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올려놓고 창가에 선다. 밤새 닫혀 있던 유리창 너머로 아침빛이 들어온다. 건너편 집 지붕은 아직 그늘에 잠겨 있고, 길가의 나무 끝에만 햇살이 걸려 있다. 잠이 덜 깬 얼굴로 그 풍경을 바라보다가 물 끓는 소리에 몸을 돌린다.
잔에 커피를 내린다. 뜨거운 물이 가루를 적시자 향이 피어오른다. 주방을 지나 거실까지 번지는 그 냄새를 맡으면, 비로소 오늘이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젯밤 씻어 엎어둔 잔 하나가 아침에는 이렇게 작은 즐거움이 된다.
예전에는 커피를 서둘러 마셨다. 시계를 보고, 옷을 챙기고, 나갈 채비를 하면서 뜨거운 커피를 입에 넣었다. 다 마시지 못한 잔을 식탁에 두고 문을 닫은 날도 많았다. 저녁에 돌아와 바닥에 조금 남은 커피를 버릴 때면, 아침에 무엇을 그토록 서둘렀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이제는 잔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잠시 앉는다. 손바닥에 온기가 배어드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오늘 해야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화할 곳도 있고, 미뤄둔 일도 있다. 그래도 커피가 조금 식을 때까지는 그대로 두기로 한다.
한 모금을 마시다가 오래전 누군가와 마주 앉았던 아침이 떠오른다. 식탁 한쪽에 놓인 빵, 신문을 넘기던 소리, “커피 더 줄까?” 하고 묻던 목소리.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들었던 말이 세월이 지난 뒤 문득 그리워진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잊었어도, 잔을 채워주던 손은 기억에 남아 있다.
나는 잔을 내려놓고 창문을 조금 연다. 서늘한 공기가 들어와 커피향과 섞인다. 길 건너에서 누군가 차 문을 닫고, 작은 새 한 마리가 나뭇가지 사이를 옮겨 앉는다. 세상은 벌써 제 할 일을 시작하고 있다.
남은 커피를 천천히 마신다. 처음보다 덜 뜨겁고 쓴맛도 한결 부드럽다. 빈 잔을 씻으러 일어서면서 오늘 전화할 사람을 떠올린다. 별다른 용건은 없다. 아침은 먹었는지, 잘 잤는지 물으면 된다.
수도꼭지를 틀기 전에 잠깐 잔을 코 가까이 가져가 본다.
커피향이 아직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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