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팅 칭구

덕암초등학교 친구들

가끔은 아무 까닭도 없이 오래전 골목길이 마음속에 걸어 들어온다. 바람 한 줄기에도, 낡은 사진 한 장에도, 문득 덕암초등학교 시절의 친구들이 떠오른다. 지금은 모두 제각기 다른 길 위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이름들을 마음속으로 하나씩 불러 보면 마치 어제 일처럼 얼굴들이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그 시절 우리는 한동네에 살거나, 조금 떨어진 이웃 동네에 살았다. 집은 달라도 학교에만 오면 모두 같은 마당의 아이들이었다. 교문을 지나 운동장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다시 한무리가 되었다. 책가방은 어깨에서 흔들리고, 운동화에는 흙먼지가 묻어 있었지만, 그 모습마저도 참으로 당당했다. 가진 것은 많지 않았어도 웃음만은 누구보다 넉넉했다.

수업이 끝나면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골목으로 몰려나왔다. 좁은 길은 우리의 놀이터였고, 낮은 담장은 우리의 쉼터였다. 누군가는 앞장서 뛰고, 누군가는 뒤에서 장난을 걸었다. 작은 돌멩이 하나, 나뭇가지 하나도 우리 손에 들어오면 훌륭한 장난감이 되었다. 그때의 우리는 참 개구쟁이였다. 넘어져도 울지 않으려 애썼고, 혼이 나도 돌아서면 금세 웃었다.

저녁 무렵이면 이웃집 마당에 모여 팽이를 쳤다. 팽이 줄을 손에 감고 힘껏 던지면, 팽이는 흙마당 위에서 윙윙 소리를 내며 돌았다. 우리는 그 작은 팽이 하나에 온 마음을 걸었다. 누구 팽이가 더 오래 도는지, 누구 팽이가 더 힘차게 버티는지 바라보며 손뼉을 치고 소리를 질렀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도 집에 들어가라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우리는 마당을 떠날 줄 몰랐다.

겨울이 오면 세상은 또 다른 놀이터가 되었다. 얼어붙은 논두렁과 냇가에는 찬바람이 매섭게 불었지만, 우리는 썰매를 들고 달려 나갔다. 손은 얼고 볼은 빨개졌지만 마음은 뜨거웠다. 나무 썰매에 몸을 싣고 얼음 위를 미끄러질 때면 마치 세상 끝까지 달려가는 것만 같았다. 넘어지고 부딪혀도 아픈 줄 몰랐다. 그 차가운 겨울 풍경 속에서도 우리의 웃음소리는 하얀 입김처럼 피어올랐다.

때로는 마실을 가서 어른들이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방 안에는 어둑한 저녁빛이 내려앉고, 우리는 무릎을 모으고 앉아 숨을 죽였다. 귀신 이야기, 도깨비 이야기, 깊은 산속에서 들었다는 이상한 이야기들이 이어지면 무섭다고 하면서도 누구 하나 자리를 뜨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괜히 뒤가 서늘해 서로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다가 누군가 장난으로 소리를 지르면 모두 놀라 뛰다가, 다시 깔깔 웃었다.

그 시절의 하늘은 왜 그리도 높았을까. 그 시절의 골목은 왜 그리도 넓게 느껴졌을까. 지금 생각하면 작은 동네, 작은 학교, 작은 마당이었지만 그 안에는 우리의 온 세상이 들어 있었다. 덕암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우리의 발자국이 남아 있었고, 교실 창가에는 우리의 웃음이 묻어 있었다. 낡은 책상 위에는 꿈도 모르고 꿈꾸던 어린 마음들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세월은 참 빠르게 흘렀다. 함께 뛰놀던 친구들은 어느새 어른이 되었고, 그 많던 장난과 웃음도 기억 속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어린 시절의 추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더 또렷하게 떠오른다. 팽이 도는 소리, 썰매가 얼음 위를 긁던 소리, 친구들의 웃음소리, 어머니가 저녁 먹으라 부르던 목소리까지 모두 마음속 깊은 곳에서 다시 살아난다.

돌아갈 수 없기에 더 그리운 시절이 있다. 다시 만질 수 없기에 더 따뜻한 기억이 있다. 덕암초등학교 동창 친구들과 함께한 그 어린 날들이 바로 그렇다. 가난해도 정겨웠고, 부족해도 행복했던 시절. 우리는 그때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자랐고, 같은 하늘 아래에서 꿈도 모른 채 꿈을 키웠다.

초딩칭구오늘도 문득 그 친구들이 보고 싶다. 한동네 골목에서, 학교 운동장에서, 겨울 냇가에서 함께 웃던 그 얼굴들이 그립다. 세월이 우리를 멀리 데려다 놓았어도, 마음 한쪽에는 아직도 그 시절의 우리가 남아 있다. 덕암초등학교의 어린 친구들, 개구쟁이 같던 우리들, 그리고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던 그때 그 시절이 조용히 내 마음속에서 다시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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