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절이 남기고 가는 추억
가을과 겨울 사이, 찬바람이 제법 옷깃을 파고든다. 해마다 찬바람을 따라 찾아오는 감기가 올해도 어김없이 인기척을 낸다. 골목에서 이따금 들려오는 아이들의 마른기침 소리가 가을의 끝자락을 알린다.
거리를 스치는 바람은 하루가 다르게 차가워지고 있다. 길바닥에 내려앉은 낙엽들은 잠시 쉴 틈도 없이 바람에 떠밀려 이리저리 흩어진다. 한때 나뭇가지마다 고운 빛깔을 자랑하던 잎들이 이제는 발길에 밟히고 바람에 내동댕이쳐진다. 낙엽을 몰아가는 바람 끝에서 겨울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아직 가을이 다 지나지도 않았건만 사람들의 입에서는 벌써부터 “춥다”는 말이 익숙하게 흘러나온다. 나뭇가지에는 아직 가을빛이 남아 있는데, 사람들의 말과 옷차림은 벌써 겨울을 향하고 있다. 계절이 바뀌는 것은 자연의 일이지만,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마음은 저마다 다른 모양이다.
올 한 해도 그렇게 저물어 간다. 봄이 오고 여름이 지나 어느덧 가을마저 끝자락에 서 있다. 머지않아 거리는 하얀 눈으로 덮이겠지만, 가을날 도심을 물들였던 붉고 노란 단풍은 오래도록 마음속 풍경으로 남을 것이다.
높은 건물과 분주한 자동차들 사이에서도 단풍은 제 빛깔을 잃지 않았다. 회색빛 도회지에 잠시 머물렀던 가을의 색채는 바쁜 일상 속에서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마음까지 물들여 놓았다. 그 아름다움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 아쉬움도 있지만, 지나간 계절은 언제나 저마다의 이야기를 남긴다.
생각해 보면 가을은 쓸쓸함만을 남기는 계절이 아니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따뜻한 차 한 잔을 나누는 정이 있고, 낙엽이 깔린 길을 걸으며 지난날을 돌아보는 여유가 있다. 낙엽 쌓인 길을 걷다 보면 함께 웃으며 걸었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날의 따뜻했던 대화가 찬바람 속에서도 마음을 데운다.
젊은 날에는 계절이 바뀌는 것을 그저 당연하게 여겼다. 꽃이 피면 봄이 오고, 단풍이 들면 가을이 오는 줄만 알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계절은 단순히 오고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한 부분을 조용히 데려가고 또 새로운 기억을 남겨 준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아쉬워하기보다 그 낙엽이 남긴 빛깔을 마음에 담아두고 싶다. 지나간 시간을 붙잡을 수는 없지만, 그 시간 속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나누었던 웃음은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떠나는 가을을 아쉬워하기보다 그 계절에 나누었던 웃음과 따뜻한 순간들을 마음에 오래 남겨두고 싶다. 계절이 바뀐다고 추억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평범했던 하루가 그리운 기억으로 되살아나기도 한다.
오늘도 가을과 겨울 사이를 걷는다.
찬바람 속에 감기 소식이 묻어오고, 낙엽은 마지막 춤을 춘다. 사람들은 하나둘 옷깃을 여미며 겨울을 준비하지만, 나는 아직 남아 있는 가을의 향기를 조금 더 느끼고 싶다.
차가워진 바람 속에서도 누군가와 나누었던 따뜻한 말 한마디를 떠올리고, 지나온 날들의 작은 기쁨을 하나씩 마음에 담는다. 그렇게 쌓인 추억은 어느새 다가올 겨울을 맞이하는 또 하나의 온기가 된다.
가을이 떠난 자리에는 낙엽만 남는 것이 아니다.
찬 겨울에도 마음을 데워줄 추억이 조용히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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