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소풍 가는 날

생각이머무는곳

글 소풍 가는 날

가을의 기침 소리

― 코로나19가 남기고 간 기억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고, 한낮의 햇살에는 아직 떠나지 않은 여름의 온기가 조금 남아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달라지는 기온에 사람들의 옷차림도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두툼한 외투를 걸치고, 누군가는 아직 가벼운 옷차림으로 거리를 걷는다.

계절은 하루가 다르게 깊어가지만, 우리 몸은 그 변화를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듯하다.

요즘 들어 거리에서나 버스 안에서, 때로는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 기침 소리가 심심찮게 들린다. 예전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을 소리인데, 이제는 나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간다. 누군가 기침을 하면 순간적으로 거리를 의식하게 되고, 잊었다고 생각했던 코로나19 시절의 불안이 작은 기침 소리 하나에 다시 고개를 든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낯설고 두려웠던 시절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경계해야 했고,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도 악수 대신 멀찍이서 손을 흔들었고, 따뜻한 포옹은 마음속으로만 해야 했다. 얼굴의 절반을 가린 마스크 때문에 서로의 표정을 읽기도 어려웠다.

그때는 누군가의 기침 소리가 단순한 기침으로 들리지 않았다. 버스 안에서 한 사람이 기침을 하면 주변 사람들이 슬며시 몸을 돌리거나 한 걸음 물러서곤 했다. 기침한 사람은 괜스레 미안한 표정으로 입을 가리고,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모두가 두려웠고, 모두가 자신과 가족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거리의 발걸음은 뜸해지고 사람들의 만남은 끊겼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보다 더 두려웠던 것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안이었다. 어제까지 당연하게 누리던 일상이 하루아침에 멀어져 버렸다.

함께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일, 가까운 사람과 마주 앉아 차 한 잔을 나누는 일, 별다른 걱정 없이 교회에 가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일까지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그제야 알았다.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를.

고국을 떠나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나에게 그 시절의 고립은 단순한 외로움만은 아니었다. 가족과 친척은 멀리 떨어져 있고, 마음을 터놓고 만날 사람조차 많지 않은 이민 생활에서 그나마 이어 오던 사람들과의 만남마저 끊어지는 것은 또 다른 쓸쓸함이었다.

이민자의 삶이란 어쩌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가느다란 인연의 끈을 붙잡고 살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자주 만나지 못해도 안부를 묻고, 가끔 얼굴을 마주하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낯선 땅에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런데 그 작은 만남마저 허락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몸의 거리는 잠시 떨어져 있었지만, 그 거리가 어느새 마음의 거리로 굳어질까 두려웠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반가우면서도, 통화를 끝내고 나면 오히려 집 안의 적막이 더 크게 느껴지곤 했다.

그렇게 몇 해가 흐르고 세상은 다시 일상의 모습을 되찾았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벗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기 시작했고, 거리에는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식당에는 이야기 소리가 돌아왔고, 교회에서도 반가운 인사와 따뜻한 대화가 다시 이어졌다.

그러나 참 이상한 일이다.

일상은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지만, 사람을 경계하던 그때의 습관은 아직 우리 마음에 남아 있는 듯하다.

누군가의 작은 기침 소리에도 순간적으로 긴장하고, 몸에 열이 조금만 올라와도 혹시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머리로는 환절기에 감기가 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은 지난날의 기억을 먼저 꺼내 놓는다.

코로나19는 병에 대한 두려움만 남긴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기침 소리에도 먼저 거리를 헤아리게 되는 조심스러운 시선까지 남겼다.

예전에는 누군가 기침을 하면 먼저 괜찮으냐고 물었다. 감기에 걸렸느냐며 따뜻한 물이라도 마시라고 권하곤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걱정보다 경계하는 마음이 앞서는 세상을 경험했다.

그 사실이 문득 서글퍼진다.

물론 건강을 지키기 위해 조심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나 자신을 보호하는 일이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건강을 지키려는 조심성이 아픈 사람을 피하고 의심하는 마음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으면 한다.

기침하는 사람도 누군가의 가족이며, 그저 환절기의 찬바람에 목이 잠시 불편한 사람일 수 있다. 우리 역시 언제든 몸이 약해질 수 있고,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한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사람은 누구나 약한 존재다.

건강할 때는 자신의 건강이 영원할 것처럼 살아가지만, 작은 감기 하나에도 몸과 마음이 쉽게 지치곤 한다. 그러니 누군가의 아픔 앞에서 먼저 가져야 할 마음은 의심이 아니라 이해일 것이다.

창밖으로 낙엽이 하나둘 떨어진다.

찬바람에 흔들리던 나뭇잎이 제 몫의 시간을 마치고 땅으로 내려앉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지 끝에서 햇살을 받아 반짝이던 잎들이 이제는 바람이 이끄는 대로 흩어진다.

계절은 그렇게 제 할 일을 마치고 다음 계절에 자리를 내어 준다.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는 두려움도 그랬으면 좋겠다. 바람에 떠밀린 낙엽이 마침내 땅에 닿듯, 오래도록 마음을 떠돌던 불안도 이제는 제자리를 찾고 잠잠해졌으면 좋겠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은 단지 질병을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다는 것,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을 수 있다는 것, 별다른 걱정 없이 평범한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하는 사실을 우리는 그 시간을 지나며 배웠다.

하지만 사람은 참 쉽게 잊는다.

그토록 간절하게 바라던 일상이 돌아오자 어느새 그 소중함마저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간다.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쁨도, 함께 앉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감사함도 바쁜 일상 속에 조금씩 묻혀 간다.

어쩌면 세월이 흐른다는 것은 아픈 기억을 지우는 일이 아니라, 그 기억을 안고도 다시 평범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인지 모른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기침 소리가 들린다.

순간적으로 지난날의 기억이 스쳐 지나가지만, 이제는 두려움보다 먼저 이런 생각을 해 보고 싶다.

‘저 기침이 오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따뜻한 차 한 잔에 목의 불편함이 가라앉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코로나19라는 긴 터널을 지나온 우리가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작은 위로가 아닐까.

가을은 해마다 돌아오지만 우리가 지나온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코로나19가 남긴 상처와 기억도 세월 속에서 조금씩 희미해질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에 깨달았던 사람의 소중함만큼은 잊지 않았으면 한다.

가을바람이 차가워지는 것은 계절의 이치다. 그러나 사람을 향한 마음마저 차가워져야 할 이유는 없다.

기침 소리 하나에도 두려움보다 걱정이 먼저 앞서던 그 따뜻한 마음을, 우리는 다시 되찾을 수 있을까.

창밖의 가을바람은 오늘도 차갑다.

그래도 사람의 마음만은 따뜻한 계절로 남았으면 좋겠다.

2026년 10월, 노스욕의 가을날에.

답글 남기기

생각이머무는곳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