다린다면, 행복하다고 느낄 날은 많지 않을 것이다. 걱정이 있는 저녁에도 따뜻한 국을 나누어 먹을 수 있고, 서운한 마음이 남아 있어도 상대의 젖은 옷을 널어 줄 수 있다. 나는 그런 행동을 보며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곤 했다.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 있더라도 서로를 보살피려는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우리 집이 얼마나 행복한지 판단하기보다 가족의 하루를 살피려 한다. 누가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지, 누가 말을 줄였는지, 누가 자꾸 혼자 일을 마무리하는지 돌아본다. 언제나 제때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한참 뒤에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래도 늦었다는 이유로 묻지 않고 지나가지는 않으려 한다. 지난번에는 네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면, 멈췄던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톨스토이의 문장을 다시 읽으며 행복한 가정들의 닮은 모습을 생각한다. 사는 형편도 가족의 수도 다르겠지만, 그 집에서는 누군가의 수고가 오래 외면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 사람의 말수가 줄면 다른 사람이 이유를 묻고,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면 무엇이 서운했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일들을 거듭하며 가족은 힘든 날에도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닐까.

오늘 저녁에도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도 있고,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를 안고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우선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얼굴을 보며 하루가 어땠는지 물으려 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서둘러 대답을 준비하지 않고 끝까지 듣고 싶다. 식탁에 마주 앉으면 몸만 아니라 마음도 그 사람 쪽으로 돌리고 싶다. 그날 들려주지 못한 말이 있다면, 밥을 다 먹은 뒤에도 조금 더 앉아 있으려 한다.서로를 향해 돌아앉는 일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행복보다 불행이라는 말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행복한 집은 비슷하고 불행한 집은 다르다니, 사람 사는 모습을 그렇게 나눌 수 있을까 싶었다. 어느 집에나 말 못 할 사정 하나쯤은 있고, 웃음이 잦은 집에도 눈물을 삼키는 밤은 있을 터였다. 그때의 나는 이 문장의 뜻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채 기억해 두었다. 살다 보면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문장을 떠올린 것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닦던 날이었다. 한 사람은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다른 사람은 물컵을 씻었다. 나는 식탁을 닦다가 바닥에 떨어진 밥알을 주웠다. 별다른 대화도 없었다. 누구도 일을 나누어 시키지 않았지만, 각자 눈에 보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행복한 가정이 서로 닮았다는 말은 이런 작은 배려를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가정이 닮았다는 것은 같은 크기의 집에 살거나 비슷한 음식을 먹는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침마다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집도 있고, 말없이 현관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 주는 집도 있다.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도 상대가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닮아 있다. 늦게 돌아올 사람의 밥을 남겨 두고, 지쳐 누운 사람 곁에서는 텔레비전 소리를 낮추는 일. 그런 행동에서 우리는 자신이 보살핌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

어린 시절에는 집이 저절로 따뜻해지는 줄 알았다. 겨울이면 방바닥에 온기가 돌고, 저녁이면 부엌에서 밥 냄새가 났다. 옷장에는 빨아 놓은 옷이 있었고, 감기에 걸리면 머리맡에 물 한 잔이 놓였다. 나는 그것들을 해가 뜨고 지는 일처럼 당연하게 여겼다. 누군가 먼저 일어나 쌀을 씻고, 찬물에 손을 담그고, 한밤중에도 잠을 깨 내 이마를 짚어 보았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헤아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밥을 먹을 때면 늘 비슷한 질문을 하셨다. 싱겁지는 않으냐, 더 먹겠느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 나는 그 물음들이 때로 귀찮았다. 배가 부르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학교 이야기를 물으면 별일 없었다는 말로 끝내곤 했다. 이제 생각하면 어머니는 반찬의 간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만 궁금하셨던 것이 아니다. 내가 하루를 잘 보냈는지, 혹시 혼자 속상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고 싶으셨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비슷한 말을 건넨다. 밥은 먹었는지, 춥지는 않은지, 오늘은 늦는지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이 짧으면 서운하다가도 어린 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을 어느새 내가 하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못했던 어머니처럼 나도 밥과 날씨를 빌려 안부를 묻는다. 그 물음에 담긴 마음을 상대가 알아주면 좋겠지만, 알아주기를 재촉하지는 않으려 한다.

물론 걱정하는 마음으로 건넨 말이 언제나 따뜻하게 들리는 것은 아니다. 늦게 들어오는 까닭을 물었다가 간섭한다는 대답을 듣기도 하고, 도와주려던 행동으로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한다. 오래 함께 살았으니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믿음 때문에 잘못 짚는 일도 생긴다. 예전에 좋아하던 음식이 이제는 입에 맞지 않을 수 있고, 평소에는 웃어넘기던 농담이 유난히 아픈 날도 있다.

나 역시 가족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대답한 적이 많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안다고 생각했다. 피곤하다는 말에는 일찍 자라고 했고, 걱정된다는 말에는 별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 뒤 상대가 입을 다물면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성급하게 해결책을 말하느라, 상대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를 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가족 한 사람이 그저 들어 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하려던 대답을 멈추었다. 상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방법을 찾았지만, 정작 그가 바라는 도움은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대답이 떠올라도 조금 더 기다리려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묻고 상대가 말을 이을 때까지 기다려 본다. 여전히 듣는 도중에 내 경험을 꺼내거나 충고부터 할 때가 있다. 그러다 상대의 표정이 달라지면 말을 멈춘다. 잘 듣는 일도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참는 연습이 필요했다.

나는 가족이 내 화를 받아 줄 것이라 믿고, 밖에서 참았던 짜증까지 집에서 쏟아 내곤 했다. 회사에서 받은 서운함을 식탁까지 가져왔고, 길에서 겪은 불쾌함 때문에 현관에서부터 날카롭게 대답했다. 가족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그 말들을 받아야 했다. 오래 곁에 있어 줄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정작 그 사람에게는 말을 가장 적게 골라 하고 있었다.

한번은 치워지지 않은 물건 하나 때문에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에는 물건을 제자리에 놓아 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곧 지난주와 지난달의 일이 따라 나왔다. 늘 그렇다는 말이 나왔고, 내 말을 한 번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말까지 보탰다. 상대도 그동안 참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눈앞의 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오래 묵은 서운함으로 서로를 몰아붙였다.

말다툼이 끝난 뒤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목이 말랐지만 거실에서 마주칠까 봐 물을 가지러 나가는 일조차 망설였다. 조금 전까지 함께 밥을 먹던 식탁이 낯설게 보였다. 방바닥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날 밤 나는 집에서 편히 쉬지 못했다.

사과는 다음 날 아침에야 했다. 어제는 내가 심하게 말했다고, 그 물건 때문에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상대는 곧바로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사과했으니 이제 풀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말을 꺼낼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듯, 상대에게도 내 사과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우리는 그날 저녁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기억하는 장면이 달랐고 서운했던 대목도 달랐다. 나는 내 말이 무시당했다고 느꼈지만, 상대는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데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서운함이 그날 한꺼번에 풀리지는 않았다. 다만 각자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전보다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말할지도 함께 생각해 보았다.

행복한 가정에도 이런 밤은 있을 것이다. 방문을 닫고 돌아서는 날도 있고, 같은 식탁에서 말없이 밥만 먹는 저녁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누군가 먼저 문을 두드리거나 아까는 미안했다고 말을 건넬 것이다. 잘라 놓은 과일 한 접시를 조심스럽게 내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일을 받았다고 서운함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할 계기는 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불행한 가정이 저마다 다르다는 말도 무겁게 다가온다. 어떤 집에는 생활의 어려움이 오래 머물고, 어떤 집에는 질병이 찾아온다. 누군가는 돌봄을 혼자 감당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낸다. 밖에서 보기에는 모두 말수가 적고 웃음이 줄어든 집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침묵이 시작된 사정과 그 안에서 견디는 어려움은 집집마다 다르다.

그래서 힘든 가정을 두고 마음가짐만 바꾸면 된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병원비를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위로와 함께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이 필요할 수 있다. 밤낮으로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에게는 대신 곁을 지켜 줄 사람이 절실하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너무 지쳐 다정하게 말할 여유를 잃는 날이 있다. 그런 사정을 헤아리지 않은 채 사랑이 부족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때 나는 다른 집의 모습을 쉽게 부러워했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이는 집, 주말마다 여행을 가는 집, 생일마다 꽃다발을 주고받는 집이 좋아 보였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찾아내는 데에는 익숙했지만, 우리가 함께 누리고 있는 일은 자주 잊었다. 사진 속 가족들이 환하게 웃고 있으면 그 집에는 늘 웃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진 밖에서 그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는 알지 못하면서.

우리 가족의 나들이는 종종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기도 했고, 식당 앞에서 오래 기다리다가 서로 말수가 줄기도 했다. 모처럼 나왔는데 왜 이러느냐는 말이 나오면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떠오르는 것은 엉뚱하게 들어선 골목의 빵집이나 차 안에서 나누어 먹던 귤이다. 당시에는 망쳤다고 여긴 하루에도 함께 웃었던 순간이 남아 있었다.

가족을 떠올릴 때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도 대개 작은 일들이다. 비가 오던 날 정류장으로 가져온 우산, 늦게 돌아왔을 때 냄비에 남겨 둔 국, 중요한 일을 앞둔 아침에 건넨 짧은 응원이 그렇다. 당시에는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누군가는 내 귀가 시간을 생각하며 기다렸고,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골랐다. 내가 무심히 지나친 순간에도 가족은 나를 살피고 있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현관에 놓인 신발이 생각난다.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는 가족의 신발이 닳으면 굽을 살펴보곤 하셨다. 어느 날에는 수선을 맡겨 두었다며 찾아오라고 하셨고, 비가 온 다음 날에는 젖은 신발 안에 신문지가 들어 있었다. 그때는 그런 손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제 젖은 신발을 말리려고 신문지를 구겨 넣다 보면, 현관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등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지난 시간이 모두 따뜻했던 것은 아니다. 이해받지 못해 서러웠던 날도 있고, 지금 떠올려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말도 있다. 고마운 기억이 있다고 해서 아팠던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가족에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좋았던 일만 남겨 두려고도, 서운했던 일로 지난날 전부를 판단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두 기억 모두 내가 함께 살아온 시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에도 지켜야 할 거리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운다. 모든 생각을 털어놓아야만 친한 것은 아니며,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이 곧 가족을 밀어내는 뜻도 아니다. 방문이 닫혀 있으면 두드리고,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기다릴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가족의 고민을 당장 알아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상대가 스스로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곁에 있는 방법임을 안다.

우리는 때로 가족이 말하지 않은 바람까지 알아주기를 기대한다. 내 표정만 보고 피곤한 줄 알고, 한숨만 듣고 무엇이 서운한지 짐작해 주기를 바란다. 나도 그런 기대 때문에 혼자 실망한 적이 많다. 요즘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려 한다. 오늘은 지쳤으니 설거지를 맡아 달라거나, 잠시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보다 말로 전할 때 오해가 줄어든다.

고맙다는 말도 아끼지 않으려 한다. 늘 하는 일이라고 해서 수고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일 밥을 차리는 사람도, 매번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면 힘이 난다. 오래 함께 살다 보면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깨끗한 욕실과 개켜 놓은 빨래를 당연하게 여기기 쉽다. 그럴수록 잠깐 멈추어 누가 이 일을 했을지 생각해 보려 한다.

물론 고맙다는 말만으로 집안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말을 건넨 뒤에도 늘 같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부엌에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지칠 것이다. 나도 한동안 집안일을 하면서 도와준다는 표현을 썼다. 함께 사는 집인데도 다른 사람의 일을 거든다고 생각했던 셈이다. 이제는 무엇을 할지 묻기 전에 쌓인 그릇과 가득 찬 휴지통을 살펴본다.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이려 한다.

가족이 달라지는 모습을 받아들이는 일도 쉽지 않다. 아이는 자라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고, 부모는 나이가 들며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한다. 씩씩하던 사람이 작은 일을 걱정하고, 내 의견을 따르던 사람이 다른 길을 고른다. 나는 가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을 입에 올리려다 멈춘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지금 마음까지 모두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느려진 걸음을 따라 걷다가 마음이 급해진 적이 있다. 조금만 서두르면 신호를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곁을 돌아보니 부모는 발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나는 신호등을 보고 있었지만 부모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며 옷깃을 여며 드렸다. 오래전 내 짧은 보폭에 맞추어 걸어 주었을 시간을 생각하니 서두르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 걱정도 없고 누구도 아프지 않으며 모든 관계가 평온한 날을 기다린다면, 행복하다고 느낄 날은 많지 않을 것이다. 걱정이 있는 저녁에도 따뜻한 국을 나누어 먹을 수 있고, 서운한 마음이 남아 있어도 상대의 젖은 옷을 널어 줄 수 있다. 나는 그런 행동을 보며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곤 했다.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 있더라도 서로를 보살피려는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우리 집이 얼마나 행복한지 판단하기보다 가족의 하루를 살피려 한다. 누가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지, 누가 말을 줄였는지, 누가 자꾸 혼자 일을 마무리하는지 돌아본다. 언제나 제때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한참 뒤에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래도 늦었다는 이유로 묻지 않고 지나가지는 않으려 한다. 지난번에는 네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면, 멈췄던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톨스토이의 문장을 다시 읽으며 행복한 가정들의 닮은 모습을 생각한다. 사는 형편도 가족의 수도 다르겠지만, 그 집에서는 누군가의 수고가 오래 외면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 사람의 말수가 줄면 다른 사람이 이유를 묻고,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면 무엇이 서운했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일들을 거듭하며 가족은 힘든 날에도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닐까.

오늘 저녁에도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도 있고,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를 안고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우선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얼굴을 보며 하루가 어땠는지 물으려 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서둘러 대답을 준비하지 않고 끝까지 듣고 싶다. 식탁에 마주 앉으면 몸만 아니라 마음도 그 사람 쪽으로 돌리고 싶다. 그날 들려주지 못한 말이 있다면, 밥을 다 먹은 뒤에도 조금 더 앉아 있으려 한다.서로를 향해 돌아앉는 일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행복보다 불행이라는 말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행복한 집은 비슷하고 불행한 집은 다르다니, 사람 사는 모습을 그렇게 나눌 수 있을까 싶었다. 어느 집에나 말 못 할 사정 하나쯤은 있고, 웃음이 잦은 집에도 눈물을 삼키는 밤은 있을 터였다. 그때의 나는 이 문장의 뜻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채 기억해 두었다. 살다 보면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문장을 떠올린 것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닦던 날이었다. 한 사람은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다른 사람은 물컵을 씻었다. 나는 식탁을 닦다가 바닥에 떨어진 밥알을 주웠다. 별다른 대화도 없었다. 누구도 일을 나누어 시키지 않았지만, 각자 눈에 보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행복한 가정이 서로 닮았다는 말은 이런 작은 배려를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가정이 닮았다는 것은 같은 크기의 집에 살거나 비슷한 음식을 먹는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침마다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집도 있고, 말없이 현관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 주는 집도 있다.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도 상대가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닮아 있다. 늦게 돌아올 사람의 밥을 남겨 두고, 지쳐 누운 사람 곁에서는 텔레비전 소리를 낮추는 일. 그런 행동에서 우리는 자신이 보살핌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

어린 시절에는 집이 저절로 따뜻해지는 줄 알았다. 겨울이면 방바닥에 온기가 돌고, 저녁이면 부엌에서 밥 냄새가 났다. 옷장에는 빨아 놓은 옷이 있었고, 감기에 걸리면 머리맡에 물 한 잔이 놓였다. 나는 그것들을 해가 뜨고 지는 일처럼 당연하게 여겼다. 누군가 먼저 일어나 쌀을 씻고, 찬물에 손을 담그고, 한밤중에도 잠을 깨 내 이마를 짚어 보았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헤아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밥을 먹을 때면 늘 비슷한 질문을 하셨다. 싱겁지는 않으냐, 더 먹겠느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 나는 그 물음들이 때로 귀찮았다. 배가 부르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학교 이야기를 물으면 별일 없었다는 말로 끝내곤 했다. 이제 생각하면 어머니는 반찬의 간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만 궁금하셨던 것이 아니다. 내가 하루를 잘 보냈는지, 혹시 혼자 속상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고 싶으셨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비슷한 말을 건넨다. 밥은 먹었는지, 춥지는 않은지, 오늘은 늦는지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이 짧으면 서운하다가도 어린 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을 어느새 내가 하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못했던 어머니처럼 나도 밥과 날씨를 빌려 안부를 묻는다. 그 물음에 담긴 마음을 상대가 알아주면 좋겠지만, 알아주기를 재촉하지는 않으려 한다.

물론 걱정하는 마음으로 건넨 말이 언제나 따뜻하게 들리는 것은 아니다. 늦게 들어오는 까닭을 물었다가 간섭한다는 대답을 듣기도 하고, 도와주려던 행동으로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한다. 오래 함께 살았으니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믿음 때문에 잘못 짚는 일도 생긴다. 예전에 좋아하던 음식이 이제는 입에 맞지 않을 수 있고, 평소에는 웃어넘기던 농담이 유난히 아픈 날도 있다.

나 역시 가족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대답한 적이 많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안다고 생각했다. 피곤하다는 말에는 일찍 자라고 했고, 걱정된다는 말에는 별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 뒤 상대가 입을 다물면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성급하게 해결책을 말하느라, 상대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를 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가족 한 사람이 그저 들어 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하려던 대답을 멈추었다. 상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방법을 찾았지만, 정작 그가 바라는 도움은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대답이 떠올라도 조금 더 기다리려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묻고 상대가 말을 이을 때까지 기다려 본다. 여전히 듣는 도중에 내 경험을 꺼내거나 충고부터 할 때가 있다. 그러다 상대의 표정이 달라지면 말을 멈춘다. 잘 듣는 일도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참는 연습이 필요했다.

나는 가족이 내 화를 받아 줄 것이라 믿고, 밖에서 참았던 짜증까지 집에서 쏟아 내곤 했다. 회사에서 받은 서운함을 식탁까지 가져왔고, 길에서 겪은 불쾌함 때문에 현관에서부터 날카롭게 대답했다. 가족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그 말들을 받아야 했다. 오래 곁에 있어 줄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정작 그 사람에게는 말을 가장 적게 골라 하고 있었다.

한번은 치워지지 않은 물건 하나 때문에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에는 물건을 제자리에 놓아 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곧 지난주와 지난달의 일이 따라 나왔다. 늘 그렇다는 말이 나왔고, 내 말을 한 번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말까지 보탰다. 상대도 그동안 참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눈앞의 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오래 묵은 서운함으로 서로를 몰아붙였다.

말다툼이 끝난 뒤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목이 말랐지만 거실에서 마주칠까 봐 물을 가지러 나가는 일조차 망설였다. 조금 전까지 함께 밥을 먹던 식탁이 낯설게 보였다. 방바닥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날 밤 나는 집에서 편히 쉬지 못했다.

사과는 다음 날 아침에야 했다. 어제는 내가 심하게 말했다고, 그 물건 때문에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상대는 곧바로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사과했으니 이제 풀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말을 꺼낼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듯, 상대에게도 내 사과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우리는 그날 저녁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기억하는 장면이 달랐고 서운했던 대목도 달랐다. 나는 내 말이 무시당했다고 느꼈지만, 상대는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데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서운함이 그날 한꺼번에 풀리지는 않았다. 다만 각자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전보다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말할지도 함께 생각해 보았다.

행복한 가정에도 이런 밤은 있을 것이다. 방문을 닫고 돌아서는 날도 있고, 같은 식탁에서 말없이 밥만 먹는 저녁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누군가 먼저 문을 두드리거나 아까는 미안했다고 말을 건넬 것이다. 잘라 놓은 과일 한 접시를 조심스럽게 내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일을 받았다고 서운함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할 계기는 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불행한 가정이 저마다 다르다는 말도 무겁게 다가온다. 어떤 집에는 생활의 어려움이 오래 머물고, 어떤 집에는 질병이 찾아온다. 누군가는 돌봄을 혼자 감당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낸다. 밖에서 보기에는 모두 말수가 적고 웃음이 줄어든 집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침묵이 시작된 사정과 그 안에서 견디는 어려움은 집집마다 다르다.

그래서 힘든 가정을 두고 마음가짐만 바꾸면 된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병원비를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위로와 함께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이 필요할 수 있다. 밤낮으로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에게는 대신 곁을 지켜 줄 사람이 절실하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너무 지쳐 다정하게 말할 여유를 잃는 날이 있다. 그런 사정을 헤아리지 않은 채 사랑이 부족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때 나는 다른 집의 모습을 쉽게 부러워했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이는 집, 주말마다 여행을 가는 집, 생일마다 꽃다발을 주고받는 집이 좋아 보였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찾아내는 데에는 익숙했지만, 우리가 함께 누리고 있는 일은 자주 잊었다. 사진 속 가족들이 환하게 웃고 있으면 그 집에는 늘 웃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진 밖에서 그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는 알지 못하면서.

우리 가족의 나들이는 종종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기도 했고, 식당 앞에서 오래 기다리다가 서로 말수가 줄기도 했다. 모처럼 나왔는데 왜 이러느냐는 말이 나오면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떠오르는 것은 엉뚱하게 들어선 골목의 빵집이나 차 안에서 나누어 먹던 귤이다. 당시에는 망쳤다고 여긴 하루에도 함께 웃었던 순간이 남아 있었다.

가족을 떠올릴 때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도 대개 작은 일들이다. 비가 오던 날 정류장으로 가져온 우산, 늦게 돌아왔을 때 냄비에 남겨 둔 국, 중요한 일을 앞둔 아침에 건넨 짧은 응원이 그렇다. 당시에는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누군가는 내 귀가 시간을 생각하며 기다렸고,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골랐다. 내가 무심히 지나친 순간에도 가족은 나를 살피고 있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현관에 놓인 신발이 생각난다.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는 가족의 신발이 닳으면 굽을 살펴보곤 하셨다. 어느 날에는 수선을 맡겨 두었다며 찾아오라고 하셨고, 비가 온 다음 날에는 젖은 신발 안에 신문지가 들어 있었다. 그때는 그런 손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제 젖은 신발을 말리려고 신문지를 구겨 넣다 보면, 현관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등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지난 시간이 모두 따뜻했던 것은 아니다. 이해받지 못해 서러웠던 날도 있고, 지금 떠올려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말도 있다. 고마운 기억이 있다고 해서 아팠던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가족에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좋았던 일만 남겨 두려고도, 서운했던 일로 지난날 전부를 판단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두 기억 모두 내가 함께 살아온 시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에도 지켜야 할 거리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운다. 모든 생각을 털어놓아야만 친한 것은 아니며,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이 곧 가족을 밀어내는 뜻도 아니다. 방문이 닫혀 있으면 두드리고,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기다릴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가족의 고민을 당장 알아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상대가 스스로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곁에 있는 방법임을 안다.

우리는 때로 가족이 말하지 않은 바람까지 알아주기를 기대한다. 내 표정만 보고 피곤한 줄 알고, 한숨만 듣고 무엇이 서운한지 짐작해 주기를 바란다. 나도 그런 기대 때문에 혼자 실망한 적이 많다. 요즘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려 한다. 오늘은 지쳤으니 설거지를 맡아 달라거나, 잠시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보다 말로 전할 때 오해가 줄어든다.

고맙다는 말도 아끼지 않으려 한다. 늘 하는 일이라고 해서 수고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일 밥을 차리는 사람도, 매번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면 힘이 난다. 오래 함께 살다 보면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깨끗한 욕실과 개켜 놓은 빨래를 당연하게 여기기 쉽다. 그럴수록 잠깐 멈추어 누가 이 일을 했을지 생각해 보려 한다.

물론 고맙다는 말만으로 집안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말을 건넨 뒤에도 늘 같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부엌에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지칠 것이다. 나도 한동안 집안일을 하면서 도와준다는 표현을 썼다. 함께 사는 집인데도 다른 사람의 일을 거든다고 생각했던 셈이다. 이제는 무엇을 할지 묻기 전에 쌓인 그릇과 가득 찬 휴지통을 살펴본다.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이려 한다.

가족이 달라지는 모습을 받아들이는 일도 쉽지 않다. 아이는 자라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고, 부모는 나이가 들며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한다. 씩씩하던 사람이 작은 일을 걱정하고, 내 의견을 따르던 사람이 다른 길을 고른다. 나는 가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을 입에 올리려다 멈춘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지금 마음까지 모두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느려진 걸음을 따라 걷다가 마음이 급해진 적이 있다. 조금만 서두르면 신호를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곁을 돌아보니 부모는 발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나는 신호등을 보고 있었지만 부모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며 옷깃을 여며 드렸다. 오래전 내 짧은 보폭에 맞추어 걸어 주었을 시간을 생각하니 서두르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 걱정도 없고 누구도 아프지 않으며 모든 관계가 평온한 날을 기다린다면, 행복하다고 느낄 날은 많지 않을 것이다. 걱정이 있는 저녁에도 따뜻한 국을 나누어 먹을 수 있고, 서운한 마음이 남아 있어도 상대의 젖은 옷을 널어 줄 수 있다. 나는 그런 행동을 보며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곤 했다.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 있더라도 서로를 보살피려는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우리 집이 얼마나 행복한지 판단하기보다 가족의 하루를 살피려 한다. 누가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지, 누가 말을 줄였는지, 누가 자꾸 혼자 일을 마무리하는지 돌아본다. 언제나 제때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한참 뒤에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래도 늦었다는 이유로 묻지 않고 지나가지는 않으려 한다. 지난번에는 네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면, 멈췄던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톨스토이의 문장을 다시 읽으며 행복한 가정들의 닮은 모습을 생각한다. 사는 형편도 가족의 수도 다르겠지만, 그 집에서는 누군가의 수고가 오래 외면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 사람의 말수가 줄면 다른 사람이 이유를 묻고,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면 무엇이 서운했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일들을 거듭하며 가족은 힘든 날에도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닐까.

오늘 저녁에도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도 있고,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를 안고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우선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얼굴을 보며 하루가 어땠는지 물으려 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서둘러 대답을 준비하지 않고 끝까지 듣고 싶다. 식탁에 마주 앉으면 몸만 아니라 마음도 그 사람 쪽으로 돌리고 싶다. 그날 들려주지 못한 말이 있다면, 밥을 다 먹은 뒤에도 조금 더 앉아 있으려 한다.“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행복보다 불행이라는 말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행복한 집은 비슷하고 불행한 집은 다르다니, 사람 사는 모습을 그렇게 나눌 수 있을까 싶었다. 어느 집에나 말 못 할 사정 하나쯤은 있고, 웃음이 잦은 집에도 눈물을 삼키는 밤은 있을 터였다. 그때의 나는 이 문장의 뜻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채 기억해 두었다. 살다 보면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문장을 떠올린 것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닦던 날이었다. 한 사람은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다른 사람은 물컵을 씻었다. 나는 식탁을 닦다가 바닥에 떨어진 밥알을 주웠다. 별다른 대화도 없었다. 누구도 일을 나누어 시키지 않았지만, 각자 눈에 보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행복한 가정이 서로 닮았다는 말은 이런 작은 배려를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가정이 닮았다는 것은 같은 크기의 집에 살거나 비슷한 음식을 먹는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침마다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집도 있고, 말없이 현관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 주는 집도 있다.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도 상대가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닮아 있다. 늦게 돌아올 사람의 밥을 남겨 두고, 지쳐 누운 사람 곁에서는 텔레비전 소리를 낮추는 일. 그런 행동에서 우리는 자신이 보살핌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

어린 시절에는 집이 저절로 따뜻해지는 줄 알았다. 겨울이면 방바닥에 온기가 돌고, 저녁이면 부엌에서 밥 냄새가 났다. 옷장에는 빨아 놓은 옷이 있었고, 감기에 걸리면 머리맡에 물 한 잔이 놓였다. 나는 그것들을 해가 뜨고 지는 일처럼 당연하게 여겼다. 누군가 먼저 일어나 쌀을 씻고, 찬물에 손을 담그고, 한밤중에도 잠을 깨 내 이마를 짚어 보았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헤아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밥을 먹을 때면 늘 비슷한 질문을 하셨다. 싱겁지는 않으냐, 더 먹겠느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 나는 그 물음들이 때로 귀찮았다. 배가 부르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학교 이야기를 물으면 별일 없었다는 말로 끝내곤 했다. 이제 생각하면 어머니는 반찬의 간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만 궁금하셨던 것이 아니다. 내가 하루를 잘 보냈는지, 혹시 혼자 속상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고 싶으셨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비슷한 말을 건넨다. 밥은 먹었는지, 춥지는 않은지, 오늘은 늦는지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이 짧으면 서운하다가도 어린 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을 어느새 내가 하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못했던 어머니처럼 나도 밥과 날씨를 빌려 안부를 묻는다. 그 물음에 담긴 마음을 상대가 알아주면 좋겠지만, 알아주기를 재촉하지는 않으려 한다.

물론 걱정하는 마음으로 건넨 말이 언제나 따뜻하게 들리는 것은 아니다. 늦게 들어오는 까닭을 물었다가 간섭한다는 대답을 듣기도 하고, 도와주려던 행동으로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한다. 오래 함께 살았으니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믿음 때문에 잘못 짚는 일도 생긴다. 예전에 좋아하던 음식이 이제는 입에 맞지 않을 수 있고, 평소에는 웃어넘기던 농담이 유난히 아픈 날도 있다.

나 역시 가족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대답한 적이 많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안다고 생각했다. 피곤하다는 말에는 일찍 자라고 했고, 걱정된다는 말에는 별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 뒤 상대가 입을 다물면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성급하게 해결책을 말하느라, 상대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를 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가족 한 사람이 그저 들어 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하려던 대답을 멈추었다. 상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방법을 찾았지만, 정작 그가 바라는 도움은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대답이 떠올라도 조금 더 기다리려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묻고 상대가 말을 이을 때까지 기다려 본다. 여전히 듣는 도중에 내 경험을 꺼내거나 충고부터 할 때가 있다. 그러다 상대의 표정이 달라지면 말을 멈춘다. 잘 듣는 일도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참는 연습이 필요했다.

나는 가족이 내 화를 받아 줄 것이라 믿고, 밖에서 참았던 짜증까지 집에서 쏟아 내곤 했다. 회사에서 받은 서운함을 식탁까지 가져왔고, 길에서 겪은 불쾌함 때문에 현관에서부터 날카롭게 대답했다. 가족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그 말들을 받아야 했다. 오래 곁에 있어 줄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정작 그 사람에게는 말을 가장 적게 골라 하고 있었다.

한번은 치워지지 않은 물건 하나 때문에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에는 물건을 제자리에 놓아 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곧 지난주와 지난달의 일이 따라 나왔다. 늘 그렇다는 말이 나왔고, 내 말을 한 번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말까지 보탰다. 상대도 그동안 참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눈앞의 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오래 묵은 서운함으로 서로를 몰아붙였다.

말다툼이 끝난 뒤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목이 말랐지만 거실에서 마주칠까 봐 물을 가지러 나가는 일조차 망설였다. 조금 전까지 함께 밥을 먹던 식탁이 낯설게 보였다. 방바닥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날 밤 나는 집에서 편히 쉬지 못했다.

사과는 다음 날 아침에야 했다. 어제는 내가 심하게 말했다고, 그 물건 때문에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상대는 곧바로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사과했으니 이제 풀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말을 꺼낼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듯, 상대에게도 내 사과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우리는 그날 저녁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기억하는 장면이 달랐고 서운했던 대목도 달랐다. 나는 내 말이 무시당했다고 느꼈지만, 상대는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데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서운함이 그날 한꺼번에 풀리지는 않았다. 다만 각자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전보다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말할지도 함께 생각해 보았다.

행복한 가정에도 이런 밤은 있을 것이다. 방문을 닫고 돌아서는 날도 있고, 같은 식탁에서 말없이 밥만 먹는 저녁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누군가 먼저 문을 두드리거나 아까는 미안했다고 말을 건넬 것이다. 잘라 놓은 과일 한 접시를 조심스럽게 내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일을 받았다고 서운함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할 계기는 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불행한 가정이 저마다 다르다는 말도 무겁게 다가온다. 어떤 집에는 생활의 어려움이 오래 머물고, 어떤 집에는 질병이 찾아온다. 누군가는 돌봄을 혼자 감당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낸다. 밖에서 보기에는 모두 말수가 적고 웃음이 줄어든 집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침묵이 시작된 사정과 그 안에서 견디는 어려움은 집집마다 다르다.

그래서 힘든 가정을 두고 마음가짐만 바꾸면 된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병원비를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위로와 함께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이 필요할 수 있다. 밤낮으로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에게는 대신 곁을 지켜 줄 사람이 절실하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너무 지쳐 다정하게 말할 여유를 잃는 날이 있다. 그런 사정을 헤아리지 않은 채 사랑이 부족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때 나는 다른 집의 모습을 쉽게 부러워했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이는 집, 주말마다 여행을 가는 집, 생일마다 꽃다발을 주고받는 집이 좋아 보였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찾아내는 데에는 익숙했지만, 우리가 함께 누리고 있는 일은 자주 잊었다. 사진 속 가족들이 환하게 웃고 있으면 그 집에는 늘 웃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진 밖에서 그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는 알지 못하면서.

우리 가족의 나들이는 종종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기도 했고, 식당 앞에서 오래 기다리다가 서로 말수가 줄기도 했다. 모처럼 나왔는데 왜 이러느냐는 말이 나오면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떠오르는 것은 엉뚱하게 들어선 골목의 빵집이나 차 안에서 나누어 먹던 귤이다. 당시에는 망쳤다고 여긴 하루에도 함께 웃었던 순간이 남아 있었다.

가족을 떠올릴 때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도 대개 작은 일들이다. 비가 오던 날 정류장으로 가져온 우산, 늦게 돌아왔을 때 냄비에 남겨 둔 국, 중요한 일을 앞둔 아침에 건넨 짧은 응원이 그렇다. 당시에는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누군가는 내 귀가 시간을 생각하며 기다렸고,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골랐다. 내가 무심히 지나친 순간에도 가족은 나를 살피고 있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현관에 놓인 신발이 생각난다.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는 가족의 신발이 닳으면 굽을 살펴보곤 하셨다. 어느 날에는 수선을 맡겨 두었다며 찾아오라고 하셨고, 비가 온 다음 날에는 젖은 신발 안에 신문지가 들어 있었다. 그때는 그런 손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제 젖은 신발을 말리려고 신문지를 구겨 넣다 보면, 현관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등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지난 시간이 모두 따뜻했던 것은 아니다. 이해받지 못해 서러웠던 날도 있고, 지금 떠올려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말도 있다. 고마운 기억이 있다고 해서 아팠던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가족에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좋았던 일만 남겨 두려고도, 서운했던 일로 지난날 전부를 판단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두 기억 모두 내가 함께 살아온 시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에도 지켜야 할 거리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운다. 모든 생각을 털어놓아야만 친한 것은 아니며,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이 곧 가족을 밀어내는 뜻도 아니다. 방문이 닫혀 있으면 두드리고,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기다릴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가족의 고민을 당장 알아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상대가 스스로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곁에 있는 방법임을 안다.

우리는 때로 가족이 말하지 않은 바람까지 알아주기를 기대한다. 내 표정만 보고 피곤한 줄 알고, 한숨만 듣고 무엇이 서운한지 짐작해 주기를 바란다. 나도 그런 기대 때문에 혼자 실망한 적이 많다. 요즘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려 한다. 오늘은 지쳤으니 설거지를 맡아 달라거나, 잠시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보다 말로 전할 때 오해가 줄어든다.

고맙다는 말도 아끼지 않으려 한다. 늘 하는 일이라고 해서 수고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일 밥을 차리는 사람도, 매번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면 힘이 난다. 오래 함께 살다 보면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깨끗한 욕실과 개켜 놓은 빨래를 당연하게 여기기 쉽다. 그럴수록 잠깐 멈추어 누가 이 일을 했을지 생각해 보려 한다.

물론 고맙다는 말만으로 집안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말을 건넨 뒤에도 늘 같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부엌에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지칠 것이다. 나도 한동안 집안일을 하면서 도와준다는 표현을 썼다. 함께 사는 집인데도 다른 사람의 일을 거든다고 생각했던 셈이다. 이제는 무엇을 할지 묻기 전에 쌓인 그릇과 가득 찬 휴지통을 살펴본다.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이려 한다.

가족이 달라지는 모습을 받아들이는 일도 쉽지 않다. 아이는 자라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고, 부모는 나이가 들며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한다. 씩씩하던 사람이 작은 일을 걱정하고, 내 의견을 따르던 사람이 다른 길을 고른다. 나는 가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을 입에 올리려다 멈춘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지금 마음까지 모두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느려진 걸음을 따라 걷다가 마음이 급해진 적이 있다. 조금만 서두르면 신호를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곁을 돌아보니 부모는 발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나는 신호등을 보고 있었지만 부모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며 옷깃을 여며 드렸다. 오래전 내 짧은 보폭에 맞추어 걸어 주었을 시간을 생각하니 서두르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 걱정도 없고 누구도 아프지 않으며 모든 관계가 평온한 날을 기다린다면, 행복하다고 느낄 날은 많지 않을 것이다. 걱정이 있는 저녁에도 따뜻한 국을 나누어 먹을 수 있고, 서운한 마음이 남아 있어도 상대의 젖은 옷을 널어 줄 수 있다. 나는 그런 행동을 보며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곤 했다.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 있더라도 서로를 보살피려는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우리 집이 얼마나 행복한지 판단하기보다 가족의 하루를 살피려 한다. 누가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지, 누가 말을 줄였는지, 누가 자꾸 혼자 일을 마무리하는지 돌아본다. 언제나 제때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한참 뒤에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래도 늦었다는 이유로 묻지 않고 지나가지는 않으려 한다. 지난번에는 네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면, 멈췄던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톨스토이의 문장을 다시 읽으며 행복한 가정들의 닮은 모습을 생각한다. 사는 형편도 가족의 수도 다르겠지만, 그 집에서는 누군가의 수고가 오래 외면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 사람의 말수가 줄면 다른 사람이 이유를 묻고,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면 무엇이 서운했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일들을 거듭하며 가족은 힘든 날에도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닐까.

오늘 저녁에도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도 있고,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를 안고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우선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얼굴을 보며 하루가 어땠는지 물으려 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서둘러 대답을 준비하지 않고 끝까지 듣고 싶다. 식탁에 마주 앉으면 몸만 아니라 마음도 그 사람 쪽으로 돌리고 싶다. 그날 들려주지 못한 말이 있다면, 밥을 다 먹은 뒤에도 조금 더 앉아 있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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