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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소풍 가는 날

생각이머무는곳

글 소풍 가는 날

그날, 노스욕의 거리는 울고 있었다

그날, 노스욕의 거리는 울고 있었다

노스욕에 봄이 왔다고 하기에는 아직 조금 이른 때였다. 겨울의 찬 기운을 머금은 바람이 불었고, 길가의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를 하늘로 뻗고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의 옷차림은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었다. 찬바람 속에서도 봄은 다가오고 있었다.

2018년 4월 23일, 그날도 사람들은 저마다의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점심을 먹고 일터로 돌아가는 길이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볼일을 보러 나왔을 것이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하던 일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날 이후, 내게 영 스트리트는 예전과 같은 길이 아니었다. 여러 해가 흐른 지금도 그곳을 걷다가 그날 잇따라 울리던 사이렌 소리를 떠올리곤 한다. 눈앞에서는 사람들이 평소처럼 길을 걷고 있지만, 내 생각은 잠시 그날 오후로 돌아간다.

당시 나는 비크로프트 로드 509번지에 살며 노스욕의 한 직장까지 걸어서 출퇴근했다. 영 스트리트는 늘 오가던 길이었다. 어느 모퉁이를 돌아 어디에서 신호를 기다려야 하는지 몸이 먼저 알았다. 아침에는 일터로 향했고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그 길을 걷던 사람들 가운데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점심시간이 지난 무렵이었다. 일터에서 하던 일을 잠시 멈췄을 때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긴급 차량 한 대가 지나간 뒤에도 사이렌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앞선 소리가 멀어지기도 전에 또 다른 사이렌이 울렸다. 무슨 일인지는 몰랐지만 자꾸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잠시 뒤 뉴스 속보가 전해졌다. 한 남성이 빌린 승합차를 몰고 영 스트리트의 인도로 돌진해 보행자들을 덮쳤다는 소식이었다. 사람들이 숨지고 다쳤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나는 화면의 자막을 몇 번이나 되읽었다. 그날 아침에 지나온 바로 그 거리였다. 익숙한 거리 이름이 그토록 낯설고 두렵게 보인 적은 없었다.

혹시 우리 가족도 그 시간에 그 길을 지나고 있지는 않았을까.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누군가 전화를 받기를 기다리며 아침에 나누었던 말을 되짚었다. 오늘 어디에 간다고 했던가. 몇 시쯤 돌아온다고 했던가. 무심히 흘려들었던 말들을 어떻게든 떠올리려 애썼다. 가족들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길게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전화를 끊고도 한동안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저녁이면 가족을 다시 만나리라 믿었다.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날 아침 가족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았던가. 집을 나서면서 어떤 인사를 건넸던가.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인데도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가족의 목소리를 듣고 안심한 뒤에는, 아직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아 애태우고 있을 사람들이 떠올랐다. 나처럼 급히 전화를 걸었으나 아직 가족의 안부를 확인하지 못한 사람들. 몇 번이고 같은 번호를 누르며 누군가 받기를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 무사하다는 짧은 말 한마디를 듣기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 나는 조금 전의 통화로 알게 되었다.

사건 직후 보도된 사망자는 열 명이었다. 그 가운데는 한국 국적자 두 명과 한국계 캐나다인 한 명도 있었다. 뉴스는 희생자 수를 거듭 전했다. 나는 그 숫자가 나올 때마다 마음이 멈칫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그날 아침 문을 나서며 뒤로한 집이 있었을 것이다. 집에 돌아가 마저 할 일도, 누군가와 나눌 이야기도 있었을 것이다. 열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도, 남겨진 가족들이 앞으로 겪을 슬픔도 쉽게 헤아릴 수 없었다.

그들은 어떤 하루를 보내던 중이었을까. 점심 메뉴를 고르며 잠깐 망설였을까. 길을 걸으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을까. 나는 그들의 마지막 순간을 알지 못했다. 다만 나와 다르지 않은 하루를 살던 사람들이, 내가 늘 오가던 거리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었다.

희생자 가운데 젊은 학생도 있었다는 소식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좋아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 학생에게 주어졌어야 할 날들을 자꾸 생각하게 되었다. 더 배우고, 서툰 선택도 해 보고, 실패한 뒤 다시 시작할 시간들. 나는 젊은 사람에게는 그런 시간이 넉넉히 남아 있으리라 막연히 믿어 왔다.

앞으로 맞이할 새로운 시작에 설레거나 긴장할 날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 일 없는 하루를 지루해하며 보내는 날도 있었을 것이다. 큰 성취를 이루지 않더라도, 나이를 먹으며 자기 삶을 살아갈 기회는 주어졌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 평범한 기회마저 빼앗겼다는 사실이 서러웠다. 그를 잃은 가족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더는 말을 잇기 어려웠다.

그날 이후 가족이 건네는 말들이 다르게 들렸다.

“밥은 먹었니?”

“언제 들어오니?”

너무 자주 듣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말들이다. 바쁠 때면 대답하는 것조차 성가셔했다. 그러나 그날 내가 전화로 확인하려던 것도 다르지 않았다. 어디에 있는지, 괜찮은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 늘 듣던 “언제 들어오니?”라는 물음에도 가족의 안부를 살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내 불안은 가족과의 통화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누군가를 잃은 가족들에게는 그날 이후의 일상이 송두리째 달라졌을 것이다. 늘 함께 밥을 먹던 사람의 빈자리, 전화를 걸어도 더는 들을 수 없는 목소리. 나는 통화를 마치고 하던 일을 이어 갔지만, 그날부터 이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사람들도 있었다.

사건 뒤 거리에는 꽃과 촛불이 놓였다. 누군가 놓고 간 꽃 옆에 또 다른 꽃이 놓였다. 바쁘게 오가던 사람들이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평소라면 서둘러 지나쳤을 거리에서 사람들은 추모의 꽃들 앞에 한동안 머물렀다. 꽃 앞에 선 이들은 말없이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4월 29일 저녁에는 멜 라스트먼 광장에서 추모식이 열렸다. 수많은 시민이 모여 희생자들을 기렸다. 어떤 말로도 떠난 사람을 돌아오게 할 수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말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찾아왔다.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도 함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이 내게도 위로가 되었다. 내가 살고 일하던 동네에는 다른 사람의 아픔 앞에서 걸음을 멈추는 이웃들이 있었다. 희생자를 알지 못해도 꽃을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 놓인 꽃들과 고개를 숙이던 사람들의 모습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도시는 차츰 분주함을 되찾았다. 도로에는 차가 달렸고 신호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이 길을 건넜다. 나도 익숙한 시간에 집을 나서고 돌아왔다. 해야 할 일이 쌓이면 그날을 떠올리지 않은 채 며칠을 보내기도 했다. 계절이 여러 번 바뀌는 동안 사건을 생각하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그러다 사건 당시 크게 다쳤던 피해자 한 명이 2021년 10월 28일 끝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목숨을 잃은 사람은 모두 열한 명이 되었다.

내가 그 사건을 조금씩 잊어 가는 동안에도, 그분에게는 사건으로 입은 상처가 남아 있었다. 가족들은 회복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별일 없이 보냈다고 여긴 날들에도 그들의 고통은 이어지고 있었다. 기사를 읽고 난 뒤, 나는 한동안 하던 일로 돌아가지 못했다.

영 스트리트와 올리브 애비뉴 부근의 올리브 스퀘어 공원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 명판이 있다. 분주한 거리 가까이에 잠시 멈춰 그들을 기억할 자리가 있다는 것이 고맙다. 길을 걷던 사람도 그곳에 서서 희생자들을 떠올릴 수 있다. 사건을 오래전 뉴스로만 접했던 누군가도 그곳에 서서, 그날 희생된 한 사람의 삶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봄이 오면 나는 희생자들이 더는 맞이하지 못한 계절을 떠올린다. 살아 있었다면 꽃이 핀 줄도 모르고 바삐 지나치거나, 꽃나무 아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봄날도 있었을 것이다.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그날들을 살아갔을 것이다. 거리에는 해마다 봄이 돌아오지만, 그들은 더는 그 봄을 맞이할 수 없다.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희생자들을 잠시 기억해 주면 좋겠다. 그들의 귀가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주면 좋겠다. 꽃 한 송이를 놓거나 그곳에 잠깐 머물러 추모하는 일이 유가족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예전에는 아무 일 없었던 하루를 잘 기억하지 않았다. 기쁜 일도 속상한 일도 없으면 그저 그런 날로 여겼다. 이제는 하루를 마치고 현관문을 여는 순간 마음이 놓인다. 집 안에서 들려오는 인기척, 오늘 어땠느냐는 물음, 마주 앉아 나누는 짧은 이야기. 전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이다.

고맙다는 말을 마음속에만 두지 않으려 한다. 사랑한다는 말이 쑥스러워도 너무 오래 미루지 않으려 한다. 늘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 여전히 바쁘다는 이유로 건성으로 대답하고, 익숙한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다가 그날의 전화가 떠오르면 하던 일을 잠시 멈춘다. 그리고 아까 흘려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들려 달라고 한다.

오늘도 영 스트리트에는 사람들이 걷는다. 신호가 바뀌면 기다리던 사람들이 함께 길을 건넌다. 나는 그들이 무사히 목적지에 닿기를 빈다.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가 누군가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날, 노스욕의 거리는 울고 있었다.

이제 그 길에는 다시 일상이 흐른다. 나도 사람들 사이에서 신호를 기다린다. 초록불이 켜지면 길을 건너고 저녁이면 집으로 향한다.

문을 열며 “다녀왔어요” 하고 인사를 건넨다. 안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대답한다.

나는 신발을 벗다가 고개를 들어 그 얼굴을 바라본다.그날, 노스욕의 거리는 울고 있었다

노스욕에 봄이 왔다고 하기에는 아직 조금 이른 때였다. 겨울의 찬 기운을 머금은 바람이 불었고, 길가의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를 하늘로 뻗고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의 옷차림은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었다. 찬바람 속에서도 봄은 다가오고 있었다.

2018년 4월 23일, 그날도 사람들은 저마다의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점심을 먹고 일터로 돌아가는 길이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볼일을 보러 나왔을 것이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하던 일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날 이후, 내게 영 스트리트는 예전과 같은 길이 아니었다. 여러 해가 흐른 지금도 그곳을 걷다가 그날 잇따라 울리던 사이렌 소리를 떠올리곤 한다. 눈앞에서는 사람들이 평소처럼 길을 걷고 있지만, 내 생각은 잠시 그날 오후로 돌아간다.

당시 나는 비크로프트 로드 509번지에 살며 노스욕의 한 직장까지 걸어서 출퇴근했다. 영 스트리트는 늘 오가던 길이었다. 어느 모퉁이를 돌아 어디에서 신호를 기다려야 하는지 몸이 먼저 알았다. 아침에는 일터로 향했고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그 길을 걷던 사람들 가운데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점심시간이 지난 무렵이었다. 일터에서 하던 일을 잠시 멈췄을 때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긴급 차량 한 대가 지나간 뒤에도 사이렌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앞선 소리가 멀어지기도 전에 또 다른 사이렌이 울렸다. 무슨 일인지는 몰랐지만 자꾸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잠시 뒤 뉴스 속보가 전해졌다. 한 남성이 빌린 승합차를 몰고 영 스트리트의 인도로 돌진해 보행자들을 덮쳤다는 소식이었다. 사람들이 숨지고 다쳤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나는 화면의 자막을 몇 번이나 되읽었다. 그날 아침에 지나온 바로 그 거리였다. 익숙한 거리 이름이 그토록 낯설고 두렵게 보인 적은 없었다.

혹시 우리 가족도 그 시간에 그 길을 지나고 있지는 않았을까.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누군가 전화를 받기를 기다리며 아침에 나누었던 말을 되짚었다. 오늘 어디에 간다고 했던가. 몇 시쯤 돌아온다고 했던가. 무심히 흘려들었던 말들을 어떻게든 떠올리려 애썼다. 가족들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길게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전화를 끊고도 한동안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저녁이면 가족을 다시 만나리라 믿었다.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날 아침 가족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았던가. 집을 나서면서 어떤 인사를 건넸던가.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인데도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가족의 목소리를 듣고 안심한 뒤에는, 아직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아 애태우고 있을 사람들이 떠올랐다. 나처럼 급히 전화를 걸었으나 아직 가족의 안부를 확인하지 못한 사람들. 몇 번이고 같은 번호를 누르며 누군가 받기를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 무사하다는 짧은 말 한마디를 듣기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 나는 조금 전의 통화로 알게 되었다.

사건 직후 보도된 사망자는 열 명이었다. 그 가운데는 한국 국적자 두 명과 한국계 캐나다인 한 명도 있었다. 뉴스는 희생자 수를 거듭 전했다. 나는 그 숫자가 나올 때마다 마음이 멈칫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그날 아침 문을 나서며 뒤로한 집이 있었을 것이다. 집에 돌아가 마저 할 일도, 누군가와 나눌 이야기도 있었을 것이다. 열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도, 남겨진 가족들이 앞으로 겪을 슬픔도 쉽게 헤아릴 수 없었다.

그들은 어떤 하루를 보내던 중이었을까. 점심 메뉴를 고르며 잠깐 망설였을까. 길을 걸으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을까. 나는 그들의 마지막 순간을 알지 못했다. 다만 나와 다르지 않은 하루를 살던 사람들이, 내가 늘 오가던 거리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었다.

희생자 가운데 젊은 학생도 있었다는 소식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좋아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 학생에게 주어졌어야 할 날들을 자꾸 생각하게 되었다. 더 배우고, 서툰 선택도 해 보고, 실패한 뒤 다시 시작할 시간들. 나는 젊은 사람에게는 그런 시간이 넉넉히 남아 있으리라 막연히 믿어 왔다.

앞으로 맞이할 새로운 시작에 설레거나 긴장할 날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 일 없는 하루를 지루해하며 보내는 날도 있었을 것이다. 큰 성취를 이루지 않더라도, 나이를 먹으며 자기 삶을 살아갈 기회는 주어졌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 평범한 기회마저 빼앗겼다는 사실이 서러웠다. 그를 잃은 가족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더는 말을 잇기 어려웠다.

그날 이후 가족이 건네는 말들이 다르게 들렸다.

“밥은 먹었니?”

“언제 들어오니?”

너무 자주 듣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말들이다. 바쁠 때면 대답하는 것조차 성가셔했다. 그러나 그날 내가 전화로 확인하려던 것도 다르지 않았다. 어디에 있는지, 괜찮은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 늘 듣던 “언제 들어오니?”라는 물음에도 가족의 안부를 살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내 불안은 가족과의 통화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누군가를 잃은 가족들에게는 그날 이후의 일상이 송두리째 달라졌을 것이다. 늘 함께 밥을 먹던 사람의 빈자리, 전화를 걸어도 더는 들을 수 없는 목소리. 나는 통화를 마치고 하던 일을 이어 갔지만, 그날부터 이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사람들도 있었다.

사건 뒤 거리에는 꽃과 촛불이 놓였다. 누군가 놓고 간 꽃 옆에 또 다른 꽃이 놓였다. 바쁘게 오가던 사람들이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평소라면 서둘러 지나쳤을 거리에서 사람들은 추모의 꽃들 앞에 한동안 머물렀다. 꽃 앞에 선 이들은 말없이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4월 29일 저녁에는 멜 라스트먼 광장에서 추모식이 열렸다. 수많은 시민이 모여 희생자들을 기렸다. 어떤 말로도 떠난 사람을 돌아오게 할 수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말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찾아왔다.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도 함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이 내게도 위로가 되었다. 내가 살고 일하던 동네에는 다른 사람의 아픔 앞에서 걸음을 멈추는 이웃들이 있었다. 희생자를 알지 못해도 꽃을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 놓인 꽃들과 고개를 숙이던 사람들의 모습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도시는 차츰 분주함을 되찾았다. 도로에는 차가 달렸고 신호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이 길을 건넜다. 나도 익숙한 시간에 집을 나서고 돌아왔다. 해야 할 일이 쌓이면 그날을 떠올리지 않은 채 며칠을 보내기도 했다. 계절이 여러 번 바뀌는 동안 사건을 생각하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그러다 사건 당시 크게 다쳤던 피해자 한 명이 2021년 10월 28일 끝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목숨을 잃은 사람은 모두 열한 명이 되었다.

내가 그 사건을 조금씩 잊어 가는 동안에도, 그분에게는 사건으로 입은 상처가 남아 있었다. 가족들은 회복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별일 없이 보냈다고 여긴 날들에도 그들의 고통은 이어지고 있었다. 기사를 읽고 난 뒤, 나는 한동안 하던 일로 돌아가지 못했다.

영 스트리트와 올리브 애비뉴 부근의 올리브 스퀘어 공원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 명판이 있다. 분주한 거리 가까이에 잠시 멈춰 그들을 기억할 자리가 있다는 것이 고맙다. 길을 걷던 사람도 그곳에 서서 희생자들을 떠올릴 수 있다. 사건을 오래전 뉴스로만 접했던 누군가도 그곳에 서서, 그날 희생된 한 사람의 삶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봄이 오면 나는 희생자들이 더는 맞이하지 못한 계절을 떠올린다. 살아 있었다면 꽃이 핀 줄도 모르고 바삐 지나치거나, 꽃나무 아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봄날도 있었을 것이다.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그날들을 살아갔을 것이다. 거리에는 해마다 봄이 돌아오지만, 그들은 더는 그 봄을 맞이할 수 없다.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희생자들을 잠시 기억해 주면 좋겠다. 그들의 귀가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주면 좋겠다. 꽃 한 송이를 놓거나 그곳에 잠깐 머물러 추모하는 일이 유가족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예전에는 아무 일 없었던 하루를 잘 기억하지 않았다. 기쁜 일도 속상한 일도 없으면 그저 그런 날로 여겼다. 이제는 하루를 마치고 현관문을 여는 순간 마음이 놓인다. 집 안에서 들려오는 인기척, 오늘 어땠느냐는 물음, 마주 앉아 나누는 짧은 이야기. 전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이다.

고맙다는 말을 마음속에만 두지 않으려 한다. 사랑한다는 말이 쑥스러워도 너무 오래 미루지 않으려 한다. 늘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 여전히 바쁘다는 이유로 건성으로 대답하고, 익숙한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다가 그날의 전화가 떠오르면 하던 일을 잠시 멈춘다. 그리고 아까 흘려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들려 달라고 한다.

오늘도 영 스트리트에는 사람들이 걷는다. 신호가 바뀌면 기다리던 사람들이 함께 길을 건넌다. 나는 그들이 무사히 목적지에 닿기를 빈다.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가 누군가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날, 노스욕의 거리는 울고 있었다.

이제 그 길에는 다시 일상이 흐른다. 나도 사람들 사이에서 신호를 기다린다. 초록불이 켜지면 길을 건너고 저녁이면 집으로 향한다.

문을 열며 “다녀왔어요” 하고 인사를 건넨다. 안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대답한다.

나는 신발을 벗다가 고개를 들어 그 얼굴을 바라본다.그날, 노스욕의 거리는 울고 있었다

노스욕에 봄이 왔다고 하기에는 아직 조금 이른 때였다. 겨울의 찬 기운을 머금은 바람이 불었고, 길가의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를 하늘로 뻗고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의 옷차림은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었다. 찬바람 속에서도 봄은 다가오고 있었다.

2018년 4월 23일, 그날도 사람들은 저마다의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점심을 먹고 일터로 돌아가는 길이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볼일을 보러 나왔을 것이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하던 일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날 이후, 내게 영 스트리트는 예전과 같은 길이 아니었다. 여러 해가 흐른 지금도 그곳을 걷다가 그날 잇따라 울리던 사이렌 소리를 떠올리곤 한다. 눈앞에서는 사람들이 평소처럼 길을 걷고 있지만, 내 생각은 잠시 그날 오후로 돌아간다.

당시 나는 비크로프트 로드 509번지에 살며 노스욕의 한 직장까지 걸어서 출퇴근했다. 영 스트리트는 늘 오가던 길이었다. 어느 모퉁이를 돌아 어디에서 신호를 기다려야 하는지 몸이 먼저 알았다. 아침에는 일터로 향했고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그 길을 걷던 사람들 가운데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점심시간이 지난 무렵이었다. 일터에서 하던 일을 잠시 멈췄을 때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긴급 차량 한 대가 지나간 뒤에도 사이렌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앞선 소리가 멀어지기도 전에 또 다른 사이렌이 울렸다. 무슨 일인지는 몰랐지만 자꾸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잠시 뒤 뉴스 속보가 전해졌다. 한 남성이 빌린 승합차를 몰고 영 스트리트의 인도로 돌진해 보행자들을 덮쳤다는 소식이었다. 사람들이 숨지고 다쳤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나는 화면의 자막을 몇 번이나 되읽었다. 그날 아침에 지나온 바로 그 거리였다. 익숙한 거리 이름이 그토록 낯설고 두렵게 보인 적은 없었다.

혹시 우리 가족도 그 시간에 그 길을 지나고 있지는 않았을까.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누군가 전화를 받기를 기다리며 아침에 나누었던 말을 되짚었다. 오늘 어디에 간다고 했던가. 몇 시쯤 돌아온다고 했던가. 무심히 흘려들었던 말들을 어떻게든 떠올리려 애썼다. 가족들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길게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전화를 끊고도 한동안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저녁이면 가족을 다시 만나리라 믿었다.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날 아침 가족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았던가. 집을 나서면서 어떤 인사를 건넸던가.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인데도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가족의 목소리를 듣고 안심한 뒤에는, 아직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아 애태우고 있을 사람들이 떠올랐다. 나처럼 급히 전화를 걸었으나 아직 가족의 안부를 확인하지 못한 사람들. 몇 번이고 같은 번호를 누르며 누군가 받기를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 무사하다는 짧은 말 한마디를 듣기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 나는 조금 전의 통화로 알게 되었다.

사건 직후 보도된 사망자는 열 명이었다. 그 가운데는 한국 국적자 두 명과 한국계 캐나다인 한 명도 있었다. 뉴스는 희생자 수를 거듭 전했다. 나는 그 숫자가 나올 때마다 마음이 멈칫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그날 아침 문을 나서며 뒤로한 집이 있었을 것이다. 집에 돌아가 마저 할 일도, 누군가와 나눌 이야기도 있었을 것이다. 열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도, 남겨진 가족들이 앞으로 겪을 슬픔도 쉽게 헤아릴 수 없었다.

그들은 어떤 하루를 보내던 중이었을까. 점심 메뉴를 고르며 잠깐 망설였을까. 길을 걸으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을까. 나는 그들의 마지막 순간을 알지 못했다. 다만 나와 다르지 않은 하루를 살던 사람들이, 내가 늘 오가던 거리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었다.

희생자 가운데 젊은 학생도 있었다는 소식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좋아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 학생에게 주어졌어야 할 날들을 자꾸 생각하게 되었다. 더 배우고, 서툰 선택도 해 보고, 실패한 뒤 다시 시작할 시간들. 나는 젊은 사람에게는 그런 시간이 넉넉히 남아 있으리라 막연히 믿어 왔다.

앞으로 맞이할 새로운 시작에 설레거나 긴장할 날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 일 없는 하루를 지루해하며 보내는 날도 있었을 것이다. 큰 성취를 이루지 않더라도, 나이를 먹으며 자기 삶을 살아갈 기회는 주어졌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 평범한 기회마저 빼앗겼다는 사실이 서러웠다. 그를 잃은 가족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더는 말을 잇기 어려웠다.

그날 이후 가족이 건네는 말들이 다르게 들렸다.

“밥은 먹었니?”

“언제 들어오니?”

너무 자주 듣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말들이다. 바쁠 때면 대답하는 것조차 성가셔했다. 그러나 그날 내가 전화로 확인하려던 것도 다르지 않았다. 어디에 있는지, 괜찮은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 늘 듣던 “언제 들어오니?”라는 물음에도 가족의 안부를 살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내 불안은 가족과의 통화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누군가를 잃은 가족들에게는 그날 이후의 일상이 송두리째 달라졌을 것이다. 늘 함께 밥을 먹던 사람의 빈자리, 전화를 걸어도 더는 들을 수 없는 목소리. 나는 통화를 마치고 하던 일을 이어 갔지만, 그날부터 이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사람들도 있었다.

사건 뒤 거리에는 꽃과 촛불이 놓였다. 누군가 놓고 간 꽃 옆에 또 다른 꽃이 놓였다. 바쁘게 오가던 사람들이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평소라면 서둘러 지나쳤을 거리에서 사람들은 추모의 꽃들 앞에 한동안 머물렀다. 꽃 앞에 선 이들은 말없이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4월 29일 저녁에는 멜 라스트먼 광장에서 추모식이 열렸다. 수많은 시민이 모여 희생자들을 기렸다. 어떤 말로도 떠난 사람을 돌아오게 할 수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말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찾아왔다.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도 함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이 내게도 위로가 되었다. 내가 살고 일하던 동네에는 다른 사람의 아픔 앞에서 걸음을 멈추는 이웃들이 있었다. 희생자를 알지 못해도 꽃을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 놓인 꽃들과 고개를 숙이던 사람들의 모습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도시는 차츰 분주함을 되찾았다. 도로에는 차가 달렸고 신호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이 길을 건넜다. 나도 익숙한 시간에 집을 나서고 돌아왔다. 해야 할 일이 쌓이면 그날을 떠올리지 않은 채 며칠을 보내기도 했다. 계절이 여러 번 바뀌는 동안 사건을 생각하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그러다 사건 당시 크게 다쳤던 피해자 한 명이 2021년 10월 28일 끝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목숨을 잃은 사람은 모두 열한 명이 되었다.

내가 그 사건을 조금씩 잊어 가는 동안에도, 그분에게는 사건으로 입은 상처가 남아 있었다. 가족들은 회복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별일 없이 보냈다고 여긴 날들에도 그들의 고통은 이어지고 있었다. 기사를 읽고 난 뒤, 나는 한동안 하던 일로 돌아가지 못했다.

영 스트리트와 올리브 애비뉴 부근의 올리브 스퀘어 공원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 명판이 있다. 분주한 거리 가까이에 잠시 멈춰 그들을 기억할 자리가 있다는 것이 고맙다. 길을 걷던 사람도 그곳에 서서 희생자들을 떠올릴 수 있다. 사건을 오래전 뉴스로만 접했던 누군가도 그곳에 서서, 그날 희생된 한 사람의 삶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봄이 오면 나는 희생자들이 더는 맞이하지 못한 계절을 떠올린다. 살아 있었다면 꽃이 핀 줄도 모르고 바삐 지나치거나, 꽃나무 아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봄날도 있었을 것이다.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그날들을 살아갔을 것이다. 거리에는 해마다 봄이 돌아오지만, 그들은 더는 그 봄을 맞이할 수 없다.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희생자들을 잠시 기억해 주면 좋겠다. 그들의 귀가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주면 좋겠다. 꽃 한 송이를 놓거나 그곳에 잠깐 머물러 추모하는 일이 유가족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예전에는 아무 일 없었던 하루를 잘 기억하지 않았다. 기쁜 일도 속상한 일도 없으면 그저 그런 날로 여겼다. 이제는 하루를 마치고 현관문을 여는 순간 마음이 놓인다. 집 안에서 들려오는 인기척, 오늘 어땠느냐는 물음, 마주 앉아 나누는 짧은 이야기. 전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이다.

고맙다는 말을 마음속에만 두지 않으려 한다. 사랑한다는 말이 쑥스러워도 너무 오래 미루지 않으려 한다. 늘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 여전히 바쁘다는 이유로 건성으로 대답하고, 익숙한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다가 그날의 전화가 떠오르면 하던 일을 잠시 멈춘다. 그리고 아까 흘려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들려 달라고 한다.

오늘도 영 스트리트에는 사람들이 걷는다. 신호가 바뀌면 기다리던 사람들이 함께 길을 건넌다. 나는 그들이 무사히 목적지에 닿기를 빈다.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가 누군가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날, 노스욕의 거리는 울고 있었다.

이제 그 길에는 다시 일상이 흐른다. 나도 사람들 사이에서 신호를 기다린다. 초록불이 켜지면 길을 건너고 저녁이면 집으로 향한다.

문을 열며 “다녀왔어요” 하고 인사를 건넨다. 안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대답한다.

나는 신발을 벗다가 고개를 들어 그 얼굴을 바라본다.그날, 노스욕의 거리는 울고 있었다

노스욕에 봄이 왔다고 하기에는 아직 조금 이른 때였다. 겨울의 찬 기운을 머금은 바람이 불었고, 길가의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를 하늘로 뻗고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의 옷차림은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었다. 찬바람 속에서도 봄은 다가오고 있었다.

2018년 4월 23일, 그날도 사람들은 저마다의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점심을 먹고 일터로 돌아가는 길이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볼일을 보러 나왔을 것이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하던 일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날 이후, 내게 영 스트리트는 예전과 같은 길이 아니었다. 여러 해가 흐른 지금도 그곳을 걷다가 그날 잇따라 울리던 사이렌 소리를 떠올리곤 한다. 눈앞에서는 사람들이 평소처럼 길을 걷고 있지만, 내 생각은 잠시 그날 오후로 돌아간다.

당시 나는 비크로프트 로드 509번지에 살며 노스욕의 한 직장까지 걸어서 출퇴근했다. 영 스트리트는 늘 오가던 길이었다. 어느 모퉁이를 돌아 어디에서 신호를 기다려야 하는지 몸이 먼저 알았다. 아침에는 일터로 향했고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그 길을 걷던 사람들 가운데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점심시간이 지난 무렵이었다. 일터에서 하던 일을 잠시 멈췄을 때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긴급 차량 한 대가 지나간 뒤에도 사이렌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앞선 소리가 멀어지기도 전에 또 다른 사이렌이 울렸다. 무슨 일인지는 몰랐지만 자꾸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잠시 뒤 뉴스 속보가 전해졌다. 한 남성이 빌린 승합차를 몰고 영 스트리트의 인도로 돌진해 보행자들을 덮쳤다는 소식이었다. 사람들이 숨지고 다쳤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나는 화면의 자막을 몇 번이나 되읽었다. 그날 아침에 지나온 바로 그 거리였다. 익숙한 거리 이름이 그토록 낯설고 두렵게 보인 적은 없었다.

혹시 우리 가족도 그 시간에 그 길을 지나고 있지는 않았을까.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누군가 전화를 받기를 기다리며 아침에 나누었던 말을 되짚었다. 오늘 어디에 간다고 했던가. 몇 시쯤 돌아온다고 했던가. 무심히 흘려들었던 말들을 어떻게든 떠올리려 애썼다. 가족들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길게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전화를 끊고도 한동안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저녁이면 가족을 다시 만나리라 믿었다.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날 아침 가족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았던가. 집을 나서면서 어떤 인사를 건넸던가.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인데도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가족의 목소리를 듣고 안심한 뒤에는, 아직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아 애태우고 있을 사람들이 떠올랐다. 나처럼 급히 전화를 걸었으나 아직 가족의 안부를 확인하지 못한 사람들. 몇 번이고 같은 번호를 누르며 누군가 받기를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 무사하다는 짧은 말 한마디를 듣기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 나는 조금 전의 통화로 알게 되었다.

사건 직후 보도된 사망자는 열 명이었다. 그 가운데는 한국 국적자 두 명과 한국계 캐나다인 한 명도 있었다. 뉴스는 희생자 수를 거듭 전했다. 나는 그 숫자가 나올 때마다 마음이 멈칫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그날 아침 문을 나서며 뒤로한 집이 있었을 것이다. 집에 돌아가 마저 할 일도, 누군가와 나눌 이야기도 있었을 것이다. 열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도, 남겨진 가족들이 앞으로 겪을 슬픔도 쉽게 헤아릴 수 없었다.

그들은 어떤 하루를 보내던 중이었을까. 점심 메뉴를 고르며 잠깐 망설였을까. 길을 걸으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을까. 나는 그들의 마지막 순간을 알지 못했다. 다만 나와 다르지 않은 하루를 살던 사람들이, 내가 늘 오가던 거리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었다.

희생자 가운데 젊은 학생도 있었다는 소식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좋아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 학생에게 주어졌어야 할 날들을 자꾸 생각하게 되었다. 더 배우고, 서툰 선택도 해 보고, 실패한 뒤 다시 시작할 시간들. 나는 젊은 사람에게는 그런 시간이 넉넉히 남아 있으리라 막연히 믿어 왔다.

앞으로 맞이할 새로운 시작에 설레거나 긴장할 날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 일 없는 하루를 지루해하며 보내는 날도 있었을 것이다. 큰 성취를 이루지 않더라도, 나이를 먹으며 자기 삶을 살아갈 기회는 주어졌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 평범한 기회마저 빼앗겼다는 사실이 서러웠다. 그를 잃은 가족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더는 말을 잇기 어려웠다.

그날 이후 가족이 건네는 말들이 다르게 들렸다.

“밥은 먹었니?”

“언제 들어오니?”

너무 자주 듣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말들이다. 바쁠 때면 대답하는 것조차 성가셔했다. 그러나 그날 내가 전화로 확인하려던 것도 다르지 않았다. 어디에 있는지, 괜찮은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 늘 듣던 “언제 들어오니?”라는 물음에도 가족의 안부를 살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내 불안은 가족과의 통화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누군가를 잃은 가족들에게는 그날 이후의 일상이 송두리째 달라졌을 것이다. 늘 함께 밥을 먹던 사람의 빈자리, 전화를 걸어도 더는 들을 수 없는 목소리. 나는 통화를 마치고 하던 일을 이어 갔지만, 그날부터 이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사람들도 있었다.

사건 뒤 거리에는 꽃과 촛불이 놓였다. 누군가 놓고 간 꽃 옆에 또 다른 꽃이 놓였다. 바쁘게 오가던 사람들이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평소라면 서둘러 지나쳤을 거리에서 사람들은 추모의 꽃들 앞에 한동안 머물렀다. 꽃 앞에 선 이들은 말없이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4월 29일 저녁에는 멜 라스트먼 광장에서 추모식이 열렸다. 수많은 시민이 모여 희생자들을 기렸다. 어떤 말로도 떠난 사람을 돌아오게 할 수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말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찾아왔다.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도 함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이 내게도 위로가 되었다. 내가 살고 일하던 동네에는 다른 사람의 아픔 앞에서 걸음을 멈추는 이웃들이 있었다. 희생자를 알지 못해도 꽃을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 놓인 꽃들과 고개를 숙이던 사람들의 모습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도시는 차츰 분주함을 되찾았다. 도로에는 차가 달렸고 신호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이 길을 건넜다. 나도 익숙한 시간에 집을 나서고 돌아왔다. 해야 할 일이 쌓이면 그날을 떠올리지 않은 채 며칠을 보내기도 했다. 계절이 여러 번 바뀌는 동안 사건을 생각하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그러다 사건 당시 크게 다쳤던 피해자 한 명이 2021년 10월 28일 끝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목숨을 잃은 사람은 모두 열한 명이 되었다.

내가 그 사건을 조금씩 잊어 가는 동안에도, 그분에게는 사건으로 입은 상처가 남아 있었다. 가족들은 회복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별일 없이 보냈다고 여긴 날들에도 그들의 고통은 이어지고 있었다. 기사를 읽고 난 뒤, 나는 한동안 하던 일로 돌아가지 못했다.

영 스트리트와 올리브 애비뉴 부근의 올리브 스퀘어 공원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 명판이 있다. 분주한 거리 가까이에 잠시 멈춰 그들을 기억할 자리가 있다는 것이 고맙다. 길을 걷던 사람도 그곳에 서서 희생자들을 떠올릴 수 있다. 사건을 오래전 뉴스로만 접했던 누군가도 그곳에 서서, 그날 희생된 한 사람의 삶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봄이 오면 나는 희생자들이 더는 맞이하지 못한 계절을 떠올린다. 살아 있었다면 꽃이 핀 줄도 모르고 바삐 지나치거나, 꽃나무 아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봄날도 있었을 것이다.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그날들을 살아갔을 것이다. 거리에는 해마다 봄이 돌아오지만, 그들은 더는 그 봄을 맞이할 수 없다.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희생자들을 잠시 기억해 주면 좋겠다. 그들의 귀가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주면 좋겠다. 꽃 한 송이를 놓거나 그곳에 잠깐 머물러 추모하는 일이 유가족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예전에는 아무 일 없었던 하루를 잘 기억하지 않았다. 기쁜 일도 속상한 일도 없으면 그저 그런 날로 여겼다. 이제는 하루를 마치고 현관문을 여는 순간 마음이 놓인다. 집 안에서 들려오는 인기척, 오늘 어땠느냐는 물음, 마주 앉아 나누는 짧은 이야기. 전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이다.

고맙다는 말을 마음속에만 두지 않으려 한다. 사랑한다는 말이 쑥스러워도 너무 오래 미루지 않으려 한다. 늘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 여전히 바쁘다는 이유로 건성으로 대답하고, 익숙한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다가 그날의 전화가 떠오르면 하던 일을 잠시 멈춘다. 그리고 아까 흘려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들려 달라고 한다.

오늘도 영 스트리트에는 사람들이 걷는다. 신호가 바뀌면 기다리던 사람들이 함께 길을 건넌다. 나는 그들이 무사히 목적지에 닿기를 빈다.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가 누군가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날, 노스욕의 거리는 울고 있었다.

이제 그 길에는 다시 일상이 흐른다. 나도 사람들 사이에서 신호를 기다린다. 초록불이 켜지면 길을 건너고 저녁이면 집으로 향한다.

문을 열며 “다녀왔어요” 하고 인사를 건넨다. 안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대답한다.

나는 신발을 벗다가 고개를 들어 그 얼굴을 바라본다.그날, 노스욕의 거리는 울고 있었다

노스욕에 봄이 왔다고 하기에는 아직 조금 이른 때였다. 겨울의 찬 기운을 머금은 바람이 불었고, 길가의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를 하늘로 뻗고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의 옷차림은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었다. 찬바람 속에서도 봄은 다가오고 있었다.

2018년 4월 23일, 그날도 사람들은 저마다의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점심을 먹고 일터로 돌아가는 길이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볼일을 보러 나왔을 것이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하던 일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날 이후, 내게 영 스트리트는 예전과 같은 길이 아니었다. 여러 해가 흐른 지금도 그곳을 걷다가 그날 잇따라 울리던 사이렌 소리를 떠올리곤 한다. 눈앞에서는 사람들이 평소처럼 길을 걷고 있지만, 내 생각은 잠시 그날 오후로 돌아간다.

당시 나는 비크로프트 로드 509번지에 살며 노스욕의 한 직장까지 걸어서 출퇴근했다. 영 스트리트는 늘 오가던 길이었다. 어느 모퉁이를 돌아 어디에서 신호를 기다려야 하는지 몸이 먼저 알았다. 아침에는 일터로 향했고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그 길을 걷던 사람들 가운데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점심시간이 지난 무렵이었다. 일터에서 하던 일을 잠시 멈췄을 때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긴급 차량 한 대가 지나간 뒤에도 사이렌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앞선 소리가 멀어지기도 전에 또 다른 사이렌이 울렸다. 무슨 일인지는 몰랐지만 자꾸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잠시 뒤 뉴스 속보가 전해졌다. 한 남성이 빌린 승합차를 몰고 영 스트리트의 인도로 돌진해 보행자들을 덮쳤다는 소식이었다. 사람들이 숨지고 다쳤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나는 화면의 자막을 몇 번이나 되읽었다. 그날 아침에 지나온 바로 그 거리였다. 익숙한 거리 이름이 그토록 낯설고 두렵게 보인 적은 없었다.

혹시 우리 가족도 그 시간에 그 길을 지나고 있지는 않았을까.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누군가 전화를 받기를 기다리며 아침에 나누었던 말을 되짚었다. 오늘 어디에 간다고 했던가. 몇 시쯤 돌아온다고 했던가. 무심히 흘려들었던 말들을 어떻게든 떠올리려 애썼다. 가족들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길게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전화를 끊고도 한동안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저녁이면 가족을 다시 만나리라 믿었다.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날 아침 가족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았던가. 집을 나서면서 어떤 인사를 건넸던가.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인데도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가족의 목소리를 듣고 안심한 뒤에는, 아직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아 애태우고 있을 사람들이 떠올랐다. 나처럼 급히 전화를 걸었으나 아직 가족의 안부를 확인하지 못한 사람들. 몇 번이고 같은 번호를 누르며 누군가 받기를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 무사하다는 짧은 말 한마디를 듣기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 나는 조금 전의 통화로 알게 되었다.

사건 직후 보도된 사망자는 열 명이었다. 그 가운데는 한국 국적자 두 명과 한국계 캐나다인 한 명도 있었다. 뉴스는 희생자 수를 거듭 전했다. 나는 그 숫자가 나올 때마다 마음이 멈칫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그날 아침 문을 나서며 뒤로한 집이 있었을 것이다. 집에 돌아가 마저 할 일도, 누군가와 나눌 이야기도 있었을 것이다. 열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도, 남겨진 가족들이 앞으로 겪을 슬픔도 쉽게 헤아릴 수 없었다.

그들은 어떤 하루를 보내던 중이었을까. 점심 메뉴를 고르며 잠깐 망설였을까. 길을 걸으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을까. 나는 그들의 마지막 순간을 알지 못했다. 다만 나와 다르지 않은 하루를 살던 사람들이, 내가 늘 오가던 거리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었다.

희생자 가운데 젊은 학생도 있었다는 소식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좋아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 학생에게 주어졌어야 할 날들을 자꾸 생각하게 되었다. 더 배우고, 서툰 선택도 해 보고, 실패한 뒤 다시 시작할 시간들. 나는 젊은 사람에게는 그런 시간이 넉넉히 남아 있으리라 막연히 믿어 왔다.

앞으로 맞이할 새로운 시작에 설레거나 긴장할 날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 일 없는 하루를 지루해하며 보내는 날도 있었을 것이다. 큰 성취를 이루지 않더라도, 나이를 먹으며 자기 삶을 살아갈 기회는 주어졌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 평범한 기회마저 빼앗겼다는 사실이 서러웠다. 그를 잃은 가족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더는 말을 잇기 어려웠다.

그날 이후 가족이 건네는 말들이 다르게 들렸다.

“밥은 먹었니?”

“언제 들어오니?”

너무 자주 듣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말들이다. 바쁠 때면 대답하는 것조차 성가셔했다. 그러나 그날 내가 전화로 확인하려던 것도 다르지 않았다. 어디에 있는지, 괜찮은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 늘 듣던 “언제 들어오니?”라는 물음에도 가족의 안부를 살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내 불안은 가족과의 통화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누군가를 잃은 가족들에게는 그날 이후의 일상이 송두리째 달라졌을 것이다. 늘 함께 밥을 먹던 사람의 빈자리, 전화를 걸어도 더는 들을 수 없는 목소리. 나는 통화를 마치고 하던 일을 이어 갔지만, 그날부터 이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사람들도 있었다.

사건 뒤 거리에는 꽃과 촛불이 놓였다. 누군가 놓고 간 꽃 옆에 또 다른 꽃이 놓였다. 바쁘게 오가던 사람들이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평소라면 서둘러 지나쳤을 거리에서 사람들은 추모의 꽃들 앞에 한동안 머물렀다. 꽃 앞에 선 이들은 말없이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4월 29일 저녁에는 멜 라스트먼 광장에서 추모식이 열렸다. 수많은 시민이 모여 희생자들을 기렸다. 어떤 말로도 떠난 사람을 돌아오게 할 수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말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찾아왔다.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도 함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이 내게도 위로가 되었다. 내가 살고 일하던 동네에는 다른 사람의 아픔 앞에서 걸음을 멈추는 이웃들이 있었다. 희생자를 알지 못해도 꽃을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 놓인 꽃들과 고개를 숙이던 사람들의 모습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도시는 차츰 분주함을 되찾았다. 도로에는 차가 달렸고 신호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이 길을 건넜다. 나도 익숙한 시간에 집을 나서고 돌아왔다. 해야 할 일이 쌓이면 그날을 떠올리지 않은 채 며칠을 보내기도 했다. 계절이 여러 번 바뀌는 동안 사건을 생각하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그러다 사건 당시 크게 다쳤던 피해자 한 명이 2021년 10월 28일 끝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목숨을 잃은 사람은 모두 열한 명이 되었다.

내가 그 사건을 조금씩 잊어 가는 동안에도, 그분에게는 사건으로 입은 상처가 남아 있었다. 가족들은 회복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별일 없이 보냈다고 여긴 날들에도 그들의 고통은 이어지고 있었다. 기사를 읽고 난 뒤, 나는 한동안 하던 일로 돌아가지 못했다.

영 스트리트와 올리브 애비뉴 부근의 올리브 스퀘어 공원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 명판이 있다. 분주한 거리 가까이에 잠시 멈춰 그들을 기억할 자리가 있다는 것이 고맙다. 길을 걷던 사람도 그곳에 서서 희생자들을 떠올릴 수 있다. 사건을 오래전 뉴스로만 접했던 누군가도 그곳에 서서, 그날 희생된 한 사람의 삶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봄이 오면 나는 희생자들이 더는 맞이하지 못한 계절을 떠올린다. 살아 있었다면 꽃이 핀 줄도 모르고 바삐 지나치거나, 꽃나무 아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봄날도 있었을 것이다.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그날들을 살아갔을 것이다. 거리에는 해마다 봄이 돌아오지만, 그들은 더는 그 봄을 맞이할 수 없다.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희생자들을 잠시 기억해 주면 좋겠다. 그들의 귀가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주면 좋겠다. 꽃 한 송이를 놓거나 그곳에 잠깐 머물러 추모하는 일이 유가족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예전에는 아무 일 없었던 하루를 잘 기억하지 않았다. 기쁜 일도 속상한 일도 없으면 그저 그런 날로 여겼다. 이제는 하루를 마치고 현관문을 여는 순간 마음이 놓인다. 집 안에서 들려오는 인기척, 오늘 어땠느냐는 물음, 마주 앉아 나누는 짧은 이야기. 전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이다.

고맙다는 말을 마음속에만 두지 않으려 한다. 사랑한다는 말이 쑥스러워도 너무 오래 미루지 않으려 한다. 늘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 여전히 바쁘다는 이유로 건성으로 대답하고, 익숙한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다가 그날의 전화가 떠오르면 하던 일을 잠시 멈춘다. 그리고 아까 흘려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들려 달라고 한다.

오늘도 영 스트리트에는 사람들이 걷는다. 신호가 바뀌면 기다리던 사람들이 함께 길을 건넌다. 나는 그들이 무사히 목적지에 닿기를 빈다.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가 누군가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날, 노스욕의 거리는 울고 있었다.

이제 그 길에는 다시 일상이 흐른다. 나도 사람들 사이에서 신호를 기다린다. 초록불이 켜지면 길을 건너고 저녁이면 집으로 향한다.

문을 열며 “다녀왔어요” 하고 인사를 건넨다. 안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대답한다.

나는 신발을 벗다가 고개를 들어 그 얼굴을 바라본다.그날, 노스욕의 거리는 울고 있었다

노스욕에 봄이 왔다고 하기에는 아직 조금 이른 때였다. 겨울의 찬 기운을 머금은 바람이 불었고, 길가의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를 하늘로 뻗고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의 옷차림은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었다. 찬바람 속에서도 봄은 다가오고 있었다.

2018년 4월 23일, 그날도 사람들은 저마다의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점심을 먹고 일터로 돌아가는 길이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볼일을 보러 나왔을 것이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하던 일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날 이후, 내게 영 스트리트는 예전과 같은 길이 아니었다. 여러 해가 흐른 지금도 그곳을 걷다가 그날 잇따라 울리던 사이렌 소리를 떠올리곤 한다. 눈앞에서는 사람들이 평소처럼 길을 걷고 있지만, 내 생각은 잠시 그날 오후로 돌아간다.

당시 나는 비크로프트 로드 509번지에 살며 노스욕의 한 직장까지 걸어서 출퇴근했다. 영 스트리트는 늘 오가던 길이었다. 어느 모퉁이를 돌아 어디에서 신호를 기다려야 하는지 몸이 먼저 알았다. 아침에는 일터로 향했고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그 길을 걷던 사람들 가운데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점심시간이 지난 무렵이었다. 일터에서 하던 일을 잠시 멈췄을 때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긴급 차량 한 대가 지나간 뒤에도 사이렌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앞선 소리가 멀어지기도 전에 또 다른 사이렌이 울렸다. 무슨 일인지는 몰랐지만 자꾸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잠시 뒤 뉴스 속보가 전해졌다. 한 남성이 빌린 승합차를 몰고 영 스트리트의 인도로 돌진해 보행자들을 덮쳤다는 소식이었다. 사람들이 숨지고 다쳤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나는 화면의 자막을 몇 번이나 되읽었다. 그날 아침에 지나온 바로 그 거리였다. 익숙한 거리 이름이 그토록 낯설고 두렵게 보인 적은 없었다.

혹시 우리 가족도 그 시간에 그 길을 지나고 있지는 않았을까.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누군가 전화를 받기를 기다리며 아침에 나누었던 말을 되짚었다. 오늘 어디에 간다고 했던가. 몇 시쯤 돌아온다고 했던가. 무심히 흘려들었던 말들을 어떻게든 떠올리려 애썼다. 가족들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길게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전화를 끊고도 한동안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저녁이면 가족을 다시 만나리라 믿었다.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날 아침 가족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았던가. 집을 나서면서 어떤 인사를 건넸던가.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인데도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가족의 목소리를 듣고 안심한 뒤에는, 아직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아 애태우고 있을 사람들이 떠올랐다. 나처럼 급히 전화를 걸었으나 아직 가족의 안부를 확인하지 못한 사람들. 몇 번이고 같은 번호를 누르며 누군가 받기를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 무사하다는 짧은 말 한마디를 듣기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 나는 조금 전의 통화로 알게 되었다.

사건 직후 보도된 사망자는 열 명이었다. 그 가운데는 한국 국적자 두 명과 한국계 캐나다인 한 명도 있었다. 뉴스는 희생자 수를 거듭 전했다. 나는 그 숫자가 나올 때마다 마음이 멈칫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그날 아침 문을 나서며 뒤로한 집이 있었을 것이다. 집에 돌아가 마저 할 일도, 누군가와 나눌 이야기도 있었을 것이다. 열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도, 남겨진 가족들이 앞으로 겪을 슬픔도 쉽게 헤아릴 수 없었다.

그들은 어떤 하루를 보내던 중이었을까. 점심 메뉴를 고르며 잠깐 망설였을까. 길을 걸으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을까. 나는 그들의 마지막 순간을 알지 못했다. 다만 나와 다르지 않은 하루를 살던 사람들이, 내가 늘 오가던 거리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었다.

희생자 가운데 젊은 학생도 있었다는 소식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좋아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 학생에게 주어졌어야 할 날들을 자꾸 생각하게 되었다. 더 배우고, 서툰 선택도 해 보고, 실패한 뒤 다시 시작할 시간들. 나는 젊은 사람에게는 그런 시간이 넉넉히 남아 있으리라 막연히 믿어 왔다.

앞으로 맞이할 새로운 시작에 설레거나 긴장할 날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 일 없는 하루를 지루해하며 보내는 날도 있었을 것이다. 큰 성취를 이루지 않더라도, 나이를 먹으며 자기 삶을 살아갈 기회는 주어졌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 평범한 기회마저 빼앗겼다는 사실이 서러웠다. 그를 잃은 가족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더는 말을 잇기 어려웠다.

그날 이후 가족이 건네는 말들이 다르게 들렸다.

“밥은 먹었니?”

“언제 들어오니?”

너무 자주 듣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말들이다. 바쁠 때면 대답하는 것조차 성가셔했다. 그러나 그날 내가 전화로 확인하려던 것도 다르지 않았다. 어디에 있는지, 괜찮은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 늘 듣던 “언제 들어오니?”라는 물음에도 가족의 안부를 살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내 불안은 가족과의 통화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누군가를 잃은 가족들에게는 그날 이후의 일상이 송두리째 달라졌을 것이다. 늘 함께 밥을 먹던 사람의 빈자리, 전화를 걸어도 더는 들을 수 없는 목소리. 나는 통화를 마치고 하던 일을 이어 갔지만, 그날부터 이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사람들도 있었다.

사건 뒤 거리에는 꽃과 촛불이 놓였다. 누군가 놓고 간 꽃 옆에 또 다른 꽃이 놓였다. 바쁘게 오가던 사람들이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평소라면 서둘러 지나쳤을 거리에서 사람들은 추모의 꽃들 앞에 한동안 머물렀다. 꽃 앞에 선 이들은 말없이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4월 29일 저녁에는 멜 라스트먼 광장에서 추모식이 열렸다. 수많은 시민이 모여 희생자들을 기렸다. 어떤 말로도 떠난 사람을 돌아오게 할 수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말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찾아왔다.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도 함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이 내게도 위로가 되었다. 내가 살고 일하던 동네에는 다른 사람의 아픔 앞에서 걸음을 멈추는 이웃들이 있었다. 희생자를 알지 못해도 꽃을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 놓인 꽃들과 고개를 숙이던 사람들의 모습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도시는 차츰 분주함을 되찾았다. 도로에는 차가 달렸고 신호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이 길을 건넜다. 나도 익숙한 시간에 집을 나서고 돌아왔다. 해야 할 일이 쌓이면 그날을 떠올리지 않은 채 며칠을 보내기도 했다. 계절이 여러 번 바뀌는 동안 사건을 생각하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그러다 사건 당시 크게 다쳤던 피해자 한 명이 2021년 10월 28일 끝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목숨을 잃은 사람은 모두 열한 명이 되었다.

내가 그 사건을 조금씩 잊어 가는 동안에도, 그분에게는 사건으로 입은 상처가 남아 있었다. 가족들은 회복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별일 없이 보냈다고 여긴 날들에도 그들의 고통은 이어지고 있었다. 기사를 읽고 난 뒤, 나는 한동안 하던 일로 돌아가지 못했다.

영 스트리트와 올리브 애비뉴 부근의 올리브 스퀘어 공원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 명판이 있다. 분주한 거리 가까이에 잠시 멈춰 그들을 기억할 자리가 있다는 것이 고맙다. 길을 걷던 사람도 그곳에 서서 희생자들을 떠올릴 수 있다. 사건을 오래전 뉴스로만 접했던 누군가도 그곳에 서서, 그날 희생된 한 사람의 삶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봄이 오면 나는 희생자들이 더는 맞이하지 못한 계절을 떠올린다. 살아 있었다면 꽃이 핀 줄도 모르고 바삐 지나치거나, 꽃나무 아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봄날도 있었을 것이다.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그날들을 살아갔을 것이다. 거리에는 해마다 봄이 돌아오지만, 그들은 더는 그 봄을 맞이할 수 없다.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희생자들을 잠시 기억해 주면 좋겠다. 그들의 귀가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주면 좋겠다. 꽃 한 송이를 놓거나 그곳에 잠깐 머물러 추모하는 일이 유가족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예전에는 아무 일 없었던 하루를 잘 기억하지 않았다. 기쁜 일도 속상한 일도 없으면 그저 그런 날로 여겼다. 이제는 하루를 마치고 현관문을 여는 순간 마음이 놓인다. 집 안에서 들려오는 인기척, 오늘 어땠느냐는 물음, 마주 앉아 나누는 짧은 이야기. 전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이다.

고맙다는 말을 마음속에만 두지 않으려 한다. 사랑한다는 말이 쑥스러워도 너무 오래 미루지 않으려 한다. 늘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 여전히 바쁘다는 이유로 건성으로 대답하고, 익숙한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다가 그날의 전화가 떠오르면 하던 일을 잠시 멈춘다. 그리고 아까 흘려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들려 달라고 한다.

오늘도 영 스트리트에는 사람들이 걷는다. 신호가 바뀌면 기다리던 사람들이 함께 길을 건넌다. 나는 그들이 무사히 목적지에 닿기를 빈다.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가 누군가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날, 노스욕의 거리는 울고 있었다.

이제 그 길에는 다시 일상이 흐른다. 나도 사람들 사이에서 신호를 기다린다. 초록불이 켜지면 길을 건너고 저녁이면 집으로 향한다.

문을 열며 “다녀왔어요” 하고 인사를 건넨다. 안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대답한다.

나는 신발을 벗다가 고개를 들어 그 얼굴을 바라본다.그날, 노스욕의 거리는 울고 있었다

노스욕에 봄이 왔다고 하기에는 아직 조금 이른 때였다. 겨울의 찬 기운을 머금은 바람이 불었고, 길가의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를 하늘로 뻗고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의 옷차림은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었다. 찬바람 속에서도 봄은 다가오고 있었다.

2018년 4월 23일, 그날도 사람들은 저마다의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점심을 먹고 일터로 돌아가는 길이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볼일을 보러 나왔을 것이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하던 일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날 이후, 내게 영 스트리트는 예전과 같은 길이 아니었다. 여러 해가 흐른 지금도 그곳을 걷다가 그날 잇따라 울리던 사이렌 소리를 떠올리곤 한다. 눈앞에서는 사람들이 평소처럼 길을 걷고 있지만, 내 생각은 잠시 그날 오후로 돌아간다.

당시 나는 비크로프트 로드 509번지에 살며 노스욕의 한 직장까지 걸어서 출퇴근했다. 영 스트리트는 늘 오가던 길이었다. 어느 모퉁이를 돌아 어디에서 신호를 기다려야 하는지 몸이 먼저 알았다. 아침에는 일터로 향했고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그 길을 걷던 사람들 가운데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점심시간이 지난 무렵이었다. 일터에서 하던 일을 잠시 멈췄을 때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긴급 차량 한 대가 지나간 뒤에도 사이렌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앞선 소리가 멀어지기도 전에 또 다른 사이렌이 울렸다. 무슨 일인지는 몰랐지만 자꾸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잠시 뒤 뉴스 속보가 전해졌다. 한 남성이 빌린 승합차를 몰고 영 스트리트의 인도로 돌진해 보행자들을 덮쳤다는 소식이었다. 사람들이 숨지고 다쳤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나는 화면의 자막을 몇 번이나 되읽었다. 그날 아침에 지나온 바로 그 거리였다. 익숙한 거리 이름이 그토록 낯설고 두렵게 보인 적은 없었다.

혹시 우리 가족도 그 시간에 그 길을 지나고 있지는 않았을까.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누군가 전화를 받기를 기다리며 아침에 나누었던 말을 되짚었다. 오늘 어디에 간다고 했던가. 몇 시쯤 돌아온다고 했던가. 무심히 흘려들었던 말들을 어떻게든 떠올리려 애썼다. 가족들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길게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전화를 끊고도 한동안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저녁이면 가족을 다시 만나리라 믿었다.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날 아침 가족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았던가. 집을 나서면서 어떤 인사를 건넸던가.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인데도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가족의 목소리를 듣고 안심한 뒤에는, 아직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아 애태우고 있을 사람들이 떠올랐다. 나처럼 급히 전화를 걸었으나 아직 가족의 안부를 확인하지 못한 사람들. 몇 번이고 같은 번호를 누르며 누군가 받기를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 무사하다는 짧은 말 한마디를 듣기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 나는 조금 전의 통화로 알게 되었다.

사건 직후 보도된 사망자는 열 명이었다. 그 가운데는 한국 국적자 두 명과 한국계 캐나다인 한 명도 있었다. 뉴스는 희생자 수를 거듭 전했다. 나는 그 숫자가 나올 때마다 마음이 멈칫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그날 아침 문을 나서며 뒤로한 집이 있었을 것이다. 집에 돌아가 마저 할 일도, 누군가와 나눌 이야기도 있었을 것이다. 열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도, 남겨진 가족들이 앞으로 겪을 슬픔도 쉽게 헤아릴 수 없었다.

그들은 어떤 하루를 보내던 중이었을까. 점심 메뉴를 고르며 잠깐 망설였을까. 길을 걸으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을까. 나는 그들의 마지막 순간을 알지 못했다. 다만 나와 다르지 않은 하루를 살던 사람들이, 내가 늘 오가던 거리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었다.

희생자 가운데 젊은 학생도 있었다는 소식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좋아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 학생에게 주어졌어야 할 날들을 자꾸 생각하게 되었다. 더 배우고, 서툰 선택도 해 보고, 실패한 뒤 다시 시작할 시간들. 나는 젊은 사람에게는 그런 시간이 넉넉히 남아 있으리라 막연히 믿어 왔다.

앞으로 맞이할 새로운 시작에 설레거나 긴장할 날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 일 없는 하루를 지루해하며 보내는 날도 있었을 것이다. 큰 성취를 이루지 않더라도, 나이를 먹으며 자기 삶을 살아갈 기회는 주어졌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 평범한 기회마저 빼앗겼다는 사실이 서러웠다. 그를 잃은 가족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더는 말을 잇기 어려웠다.

그날 이후 가족이 건네는 말들이 다르게 들렸다.

“밥은 먹었니?”

“언제 들어오니?”

너무 자주 듣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말들이다. 바쁠 때면 대답하는 것조차 성가셔했다. 그러나 그날 내가 전화로 확인하려던 것도 다르지 않았다. 어디에 있는지, 괜찮은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 늘 듣던 “언제 들어오니?”라는 물음에도 가족의 안부를 살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내 불안은 가족과의 통화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누군가를 잃은 가족들에게는 그날 이후의 일상이 송두리째 달라졌을 것이다. 늘 함께 밥을 먹던 사람의 빈자리, 전화를 걸어도 더는 들을 수 없는 목소리. 나는 통화를 마치고 하던 일을 이어 갔지만, 그날부터 이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사람들도 있었다.

사건 뒤 거리에는 꽃과 촛불이 놓였다. 누군가 놓고 간 꽃 옆에 또 다른 꽃이 놓였다. 바쁘게 오가던 사람들이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평소라면 서둘러 지나쳤을 거리에서 사람들은 추모의 꽃들 앞에 한동안 머물렀다. 꽃 앞에 선 이들은 말없이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4월 29일 저녁에는 멜 라스트먼 광장에서 추모식이 열렸다. 수많은 시민이 모여 희생자들을 기렸다. 어떤 말로도 떠난 사람을 돌아오게 할 수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말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찾아왔다.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도 함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이 내게도 위로가 되었다. 내가 살고 일하던 동네에는 다른 사람의 아픔 앞에서 걸음을 멈추는 이웃들이 있었다. 희생자를 알지 못해도 꽃을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 놓인 꽃들과 고개를 숙이던 사람들의 모습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도시는 차츰 분주함을 되찾았다. 도로에는 차가 달렸고 신호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이 길을 건넜다. 나도 익숙한 시간에 집을 나서고 돌아왔다. 해야 할 일이 쌓이면 그날을 떠올리지 않은 채 며칠을 보내기도 했다. 계절이 여러 번 바뀌는 동안 사건을 생각하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그러다 사건 당시 크게 다쳤던 피해자 한 명이 2021년 10월 28일 끝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목숨을 잃은 사람은 모두 열한 명이 되었다.

내가 그 사건을 조금씩 잊어 가는 동안에도, 그분에게는 사건으로 입은 상처가 남아 있었다. 가족들은 회복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별일 없이 보냈다고 여긴 날들에도 그들의 고통은 이어지고 있었다. 기사를 읽고 난 뒤, 나는 한동안 하던 일로 돌아가지 못했다.

영 스트리트와 올리브 애비뉴 부근의 올리브 스퀘어 공원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 명판이 있다. 분주한 거리 가까이에 잠시 멈춰 그들을 기억할 자리가 있다는 것이 고맙다. 길을 걷던 사람도 그곳에 서서 희생자들을 떠올릴 수 있다. 사건을 오래전 뉴스로만 접했던 누군가도 그곳에 서서, 그날 희생된 한 사람의 삶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봄이 오면 나는 희생자들이 더는 맞이하지 못한 계절을 떠올린다. 살아 있었다면 꽃이 핀 줄도 모르고 바삐 지나치거나, 꽃나무 아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봄날도 있었을 것이다.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그날들을 살아갔을 것이다. 거리에는 해마다 봄이 돌아오지만, 그들은 더는 그 봄을 맞이할 수 없다.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희생자들을 잠시 기억해 주면 좋겠다. 그들의 귀가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주면 좋겠다. 꽃 한 송이를 놓거나 그곳에 잠깐 머물러 추모하는 일이 유가족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예전에는 아무 일 없었던 하루를 잘 기억하지 않았다. 기쁜 일도 속상한 일도 없으면 그저 그런 날로 여겼다. 이제는 하루를 마치고 현관문을 여는 순간 마음이 놓인다. 집 안에서 들려오는 인기척, 오늘 어땠느냐는 물음, 마주 앉아 나누는 짧은 이야기. 전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이다.

고맙다는 말을 마음속에만 두지 않으려 한다. 사랑한다는 말이 쑥스러워도 너무 오래 미루지 않으려 한다. 늘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 여전히 바쁘다는 이유로 건성으로 대답하고, 익숙한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다가 그날의 전화가 떠오르면 하던 일을 잠시 멈춘다. 그리고 아까 흘려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들려 달라고 한다.

오늘도 영 스트리트에는 사람들이 걷는다. 신호가 바뀌면 기다리던 사람들이 함께 길을 건넌다. 나는 그들이 무사히 목적지에 닿기를 빈다.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가 누군가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날, 노스욕의 거리는 울고 있었다.

이제 그 길에는 다시 일상이 흐른다. 나도 사람들 사이에서 신호를 기다린다. 초록불이 켜지면 길을 건너고 저녁이면 집으로 향한다.

문을 열며 “다녀왔어요” 하고 인사를 건넨다. 안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대답한다.

나는 신발을 벗다가 고개를 들어 그 얼굴을 바라본다.그날, 노스욕의 거리는 울고 있었다

노스욕에 봄이 왔다고 하기에는 아직 조금 이른 때였다. 겨울의 찬 기운을 머금은 바람이 불었고, 길가의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를 하늘로 뻗고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의 옷차림은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었다. 찬바람 속에서도 봄은 다가오고 있었다.

2018년 4월 23일, 그날도 사람들은 저마다의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점심을 먹고 일터로 돌아가는 길이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볼일을 보러 나왔을 것이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하던 일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날 이후, 내게 영 스트리트는 예전과 같은 길이 아니었다. 여러 해가 흐른 지금도 그곳을 걷다가 그날 잇따라 울리던 사이렌 소리를 떠올리곤 한다. 눈앞에서는 사람들이 평소처럼 길을 걷고 있지만, 내 생각은 잠시 그날 오후로 돌아간다.

당시 나는 비크로프트 로드 509번지에 살며 노스욕의 한 직장까지 걸어서 출퇴근했다. 영 스트리트는 늘 오가던 길이었다. 어느 모퉁이를 돌아 어디에서 신호를 기다려야 하는지 몸이 먼저 알았다. 아침에는 일터로 향했고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그 길을 걷던 사람들 가운데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점심시간이 지난 무렵이었다. 일터에서 하던 일을 잠시 멈췄을 때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긴급 차량 한 대가 지나간 뒤에도 사이렌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앞선 소리가 멀어지기도 전에 또 다른 사이렌이 울렸다. 무슨 일인지는 몰랐지만 자꾸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잠시 뒤 뉴스 속보가 전해졌다. 한 남성이 빌린 승합차를 몰고 영 스트리트의 인도로 돌진해 보행자들을 덮쳤다는 소식이었다. 사람들이 숨지고 다쳤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나는 화면의 자막을 몇 번이나 되읽었다. 그날 아침에 지나온 바로 그 거리였다. 익숙한 거리 이름이 그토록 낯설고 두렵게 보인 적은 없었다.

혹시 우리 가족도 그 시간에 그 길을 지나고 있지는 않았을까.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누군가 전화를 받기를 기다리며 아침에 나누었던 말을 되짚었다. 오늘 어디에 간다고 했던가. 몇 시쯤 돌아온다고 했던가. 무심히 흘려들었던 말들을 어떻게든 떠올리려 애썼다. 가족들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길게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전화를 끊고도 한동안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저녁이면 가족을 다시 만나리라 믿었다.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날 아침 가족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았던가. 집을 나서면서 어떤 인사를 건넸던가.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인데도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가족의 목소리를 듣고 안심한 뒤에는, 아직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아 애태우고 있을 사람들이 떠올랐다. 나처럼 급히 전화를 걸었으나 아직 가족의 안부를 확인하지 못한 사람들. 몇 번이고 같은 번호를 누르며 누군가 받기를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 무사하다는 짧은 말 한마디를 듣기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 나는 조금 전의 통화로 알게 되었다.

사건 직후 보도된 사망자는 열 명이었다. 그 가운데는 한국 국적자 두 명과 한국계 캐나다인 한 명도 있었다. 뉴스는 희생자 수를 거듭 전했다. 나는 그 숫자가 나올 때마다 마음이 멈칫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그날 아침 문을 나서며 뒤로한 집이 있었을 것이다. 집에 돌아가 마저 할 일도, 누군가와 나눌 이야기도 있었을 것이다. 열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도, 남겨진 가족들이 앞으로 겪을 슬픔도 쉽게 헤아릴 수 없었다.

그들은 어떤 하루를 보내던 중이었을까. 점심 메뉴를 고르며 잠깐 망설였을까. 길을 걸으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을까. 나는 그들의 마지막 순간을 알지 못했다. 다만 나와 다르지 않은 하루를 살던 사람들이, 내가 늘 오가던 거리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었다.

희생자 가운데 젊은 학생도 있었다는 소식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좋아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 학생에게 주어졌어야 할 날들을 자꾸 생각하게 되었다. 더 배우고, 서툰 선택도 해 보고, 실패한 뒤 다시 시작할 시간들. 나는 젊은 사람에게는 그런 시간이 넉넉히 남아 있으리라 막연히 믿어 왔다.

앞으로 맞이할 새로운 시작에 설레거나 긴장할 날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 일 없는 하루를 지루해하며 보내는 날도 있었을 것이다. 큰 성취를 이루지 않더라도, 나이를 먹으며 자기 삶을 살아갈 기회는 주어졌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 평범한 기회마저 빼앗겼다는 사실이 서러웠다. 그를 잃은 가족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더는 말을 잇기 어려웠다.

그날 이후 가족이 건네는 말들이 다르게 들렸다.

“밥은 먹었니?”

“언제 들어오니?”

너무 자주 듣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말들이다. 바쁠 때면 대답하는 것조차 성가셔했다. 그러나 그날 내가 전화로 확인하려던 것도 다르지 않았다. 어디에 있는지, 괜찮은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 늘 듣던 “언제 들어오니?”라는 물음에도 가족의 안부를 살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내 불안은 가족과의 통화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누군가를 잃은 가족들에게는 그날 이후의 일상이 송두리째 달라졌을 것이다. 늘 함께 밥을 먹던 사람의 빈자리, 전화를 걸어도 더는 들을 수 없는 목소리. 나는 통화를 마치고 하던 일을 이어 갔지만, 그날부터 이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사람들도 있었다.

사건 뒤 거리에는 꽃과 촛불이 놓였다. 누군가 놓고 간 꽃 옆에 또 다른 꽃이 놓였다. 바쁘게 오가던 사람들이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평소라면 서둘러 지나쳤을 거리에서 사람들은 추모의 꽃들 앞에 한동안 머물렀다. 꽃 앞에 선 이들은 말없이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4월 29일 저녁에는 멜 라스트먼 광장에서 추모식이 열렸다. 수많은 시민이 모여 희생자들을 기렸다. 어떤 말로도 떠난 사람을 돌아오게 할 수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말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찾아왔다.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도 함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이 내게도 위로가 되었다. 내가 살고 일하던 동네에는 다른 사람의 아픔 앞에서 걸음을 멈추는 이웃들이 있었다. 희생자를 알지 못해도 꽃을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 놓인 꽃들과 고개를 숙이던 사람들의 모습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도시는 차츰 분주함을 되찾았다. 도로에는 차가 달렸고 신호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이 길을 건넜다. 나도 익숙한 시간에 집을 나서고 돌아왔다. 해야 할 일이 쌓이면 그날을 떠올리지 않은 채 며칠을 보내기도 했다. 계절이 여러 번 바뀌는 동안 사건을 생각하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그러다 사건 당시 크게 다쳤던 피해자 한 명이 2021년 10월 28일 끝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목숨을 잃은 사람은 모두 열한 명이 되었다.

내가 그 사건을 조금씩 잊어 가는 동안에도, 그분에게는 사건으로 입은 상처가 남아 있었다. 가족들은 회복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별일 없이 보냈다고 여긴 날들에도 그들의 고통은 이어지고 있었다. 기사를 읽고 난 뒤, 나는 한동안 하던 일로 돌아가지 못했다.

영 스트리트와 올리브 애비뉴 부근의 올리브 스퀘어 공원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 명판이 있다. 분주한 거리 가까이에 잠시 멈춰 그들을 기억할 자리가 있다는 것이 고맙다. 길을 걷던 사람도 그곳에 서서 희생자들을 떠올릴 수 있다. 사건을 오래전 뉴스로만 접했던 누군가도 그곳에 서서, 그날 희생된 한 사람의 삶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봄이 오면 나는 희생자들이 더는 맞이하지 못한 계절을 떠올린다. 살아 있었다면 꽃이 핀 줄도 모르고 바삐 지나치거나, 꽃나무 아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봄날도 있었을 것이다.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그날들을 살아갔을 것이다. 거리에는 해마다 봄이 돌아오지만, 그들은 더는 그 봄을 맞이할 수 없다.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희생자들을 잠시 기억해 주면 좋겠다. 그들의 귀가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주면 좋겠다. 꽃 한 송이를 놓거나 그곳에 잠깐 머물러 추모하는 일이 유가족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예전에는 아무 일 없었던 하루를 잘 기억하지 않았다. 기쁜 일도 속상한 일도 없으면 그저 그런 날로 여겼다. 이제는 하루를 마치고 현관문을 여는 순간 마음이 놓인다. 집 안에서 들려오는 인기척, 오늘 어땠느냐는 물음, 마주 앉아 나누는 짧은 이야기. 전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이다.

고맙다는 말을 마음속에만 두지 않으려 한다. 사랑한다는 말이 쑥스러워도 너무 오래 미루지 않으려 한다. 늘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 여전히 바쁘다는 이유로 건성으로 대답하고, 익숙한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다가 그날의 전화가 떠오르면 하던 일을 잠시 멈춘다. 그리고 아까 흘려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들려 달라고 한다.

오늘도 영 스트리트에는 사람들이 걷는다. 신호가 바뀌면 기다리던 사람들이 함께 길을 건넌다. 나는 그들이 무사히 목적지에 닿기를 빈다.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가 누군가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날, 노스욕의 거리는 울고 있었다.

이제 그 길에는 다시 일상이 흐른다. 나도 사람들 사이에서 신호를 기다린다. 초록불이 켜지면 길을 건너고 저녁이면 집으로 향한다.

문을 열며 “다녀왔어요” 하고 인사를 건넨다. 안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대답한다.

나는 신발을 벗다가 고개를 들어 그 얼굴을 바라본다.노스욕에 봄이 왔다고 하기에는 아직 조금 이른 때였다. 겨울의 찬 기운을 머금은 바람이 불었고, 길가의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를 하늘로 뻗고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의 옷차림은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었다. 찬바람 속에서도 봄은 다가오고 있었다.

2018년 4월 23일, 그날도 사람들은 저마다의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점심을 먹고 일터로 돌아가는 길이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볼일을 보러 나왔을 것이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하던 일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날 이후, 내게 영 스트리트는 예전과 같은 길이 아니었다. 여러 해가 흐른 지금도 그곳을 걷다가 그날 잇따라 울리던 사이렌 소리를 떠올리곤 한다. 눈앞에서는 사람들이 평소처럼 길을 걷고 있지만, 내 생각은 잠시 그날 오후로 돌아간다.

당시 나는 비크로프트 로드 509번지에 살며 노스욕의 한 직장까지 걸어서 출퇴근했다. 영 스트리트는 늘 오가던 길이었다. 어느 모퉁이를 돌아 어디에서 신호를 기다려야 하는지 몸이 먼저 알았다. 아침에는 일터로 향했고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그 길을 걷던 사람들 가운데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점심시간이 지난 무렵이었다. 일터에서 하던 일을 잠시 멈췄을 때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긴급 차량 한 대가 지나간 뒤에도 사이렌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앞선 소리가 멀어지기도 전에 또 다른 사이렌이 울렸다. 무슨 일인지는 몰랐지만 자꾸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잠시 뒤 뉴스 속보가 전해졌다. 한 남성이 빌린 승합차를 몰고 영 스트리트의 인도로 돌진해 보행자들을 덮쳤다는 소식이었다. 사람들이 숨지고 다쳤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나는 화면의 자막을 몇 번이나 되읽었다. 그날 아침에 지나온 바로 그 거리였다. 익숙한 거리 이름이 그토록 낯설고 두렵게 보인 적은 없었다.

혹시 우리 가족도 그 시간에 그 길을 지나고 있지는 않았을까.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누군가 전화를 받기를 기다리며 아침에 나누었던 말을 되짚었다. 오늘 어디에 간다고 했던가. 몇 시쯤 돌아온다고 했던가. 무심히 흘려들었던 말들을 어떻게든 떠올리려 애썼다. 가족들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길게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전화를 끊고도 한동안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저녁이면 가족을 다시 만나리라 믿었다.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날 아침 가족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았던가. 집을 나서면서 어떤 인사를 건넸던가.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인데도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가족의 목소리를 듣고 안심한 뒤에는, 아직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아 애태우고 있을 사람들이 떠올랐다. 나처럼 급히 전화를 걸었으나 아직 가족의 안부를 확인하지 못한 사람들. 몇 번이고 같은 번호를 누르며 누군가 받기를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 무사하다는 짧은 말 한마디를 듣기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 나는 조금 전의 통화로 알게 되었다.

사건 직후 보도된 사망자는 열 명이었다. 그 가운데는 한국 국적자 두 명과 한국계 캐나다인 한 명도 있었다. 뉴스는 희생자 수를 거듭 전했다. 나는 그 숫자가 나올 때마다 마음이 멈칫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그날 아침 문을 나서며 뒤로한 집이 있었을 것이다. 집에 돌아가 마저 할 일도, 누군가와 나눌 이야기도 있었을 것이다. 열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도, 남겨진 가족들이 앞으로 겪을 슬픔도 쉽게 헤아릴 수 없었다.

그들은 어떤 하루를 보내던 중이었을까. 점심 메뉴를 고르며 잠깐 망설였을까. 길을 걸으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을까. 나는 그들의 마지막 순간을 알지 못했다. 다만 나와 다르지 않은 하루를 살던 사람들이, 내가 늘 오가던 거리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었다.

희생자 가운데 젊은 학생도 있었다는 소식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좋아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 학생에게 주어졌어야 할 날들을 자꾸 생각하게 되었다. 더 배우고, 서툰 선택도 해 보고, 실패한 뒤 다시 시작할 시간들. 나는 젊은 사람에게는 그런 시간이 넉넉히 남아 있으리라 막연히 믿어 왔다.

앞으로 맞이할 새로운 시작에 설레거나 긴장할 날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 일 없는 하루를 지루해하며 보내는 날도 있었을 것이다. 큰 성취를 이루지 않더라도, 나이를 먹으며 자기 삶을 살아갈 기회는 주어졌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 평범한 기회마저 빼앗겼다는 사실이 서러웠다. 그를 잃은 가족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더는 말을 잇기 어려웠다.

그날 이후 가족이 건네는 말들이 다르게 들렸다.

“밥은 먹었니?”

“언제 들어오니?”

너무 자주 듣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말들이다. 바쁠 때면 대답하는 것조차 성가셔했다. 그러나 그날 내가 전화로 확인하려던 것도 다르지 않았다. 어디에 있는지, 괜찮은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 늘 듣던 “언제 들어오니?”라는 물음에도 가족의 안부를 살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내 불안은 가족과의 통화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누군가를 잃은 가족들에게는 그날 이후의 일상이 송두리째 달라졌을 것이다. 늘 함께 밥을 먹던 사람의 빈자리, 전화를 걸어도 더는 들을 수 없는 목소리. 나는 통화를 마치고 하던 일을 이어 갔지만, 그날부터 이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사람들도 있었다.

사건 뒤 거리에는 꽃과 촛불이 놓였다. 누군가 놓고 간 꽃 옆에 또 다른 꽃이 놓였다. 바쁘게 오가던 사람들이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평소라면 서둘러 지나쳤을 거리에서 사람들은 추모의 꽃들 앞에 한동안 머물렀다. 꽃 앞에 선 이들은 말없이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4월 29일 저녁에는 멜 라스트먼 광장에서 추모식이 열렸다. 수많은 시민이 모여 희생자들을 기렸다. 어떤 말로도 떠난 사람을 돌아오게 할 수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말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찾아왔다.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도 함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이 내게도 위로가 되었다. 내가 살고 일하던 동네에는 다른 사람의 아픔 앞에서 걸음을 멈추는 이웃들이 있었다. 희생자를 알지 못해도 꽃을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 놓인 꽃들과 고개를 숙이던 사람들의 모습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도시는 차츰 분주함을 되찾았다. 도로에는 차가 달렸고 신호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이 길을 건넜다. 나도 익숙한 시간에 집을 나서고 돌아왔다. 해야 할 일이 쌓이면 그날을 떠올리지 않은 채 며칠을 보내기도 했다. 계절이 여러 번 바뀌는 동안 사건을 생각하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그러다 사건 당시 크게 다쳤던 피해자 한 명이 2021년 10월 28일 끝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목숨을 잃은 사람은 모두 열한 명이 되었다.

내가 그 사건을 조금씩 잊어 가는 동안에도, 그분에게는 사건으로 입은 상처가 남아 있었다. 가족들은 회복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별일 없이 보냈다고 여긴 날들에도 그들의 고통은 이어지고 있었다. 기사를 읽고 난 뒤, 나는 한동안 하던 일로 돌아가지 못했다.

영 스트리트와 올리브 애비뉴 부근의 올리브 스퀘어 공원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 명판이 있다. 분주한 거리 가까이에 잠시 멈춰 그들을 기억할 자리가 있다는 것이 고맙다. 길을 걷던 사람도 그곳에 서서 희생자들을 떠올릴 수 있다. 사건을 오래전 뉴스로만 접했던 누군가도 그곳에 서서, 그날 희생된 한 사람의 삶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봄이 오면 나는 희생자들이 더는 맞이하지 못한 계절을 떠올린다. 살아 있었다면 꽃이 핀 줄도 모르고 바삐 지나치거나, 꽃나무 아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봄날도 있었을 것이다.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그날들을 살아갔을 것이다. 거리에는 해마다 봄이 돌아오지만, 그들은 더는 그 봄을 맞이할 수 없다.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희생자들을 잠시 기억해 주면 좋겠다. 그들의 귀가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주면 좋겠다. 꽃 한 송이를 놓거나 그곳에 잠깐 머물러 추모하는 일이 유가족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예전에는 아무 일 없었던 하루를 잘 기억하지 않았다. 기쁜 일도 속상한 일도 없으면 그저 그런 날로 여겼다. 이제는 하루를 마치고 현관문을 여는 순간 마음이 놓인다. 집 안에서 들려오는 인기척, 오늘 어땠느냐는 물음, 마주 앉아 나누는 짧은 이야기. 전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이다.

고맙다는 말을 마음속에만 두지 않으려 한다. 사랑한다는 말이 쑥스러워도 너무 오래 미루지 않으려 한다. 늘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 여전히 바쁘다는 이유로 건성으로 대답하고, 익숙한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다가 그날의 전화가 떠오르면 하던 일을 잠시 멈춘다. 그리고 아까 흘려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들려 달라고 한다.

오늘도 영 스트리트에는 사람들이 걷는다. 신호가 바뀌면 기다리던 사람들이 함께 길을 건넌다. 나는 그들이 무사히 목적지에 닿기를 빈다.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가 누군가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날, 노스욕의 거리는 울고 있었다.

이제 그 길에는 다시 일상이 흐른다. 나도 사람들 사이에서 신호를 기다린다. 초록불이 켜지면 길을 건너고 저녁이면 집으로 향한다.

문을 열며 “다녀왔어요” 하고 인사를 건넨다. 안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대답한다.

나는 신발을 벗다가 고개를 들어 그 얼굴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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