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아온 세월 끝에서 나 자신에게 묻는다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는 날이면 문득 나 자신에게 질문 하나를 던져 본다.
나는 착하게 살아야 하는가, 아니면 현명하게 살아야 하는가.
젊은 날에는 착하게 사는 것이 곧 바르게 사는 길이라 믿었다.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양보하며, 상대방의 처지를 먼저 헤아리는 것이 사람다운 삶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건넨 작은 배려가 언젠가는 또 다른 사람의 따뜻한 마음으로 돌아오리라 믿었다.
그 믿음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세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건넨 진심이 언제나 진심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 내 몫을 내어주었고, 싫다는 말 한마디를 하지 못해 남의 몫까지 짊어지곤 했다. 상대방의 마음이 상할까 봐 하고 싶은 말을 삼켰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관계가 불편해질까 두려워 웃음으로 넘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는 그것이 어른스럽게 사는 길이라고 여겼다. 참고 견디는 사람이 결국은 이기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남의 아픔에는 귀를 기울이면서도 내 가슴에 쌓여 가는 서운함과 외로움에는 애써 눈을 감고 살았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말하지 못한 상처들이 하나둘 쌓여 갔다.
때로는 사람이 서운했고, 때로는 세상이 야속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누구보다 안타까운 것은 나 자신이었다.
남에게는 그토록 너그러우면서 정작 나에게는 왜 그리 인색했던 것일까.
그렇다고 착하게 살아온 지난날을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 그 시절의 나는 내가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왔을 뿐이다. 다만 이제는 착함에도 분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는다.
착함은 스스로 선택한 배려이지만, 거절할 용기가 없어 자신을 희생하는 일까지 모두 착함이라 부를 수는 없다는 것을.
남을 위해 기꺼이 손을 내미는 것과, 손을 거두지 못해 자신의 삶까지 흔들리는 것은 분명 다른 일이다.
세상에는 작은 호의에도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거듭된 배려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처음에는 미안해하던 부탁이 어느 순간 당연한 요구가 되고, 한 번의 양보가 또 다른 양보를 기대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마음속에 작은 의문이 일었다.
내가 너무 순진했던 것일까. 아니면 사람을 믿는 마음 자체가 잘못이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현명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을 쉽게 믿지 않고, 손해 볼 일을 미리 피하며, 내게 이로운 관계만 선택하는 것일까. 혹은 남의 사정보다 내 형편을 먼저 계산하며 살아가는 것이 세상을 잘 살아가는 방법일까.
그러나 그렇게 사는 것이 반드시 현명한 삶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을 향해 마음의 문을 닫으면 배신당할 두려움에서는 조금 멀어질지 몰라도, 누군가의 진심을 받아들이는 기쁨에서도 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살아보니 사람 때문에 아픈 날도 있었지만, 사람 때문에 견딜 수 있었던 날도 적지 않았다. 무심히 건네받은 따뜻한 말 한마디가 오래도록 위로가 되기도 했고, 아무런 대가 없이 내밀어 준 손길이 메마른 마음을 적셔 주기도 했다.
그러니 몇 번의 상처를 이유로 사람을 향한 믿음마저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이제는 누구에게나 같은 크기의 마음을 내어줄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안다.
진심이 더는 통하지 않는 관계에서는 조용히 물러서고, 감당할 수 없는 부탁 앞에서는 미안함을 무릅쓰고 거절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거절한다고 해서 반드시 냉정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 걸음 물러선다고 해서 상대방을 미워하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서로의 삶을 존중할 수 있는 거리를 두는 것이 오히려 관계를 오래 지키는 방법일 수도 있다.
젊은 날에는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일에 마음을 쏟았다면, 이제는 어떤 거리를 두어야 서로 상처받지 않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것 또한 세월이 가르쳐 준 삶의 지혜일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단순히 몸이 늙어 가는 일이 아니라,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씩 달라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누군가 나를 오해하면 반드시 풀어야 마음이 편했다. 내 진심을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했고, 관계가 멀어지는 것 같으면 어떻게든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오해를 해명할 수 없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누군가는 내 진심을 알아줄 것이고, 누군가는 끝내 알아주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내 삶의 가치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누군가를 위해 살아왔다 해도 내 마음에 남은 상처를 보듬고, 내가 선택한 삶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다.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 참으로 오랜 세월이 걸렸다.
돌이켜 보면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남을 이해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남을 이해하면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는 일이 더 어려웠다.
착함이 남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마음이라면, 현명함은 그 마음을 지키면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는 지혜일 것이다.
이제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짧아졌다는 생각이 들 때면 마음이 한결 조용해진다.
예전처럼 모든 일에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지도 않고, 누구에게나 인정받으려고 애쓰고 싶지도 않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과는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원망보다 조용한 이해를 남겨 두고 싶다.
사람마다 살아온 길이 다르고, 말하지 못한 사연 또한 다를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만으로 한 사람의 삶을 모두 판단할 수는 없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서운함을 남겼을지 모른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의 진심을 가볍게 여기거나, 나의 편안함을 위해 누군가의 양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 적은 없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남에게 받았던 상처만 헤아릴 일이 아니라, 내가 남긴 상처도 돌아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현명함이란 단순히 손해 보지 않는 기술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겸손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착함과 현명함은 서로 반대편에 서 있는 가치가 아닐 것이다. 착한 마음이 사람을 향해 손을 내미는 용기라면, 현명한 마음은 그 손을 언제 내밀고 언제 거두어야 할지 헤아리는 지혜일 것이다.
이제 와서 착하게 살아온 세월을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착하다는 이유로 나 자신을 너무 오래 외롭게 두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사람에게 상처받았다고 사람을 미워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내 마음을 끝없이 내어주고 싶지도 않다.
남은 세월에는 조금은 현명하고 착하게 살고 싶다.
남의 아픔을 헤아리되 내 아픔도 외면하지 않고, 남에게 따뜻한 사람이되 나 자신에게도 너그러운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누군가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돕고,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하며, 때로는 거절할 줄 알고, 때로는 기꺼이 양보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쩌면 인생의 지혜란 특별한 깨달음이나 거창한 결심에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마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 마음을 잃지 않고, 상대방의 마음도 함부로 다치게 하지 않는 평범한 태도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도 조용히 나 자신에게 묻는다.
착하게 살 것인가, 현명하게 살 것인가.
이제는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착한 마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평생 남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려고 애썼으니, 남은 날만큼은 내 마음도 함부로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살고 싶다.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도 소중하지만, 세월의 끝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
착하다는 말 한마디에 나를 희생하지 않고, 현명하다는 이름으로 남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며, 조금은 부족하더라도 내 마음에 정직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평생 착하게 사는 법을 배우려 애썼다면, 이제는 그 착한 마음을 지키는 법도 배워야 할 때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살아온 세월이 내게 남겨 준 작은 깨달음이며,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품고 싶은 조용한 바람이다.
나는 이제, 조금은 현명하고 착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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