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저문다.
어느새 창밖의 빛은 낮의 뜨거움을 거두고, 저녁의 고요한 색으로 물들어 간다. 길 위를 지나던 사람들의 발걸음도 조금씩 느려지고, 세상은 하루 동안 품고 있던 소란을 조용히 내려놓는 듯하다. 아침에는 멀게만 느껴졌던 저녁이 이렇게 문득 내 앞에 와 있다.
나는 오늘도 하루를 살아냈다.
크게 바쁘지도, 특별히 눈에 띄는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하루가 가볍지만은 않았다. 몸이 불편한 날에는 평범한 시간조차 조금은 무겁게 다가온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갈 수 있는 길도 길게 느껴지고, 사소한 움직임 하나에도 마음이 먼저 긴장한다.
오늘 내 몸을 힘들게 한 것은 발가락의 통풍이었다.
작은 발가락 하나의 아픔이지만, 그 불편함은 몸 전체로 번져 갔다. 사람의 몸이란 참 신기해서, 어느 한 곳이 아프면 온몸이 그 아픔을 함께 기억한다. 평소에는 너무도 당연하게 내딛던 한 걸음이 오늘은 조심스러운 일이 되었고, 늘 무심히 해 오던 일들도 오늘은 조금 더 많은 인내를 필요로 했다.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았다.
느리면 느린 대로,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오늘 내게 주어진 시간을 건너왔다. 몸은 무거웠지만 마음까지 주저앉히지는 않았다. 아픔을 핑계 삼아 하루를 놓아 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겠지만, 나는 내 자리에서 내 몫을 해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자랑할 만큼 커다란 일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충분히 값진 일이었다.
사람은 때때로 자신이 견뎌 낸 하루의 무게를 너무 쉽게 지나쳐 버린다.
남들이 보기에는 별일 아닌 하루였을지라도, 그 안에는 나만 아는 수고가 있다. 참아 낸 통증이 있고, 삼켜 낸 피로가 있고, 끝까지 마무리하려 애쓴 마음이 있다. 세상은 그런 사소한 인내를 크게 알아주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안다. 오늘의 내가 얼마나 조용히 버텼는지를.
하루의 일이 끝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내 안에 남아 있던 긴장을 조금씩 풀어 본다.
그리고 조용히 나 자신에게 말을 건넨다.
“오늘도 수고했어.”
그 말은 화려하지 않지만 따뜻하다.
누군가의 박수처럼 크지는 않지만, 지친 마음을 다독이기에는 충분하다. 오늘 하루를 끝까지 건너온 나에게 그 한마디는 작은 등불 같다. 어둑해지는 저녁 속에서 나를 향해 조용히 켜지는 불빛, 그것은 바로 내가 나에게 주는 위로다.
오늘의 보람은 거창한 성취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해야 할 일을 끝냈다는 것, 아픈 몸으로도 하루를 마무리했다는 것, 그리고 한 주 동안 일한 대가로 주급을 받았다는 것. 그것이 오늘 내 마음에 작은 기쁨으로 남았다.
주급은 단순한 돈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내가 보낸 시간이 들어 있었다. 아침마다 일어나 몸을 움직인 날들, 피곤해도 참고 일한 시간들, 아파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던 마음들이 조용히 담겨 있었다. 손에 쥔 것은 돈이지만, 사실 그 안에 담긴 것은 한 주의 땀이고 성실함이며, 하루하루 버텨 낸 내 삶의 흔적이었다.
그래서 오늘 받은 주급은 유난히 묵직하게 느껴졌다.
그 무게는 지폐의 무게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살아온 시간의 무게였고, 아픈 몸을 이끌고도 내 책임을 다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조용한 보람의 무게였다.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이렇게 작은 날들을 견디는 일인지도 모른다.
매일 눈부신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매번 큰 보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어떤 날은 그저 몸 하나 이끌고 하루를 지나오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어떤 날은 아픈 곳 하나 때문에 마음까지 흐려진다. 그러나 그런 날에도 우리는 살아간다. 해야 할 일을 하고, 맡은 시간을 지나고, 저녁이 되면 다시 자신을 돌아본다.
그리고 그 끝에서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래도 잘했다.”
나는 오늘 완벽하지 않았다.
몸은 불편했고, 마음도 아주 가볍지는 않았다. 그러나 완벽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오늘의 하루가 더 인간답게 느껴진다. 삶은 언제나 반듯하고 환한 길만 내어 주지 않는다. 때로는 삐걱거리는 몸으로, 조금은 지친 마음으로, 느린 걸음을 옮기며 지나가야 하는 길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길 위에서 나를 포기하지 않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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