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빵이 나오던 시절

급식빵이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아이들에게 빵은 흔한 간식이고, 배가 고프면 언제든 편의점이나 빵집에서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그러나 1960년대의 빵은 지금처럼 흔한 것이 아니었다. 그 시절의 빵 한 조각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배고픔을 달래 주는 고마운 양식이었고, 가난한 시대를 건너가게 해 준 작은 위로였으며, 어린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은 시대의 기억이었다.

1960년대 우리나라는 아직 전쟁의 상처가 깊게 남아 있던 때였다. 집집마다 살림은 넉넉하지 못했고, 많은 사람들은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을 가장 큰 걱정으로 삼고 살았다. 도시도 시골도 풍요와는 거리가 멀었다. 지금처럼 집마다 냉장고가 가득 차 있고, 식탁 위에 여러 가지 반찬이 오르는 세상이 아니었다. 쌀은 귀했고, 보리밥이나 잡곡밥으로 끼니를 이어 가는 집이 많았다. 어떤 날은 밥그릇에 밥보다 물이 더 많아 보일 때도 있었고, 아이들은 배가 차기도 전에 숟가락을 내려놓아야 했다.

그 시절 초등학교 운동장은 흙먼지가 날리는 넓은 마당이었다. 비가 오면 질퍽거렸고, 해가 나면 마른 흙이 바람에 날렸다. 아이들은 검정 고무신을 신고 학교에 다녔다. 책가방도 지금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어떤 아이는 천으로 만든 가방을 메고 다녔고, 어떤 아이는 책을 보자기에 싸서 들고 다녔다. 교실에는 나무 책상과 의자가 줄지어 있었고, 겨울이면 난로 가까이에 앉은 아이들은 따뜻했지만 창가에 앉은 아이들은 손을 비비며 추위를 견뎌야 했다.

그런 시절에 학교에서 급식빵이 나오던 때가 있었다. 나라 경제가 어려워 외국의 원조를 받던 무렵이었다. 미국에서 들어온 밀가루나 분유 같은 구호 물자가 학교 급식으로 이어졌고, 어린 학생들에게 빵이 나누어졌다. 그 빵은 지금의 부드럽고 달콤한 빵과는 달랐다. 모양도 투박했고 맛도 단순했다. 어떤 때는 약간 퍽퍽했고, 목이 메어 물을 찾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 시절 아이들에게 그 빵은 귀한 음식이었다. 빵이 나오는 날이면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교실 안에 빵이 들어오면 먼저 냄새가 퍼졌다. 밀가루 냄새와 구워진 빵 냄새가 섞여 아이들의 코끝을 간질였다. 수업 시간 내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던 아이들은 그 냄새만 맡아도 마음이 들뜨곤 했다. 선생님이 빵을 하나씩 나누어 주면 아이들은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받았다. 혹시 떨어뜨릴까 봐, 혹시 남보다 작을까 봐, 혹시 누가 빼앗을까 봐 괜히 손에 힘이 들어갔다.

빵을 받으면 어떤 아이는 그 자리에서 허겁지겁 먹었다. 배가 너무 고팠기 때문이다. 입안에 넣자마자 제대로 씹기도 전에 삼키는 아이도 있었다. 어떤 아이는 조금씩 아껴 먹었다. 한입 베어 물고 오래 씹으며 그 맛을 붙잡아 두려 했다. 또 어떤 아이는 먹지 않고 가방 속에 넣었다. 집에 있는 동생에게 가져다주기 위해서였다. 자신도 배가 고프지만, 집에서 기다리는 어린 동생의 얼굴이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작은 행동 속에는 그 시대 아이들의 가난과 정이 함께 담겨 있었다.

급식빵 한 조각은 아이들에게 단순한 배급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선물이었다. 아침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학교에 온 아이들에게는 점심이었고, 허기진 오후를 견디게 해 주는 힘이었다. 집에 먹을 것이 부족한 아이들에게는 집으로 가져갈 수 있는 작은 희망이기도 했다. 손바닥 위에 놓인 빵 하나가 얼마나 크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작은 빵이었지만, 그때 아이들의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음식처럼 보였다.

그 시절 어머니들은 늘 걱정이 많았다. 자식들 밥을 굶기지 않기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일했다. 아버지들도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무거운 어깨를 견디며 하루를 보냈다. 그래도 살림은 늘 빠듯했다. 쌀독이 비어 가면 어머니의 한숨이 깊어졌고, 아이들은 그 한숨의 뜻을 다 알지는 못했지만 집안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집안 형편에서 학교에서 나오는 급식빵은 부모에게도 고마운 일이었다. 아이가 학교에서 빵 하나라도 먹고 오면, 그만큼 마음이 놓였기 때문이다.

가난은 어린아이에게도 감추어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서로의 옷차림을 보며 집안 형편을 짐작했고, 도시락을 열어 보며 누구 집이 조금 더 넉넉한지 알았다. 도시락을 가져오지 못한 아이도 있었고, 밥 위에 김치 몇 조각만 얹어 온 아이도 있었다. 어떤 아이는 점심시간이 되면 괜히 운동장으로 나갔다. 도시락이 없다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에게 급식빵은 부끄러움을 덜어 주는 음식이었다. 모두가 함께 받는 빵이었기에 가난한 아이도 덜 눈치 보며 먹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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