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몇 사람이 한자리에 모였다.
케이크에 촛불을 밝히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주인공이 촛불을 끄자 박수가 이어졌다. 우리는 케이크를 나누어 먹으며 근황을 묻고 지난 일을 이야기했다. 대화가 한창일 때 누군가가 말했다.
“오늘이 개천절이네. 개천절에 태어났구나.”
모두 웃었다. 곧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지만 나는 그 말을 오래 기억했다.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가을 하늘은 높고 맑았다. 해는 서쪽으로 기울었고, 길가의 나무들은 조금씩 색을 바꾸고 있었다. 바람에는 여름과 다른 서늘함이 배어 있었다.
나는 걸으며 ‘개천절’이라는 말을 다시 떠올렸다.
하늘이 열린 날.
그동안 개천절은 달력에 표시된 국경일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그날은 그 말이 내 삶과 조금 가까워진 듯했다. 한 사람의 생일과 개천절이 겹친 우연 때문이었을 것이다.
생일은 태어난 날을 축하하는 날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뜻은 달라진다. 앞날만 바라보던 젊은 시절과 달리 이제는 지나온 시간도 함께 돌아보게 된다. 무엇을 얻었는지보다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를 생각하게 되고, 앞으로 얼마나 오래 살 것인지보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걷다 보니 낙엽 몇 장이 길가에 흩어져 있었다.
나는 문득 지난 시간을 돌아보았다. 사소한 일에 마음을 닫았던 적은 없었는지, 고마움을 알고도 표현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는지, 이미 지나간 일을 붙잡고 스스로를 힘들게 한 적은 없었는지 생각했다.
세월은 저절로 사람을 너그럽게 만들지는 않는 것 같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마음까지 넓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오래 살아온 만큼 자신의 생각에 익숙해지고, 익숙한 생각을 옳다고 믿기 쉬워진다.
그래서 때로는 스스로 마음을 열어야 한다.
내가 옳다고 믿었던 생각을 다시 살펴보고, 서운했던 사람의 입장을 한 번 더 헤아리고,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할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일이다.
조금 전 생일을 맞은 지인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개천절에 태어났네.’
처음에는 축하 자리의 가벼운 농담이었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그 말이 다른 의미로 남았다.
하늘이 열린 날에 한 사람이 태어났다. 그리고 그 사람의 생일을 축하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내 마음이 얼마나 열려 있는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집에 가까워질수록 하늘은 천천히 어두워졌다.
길은 평소와 같았고, 나무와 바람도 특별할 것은 없었다. 다만 나는 모임을 나설 때보다 조금 차분해져 있었다.
앞으로의 삶에서 거창한 변화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미워해야 할 이유를 오래 붙들지 않고, 고마운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을 조금 더 이해하려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개천절 저녁, 높은 가을 하늘 아래를 걸으며 나는 알게 되었다.
마음을 연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자리를 내 안에 조금 더 마련하는 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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