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 동료의 푸념을 들으며
점심시간이었다. 오전 내내 일에 매달렸던 동료들이 하나둘 식탁에 모여 앉았다. 잠시나마 일손을 놓고 나누는 식사는 하루 중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누군가는 농담을 건넸고, 누군가는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식탁 위에는 음식 냄새와 함께 사람 사는 이야기가 오갔다.
그때 한 동료가 한숨을 내쉬며 여자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여자친구는 외국인이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 다른 문화와 생활방식 속에서 자란 두 사람은 사소한 일에도 의견이 엇갈려 말다툼이 잦다고 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별것도 아닌 일에 자꾸 화를 낸다니까.”
그는 답답한 마음을 쏟아내듯 불평을 늘어놓았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들었지만,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그의 목소리에는 짜증뿐 아니라 서운함과 지친 기색이 묻어났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사랑이 그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된 듯했다.
나는 말없이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마음을 나누는 일이 어찌 쉬울 수 있겠는가.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조차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다투곤 한다. 하물며 언어와 문화, 오랜 생활 습관이 다른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인내와 배려를 필요로 하겠는가.
그러나 생각해 보면 갈등의 원인이 반드시 문화의 차이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는 사실보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의 생각과 방식이 옳다고 믿으며 상대방도 그에 따라 주기를 바라는 마음일지 모른다.
동료는 여자친구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고 거듭 말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보이지 않는 또 한 사람의 마음을 생각했다.
그녀는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녀 역시 자신의 생각을 알아주지 않는 남자친구가 야속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에게는 자연스러운 말과 행동이 상대방에게는 불편하게 받아들여지는 현실이 답답했을 수도 있다. 어느 한쪽의 이야기만 듣고 누가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사람은 저마다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서로 다른 마음의 무늬를 지니고 있다. 같은 풍경을 바라보면서도 느끼는 감정이 다르고, 같은 말을 듣고도 받아들이는 뜻이 다르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이라 해서 언제나 마음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사랑은 서로의 다름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그 다름을 인정하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동료의 푸념을 듣다 보니 젊은 날의 내 모습도 떠올랐다.
나 역시 살아오면서 가까운 사람에게 서운함을 느낀 적이 적지 않았다.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원망했고, 내 생각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답답해했다. 그때는 상대방이 조금만 달라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여겼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내가 이해받고 싶었던 만큼 상대방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랐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돌이켜 보면 다툼의 시작은 대개 사소했다.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상처가 되기도 했고, 별 뜻 없이 지나친 행동 하나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기도 했다. 그럴 때 조금만 더 귀를 기울이고, 한 번만 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했더라면 피할 수 있었을 갈등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사람은 이상하게도 가까운 사람에게 더 쉽게 서운함을 드러낸다. 낯선 사람에게는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일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쉽게 참지 못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리라는 기대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에도 인내가 필요하고, 때로는 한 걸음 물러서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한 사람만 언제나 참고 양보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존중할 때 비로소 이해도 깊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에도 동료의 이야기는 좀처럼 마무리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여자친구와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이야기하는 모습에서는 쉽게 정리되지 않는 감정이 느껴졌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저토록 투덜거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그녀를 향한 애정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미움이라기보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불평으로 흘러나오는 것인지도 몰랐다.
물론 그의 속마음을 내가 다 알 수는 없다. 다만 두 사람이 서로의 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처음 마음을 나누었던 순간을 한 번쯤 떠올려 보았으면 싶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인연을 맺는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 가운데 우연히 만나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함께 시간을 쌓아 간다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일이다. 그렇기에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그 인연의 가치를 잊어버리는 일은 안타깝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동료들도 하나둘 일터로 돌아갔다. 조금 전까지 불평으로 가득했던 식탁에는 빈 그릇만 남아 있었다. 잠시 스쳐 지나간 이야기였지만, 그의 푸념은 이상하게도 내 마음에 오래 머물렀다.
창밖으로 눈을 돌리니 가을빛이 깊어 가고 있었다. 노랗게 물든 가로수 잎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서로 다른 모양과 빛깔을 지닌 잎들이 한 나무에 매달려 가을을 견디고 있었다.
사람의 인연도 그와 다르지 않으리라.
서로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만나 때로는 흔들리고 부딪히면서도, 이해와 배려로 관계를 이어 가는 것이 인생의 한 모습일 것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을 사랑하는 일보다 그 사람을 끝까지 이해하려 애쓰는 일이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은 뜨거운 감정으로 시작할 수 있지만, 그 마음을 오래 지켜 주는 것은 결국 서로를 향한 존중과 배려일 테니까.
그날 동료의 푸념은 어느새 내 삶을 돌아보게 하는 작은 거울이 되었다.
나는 얼마나 가까운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며 살아왔을까. 이해받기를 바라면서 정작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에는 인색하지 않았을까.
늦가을 햇살이 식당 창가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순간에도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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