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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소풍 가는 날

생각이머무는곳

글 소풍 가는 날

행복해져야 하는 이유

― 인생이라는 요리에 담긴 삶의 향기

인생을 오래 살아왔다고 해서 삶의 이치를 모두 깨닫는 것은 아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오히려 모르는 것이 많아지고, 젊은 날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일들이 새삼 어렵게 느껴진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도 그렇고,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일도 그렇다. 무엇보다 행복하게 산다는 것이 생각처럼 간단한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젊은 시절에는 좋은 직장을 얻고 남보다 앞서 나가면 행복할 것이라 믿었다. 중년에는 경제적인 안정을 이루고 자식들이 잘 자라주면 더 바랄 것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의 걱정이 사라지면 또 다른 걱정이 찾아왔고, 어렵게 이루어낸 성취의 기쁨도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행복은 늘 조금만 더 가면 닿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막상 그곳에 이르면 또 다른 곳에서 손짓하고 있었다.

그렇게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서 문득 요리사의 손길을 생각하게 된다.

한 접시의 음식을 맛있고 품위 있게 완성하려면 좋은 재료만으로는 부족하다. 재료마다 지닌 맛과 성질을 알아야 하고, 불의 세기와 조리 시간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지나친 양념은 재료 본래의 맛을 가리고, 부족한 정성은 아무리 값비싼 재료도 평범한 음식으로 만들어버린다.

숙련된 요리사의 손끝에는 수많은 실패와 경험이 배어 있다. 불을 너무 세게 하여 음식을 태워본 날도 있었을 것이고, 간을 잘못 맞춰 애써 만든 음식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 날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시행착오가 쌓이면서 비로소 재료의 숨은 맛을 끌어내는 솜씨가 생긴다.

인생도 한 접시의 요리를 완성하는 과정과 닮아 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재료를 가지고 세상에 태어난다. 넉넉한 환경에서 삶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가난과 어려움을 안고 출발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값비싼 재료가 반드시 훌륭한 음식을 보장하지 않듯, 풍족한 환경이 언제나 행복한 삶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삶의 맛은 주어진 조건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 조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무엇을 더하고 덜어내며,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지나친 욕심은 음식에 너무 많이 넣은 소금처럼 삶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성급한 분노는 조절하지 못한 불길처럼 소중한 관계를 태워버린다. 반면 인내와 배려는 거친 맛을 부드럽게 만들고, 감사하는 마음은 평범한 하루에도 은은한 향기를 더한다.

어쩌면 인생을 잘 산다는 것은 남보다 훌륭한 재료를 차지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재료로 깊은 맛을 빚어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직장이라는 뜨거운 불길

직장은 인간의 능력이 드러나는 곳이면서 감추어 두었던 본능이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기도 하다.

아침마다 같은 건물로 출근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을 품고 하루를 시작한다. 누군가는 맡은 일을 잘해내기 위해 애쓰고, 누군가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으려 한다. 또 누군가는 경쟁에서 밀려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마음 한구석에 감추고 있다.

평소에는 웃으며 어깨를 나란히 하던 동료도 승진을 놓고 경쟁하게 되면 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 상대방의 성공을 축하하는 말을 건네면서도 마음속에는 부러움과 서운함이 함께 일어난다.

그러한 감정은 특별히 못된 사람에게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싶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본능에 얼마나 쉽게 끌려가느냐에 있다.

어떤 사람은 윗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공손하다가도 아랫사람에게는 차갑게 대한다. 권한이 없을 때는 공정함을 주장하다가 막상 권한을 갖게 되면 자신의 편을 먼저 챙기기도 한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라 믿지만, 그 자리에 오르고 나면 더 높은 자리가 눈에 들어온다. 어렵게 얻은 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며 또 다른 경쟁을 시작한다.

욕망은 뜨거운 불길과 같다. 알맞게 다스리면 일을 이루는 힘이 되지만, 지나치면 자신이 정성껏 쌓아온 신뢰까지 태워버린다.

직장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일의 능력만큼이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의 공을 동료와 나누고, 어려움에 처한 후배를 감싸며, 높은 자리에 있을 때도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는 사람은 오래도록 좋은 기억을 남긴다.

언젠가 퇴직하는 날이 오면 책상 위의 명패는 치워지고, 그 자리는 다른 사람이 채운다. 한때 자신을 빛내주던 직함도 세월과 함께 사라진다.

그러나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기억까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그 사람의 차가운 말투를 기억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힘겨웠던 시절에 건네받은 따뜻한 위로를 오래도록 간직할 것이다.

좋은 요리가 식사를 마친 뒤에도 입안에 깊은 여운을 남기듯, 사람의 진정한 가치는 그가 떠난 자리에서 더욱 분명해질 때가 있다.

직장은 인생의 중요한 무대이지만 마지막 목적지는 아니다.

우리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일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일에서 얻는 인정과 지위를 지키느라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잃어버린다면 무엇을 위해 그토록 애써왔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일상의 식탁에 놓인 행복

우리의 일상은 평범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욕망이 숨어 있다.

이웃이 좋은 집으로 이사하면 부러운 마음이 생기고, 친구가 새 자동차를 구입하면 자신의 형편을 돌아보게 된다. 남의 자식이 성공했다는 소식에는 축하를 보내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자신의 자식과 비교하기도 한다.

어제까지 만족스러웠던 삶이 남과 비교하는 순간 갑자기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인간의 마음은 참으로 묘하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얻기 전에는 그것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지만, 막상 손에 넣으면 기쁨은 오래가지 않는다. 새집의 설렘도, 새 자동차의 만족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마음은 다시 다른 것을 향해 움직인다.

욕망은 채운다고 해서 반드시 잠잠해지는 것이 아니다.

남의 식탁에 놓인 음식이 아무리 맛있어 보여도 자신의 식탁에는 또 다른 정성과 사연이 담겨 있다. 그러나 우리는 남의 식탁을 부러워하느라 정작 자신의 음식이 식어가는 줄도 모른다.

인생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

조금 더 돈을 벌면 쉬겠다고 말하고, 생활이 안정되면 여행을 떠나겠다고 다짐한다. 자식이 자리를 잡으면 그때부터 마음 편히 살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행복을 내일로 미루는 사이 계절은 몇 번이고 바뀐다.

봄날의 꽃은 우리가 여유를 찾을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저녁노을도 누군가 바라보아 주기를 기다리며 하늘에 머물지 않는다.

시간은 우리의 사정과 관계없이 흘러간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창가에 스며드는 햇살, 따뜻한 밥 한 그릇, 무사히 하루를 마치고 돌아온 가족의 얼굴은 너무 익숙하다는 이유로 그 가치를 잊기 쉽다.

그러나 건강을 잃고 나서야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귀한 선물이었는지 깨닫는 사람이 많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된장찌개 한 그릇을 떠올려본다. 그 음식이 오래도록 그리운 것은 특별한 재료가 들어갔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부엌에서 피어오르던 구수한 냄새와 밥상을 차리던 어머니의 손길, 한 식탁에 둘러앉았던 가족의 모습이 그 맛과 함께 기억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움 속의 음식에는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정이 담겨 있다.

행복도 그렇다.

값비싼 물건이 주는 기쁨은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질 수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했던 평범한 순간은 오래도록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행복은 언제나 화려한 잔칫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소박한 밥상에 마주 앉아 서로의 안부를 묻는 순간에 더 깊이 머물러 있다.

가족이라는 오래된 밥상

가족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울타리다.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고, 기쁜 일이 있으면 함께 웃으며, 어려움이 생기면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간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사람이 언제나 가장 편안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로 말을 함부로 하고, 상대방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며, 자신도 모르게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밖에서는 친절한 사람도 집에서는 무뚝뚝해지고, 직장에서 참았던 분노를 가족에게 쏟아내는 경우도 있다.

사랑하는 마음과 사랑을 표현하는 능력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부부의 삶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서로 좋아서 만나 한평생을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던 두 사람이 오랜 세월을 살아가면서 사소한 말 한마디에 마음을 닫기도 한다.

남편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애썼다고 생각하고, 아내는 가정을 지키느라 자신의 젊음을 바쳤다고 여긴다. 두 사람 모두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상대방의 고단함을 먼저 헤아리는 데는 인색해질 때가 있다.

서로의 희생을 저울질하다 보면 사랑으로 시작한 관계가 어느새 누가 더 많이 고생했는지를 따지는 자리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함께 살아온 세월을 어떻게 하나의 저울로 잴 수 있겠는가.

각자의 자리에서 견디어 온 시간에는 서로 다른 무게가 있다.

음식에 한 가지 양념만 지나치게 들어가면 다른 맛이 사라지듯, 가족 안에서도 한 사람의 주장과 감정만 앞서면 화목은 무너지기 쉽다.

사랑에도 조화가 필요하다.

내 말을 들어달라고 요구하기 전에 상대방의 말을 듣고, 내가 받은 상처를 헤아리기 전에 상대방에게 남긴 상처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자신의 젊음을 아낌없이 내어주지만, 때로는 그 희생을 이유로 자식의 삶까지 자신의 뜻대로 이끌려 한다. 자식은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부모가 오랫동안 감당해 온 걱정과 희생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할 때가 있다.

가까운 사이에도 넘지 말아야 할 마음의 경계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잊는다.

형제자매의 관계에서는 더 씁쓸한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어린 시절 한 밥상에 둘러앉아 작은 반찬 하나도 나누어 먹던 형제가 부모의 재산을 놓고 서로 등을 돌리는 일이 있다.

부모를 돌보는 책임 앞에서는 각자의 형편을 내세우면서 유산을 나누는 자리에서는 자신의 권리를 먼저 주장하기도 한다.

한때는 서로의 허기를 걱정하며 밥을 나누던 형제가 이제는 재산의 몫을 따지며 얼굴을 붉힌다면 그보다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끈질긴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욕심이 인간의 전부는 아니다.

병든 배우자의 곁을 오랫동안 지키는 사람도 있고, 어려움에 처한 형제를 위해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어주는 사람도 있다. 자식의 아픔을 대신 짊어질 수 없어 밤새 잠 못 이루는 부모도 있다.

인간의 마음에는 이기심과 사랑이 함께 살아 있다.

우리가 어떤 마음을 키우느냐에 따라 가족의 모습도 달라진다.

가족은 같은 피를 나누었다는 사실만으로 저절로 화목해지는 관계가 아니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작은 배려가 쌓일 때 비로소 따뜻한 울타리가 된다.

가족은 서로의 잘잘못을 가려 승리해야 할 상대가 아니라, 인생이라는 긴 식탁에서 마지막까지 정을 나누어야 할 소중한 사람들이다.

교회 문을 나서며 만나는 또 다른 세상

한 주일을 살아가다 보면 마음에도 먼지가 쌓인다.

직장에서 겪은 갈등과 일상에서 느낀 불만, 가족에게 품었던 서운함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마음속에 내려앉는다. 대수롭지 않은 일에 짜증이 나고,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감정이 흔들릴 때가 있다.

그렇게 분주한 날들을 보내고 주말과 휴일을 맞으면 나는 교회에 간다.

예배당에 들어서면 잠시 바깥세상의 소란을 내려놓는다. 익숙한 찬송가가 울려 퍼지면 나도 목소리를 높여 따라 부른다.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가운데 마음속에 엉켜 있던 생각들이 조금씩 풀리는 듯하다.

찬송가를 부를 때만큼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마음을 감출 필요가 없다. 기쁠 때는 기쁜 마음으로, 지친 날에는 지친 마음 그대로 목소리를 낸다.

때로는 찬송의 가사가 마음속 깊은 곳에 닿아 오래 잊고 지냈던 감사함을 떠올리게 한다.

이어서 눈을 감고 나만의 기도를 드린다.

그 기도에는 거창한 소망만 담기는 것이 아니다.

가족이 건강하게 하루를 살아가기를 바라고, 마음속에 품었던 걱정을 내려놓으며, 지난 한 주 동안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을 돌아본다.

누군가를 원망했던 마음도 떠올리고, 작은 일에 화를 냈던 순간도 되짚어 본다. 남의 잘못에는 엄격하면서 자신의 잘못에는 너그러웠던 모습을 생각하면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기도하는 시간은 나에게 무엇을 더 달라고 구하는 시간인 동시에, 내 안에 무엇을 덜어내야 하는지 살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지나친 욕심을 덜어내고, 쉽게 흔들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당연하게 여겼던 일들 속에서 감사할 이유를 찾아본다.

예배를 마치면 교우들과 인사를 나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짧은 대화 속에서 사람의 온기를 느낀다.

그렇게 교제를 나누고 교회 문을 나설 때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듯하다.

그러나 교회 문밖에는 또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도로에는 자동차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서둘러 걸어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기도 하고, 누군가의 무심한 행동에 마음이 불편해질 수도 있다.

예배당 안에서는 모든 사람을 너그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바깥세상으로 나오는 순간 나의 감정은 다시 흔들리기 시작한다.

조금 전까지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했으면서도 사소한 불편에 짜증이 나고, 욕심을 내려놓겠다고 다짐했으면서도 어느새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럴 때면 나 자신이 참으로 불완전한 존재임을 깨닫는다.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인간적인 감정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드렸다고 해서 분노와 질투, 서운함과 욕심이 한순간에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감정이 생기지 않도록 자신을 꾸미는 일이 아니라, 감정에 휩쓸린 자신의 모습을 알아차리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교회에서의 예배는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이고, 교회 밖의 일상은 그 마음을 실제로 지켜내야 하는 자리인지도 모른다.

예배당 안에서 아무리 큰 소리로 찬송을 불러도 집에 돌아와 가족에게 거친 말을 한다면 그 찬송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기도할 때는 이웃을 사랑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일상에서는 자신에게 불편을 주는 사람을 쉽게 미워한다면 기도의 내용이 삶으로 이어졌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신앙은 예배당 안에서의 모습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교회 문을 나선 뒤 어떤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어려운 순간에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드러난다고 믿는다.

나 역시 언제나 그 다짐대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순간순간 달라지는 감정 앞에서 흔들리고, 같은 잘못을 되풀이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자신을 돌아보려 한다.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무엇 때문에 서운했는지, 내 마음에 지나친 욕심이 자리하고 있지는 않은지 조용히 생각해 본다.

그리고 감사할 일을 하나씩 떠올린다.

오늘도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가족이 곁에 있음에 감사하며, 아직 걸을 수 있고 말할 수 있으며 누군가와 웃음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감사하는 마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불평에 사로잡힌 시선을 돌려 내게 남아 있는 소중한 것들을 바라보게 한다.

불편한 일이 생겼다고 하루 전체가 불행한 것은 아니며, 누군가에게 서운함을 느꼈다고 세상 모든 사람이 차가운 것도 아니다.

감사는 이러한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요리사가 음식의 맛을 보며 부족한 간을 맞추듯, 나는 찬송과 기도,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 삶의 균형을 조금씩 맞추어 간다.

때로는 욕심을 덜어내고, 때로는 인내를 더하며, 모자란 사랑과 배려를 채우려 한다.

교회에서 마음을 가다듬는 일이 신앙의 한 모습이라면, 교회 밖에서 그 마음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일은 신앙을 삶으로 이어가는 과정일 것이다.

나는 그것이 자신을 다스리는 작은 수행이자 행복에 가까워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세월이 익혀주는 삶의 깊은 맛

요리사의 솜씨는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불의 세기를 잘못 조절해 음식을 태우기도 하고, 양념을 지나치게 넣어 애써 준비한 재료를 망치기도 한다. 그러나 실패한 이유를 살피고 다시 시도하는 동안 조금씩 손끝에 감각이 생긴다.

인생도 그렇다.

젊은 시절에는 노력하면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진심을 다하면 상대방이 알아줄 것이고, 성실하게 살아가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뒤따를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세상은 언제나 우리의 노력에 알맞은 보상을 주지는 않는다.

정성을 다한 일이 실패로 돌아오기도 하고, 믿었던 사람에게 실망하기도 한다. 가족을 위해 희생했지만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받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한 일들을 겪으며 사람은 조금씩 삶의 다른 면을 알아간다.

젊어서는 남을 이기는 일이 중요했지만, 세월이 흐르면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일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젊어서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었지만, 나이가 들면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 한두 명이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된다.

젊어서는 무엇을 더 가질 것인가를 고민하지만, 나이가 들면 무엇을 내려놓아야 마음이 편안해질지를 생각한다.

오래 끓인 국물에 재료의 깊은 맛이 우러나듯, 삶의 굴곡을 견디어 온 사람의 마음에도 경험의 흔적이 남는다.

그러나 오래 살았다고 해서 누구나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세월을 보내는 것과 세월에서 배우는 것은 다른 일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사람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같은 갈등을 되풀이한다. 반대로 지나온 일을 정직하게 돌아보는 사람은 실패 속에서도 배울 것을 찾아낸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고집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자식에게도 배울 것이 있고, 이웃에게도 배울 것이 있으며, 때로는 자신보다 어린 사람의 말에서도 삶을 돌아볼 기회를 얻는다.

인생이라는 요리에 경험이 깊은 맛을 더한다면, 겸손은 그 맛이 지나치게 강해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손길과 같다.

세월이 가르쳐주는 지혜란 모든 것을 안다는 확신이 아니라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깨달음일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 식탁에 남길 것

젊은 날에는 시간이 끝없이 이어질 것처럼 느껴진다.

직장에서 인정받기 위해 애쓰고, 자식을 키우고, 집을 마련하며, 노후를 준비하느라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낸다.

그러나 세월은 어느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어느 날 거울 앞에 서면 검던 머리에는 흰빛이 내려앉고, 얼굴에는 지나온 시간의 흔적이 뚜렷해져 있다.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오르던 계단 앞에서도 잠시 숨을 고르게 된다.

그제야 걸음을 늦추고 지나온 길을 돌아보게 된다.

한때는 세상의 전부처럼 여겼던 직장의 높은 자리도 이제는 먼 이야기가 된다.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했던 경쟁과 다툼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있을 이유가 없는 일들이 많다.

반면 사소하게 여겼던 기억은 더욱 선명해진다.

젊은 날 배우자와 함께 걸었던 저녁길, 어린 자식의 웃음소리, 부모님이 차려주시던 따뜻한 밥상, 오래된 친구와 나누었던 대화가 그리움으로 되살아난다.

주말이면 교회에 앉아 목소리 높여 불렀던 찬송가의 가락도 떠오른다. 조용히 눈을 감고 가족의 평안을 빌었던 기도와 예배를 마치고 교우들과 나누었던 반가운 인사도 삶의 한 장면으로 남는다.

돌아보면 인생을 아름답게 만든 것은 거창한 성공만이 아니었다.

서로를 걱정하고 위로했던 순간, 힘겨운 날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마음, 별다른 이유 없이 웃을 수 있었던 평범한 하루가 삶을 지탱해 주었다.

인생의 후반부에 들어서면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된다.

자식의 앞날을 걱정하는 것도 부모의 마음이지만, 자식에게는 자식의 삶이 있다. 부모도 자신의 남은 인생을 끝까지 살아가야 한다.

건강이 허락하는 만큼 걷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새로운 것을 배우는 기쁨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몸에 무리가 되지 않는 일을 계속하며 보람을 느끼는 것도 좋은 삶의 모습이다.

평생 가족을 위해 애썼다면 이제는 자신의 마음에도 따뜻한 밥 한 그릇을 차려줄 줄 알아야 한다.

인생이라는 요리는 누군가 대신 완성해 줄 수 없다.

지금까지 어떤 재료를 사용했고, 어떤 실수를 했으며, 어떤 맛을 남겼는지 돌아보는 일도 필요하지만 앞으로 남은 시간에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덜어낼 것인지 생각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마음에 오래된 원망이 남아 있다면 조금씩 덜어내고, 소원해진 인연이 있다면 화해할 길을 찾아보아야 한다. 외로움이 깊어질 때는 마음의 문을 닫기보다 사람들과 따뜻한 정을 나누려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하루를 마칠 때 오늘도 살아갈 수 있었음에 감사할 수 있다면 좋겠다.

삶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화려한 장식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견디며 쌓아온 사랑과 신뢰, 배려와 감사의 마음일 것이다.

맺음말 ― 행복은 정성으로 완성되는 삶의 맛

한 접시의 훌륭한 요리가 완성되기까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재료를 고르는 안목과 손질하는 정성, 불길을 살피는 인내와 맛의 균형을 잡는 경험이 어우러져야 한다.

어느 하나만 지나쳐도 조화는 무너진다.

인생도 다르지 않다.

직장에서는 경쟁보다 신의를 소중히 여기고, 일상에서는 비교보다 감사하는 마음을 키우며, 가족 사이에서는 자존심보다 사랑을 앞세울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분주한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시간도 필요하다.

나는 주말이면 교회에 가서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드린다. 그 시간에는 한 주 동안 쌓인 감정을 내려놓고 자신을 조용히 돌아본다.

그러나 교회 문을 나서면 다시 복잡한 일상이 시작된다.

방금 전까지 평온하던 마음이 작은 불편에 흔들리고, 감사하던 마음이 어느새 불평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새삼 깨닫는다.

인간은 한 번 마음을 바로잡았다고 해서 평생 흔들리지 않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러므로 자신을 다스리는 일에도 끊임없는 정성이 필요하다.

요리사가 불길을 살피며 음식이 익어가는 상태를 확인하듯, 우리는 삶의 순간마다 자신의 감정을 살펴야 한다.

분노가 지나치게 뜨거워졌다면 한 걸음 물러서고, 욕심이 너무 강해졌다면 조금 덜어내야 한다. 가족에게 소홀했다면 사랑을 더하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사과할 용기를 내야 한다.

무엇보다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해야 한다.

감사는 모든 것이 넉넉하고 만족스러울 때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다. 부족한 것이 있어도 아직 자신에게 남아 있는 소중한 것들을 발견하려는 마음의 자세다.

오늘도 무사히 아침을 맞았다는 사실, 사랑할 가족이 있다는 사실, 아직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을 건넬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이유는 있다.

물론 감사한다고 해서 가난이 사라지거나 병든 몸이 저절로 낫는 것은 아니다. 불공평한 현실이 한순간에 바뀌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감사는 어려움만 바라보던 마음에 작은 여백을 만들어준다. 그 여백 속에서 우리는 미처 보지 못했던 기쁨과 희망을 발견하기도 한다.

나는 이제 행복을 먼 미래의 보상으로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직장에서 누군가와 웃으며 나누는 인사, 가족과 함께 먹는 따뜻한 저녁, 교회에서 부르는 찬송 한 곡, 조용히 드리는 기도 한마디에도 삶의 소중한 맛이 담겨 있다고 믿는다.

그것들을 알아보고 마음에 담는 일 또한 인생이라는 요리를 정성껏 완성하는 과정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인생에도 달콤한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때로는 쓰디쓴 실패를 맛보았고, 때로는 눈물겨운 이별을 겪었으며, 때로는 자신의 욕심과 어리석음 때문에 후회하기도 했다.

그러나 쓰고 짠맛을 모두 없앤다고 해서 좋은 요리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맛이 알맞게 어우러질 때 음식에 깊이가 생기듯, 삶의 기쁨과 슬픔도 돌아보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한 사람의 경험과 지혜가 된다.

그렇다고 고통을 억지로 아름답게 포장할 필요는 없다. 아픈 기억은 여전히 아픈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 다만 그 아픔이 앞으로의 삶까지 모두 지배하도록 내버려두지는 말아야 한다.

이제는 남보다 더 많이 가지려고 애쓰기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귀하게 여기고 싶다.

누군가를 원망하는 마음보다 이해하려는 마음을 키우고, 불평하는 습관보다 감사하는 마음을 조금씩 더해가고 싶다.

언제나 온화하고 흔들림 없는 사람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살다 보면 또 화가 날 것이고, 서운한 일이 생길 것이며, 때로는 욕심 때문에 마음이 흐려질 것이다.

그럴 때마다 다시 자신을 돌아보면 된다.

주말 교회에서 드렸던 기도를 떠올리고, 목소리 높여 불렀던 찬송의 여운을 생각하며, 오늘 내게 주어진 작은 행복들을 다시 헤아려보면 된다.

행복은 한 번 깨닫고 끝나는 진리가 아니다. 수없이 흔들리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일상 속에서 조금씩 익혀가는 삶의 태도다.

언젠가 인생의 마지막 식탁을 마주할 때가 올 것이다.

그날 나는 얼마나 많은 재산을 모았는지, 어떤 높은 자리에 올랐는지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얼마나 정성껏 살아왔는지를 돌아보고 싶다.

사랑해야 할 사람을 충분히 사랑했는가.

남의 잘못을 탓하기 전에 자신의 부족함을 살펴보았는가.

감사해야 할 순간들을 불평과 원망으로 흘려보내지는 않았는가.

무엇보다 행복을 너무 오래 미루지는 않았는가.

이 질문들 앞에서 부끄러움이 전혀 없는 삶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부족함이 있었어도 다시 고치려 애썼고, 어려움 속에서도 사랑과 감사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노라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

인생은 남보다 화려한 요리를 만들어 보이기 위한 경쟁이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재료를 가지고 정성과 사랑으로 완성해 가는 단 한 번의 식탁이다.

어떤 사람의 삶은 화려한 잔칫상처럼 풍성할 것이고, 어떤 사람의 삶은 소박한 시골 밥상처럼 단출할 것이다. 그러나 화려함이 반드시 깊은 맛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소박한 음식 한 그릇에도 만든 사람의 정성과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다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사람의 인생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많이 가졌다는 사실보다 따뜻하게 살았다는 기억이 남고, 높은 자리에 올랐다는 사실보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었다는 흔적이 남는 삶.

그러한 삶이라면 비록 세상의 기준으로 화려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품격 있는 인생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행복해져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은 단 한 번뿐이며, 그 소중한 시간을 원망과 경쟁 속에서만 보내기에는 삶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행복은 모든 재료가 완벽하게 준비되었을 때 비로소 만들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다. 부족한 것은 부족한 대로 받아들이고, 가진 것은 정성껏 다듬으며, 지나친 것은 덜어내는 과정에서 조금씩 깊어지는 삶의 맛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복해져야 한다.

남보다 잘살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후회 없이 살아가기 위해서다.

오늘도 마음이 흔들리면 다시 가다듬고, 감사할 일을 찾아보고, 사랑해야 할 사람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며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

언젠가 삶의 불을 끄고 마지막 식탁을 떠나는 날, 지나온 세월을 조용히 돌아보며 이런 말을 남길 수 있기를 바란다.

“때로는 쓰고, 때로는 짜고, 때로는 눈물겨운 날도 있었지만, 사랑과 감사로 간을 맞추며 살아온 내 인생은 참으로 따뜻한 한 접시의 요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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